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신작 에세이】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손자의 응답 한 마디
― “네”라는 짧은 답장 속에 숨어 있는 반가움과 고마움
윤승원 수필가
주말 아침, 손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간밤에 너의 아빠가 꿈에 보였다. 20대 청년 시절로 돌아가 아주 즐겁고 밝은 표정이었다. 너의 아빠가 꿈에 보인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꿈에서 깨어 지금까지 그 여운이 남아 있다. 건강은 어떤지? 근심 걱정은 없는지? 할아비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이다. 평안하게 잘 지내니?”
그러자 손자의 응답이 곧바로 왔다.
“네”
아, 그 한 마디. ‘네’라는 그 한마디가 반갑고 고맙다.
▲ 네, 할아버지. 잘 지내고 있어요.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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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답해 주니 안심이다. 고맙다.”
꿈에 보였던 자식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밝고 기분 좋은 꿈이더라도 왜 자식이 꿈에 나타났는지?
잠시 기우처럼 갖가지 상념에 잠겼던 할아버지. 공연한 걱정이 손자의 응답 한마디에 누그러지고 만다.
할머니에게도 꿈 이야기를 했다. 손자에게 카톡으로 꿈 이야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 반응이 뜻밖이다.
“꿈을 꾸었으면 꾼 것이지 그런 별것도 아닌 얘길 뭐 하러 손자에게 전한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하긴 할머니 말씀이 맞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가족이 무고한 지 확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꿈은 반대일 경우도 있다.”
그렇다. 꿈속에서 즐겁고 밝은 표정이었다면 혹여 근심 걱정거리라도 있는 게 아닌지 부모로서는 반대로 해석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자나 깨나 자식 걱정하는 부모 마음이다.
먼 여행을 떠났어도, 생활 환경이 바뀌었어도, 꿈에 자식이 보이면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게 되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렇다면 직접 꿈에 보인 아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손자를 통해 응답을 듣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심사는 무엇인가?
손자에게 물어보면 좋은 점이 있다.
첫째, 가족 모두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둘째, 천진난만한 손자는 그 어떤 과장이나 축소가 없다.
셋째, 조손 간 거리감 없는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뤄진다.
그밖에도 좋은 점이 많다.
손자의 꾸밈없는 진솔한 응답을 들으면 귀엽고 사랑스럽다. 할아버지의 건강 지수가 올라간다. 엔도르핀이 팍팍 솟는다.
손자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의 꿈만 꿔도 건강한지, 걱정거리가 없는지 안부를 궁금해하시는구나. 그게 집안 어른의 가족 사랑이지.”
특이하고도 신기한 가족 꿈을 꾸고서도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 게 무관심이고 비정상 아니야?
꿈을 꾸었는데 가정이 평안하냐고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 것은 정상적인 가정의 부모 마음 아닌가? 평범한 부모의 가족 사랑 아닌가?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가족 사랑은 어쩌면 유전(遺傳) 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도 생시에 그러셨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에게 더 지극한 사랑의 말씀을 주셨다.
꿈에 자식이 보였다는 것은 어머니에겐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 얘깃거리였다.
객지의 자식이 무사한지, 평안한지, 응답을 듣기 전에는 노심초사 조바심하면서 걱정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랐다.
오늘날 백발 할아버지가 돼서도 자식에 대한 꿈 이야기를 예사로 넘기지 않는 이유다.
사랑하는 손자의 응답 한마디를 듣고서야 안도하고 행복해하는 할아버지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산책길에 나섰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리듬이 오늘따라 경쾌하다.
도솔산 오르는 길가 연못에서는 맹꽁이 형제들의 노랫소리가 요란하다.
이 모든 자연의 소리가 할아버지 귀에 즐겁고 행복하게 들리는 것도 손자의 “네” 한 마디 응답에 있다. ■
2026. 6. 20. 비 오는 아침
윤승원, 손자의 반가운 카톡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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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윤승원 수필가의 일상 가족 에세이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사건을 삶의 의미로 확장하는 능력’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손자의 “네.”라는 짧은 응답 글자를 중심축으로 삼아 부모의 마음, 조부모의 사랑, 가족의 소통, 세대 간 사랑의 계승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해 나갑니다.
특히 이 작품에는 문학적 장치와 유머가 절묘하게 녹아 있습니다.
1. ‘네’라는 짧은 응답 글자를 주인공으로 만든 발상의 신선함
보통 사람이라면 손자의 짧은 답장을 그냥 지나칠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짧은 응답을 한 편의 수필로 승화시켰습니다.
“네.”
이 두 글자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 걱정을 안심으로 바꾸는 말
- 부모 사랑을 확인하는 말
- 가족의 평안을 알려주는 신호
-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물이 됩니다.
평범한 단어 하나가 작품 속에서는 상징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수필의 묘미입니다.
2. 할머니와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생활 유머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할머니입니다.
“꿈을 꾸었으면 꾼 것이지 그런 별것도 아닌 얘길 뭐 하러 손자에게 전한대요?”
한마디에 웃음이 나옵니다.
독자는 “맞는 말인데?” 하면서도, 곧이어 “아니, 할아버지 말도 맞네.”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틀리지 않습니다.
생활 속에서 흔히 있는 부부의 시각 차이를 자연스럽게 보여 주며 작품에 웃음을 불어넣습니다.
3. 꿈을 소재로 삼은 심리 묘사
이 작품의 핵심은 꿈 자체가 아닙니다. 꿈을 꾼 사람의 마음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걱정은 비합리적인 미신이 아니라 부모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독자는 꿈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부모 마음의 움직임을 읽게 됩니다.
4. ‘손자를 통해 묻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풀어낸 구성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작가는 스스로 질문합니다.
“왜 직접 아들에게 묻지 않고 손자에게 물을까?”
그리고
- 가족 모두가 정보를 공유한다.
- 손자는 꾸밈이 없다.
- 조손 간 소통이 자연스럽다.라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렇구나.” 하며 설득됩니다.
자칫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을 경험담으로 풀어낸 것이 수필다운 구성입니다.
5. 세대를 잇는 사랑의 유전
작품 후반부에서 주제가 한 단계 깊어집니다.
작가는 “내 부모님도 그러셨다.” 고백합니다.
즉,
어머니의 사랑
↓아들의 사랑
↓손자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계보가 형성됩니다.
이 대목에서 제목 속 ‘할아버지’는 곧 ‘부모’ 전체를 상징하는 존재가 됩니다.
6. 마지막 자연 풍경의 아름다운 마무리
끝부분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맹꽁이 형제들의 노랫소리
이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손자의 “네.” 한마디를 들은 뒤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들리는 행복의 심리 풍경입니다.
외부 자연이 곧 내면 풍경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좋은 수필에서 자주 만나는 여운 있는 결말입니다.
7. 교육적 가치
이 작품은 가족 교육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부모의 걱정을 이해하게 합니다.
조부모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합니다.
짧은 답장 하나도 효도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가족 간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사랑은 거창한 행동보다 작은 응답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귀찮아서 답장을 미루는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교육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8. 윤승원 수필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
이 작품에는 작가의 개성이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 일상의 아주 작은 소재를 발견하는 관찰력
- 가족애를 중심으로 한 따뜻한 시선
- 독자에게 미소를 짓게 하는 생활 유머
-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술
- 자연 풍경으로 감정을 마무리하는 서정성
이러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남깁니다.
결국, 이 작품은 “사랑은 긴말이 아니라 짧은 응답에서도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가족 수필입니다.
손자의 “네.”라는 짧은 글자는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주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하루의 풍경마저 아름답게 바꾸는 행복의 언어로 승화됩니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을 덮으며 ‘가족에게 보내는 짧은 안부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에세이가 지닌 가장 따뜻한 문학적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을 여러 번 곱씹어 읽으며 느낀 점은, 이번 신작에는 윤승원 수필가의 문학 세계가 더욱 원숙하게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를 쓰는 수필이라는 점입니다.
손자의 답장은 겨우 “네.”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작가는 그 짧은 응답에서 부모의 사랑과 조부모의 행복, 세대를 잇는 가족애를 길어 올립니다.
이것이 좋은 수필이 지닌 힘입니다.
독자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공감하게 됩니다.
또 하나 돋보이는 점은 유머와 진정성의 균형입니다. 할머니의 “무소식이 희소식이지.”라는 한마디는 작품에 생활의 웃음을 더합니다.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고 이어지는 작가의 고백은 독자를 미소 짓게 하면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억지 감동이 아니라 생활에서 우러난 감동입니다.
마지막 장면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빗방울 소리와 맹꽁이의 합창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닙니다.
손자의 “네.” 한마디를 듣고 마음이 놓인 할아버지의 내면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빗소리도 음악이 되고, 개구리울음도 합창이 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는 결말이라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오늘날 바쁜 사회에 작은 교훈을 전합니다.
“사랑은 긴 설명이 아니라 짧은 응답에서도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
휴대전화로 보내는 짧은 “네.”, “잘 지내요.”, “걱정하지 마세요.” 같은 말 한마디가 부모와 조부모에게는 하루를 환하게 밝히는 햇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독자는 이 작품이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 ‘가족 간 소통의 품격’을 일깨우는 생활 수필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는 읽는 동안 자신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자녀와 손주를 떠올리게 되고, 책을 덮은 뒤에는 “오늘 안부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좋은 수필이란 바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따뜻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문학이며, 이 작품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습니다. 📖
📚 (雲峯,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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