사람이란 아래로는 땅 위에 살고 위로는 하늘 아래에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사람은 땅과 하늘에 의지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땅과 하늘이 사람에 의지해 존재하는가?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도대체 땅과 하늘이 무엇이며, 나는 무엇인가?
서산대사(西山大師: 淸虛休靜, 1520~1604)가 이를 두고
이런 시를 남겼다.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후아시거)
직역하면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
8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내가 저것이네! 라는 의미다.
이 시는 서산대사가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어 그 뒷면에 남긴 시라고 전한다.
이 시를 지은 후 유정대사(사명대사)와 뇌묵당 처영대사(處英大師)에게 전하고
가부좌한 상태로 입적(入寂)하셨다고 전한다.
세수로 보면 85세였고, 법랍으로는 67세가 된다.
이 시에서 말하는 거(渠)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거(渠)>는 도랑, 작은 개울을 뜻한 말이지만
거(渠) 자의 자원(字源)으로 보면
우리 말의 <저이>, < 그 사람> 등을 의미하는 대명사를 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야기 상대 이외의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는 대명사다.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을 가리키는 말로
<저것>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위 직역에서는 <그것>이라고 했지만 영정 뒤편에 남긴 시 임으로
영정(影幀) 곧 자화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다.
서산대사가 남긴 이 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념(思念)이 흐르는 것을 응시할 때는
내가 우주의 중심축이 되고,
내가 사념의 흐름에 휩쓸려 갈 때는
나의 중심이 우주가 된다는 의미인가?
유월의 햇살이 따가우니
고추밭은 시들어 가는데
나무 위에 매미는 요란하게 울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