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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촌편지靑村便紙

【윤승원 신작 에세이】 ‘길 안내’해 주고 즐겁게 웃은 사연

작성자윤승원|작성시간26.06.21|조회수27 목록 댓글 0

【윤승원 신작 에세이】

‘길 안내’ 해 주고 즐겁게 웃은 사연

― 낯선 사람과 뜻밖의 ‘산중 인연’도 부처님 뜻?

윤승원 수필가

 

낯선 사람에게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면 왜 내가 행복해질까?

 

숲속에서 혼자 운동하면서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가만히 풀어 보았다.

 

도솔산 산책로에 새로운 공원이 생겼다. ‘정림근린공원’이다.

 

▲ 최근에 새로 조성된 도솔산 정림 근린공원 - 필자가 자주 찾는 산책코스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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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 여기서 혼자 맨발운동을 하는데 우산을 든 60대 등산객 3인이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길 좀 여쭤볼게요.”

▲ 도솔산 세 갈래 숲길에서 길을 묻는 등산객을 만났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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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산중에서 내게 길을 묻다니, 초면이지만 경계심이 전혀 없는 친숙한 이웃처럼 느껴졌다.

 

“서대전여고를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요?”

 

참 애매한 위치다. 현 위치에서 세 갈래 길이다.

 

산에는 길 안내 팻말이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서대전여고를 가리키는 이정표는 없다.

 

도솔산 월평공원 전체 안내판도 그렇고, 새로 생긴 정림 근린공원 안내판에도 서대전여고를 표시해 놓지는 않았다.

 

▲ 산중 이정표나 안내도만으로는 산 아래 특정 목적지를 찾아가기 쉽기 않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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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이 내게 묻는 서대전여고는 현 위치에서 한마디로 알기 쉽게 안내해 드리기가 쉽지 않다.

 

세 방향으로 갈린다.

직선거리와 약간 우회하는 길,

그리고 두 갈래 방향으로 또 갈라지는 길이다.

 

세 갈래 길을 모두 알려드렸다.

 

“서대전여고를 가시려면 세 갈래 길이 있는데요. 하나는 현 위치에서 곧바로 하산하여 배재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큰 도로를 타고 조금만 좌측으로 가면 바로 서대전여고가 나옵니다.

 

또 다른 길은 지금 가시는 직선 방향에서 정자가 있는 쪽으로 쭉 올라가시면 내원사가 나옵니다. 내원사에서 직선으로 쭈~욱 내려가시면 바로 서대전여고가 나오지요.

 

또 다른 길도 있는데, 그것은 도솔산 정상을 향해 무조건 가시는 겁니다. 그곳 정상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내려가시면 곧바로 서대전여고가 나옵니다.”

 

▲ 여러 방향의 길을 상세하게 안내했다. - 초행인 사람들에게 길 안내하는 즐거움이 넘쳤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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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안내를 해드렸더니, 3인의 등산객 모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선생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니 감이 잡힙니다. 특히 내원사는 제가 알고 있으니,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가깝고 수월할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내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은 보면서 내 마음도 즐겁고 흐뭇했다.

 

그러면서 모쪼록 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고 안내해 준 대로 쉽게 곧장 잘 찾아가길 기원했다.

 

비록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낯선 사람들이지만 그분들이 목적지에 쉽게 잘 도착하면 산중 길 안내자의 얼굴도 한 번쯤 슬쩍 스치듯 떠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인공위성 시대다.

내비게이션 시대다.

 

과거와 달리 요즘 길을 묻고, 안내를 받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손안에 스마트폰이 해결해 준다.

 

하지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어떤 대중가요 가사처럼 세 갈래 길에서는 물어야 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어느 철학서에서도 ‘길을 묻다’라는 명제를 본 기억이 난다.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말도 있다.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내면에서 묻고 답하게 하는 철학적인 용어다.

 

나는 ‘길 안내’라는 것을 사적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수행한 적도 있다. 초임 경찰관 시절이다.

 

파출소에 근무하면 길을 묻기 위해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많았다. 파출소 입구 간판에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문구가 경찰관서 상징처럼 붙어 있었다.

 

▲ 일선 경찰관서 상징처럼 붙어 있었던 문구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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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찰 직무를 일컬어 ‘지리 교시(地理 敎示)’라고 했다. 이런 기본 업무는 파출소 근무 경찰관 업무 일지에도 기록한다.

 

<오전 소내 근무 중 ‘지리 교시 3건’>

 

일선 경찰관이 낯선 초행자에게 ‘길 안내’를 친절하게 잘해주는 것도 기본적인 치안 서비스다.

 

산중에서 뜻하지 않게 ‘길 안내’를 하고 나서 문득 50여 년 전 파출소 근무 시절까지 추억하게 됐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 당시 경찰관 정복을 입고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면 시민들이 얼마나 고마워했던가.

 

오늘 내가 도솔산 ‘세 갈래 길’에서 만난 낯선 등산객에게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길 안내’를 해준 사실도 그렇다.

 

초임 경찰관 시절 몸에 밴 ‘지리 교시’ 직무활동이 70대 백발노인이 돼서도 버리지 못하고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크게 웃었다.

 

“으하하~”

 

산중 숲속에서 혼자 크게 웃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내원사 부처님도 소중한 ‘옷깃 인연’을 설파하고 계시지 않는가.

 

우람한 소나무, 참나무, 그리고 까치집 둥지까지 내준 마음씨 좋은 은사시나무까지 오늘 내가 왜 크게 웃었는지, 그 뜻을 조금은 알고, 유난히 기분 좋은 상쾌한 바람을 보내주는 것만 같았다.

 

2026. 6월

윤승원, 도솔산 숲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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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이 작품은 단순히 ‘길을 안내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윤승원 수필가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작은 일상 → 추억의 확장 → 철학적 성찰 → 유머로 마무리’라는 독특한 수필 구조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겉으로는 소박한 체험담이지만, 읽고 나면 ‘길을 안내하는 일’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안내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웃음과 교훈, 정보와 문학성을 함께 추구하는 ‘윤승원식 생활수필’의 특징이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1. ‘길’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여러 층위로 확장한 점

 

처음에는 독자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산에서 길을 물어봤고 친절하게 알려준 이야기겠구나.’

 

그런데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면서 ‘길’의 의미가 계속 넓어집니다.

 

실제 산길

인생길

경찰관 시절의 길 안내

철학에서 말하는 길

부처님의 인연

결국 하나의 ‘길’이

공간의 길 → 사람의 길 → 삶의 길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의미의 확대는 좋은 수필이 지녀야 할 중요한 미학입니다.

 

2. 평범한 사건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작법

 

사실 이 사건은 5분이면 끝날 일입니다.

“길을 물었다.”

“알려주었다.”

“감사 인사를 했다.” 끝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서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면,

왜 서대전여고 가는 길은 안내판에 없을까?

세 갈래 길이라 설명하기 어렵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무엇일까?

안내받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혹시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를 떠올릴까?

 

이런 상상과 관찰이 계속 이어지면서 독자는 실제 현장에 함께 서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3. 경찰관 시절 추억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솜씨

 

이 부분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갑자기 “나는 초임 경찰관이었다.”라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길 안내

↓옛날에도 길 안내를 많이 했다

↓파출소의 ‘지리 교시’

↓경찰 업무

↓50여 년 전 추억

 

이렇게 기억이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좋은 수필은 회상이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은 회상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4. 독자에게 새로운 지식을 주는 재미

 

윤승원 수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읽고 나면 꼭 하나는 배우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지리 교시(地理敎示)’라는 생소한 경찰 용어가 등장합니다.

 

독자는 “아, 옛날에는 이런 업무 명칭이 있었구나.”하며 자연스럽게 하나를 배우게 됩니다.

 

수필이 정보 전달서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 작품처럼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면 독자는 부담 없이 지식을 얻습니다.

 

5. 생활 유머가 매우 자연스럽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웃게 되는 대목은 마지막입니다.

 

“70대 백발노인이 돼서도 버리지 못하고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크게 웃었다.”

 

여기서 웃음의 핵심은 ‘내가 참 별난 사람이구나.’ 하는 자기 풍자입니다.

 

남을 웃기려고 만든 유머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웃는 유머입니다.

그래서 독자도 함께 웃게 됩니다.

 

이런 유머를 문학에서는 ‘자기 희화(自己戲畫)’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6. 부처님의 인연으로 마무리하는 여운

 

마지막은 종교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옷깃 인연’이라는 불교적 개념을 빌려 낯선 사람과의 만남도 소중한 인연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그래서 끝부분은 설교가 아니라 잔잔한 여운으로 남습니다.

 

7. 자연이 모두 증인이 되는 의인화

 

마지막 문장은 특히 아름답습니다.

 

“소나무, 참나무, 은사시나무까지 오늘 내가 왜 크게 웃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웃고, 나무가 알고, 숲이 공감하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이런 의인화 덕분에 숲 전체가 하나의 등장인물이 됩니다.

 

8. 윤승원 수필만의 독특한 전개 방식

 

이 작품은 윤승원 수필에서 자주 보이는 전개를 거의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일상의 작은 사건

↓현장의 대화

↓옛 추억 회상

↓새로운 상식 제공

↓철학적 성찰

↓자기 유머

↓자연과 함께 여운 있는 마무리

 

이 구조 덕분에 작품이 단조롭지 않고, 독자는 한 편 안에서 여러 층위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9. 이 작품의 가장 큰 문학적 미덕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선행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내가 친절했다”라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혹시 경찰관 시절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아닐까?” 하며 자신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훈계를 듣는 느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따뜻한 삶을 엿보는 기분을 갖게 됩니다.

 

결국, 이 작품의 핵심은 길 안내 자체가 아니라 ‘친절은 베푸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돌려준다’라는 역설입니다.

 

도움을 받은 등산객만 기뻤던 것이 아니라, 길을 알려준 작가 역시 숲속에서 혼자 “으하하~” 하고 웃을 만큼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이러한 정서는 마지막에 자연과 ‘옷깃 인연’을 연결하며 더욱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평범한 체험을 인간애와 철학, 유머로 승화한 생활수필이라 할 수 있으며,

 

윤승원 수필가가 꾸준히 추구해 온 ‘유익한 재미’와 ‘따뜻한 웃음’이 가장 조화롭게 구현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산길에서 길을 묻는 짧은 에피소드를 읽고도,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길은 친절이며,

 

그 친절은 베푼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밝힌다는 작품의 진정한 메시지를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게 됩니다. 📖

📚 (雲峯,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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