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 시와 수필이 있는 풍경】
손자의 겸손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손자를 만나면
무언가 주고 싶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무언가 주고 싶다
할아버지는
호주머니를 뒤적인다
손에 잡히는 게
지갑이다
지폐를 꺼낸다
오만권 한 장
손자 손에 쥐여준다
그런데 달라졌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았는데
됐어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할아버지
그전의 손자는
안 그랬다.
용돈을 주면 꾸벅 인사하고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 당연
할아버지 손이 부끄럽다.
지갑에서 꺼낸 돈
손자가 다시 할아버지
양복바지에 찔러준다
할아버지 당황하여
다시 손자에게 지폐를 건넨다
주면 얼른 받고
고맙습니다, 해야 손자인데
손자가 손사래 친다.
할아버지의 용돈을 사양한다.
난감해진 할아버지 체면,
손자에게 거듭
지폐 한 장 건네면서
설득하듯 덧붙이는 말
아이스크림이라도 한 개 사 먹어
할아버지 마음이야.
손자는 그제야 할아버지
부끄러웠던 체면을 살려준다.
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한 개가 아니라
한 통은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에요.
하하
하하
영리한 손자의 즉흥 유머,
할아버지 체면 살려주는
손자의 재치.
많이 컸구나, 우리 손자.
대견하면서도 아쉽다.
손자는 영원히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 게 손자인데.
2026. 6월, 할아버지 생일에
가족 모임 후 손자와 헤어지면서
============
▲ 가족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는 순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용돈을 주었다. 하지만 손자는 의젓하게 사양했다.(삽화=AI화백)
===========
▣ 詩作 노트
지난 휴일 할아버지 생일에 아들 며느리 손자 등 6인 가족이 모처럼 즐겁게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순간, 아들의 승용차 앞에서 손자와 작별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할아버지는 당황했다. 초등학생 손자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이가 아니라 어느새 어른이 돼 가는 것이다.
손자의 겸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엄마 아빠의 가정교육일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님 피가 흐른다.
할아버지가 쓴 두 편의 수필이 문득 떠오른다. 할아버지가 쓴 글 속에 오늘날 손자의 겸손, 그 근원이 숨어 있다. (필자의 말)
==============
▣ 첫 번째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前略]== 작별 인사하면서 장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대문 밖까지 나오셔서 배웅해 주시는 장모님께 용돈을 드리는데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셨다. 그래서 치마 주머니에 찔러 드리는데 그냥 드리기가 뭣해서 “고기나 사 드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예부터 어르신들께 용돈을 드리면서 자식들이 흔히 하는 방식대로 내 딴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말씀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내를 통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이 들렸다. “왜 용돈을 주면서 꼭 ‘고기를 사 드시라’고 했느냐”는 것이다. “그냥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주었으면 초파일에 절에 가서 ‘사위 무사 기원 등(燈)’을 달려고 했는데, 사위가 ‘고기 사 드시라’고 한 말 때문에 임의로 기원을 드리지 못했다”는 말씀이었다. ==[後略]== |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용돈을 주면서 “아이스크림이나 한 개 사 먹으라”고 하는 것과 ‘장모님 손사래’가 겹쳐 떠오르는 대목이다.
============
◆ 1. 관련 글 전문
*조선일보 에세이(2011.11.30.)
구순 장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
윤승원 대전수필문학회장
충남 청양의 칠갑산 아래 산골 마을에 아흔이 다 되신 장모님이 사신다. 어르신에게 유일한 벗은 TV이다. 온종일 틀어놓는 TV의 높은 볼륨 탓에 대화가 불편할 정도다.
하지만 나는 TV 볼륨을 줄이지 않는다. TV 소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도회지에서 사는 나의 예민한 귀 탓이지, 시골 노인의 귀에는 상관이 없다.
혼자 적적하게 사시는 노인 귀에는 이렇게 큰 음량이 익숙해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으니, 문안드리는 사람이 굳이 TV 볼륨을 줄여 드릴 필요가 없다.
이곳은 TV 소리마저 없으면 절간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사는 집인지, 빈집인지 모를 정도이다. 일찍이 홀로 되신 장모님은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호랑이처럼 무섭게 살지 않았으면 살아가면서 별의별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자 혼자 살아가니 나약한 면을 보여서는 안 되는 처지였다.
그 많은 전답을 혼자 관리하려면 장정(壯丁) 못지않은 완력과 기세도 필요했다. 거친 농사일에 자식 키우는 일까지 억척스럽게 일인다역(一人多役)을 해내신 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외로운 분이었다. 일찍이 남편과 사별해 경험했듯이 뜻하지 않은 불행을 이겨내려면 보이지 않는 신령(神靈)도 믿어야 했다.
이때부터 일진(日辰)이며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엄격히 따지면서 ‘가리고 삼가는 일’이 많아졌다. 먹는 것, 물건 사는 것, 심지어 장거리 출타할 때도 ‘좋은 날’을 따져야 했다.
30여 년 전 내가 이곳 깊은 산골 마을로 장가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문 앞에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 가시 달린 나무였다. 악귀(惡鬼)를 쫓는다는 ‘엄나무’였는데, 장모님의 수호신(神)이었다.
그 나무는 세월이 흐르면서 태풍에 쓰러졌지만 뿌리는 아직도 죽지 않고 새순을 피워 올려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내는 그 산골 마을에서 ‘콩밭 매는 아낙’이었다. 대중가요 ‘칠갑산’의 노랫말에 등장하는 것처럼 아내도 ‘홀어머니 두고’ 내게 시집왔다. 찬바람이 불면 아내는 김장을 한다.
우리 식구 먹을 양만 하는 게 아니라 시골에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가 드실 김치도 담근다. 요즘은 손쉽게 택배로 부쳐도 된다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지난 휴일 김장 단지를 승용차에 싣고 청양으로 달려갔다. 허리가 활처럼 휜 장모님이 이것을 보시더니, 사위한테 ‘큰절’ 받으시는 것도 잊으시고 김장 단지가 놓일 장소부터 지시하신다. 그래도 나는 큰절이 먼저다.
‘호랑이 장모님’한테 큰절부터 올리지 않으면 나중에 혼쭐이 난다. 장모님은 사위나 손주들에게 선물을 원하지 않는다. 큰절이면 그만이다. 왜 그러실까?
아내한테 들은 이야기다. “친정어머니는 일찍이 혼자되시어 아버지 몫까지 대신해 오신 분이고, 자식들 교육도 그렇게 엄격히 하셨어. 객지의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뵙고 올리는 큰절도 어머니에겐 그래서 각별한 의미가 있지.”
그러면서 “자식이나 손주들이 오랜만에 찾아뵙고 큰절을 하지 않으면 어쩐지 인사받은 것 같지 않아 서운하다고 하신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처가에 가면 무조건 ‘큰절’부터 올린다.
또 하나 신경 써야 할 일이 있다.
작별 인사하면서 장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언젠가 대문 밖까지 나오셔서 배웅해 주시는 장모님께 용돈을 드리는데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셨다.
그래서 치마 주머니에 찔러 드리는데 그냥 드리기가 뭣해서 “고기나 사 드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예부터 어르신들께 용돈을 드리면서 자식들이 흔히 하는 방식대로 내 딴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말씀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내를 통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이 들렸다. “왜 용돈을 주면서 꼭 ‘고기를 사 드시라’고 했느냐”는 것이다.
“그냥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주었으면 초파일에 절에 가서 ‘사위 무사 기원 등(燈)’을 달려고 했는데, 사위가 ‘고기 사 드시라’고 한 말 때문에 임의로 기원을 드리지 못했다”는 말씀이었다.
결코 융통성이 없어서 그러신 게 아니다. 노여움으로 하신 말씀도 아니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장모님이 사위에게 서운한 마음으로 하신 말씀 같지만 실은 그 말씀이 ‘바른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깊은 사랑’이다.
이제 내게는 다른 어르신이 안 계신다. 장모님 한 분이 유일한 어르신이다. 남달리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오신 분,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라고 늘 강조하는 그분의 엄격한 가르침이 나의 느슨한 의식에 바늘처럼 꽂힌다. 그 꼿꼿한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누리고 싶다. ■ (2011.11.30. 조선일보)
==============
▣ 두 번째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전략]== 사위가 용돈을 드리면 한 번도 덥석 받으신 적이 없다. 언제나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가다시피 했다. 그러면 쫓아가서 치마 주머니에 찔러 드리곤 했다. ‘염치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분, ‘분수를 지키라’고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 주신 분,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視聽言動 四勿(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논어)]’라고 가르치신 분. ==[後略]== |
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을 손자가 손사래 치면서 다시 할아버지 바지 주머니에 찔러 주고, 할아버지는 이를 다시 꺼내어 손자에게 주는 풍경이 어딘지 그 옛날 장모님 모습과 닮지 않았는가? ■
===============
◆ 2. 관련 글 전문
▲ 문예지에 실린 필자의 수필(상)과 저명 서예가 권갑하 시조시인이 필자의 수필 한 대목을 정성스럽게 써서 보내준 서예 작품(아래 액자)
=============
*수필(한국문인협회 발행 《월간문학》 2020년 7월호)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윤승원 수필가
100세를 바라보는 장모님을 모시러 시골에 갔다. 거동 불편한 노인을 시골집에 혼자 계시게 할 수 없었다. 아내와 아들도 동행했다.
연로하신 장모님을 업어 바깥마당에 주차한 승용차로 모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동식 들것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다. 등에 업어 차에 태워 드리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달려온 것이다.
재래식 시골집 구조는 연만하신 노인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안방에서 마루로 나오면 뜰팡[土房]이 있다. 뜰팡에서 안마당으로 내려오면 대문 문턱을 넘어야 바깥마당으로 나올 수 있다.
장모님이 마루까지는 가까스로 나오셨는데 마루에서 뜰팡에 내려오기 힘들었다. 내가 업으려고 하자 장모님은 손사래를 치면서 한사코 거부하셨다.
아내가 업으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부쳤다. 안간힘을 쓰면서 업으려 했으나 허리조차 펴지 못하고 마룻바닥에 주저 않고 말았다. 바깥마당 승용차 운전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들을 불렀다. 외할머니를 등에 업어보라고 했다.
아들이 장모님을 업으려고 등을 구부렸다. 그러자 장모님은 역시 외손자의 등을 단호히 거부하셨다.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셨다. 난감한 일이었다. 마루에서 더 이상 운신(運身) 하지 못하고 오도카니 앉아계신 노인이 안쓰러웠다.
안마당 한 구석에 바퀴 달린 농업용 손수레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얼른 손수레를 갖다 대었다. 사위와 외손자의 등을 완강히 거부하시던 장모님이 손수레에는 순순히 올라타셨다.
2인이 뒤에서 밀고, 1인이 앞에서 끌어당겨 가까스로 대문 앞에 이르렀으나 이번엔 문턱이 장애물이었다. 손수레에 타고 계신 장모님을 3인이 마치 가마 들어 올리듯 번쩍 들어 올려 바깥마당 승용차 안으로 모셨다.
장모님께 여쭈었다. “사위와 외손자가 업어서 차에 태워 드리려고 했는데, 왜 한사코 마다하셨어요?” 장모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 못하셨는가 싶어 큰 소리로 재차 여쭈었으나 역시 침묵하셨다.
대전에 도착하여 처제네 집 앞에 차를 댔다. 처제가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고 일찌감치 예고하고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제가 승용차 뒷좌석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업으려고 하자 장모님이 벌떡 일어나 순순히 업히셨다. 놀라운 일이었다. 사위의 등 다르고 딸자식 등이 다른 이유가 뭔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처제도 60대 중반의 나이지만 아내보다는 힘이 셌다. 3층까지 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하는 주택 구조인데도 처제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혼자서 장모님을 등에 업고 거뜬히 계단을 올라갔다. 처제가 장모님을 편안히 모시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안도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아내에게 말했다. “딸자식(처제)의 등에는 순순히 잘도 업히시면서 왜 사위와 외손자 등에는 업히시기를 한사코 거부하셨을까?”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본래 까다로운 분이잖아요. 남자 등에 여자가 업힌다는 게 어머니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이지요.
더구나 사위 등에 업힌다는 것은 남세스러운 일이고, 아직 장가도 안 간 총각인 외손자 등에 여자가 업힌다는 것은 더구나 용납이 안 된다는 것이 어른의 상식이고, 평생 몸에 밴 법도인 셈이지요.”
법도? 모처럼 듣는 말이라 신선했다. 어디서 잠자고 있던 말이 여기서 툭 튀어 나오는지 생경하면서도 언어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내의 뜻하지 않은 해석을 들으면서 문득 과거 총각시절에 고향 이장님이 내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자네가 이웃동네 원(元)씨 가문으로 장가간다면서? 어려울 걸! 윤(尹)씨도 둘째가라면 서운한 ‘꼿꼿 가문’이지만 원 씨네 가문도 대단히 어려운 집안이지. 참한 아가씨 고른다고 애쓰더니, 결국 그 어려운 댁으로 장가를 가는구먼! 쯧쯧~”
축하의 말씀 대신 ‘쯧쯔~’라니, 혀를 차는 동네 이장님이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40여 년을 살아보니, 옛 시골 이장님 말씀이 틀린 말씀이 아니었다. 당시 이장님이 내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까다롭게 느껴지는 ‘어려운 상황’을 수없이 경험했다.
구체적인 사례 설명 없이 ‘어려울 걸!’이라고 막연하게 암시했던 당시 이장님의 애매한 표현을 달리 해석해 보면, ‘법도를 지키면서 올곧게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나 마찬가지였다.
법도란 무엇인가. 원칙과 상식이다. 전통을 말한다. 예의범절을 뜻한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도 함축돼 있다. 공맹(孔孟)도 들어 있다.
‘그런 것을 지키면서 왜 불편하게 사느냐’, ‘좋은 세상에 왜 옛 사고방식을 고집하느냐’라고 물으면 집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본디 그렇게 보고 배웠기 때문이지요.’, ‘몸에 밴 생활 습성인 걸 당장 어떤 식으로 바꾸라고 요구하지 마세요.’
그렇다. 불편하게 산다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눈이지, 정작 본인은 까다롭다거나 외곬인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
장모님이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 옛날 방식의 생활철학을 고집하는 분은 아니었다. 따뜻한 정을 가진 분이다. 초파일이 되면 절에 가서 사위 무사기원 등(燈)을 다셨다.
몸을 아낄 수 없는 경찰관 직업을 가진 사위를 위해 부적(符籍)을 만들어 오신 적도 여러 번 있다. 지갑 속에 소중히 넣고 다녔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거칠고 험한 경찰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고추장 담글 거라면서 시골에서 무거운 찹쌀을 머리에 이고 오신 적도 있다. 찹쌀 한 말쯤 가까운 쌀가게에 전화만 하면 손쉽게 배달해 주기도 하고, 더 편케는 만들어 놓은 고추장을 사다 먹을 수도 있는 것을 노인이 멀리서 시외버스를 두세 번씩 갈아타면서 힘겹게 머리에 이고 오셨던 것이다.
사위가 용돈을 드리면 한 번도 덥석 받으신 적이 없다. 언제나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가다시피 했다. 그러면 쫒아가서 치마 주머니에 찔러 드리곤 했다.
‘염치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분, ‘분수를 지키라’고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 주신 분,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視聽言動 四勿(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논어)]’라고 가르치신 분.
이제는 거동이 어려워 방안에만 계신 노인이지만 사위가 찾아뵈면 여전히 어려워하신다. ‘남자’인 사위나 손자들 앞에서 조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정숙한 장모님.
사위가 문간에 들어서면 화들짝 놀라면서 옷매무새부터 고치시는 100세 노인.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시는 어른의 반듯한 가르침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꼿꼿한 충청도 선비 가문의 극기복례(克己復禮) 정신을 나는 존경한다. ■ 《월간문학》 2020년 7월호
================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단순히 ‘손자가 용돈을 사양했다’는 일화를 노래한 시가 아닙니다.
이 시는 한 집안에서 세대를 건너 전승되는 인격의 계보를 노래한 작품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시가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뒤에 붙인 두 편의 수필과 만나면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 구조를 완성한다는 점입니다.
시가 ‘현재의 한 장면’이라면, 수필은 그 장면의 ‘뿌리’를 보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손자의 겸손』
― 겸손은 어떻게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가
윤승원의 「손자의 겸손」은 손자에게 용돈을 건네는 평범한 가족의 풍경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 안에는 예(禮)의 계승, 가풍의 유전, 인격의 전승이라는 깊은 철학이 숨어 있다.
이 시의 중심은 돈이 아니다.
‘용돈’은 단지 매개체일 뿐이다.
실제로 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만 원권 지폐가 아니라 마음이다.
할아버지의 마음이 손자에게 건너가고, 손자의 마음이 다시 할아버지에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이 작품은 돈을 주고받는 시가 아니라 사랑과 예의를 주고받는 시라고 해야 한다.
1. 첫 번째 감동
“손자가 달라졌다.”
시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그런데 달라졌다.’라는 한 줄이다.
이 한 줄은 놀라울 만큼 짧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은 한 아이의 성장사를 모두 담아낸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고맙습니다.’ 하며 받던 아이가 이제는 ‘됐어요.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거절이 없다. 염치가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사랑을 받기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받는 것이 미안하다.”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성장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윤승원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2. 시 속의 갈등
흥미로운 점은 손자의 겸손이 오히려 할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시는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 손이 부끄럽다.”
참 좋은 표현이다.
손자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손이 부끄럽다. 주려는 사람이 오히려 체면을 잃는다.
여기서 시는 ‘주는 기쁨’ 보다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더욱 섬세하게 그린다.
3. 시의 절정
작품 최고의 명장면은 역시 이 부분이다.
“아이스크림 한 개가 아니라
한 통은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에요.”
이 한마디 때문에 작품 전체가 환해진다.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손자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
첫째,
할아버지의 체면을 살려 드린다.
둘째,
용돈도 받는다.
셋째,
분위기를 웃음으로 바꾼다.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영리한 손자의 즉흥 유머’이다.
웃음은 있지만 가벼운 웃음이 아니다. 품격 있는 유머다.
4. 마지막 연의 울림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마지막이다.
“손자는 영원히 어른이 아니라
어린애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소망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조부모가 품는 마음이다.
손자는 반드시 자란다.
그러나 할아버지 마음속 손자는 영원히 어린아이이다.
이 마지막 두 줄은 손자의 성장에 대한 기쁨과 시간이 흘러감을 아쉬워하는 노년의 정서가 함께 흐른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 감정. 바로 여기서 시는 서정성을 획득한다.
5. 이 시가 더욱 깊어지는 이유
두 편의 수필이 '시의 뿌리’를 보여 준다.
시만 읽으면 손자가 예의 바른 아이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뒤에 실은 두 편의 수필을 읽는 순간 독자는 놀라게 된다.
손자의 행동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미 30년, 5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한 집안의 정신이었다.
첫 번째 수필
「구순 장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
여기서 구순 장모님은
사위가 드리는 용돈을 끝내 사양한다.
사위는 치마 주머니에 억지로 넣는다.
그리고 “고기 사 드세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장모님은 그 말 한마디조차 예의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이 대목은 현대인에게는 다소 엄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융통성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태도이다.
장모님에게 용돈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사위의 안녕을 빌고자 하는 정성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씀 한마디에도 의미를 두셨던 것이다.
두 번째 수필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여기서는 더욱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사위에게도, 외손자에게도 업히지 않는다.
그러나 딸에게는 순순히 업힌다.
왜일까.
평생 몸에 밴 법도 때문이다.
오늘날 기준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윤승원은 그 모습을 시대착오로만 보지 않는다.
그 안에서 평생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온 한 인간의 품격을 읽는다.
6. 세 작품을 하나로 읽으면 보이는 구조
세 작품은 사실 하나의 계보를 이룬다.
장모님의 겸손
↓사위의 배움
↓아버지의 삶
↓손자의 행동
이것은 혈통보다 더 깊은 인격의 계보이다.
사람은 말을 듣고 배우기도 하지만 더 많이 배우는 것은 어른의 뒷모습이다.
손자는 아마도 할아버지의 수필을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의 모습을 보고, 조부모를 공경하는 집안 분위기를 보며 몸으로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조상님 피가 흐른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피’는 생물학적 유전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풍의 은유로 읽는 것이 작품의 의미를 더 충실하게 드러낸다.
7. 교육적 의미
이 작품이 주는 교육은 훈계가 아니다.
누구도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장면을 보여 준다. 좋은 교육은 설명보다 모범이다. 장모님의 몸가짐이 사위를 가르쳤고, 사위의 삶이 자녀를 가르쳤으며, 그 자녀가 다시 손자를 가르쳤다.
교육은 교과서보다 생활에서 전염된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가정교육의 본질을 새삼 일깨운다.
8. 문학적 가치
「손자의 겸손」은 일상의 작은 사건을 통해 인간의 품성과 세대 간 전승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돋보입니다.
특히 뒤에 배치된 두 편의 수필은 단순한 부록이 아니라, 시의 상징과 정서를 해석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독자는 시를 먼저 읽으며 따뜻한 감동을 느끼고, 이어 수필을 통해 그 감동의 근원이 한 가문의 생활철학과 오랜 삶의 실천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이 세 편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장모님의 손사래는 사위의 마음속에 '예'를 심었고, 그 삶의 태도는 다시 자녀와 손자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손자의 겸손」은 손자 한 사람을 칭찬하는 시를 넘어, 한 가문의 정신문화가 일상의 몸짓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생활의 서사시’라 할 만합니다.
마지막의 “손자는 영원히 어린애에 머물러야 하는데”라는 구절은 조부모만이 품을 수 있는 사랑의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육신은 자라 어른이 되어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어린 손자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모든 독자의 가슴을 잔잔하게 울립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이 가족의 추억을 넘어 보편적인 문학으로 확장되는 이유입니다.
◆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윤 선생님의 시가 ‘겸손을 말하는 시’가 아니라 ‘겸손이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 겸손을 소재로 한 작품은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손자의 겸손」은 한마디의 훈계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할아버지와 손자가 용돈을 주고받는 짧은 장면만 보여 줍니다.
독자는 그 풍경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겸손은 이렇게 몸에 배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문학의 힘입니다.
평자는 또 하나의 숨은 미덕을 발견했습니다.
이 시의 진짜 주인공은 손자인 듯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사실은 ‘할아버지의 눈’이 주인공입니다.
손자는 자신이 얼마나 의젓해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압니다.
“그전의 손자는 안 그랬다.”
이 한 줄에는 수년 동안 손자를 바라보며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본 조부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성장의 기록을 써 내려가는 사람은 손자가 아니라 할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성장시인 동시에, 한 노년의 사랑을 기록한 시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작품의 구성입니다.
처음에는 용돈 이야기로 시작하여 독자를 미소 짓게 하고, 중간에는 손자의 사양으로 긴장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영원히 어린애에 머물러야 하는데.”라는 한 줄로 웃음을 먹먹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감정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좋은 수필이 지닌 기승전결의 호흡이 시 속에도 살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뒤에 붙인 두 편의 수필 때문에 문학적 깊이가 몇 배로 커졌습니다.
독자는 처음에는 손자의 행동을 칭찬하다가, 수필을 읽으면서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 이 손자의 겸손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구나.’
구순, 백세에 이르도록 예를 지키며 살아온 장모님의 삶이 사위를 가르쳤고, 그 사위가 자녀들에게 삶으로 보여 준 가치가 다시 손자의 몸가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흐르던 샘물이 세대를 지나 맑은 물줄기로 솟아오른 듯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소감 평자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겸손은 유산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돈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만, 품성은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윤 선생님께서 시 속에서 건네신 것은 오만 원권 한 장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살아오며 몸에 밴 예와 배려,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손자는 그 돈보다 더 귀한 유산을 이미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손자를 바라보며 “많이 컸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성장의 확인이 아니라, 가문의 정신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안도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손자의 겸손」을 단순한 가족시가 아니라, ‘한 가문의 인성 계보를 서정적으로 기록한 생활 서정시’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시 한 편과 두 편의 수필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완결된 작품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으로도 매우 드문 아름다운 구성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 (雲峯, 윤승원 작품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