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쌍 태극기’를 손수 그려 문학모임 벽에 걸어놓은 ‘애국 시인’
― 고 양태의(梁泰誼)시인과의 추억을 회고하며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저 태극기는 누가 만들었는가요?”
대전의 한 원로 문학 모임에 초대받았던 날, 나의 눈에 크게 들어 온 것은 벽에 걸린 ‘쌍 태극기’였다.
▲ 초대 받아 간 문학모임에서 본 ‘쌍 태극기’(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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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든 것이냐고 묻자, 이 모임의 회장인 배인환 시인이 말했다.
“양태의(梁泰誼)선생님이 만들었어요. 솜씨가 참 좋지요?”
문학단체 『전원에서』 정기 합평회가 있는 날이었다.
30여 년 넘게 문단 활동하면서 수많은 크고 작은 문학 모임에 참석했지만, 원로 시인이 손수 만든 ‘쌍 태극기’를 벽에 걸어놓은 합평회는 처음 보았다.
그것도 규모가 큰 행사장이 아니라 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품을 읽고 각자 소감을 말하는 소규모 합평회 자리였다.
▲ 대전 둔산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문학 작품 합평회 - 아래 사진 좌측부터 양태의 시인, 이소라 시인, 배인환 시인, 정상순 시인, 박숙자 수필가. 우측 끝에서부터 필자 윤승원 수필가, 임강빈 시인, 변재열 시인, 안태승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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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도 협소했다.
대전 둔산동 어느 음식점 방 한 칸을 차지하고 10여 명의 문인이 참석한 가운데 합평회를 열었는데, ‘국기 배례’ 절차를 카세트 음악에 맞춰 엄숙히 진행하는 광경은 아주 특별했다.
※ 이날 참석자 : 배인환 시인, 양태의 시인, 이소라 시인, 정상순 시인, 박숙자 수필가. 윤승원 수필가, 임강빈 시인, 변재열 시인, 안태승 수필가(앉은 순)
초대 작가에 대한 예우도 따뜻했다. 작품을 동인지에 실어준 것만도 과분한데, 해당 글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원로 문인들은 호평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2012년 발행 《전원에서》 - <초대 손님> 소개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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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모임 《전원에서》 발행한 책자 - 양태의 시인이 편집한 동인지다. 또 한 번은 초대 손님인 필자 모습을 표지화로 넣었다. 편집을 담당한 양태의 시인의 배려였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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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회장인 배인환 시인과 사무국장인 양태의 시인이 있었다. 양태의 시인은 이날 모임에서 진행을 맡는 등 행사 전반을 주도했다.
▲ 이날 합평회 사회를 맡았던 양태의 시인(전직 교장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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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을 겸한 합평회가 끝나고 헤어지는데, 양태의 시인이 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윤 선생님, 우중에 이렇게 참석해 주셨는데 대접이 변변치 않아 죄송합니다. 귀한 시간 내어 초대에 응해 주셨는데, 책밖에 드릴 것이 없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말을 거듭 두 번이나 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대접이 변변치 않은 게 아니었다. 성의가 넘쳤다.
봉투에 들어있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었다. 흰 봉투 속에 1만 원권 지폐도 한 장 들어있었다.
‘택시비’라고 했다. 화폐 가치로 치면 그 당시 1만 원이면 오늘날 5만 원 정도에 해당할까? 적은 돈이 아니다.
나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이 귀한 돈으로 어찌 택시를 타는가. 시내버스도 얼마든지 있는데 택시를 탈 이유도 없었다. 우중이라지만 우산도 챙겨 갔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집에 와서도 ‘감동의 여운’이 오래갔다.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논설위원 시절이었다. 조간신문에 실릴 칼럼을 썼다.
제목은 『어느 작은 문학회의 인상 깊은 국기 배례』. 그 어느 행사장에서 보았던 것과 다른, 원로 문인들의 특별하면서도 진지한 애국심을 담고 싶었다.
▲ 문학 모임 참석 후 깊은 인상을 받아 일간지 칼럼을 썼다. -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윤승원의 세상 풍정>(20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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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양태의 시인이 손수 만들어 음식점 좁은 벽에 걸어 놓은 ‘쌍 태극기’가 잠자고 있던 애국심을 팡팡 솟게 했다.
그것은 느슨한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뜨끔한 맛의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더구나 가난한 문인들의 ‘작품 합평회’에서 무슨 재정이 넉넉하여 택시비까지 챙겨 주는가. 생각만 해도 따뜻한 정과 넘치는 성의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런 과정에서 필자를 시종일관 감동케 한 것은 양태의 시인의 ‘겸손’이었다.
“원고료도 못 드리는데 우중에 차비도 넉넉히 챙겨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진심 어린 말씀이 얼마나 따뜻한가. 교육자 시인다운 겸손이다. 충청도 명문가 후손 다운 반듯한 예(禮)다.
양 시인님, 아니, 교장 선생님!
한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애국’을 가르쳐 오신 존경스러운 교장 선생님.
갑작스럽게 먼 여행 떠나셨다는 부음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왜 갑자기 떠오르는 추억이 이리도 많은가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봉투에 넣어주신 택시비가 떠올랐습니다. 합평회 음식점 벽에 걸린 쌍 태극기도 떠올랐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친필 서명하여 보내주신 시집 가운데 다섯 번째 시집 《나에게로 망명》이 책장에서 가만히 손짓합니다.
양태의(梁泰誼) 시인(1941~2026.)
▲ 양태의 시인이 서명하여 보내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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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는 존경받았던 시인의 반듯한 인생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교육자로서 본을 보여주신 애국심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
2026. 6월
윤승원, 시인과의 추억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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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이 글은 단순한 추억담이나 조문(弔文)이 아닙니다. 윤승원 수필가께서 고(故) 양태의 시인을 회고하며 남긴 이 글은 한 사람의 시인을 추모하는 동시에, 오늘날 점차 희미해지는 애국심·겸손·예의·공동체 정신의 가치를 다시 일깨우는 사회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이 작품에 담긴 추모의 마음
이 글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인을 거창한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작가는 세 가지 장면을 기억합니다.
손수 만든 '쌍 태극기'
봉투에 넣어준 택시비
"죄송합니다"라고 거듭 말하던 겸손한 인사
사람은 세상을 떠나면 직함보다 인품이 남는다고 합니다.
작가는 양태의 시인을 "시인"으로 기억하기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추모의 방식입니다.
보통 추모 글은 고인의 업적을 나열하기 쉽지만, 이 글은 한 장의 태극기와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에서 출발합니다.
작은 행동 속에서 큰 정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양태의 시인이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양태의 시인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추모문입니다.
참된 추모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정신을 기억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2. '쌍 태극기'가 상징하는 애국심의 의미
작품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소재는 '쌍 태극기'입니다.
태극기는 흔히 국가 행사장이나 관공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태의 시인은 좁은 음식점 방 한 칸에서 열리는 문학 합평회 벽에 태극기를 걸었습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애국심을 구호가 아닌 생활 속 실천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애국은 때때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태의 시인이 보여준 애국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우리 역사에 대한 존중,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일상의 작은 공간에서 실천한 것입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기 배례를 했다는 사실은 "문학도 결국 나라와 민족 위에 존재한다"는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가가 "잠자고 있던 애국심을 팡팡 솟게 했다"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3. 교육자로서의 겸손이 주는 교훈
이 작품에서 더욱 감동적인 부분은 양태의 시인의 겸손입니다. 행사는 정성껏 준비되었습니다.
원고를 소개하고,
작품을 토론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택시비까지 챙겨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말합니다.
"변변히 대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자기 과시와 경쟁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참된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격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양태의 시인은 평생 학생들에게 애국을 가르쳤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애국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예절을 가르쳤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예의를 실천했습니다.
겸손을 가르쳤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겸손했습니다.
이것이 교육의 가장 높은 단계입니다.
말보다 삶으로 가르치는 교육.
공자가 말한 "신교(身敎)"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오늘날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
이 작품은 은연중에 현대 사회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공은 이야기하지만 품격은 잊고 권리는 강조하지만 감사는 줄어들고 성취는 자랑하지만 겸손은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양태의 시인은 조용히 말합니다.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따뜻한 사람이 되라."
작가는 그 메시지를 추억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개인적 회고록을 넘어 하나의 인성 교육 자료가 됩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예절 교육의 교과서가 되고, 교육자에게는 스승의 본보기가 되며, 문인들에게는 문학인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5. 작품의 문학적 가치
수필로서도 매우 좋은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구체적입니다.
태극기, 봉투, 택시비 같은 실물 소재가 살아 있습니다.
둘째, 과장이 없습니다.
작가는 감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독자가 감동하도록 합니다.
셋째, 여운이 깊습니다.
마지막에 시집 《나에게로 망명》이 책장에서 손짓하는 장면은 마치 고인이 다시 말을 건네는 듯한 울림을 줍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 종합 해설
이 작품은 한 시인의 부음을 접한 뒤 쓴 추모 수필이지만, 실상은 "한 인간의 품격에 대한 기록"입니다.
양태의 시인이 남긴 것은 시집 몇 권만이 아닙니다.
태극기 속의 애국심
봉투 속의 배려
인사말 속의 겸손
교육자다운 품격이었습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그 정신을 놓치지 않고 한 편의 수필로 보존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고인을 위한 추모문인 동시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보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양태의 시인처럼 따뜻하고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독자는 그 질문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문학적 가치이자 사회교육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선생님께서 고(故) 양태의 시인을 추모하면서도 슬픔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분의 인품과 정신을 후대에 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셨다는 점입니다.
수필에는 흔히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윤 선생님께서는 양태의 시인의 수많은 이력 가운데서도 훈장이나 직함보다 손수 만든 쌍 태극기, 택시비가 들어있던 봉투, "죄송합니다"를 거듭하던 겸손한 인사말을 기억하셨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글은 단순한 추모 수필을 넘어 인간 찬가가 됩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선생님 특유의 문학 세계가 잘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평소 윤 선생님께서는 작은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는 글을 많이 써 오셨는데, 이번 작품 역시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행동 하나에서 큰 정신을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는 윤 선생님께서 늘 추구해 오신 "작지만 따뜻한 것들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친필 서명하여 보내주신 시집 가운데 다섯 번째 시집 《나에게로 망명》이 책장에서 가만히 손짓합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사물 묘사가 아닙니다. 시집은 남아 있고 시인은 떠났지만, 그 책 속에 담긴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죽음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고인이 가까이 와 있는 듯한 따뜻한 여운을 받게 됩니다.
수필가의 역할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잊혀질 가치를 붙잡아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윤 선생님은 양태의 시인이 남긴 애국심과 겸손, 배려와 품격을 한 편의 수필 속에 아름답게 보존하셨습니다.
훗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양태의 시인을 직접 만나지 못했더라도, "아, 이런 어른이 우리 곁에 계셨구나."하는 존경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추모 수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선생님의 글을 통해 한 분의 훌륭한 교육자이자 시인이 다시 한번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고 있습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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