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그리움 에세이】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
― 고향 선배 누님과 60여 년 만에 통화하던 날
― 충남 청양 시골길 ‘추억의 풍경을 복원’하다.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고향 초등학교 선배님과 60여 년 만에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고향 선배님은 여성입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누님 같은 선배님’입니다.
시골 바로 이웃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60여 년 세월을 잊고 지냈던 그리운 선배님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선배님은 대전에 사는 저의 연락처를 어떻게 아셨을까요?
인터넷에서 저의 글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저의 블로그에는 필자의 이메일 주소만 있습니다. 연락 전화번호는 없습니다.
고향 선배님은 이메일을 통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셨습니다. 후배인 제게 깍듯이 존칭 하면서 이런 메일을 남기셨습니다.
“윤 선생님, 글을 읽을 때마다 통화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락 전화번호를 남깁니다.”
▲ 충남 청양 고향 시골길 <추억의 풍경 복원> - 고향 선배 누님과 60여 년 만에 이루어진 통화(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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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는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알려주신 핸폰 번호로 제가 전화를 드린 것이지요. 깜짝 놀라셨습니다.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충청도 내 고향 정겨운 사투리가 묻어나는 따뜻한 선배 누님의 목소리.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그 옛날 이웃 동네 누님의 정겨운 목소리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당시 고등학생. 이웃 동네 선배 누님은 공장에 다녔습니다. 선배 누님은 우리 집에 오신 적도 있습니다.
자애로웠던 저의 옛 어머니 모습도 또렷이 기억하셨습니다.
키가 크고 미인형의 갸름한 선배 누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선배 누님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윤 선생님에게 이렇게 이메일로 연락하기까지 조심스러웠습니다. 윤 선생님 글을 보면 애틋한 고향 이야기, 그리운 부모님 이야기, 사랑스러운 가족 이야기가 많습니다. 꼭 연락하여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혹여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망설였어요.”
아, 실례라니요, 여전히 겸손하시고 예(禮)가 반듯하신 고향 선배 누님.
친숙했던 동향인(同鄕人)끼리 애틋한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데 실례라니요? 용기가 필요했다니요? 순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누님께 어렵게 보인 탓입니다.
“점잖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 좀처럼 연락하기 어려웠다”니, 그런 느낌을 들게 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고향 선배 누님은 그 옛날 시골 우리 가정의 모습을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의 직장이며 구체적인 삶도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의 블로그 글을 통해 고향 선산의 부모님 산소 풍경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통화는 간단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추억, 60년 세월 나누지 못한 삶의 이야기를 어찌 한두 시간 짧은 핸드폰 통화로 가능하겠습니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형제 이야기할 때 그랬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생업을 위해 일찍이 고향을 떠난 수많은 친구 이야기를 할 때도 울컥했습니다.
70~80 노년에 이르러 우리에겐 추억만 남았습니다. 밤을 새워 나눠도 못다 할 추억만 산처럼 쌓였습니다.
모두가 아름다웠던 추억입니다. 궁핍했던 농촌에서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옛 추억보다 따뜻한 인정과 사랑이 꽃피었던 추억만 떠올랐습니다.
통화 중에 문득문득 선배 누님 얼굴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건 그리움입니다. 저의 글을 읽고 연락 주신 고향 선배 누님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얼마 전 제가 출연한 TV 방송에서는 ‘추억 복원소’라는 인기 코너가 있었습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서울과 대전이라는 거리도 그렇고, 쉽게 만나기는 어려운 고향 선배 누님이니, ‘그림’으로 얼굴 마주할 방법이 떠오른 것입니다.
키가 크고 미인형 갸름한 얼굴의 고향 선배 누님. 그런 모습을 바탕으로 저와 수줍게 대화하는 시골길 풍경을 ‘복원’ 해 보고 싶습니다. ♣
2026. 6. 8.
윤승원, 고향 선배 누님과 60여 년만에 통화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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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복원> 화백의 말
이번 삽화는 특히 수필의 핵심 정서인 ‘그리움의 복원’을 잘 살려 보았습니다.
현재의 윤승원 수필가와 은발의 고향 선배 누님이 정겹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
뒤편의 충남 청양 시골길과 황금빛 들녘
기억 속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이 오버랩되는 장면
60년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이어진 인연
이 네 가지 요소가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의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면서도 사실은 ‘세월’입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고향 사람의 따뜻한 목소리와 정은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이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이 작품은 짧은 캡션을 넣어도 좋겠습니다.
“60년 만에 다시 이어진 목소리.
세월은 흘렀지만 그리움은 늙지 않았다.”
또는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운 얼굴 하나가 잊었던 마을 길을 다시 열어 주었다.”
이번 글은 단순한 회고담이 아니라, 잊혀 가는 농촌 공동체의 정과 사람 냄새를 되살린 따뜻한 인간 기록문학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문학적으로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윤 선생님께서 앞으로 실제로 선배 누님을 만나시게 된다면, 이번 삽화는 그 만남에 앞서 만든 작은 ‘추억 복원도(復元圖)’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라는 제목과도 참 잘 어울립니다. (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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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이번 작품은 윤승원 수필가의 글 가운데서도 특히 ‘그리움의 복원’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상적인 수필입니다.
◆ 작품의 문학적 매력
1. 평범한 전화 한 통을 감동적인 서사로 승화
이 글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60여 년 만의 전화 통화.
그러나 수필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건에 담긴 인간적 의미를 발견하는 문학입니다.
작가는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잊고 지냈던 고향, 부모님, 형제, 어린 시절, 그리고 세월의 무게까지 함께 불러냅니다.
독자는 전화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추억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2. ‘목소리’를 통한 시간 여행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그 옛날 이웃 동네 누님의 정겨운 목소리 그대로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변하지만 목소리는 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작가는 이 점을 활용하여 60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습니다.
현재의 노년과 과거의 청춘이 한순간에 겹쳐지는 장면은 매우 수필적이며 서정적입니다.
3. 그리움의 대상이 사람에서 고향으로 확장
이 수필은 단순히 선배 누님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선배 누님은 사실상
고향의 상징
부모님의 상징
어린 시절의 상징
농촌 공동체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선배 누님의 목소리를 통해 잃어버린 자기 고향까지 떠올리게 됩니다.
4. 눈물의 진정성
형제 이야기와 친구 이야기를 하며 울컥하는 장면은 과장되지 않습니다.
억지 감동이 아니라 세월이 만든 눈물, 추억이 만든 눈물, 상실이 만든 눈물이기에 독자의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 윤승원 수필 특유의 기법
윤승원 수필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적 체험 → 공동의 추억 → 삶의 성찰」이라는 구조입니다.
이번 작품 역시 <이메일 한 통>, <전화 통화>, <옛 추억>, <고향의 의미>, <사람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그래서 독자는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결국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 특히 인상적인 결말
마지막 부분의 “그림으로 얼굴 마주할 방법이 떠올랐다.”라는 대목은 매우 참신합니다.
보통 수필은 추억을 회상하는 데서 끝나지만, 이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추억을 복원하고 싶다’라는 창조적 상상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제목인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 더욱 오래 여운을 남깁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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