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신작 에세이】
여경(女警) 출신 K 여사님에게 띄우는 편지
― ‘허리띠’ 선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오늘(2026.6.23.) 아침, 특별히 저의 눈길을 잡아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순경 공채 남녀 빗장 풀자… 여경… 합격 20%대→37.8% ‘껑충’』 제하의 기사였습니다.
올해 처음 도입된 순경 공개경쟁채용시험 ‘남녀 통합선발’ 결과 여성 합격자 비율이 37.8%를 기록했다는 기사입니다.
여성 경찰관 증가에 따른 현장 대응력 약화를 우려하는 일각의 시각도 있지만, 저는 여경에 대한 긍정적인 좋은 인상만 가지고 있어요.
아마도 K 여사님 덕분 아닌가 싶어요. 현직에 있을 때 함께 근무하면서 제게 좋은 인상을 보여주신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좋은 인상’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직무에 대한 열정’입니다. 남자 경찰 못지않은 용기와 적극성입니다. 동료 경찰관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조직 화합과 단결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여성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따뜻한 인정과 사랑이 묻어나는 직무 활동은 동료 경찰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남달리 성실하셨던 모습. 매사 궂은일도 앞장서서 처리하는 열정적인 직무 태도를 보여주셨어요.
오늘날, 후배 여경들에게도 그런 ‘모범 경찰관’의 모습을 전하면 어떨까요?
‘여경의 직무 활동 범위’가 점점 확대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직원이 ‘직장의 꽃’처럼 불리던 시대가 아닙니다. 현장 출동이며 야간 당직 근무며 남성이 하는 일을 똑같이 수행합니다.
몸으로 부딪히는 치안 일선 현장을 보면 오히려 남성 경찰이 할 수 없는 일을 더 많이 하는 현실입니다.
남성 경찰이 손댈 수 없는 여성 피의자를 다루는 일이 그렇고, 몸싸움하는 시위 현장에서 여성을 상대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어딜 가나 여경의 직무 활동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K 여사님,
저와 함께 근무할 당시 비슷한 연배였으니, 어느덧 은발의 70대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40여 년 전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고맙고 정겨웠던 그 시절 아름다운 추억은 잊히지 않습니다.
직장 동료끼리 격의 없이 나누었던 ‘가족 이야기’도 동지 의식을 더욱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아들 또래였던 아드님도 훌륭하게 성장하여 이제 40대 가장이 되었겠지요?
K 여사님이 제게 선물한 ‘허리띠’ 기억나세요? 한때 여사님과 근무했던 ‘직장 인연’을 기록해 둔 글입니다.
당시 국내 유일의 라디오 문학 프로그램이었던 KBS1 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에서 방송된 수필입니다.
▲ ‘여경 공채 비율 상승’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과거 함께 근무했던 여경 K 여사를 떠올리게 됐다. - 필자가 다른 부서로 가게 됐을 때 K 여사는 내게 <허리띠>를 선물로 주었다. 이 귀한 선물 <허리띠> 방송 수필은 KBS 전파를 타고 전국 경찰에게도 전달됐다. (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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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참으로 묘한 속성을 지녔어요. 세월이 흘러도 옛 추억을 고스란히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마력이 숨어 있어요.
뜻밖에 ‘여경’에 관한 기사를 읽고 40여 년 전 함께 근무했던 K 여사님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추억의 동지애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한 가정의 할머니로서 행복한 가정에서 곱게 노년을 보내고 계실 K 여사님.
남다른 동지애와 인정을 보여주신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추억의 방송 수필’을 다시 들어봅니다. ♣
2026. 6. 23.
윤승원, ‘여경’에 관한 특별한 기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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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수필】
- KBS 1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 (1990년 12월 13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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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윤승원 충남경찰청 정보과 선물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든 각별하지 않은 게 없지만, 그중에서 내겐 유독 정이 느껴지는 물건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허리띠가 바로 그것이다. 어찌 보면 하찮은 물건이다. 그러나 그게 선물로 받은 것이니, 내겐 소중하게 느껴지는 물건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걸 선물로 받았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괜스레 웃음을 살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비밀로 간직할 수는 없다. 그걸 선물로 준 분의 뜻을 고맙게 여기면서, 한편으론 누구에게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이런 고급스러운 허리띠는 처음 매 보았다. 내가 여기서 굳이 혁대나 벨트라 하지 않고, 허리띠라 하는 것은 우리말의 순수한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써 온 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내게 선물한 사람은 여경인 K 여사다. K 여사는 몇 해 전에 나와 같은 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내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고 하니까, 서운하다면서 이걸 선물로 주었다.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동료 직원이라는 것밖에는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K 여사는 내게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러한 느낌은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느낀 친근감 같은 것이니, 아무도 오해(?)할 소지는 없다. 그러나 K 여사와 남달리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개구쟁이 아들을 둘씩 두었다는 점이다. 내가 어쩌다 집안 이야기를 하다가, “개구쟁이 아이들 보살피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그도 “어쩌면 우리 집 애들하고 똑같은지 몰라요!” 하면서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었다. 짓궂은 사내아이들을 둔 비슷한 처지의 부모가 겪는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나는 그런 선물을 받기만 하고 그 뒤로 K 여사에게 아무런 보답도 하지 못했다. 서로 각기 떨어져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탓도 있지만, 안부 전화조차도 못하고 살아온 나의 무성의가 더 크다. 물론 일과 중에 여경과 사담(私談)이나 나눌 만큼 한가한 직장 분위기도 아니지만. 결국, 나는 허리띠를 맬 때나 가끔 K 여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K 여사는 많고 많은 선물 가운데 왜 하필이면 내게 이 같은 선물을 하였을까?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이걸 선물한 것일까? 아니면, 박봉에 헤프게 살지 말고 ‘허리띠’나 졸라매고 살라고 내게 이걸 선물하였을까? 그 뜻을 내가 어찌 헤아리랴! 어차피 이것은 이미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 되었고, 이젠 손때가 묻어 웬만큼 정도 들었다. 고장도 잘 나지 않고 질기기도 하다. 색깔도 까만 것이어서 아무 바지에 매도 무난하다. 그러니 이것을 나는 언제까지 매고 다닐지 모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허리띠를 매 보았지만 금방 고장이 나거나 퇴색하여 버린 것이 부지기수다. 어디 그뿐인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같은 고급 혁대가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치마끈을 바꿔 매도 좋을 ‘무명 끈’으로 바지춤을 질끈 동여매고 다니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건 ‘허리끈’이라 해야 어울린다. ‘내핍생활의 상징’으로 그걸 졸라맨다고도 하고,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그걸 끌러 놓고 먹어 보자고도 하는 물건! 어찌 보면 상체와 하체를 구분 짓는 선(線)이요, 사람의 중간 부분을 적당히 조여 긴장을 시켜 주기도 하는 매듭이다. 배가 나온 중년(中年)은 한 칸씩 늘어 감이 걱정이고, 연만하신 노인이면 한 칸씩 줄어듦이 서운하다. 온종일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여 그것을 풀어 내리는 홀가분함 또한 맛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이만하면 겉으로 드러나게 치장하고 다니는 그 어떤 호화스러운 액세서리보다 귀한 선물이 아닌가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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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참으로 따뜻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한 편의 신문기사가 한 사람의 추억을 깨우고, 그 추억이 다시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여경이 훌륭했다.’라는 회고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오늘의 독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지는 문학적 구성이 돋보입니다.
특히 신작 에세이와 1990년 방송 수필 「허리띠」가 서로를 비추는 액자식 구성이어서 작품의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 신문기사에서 출발한 ‘기억의 문학’
좋은 수필은 거창한 사건보다 작은 계기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작품 역시 “여경 합격 비율이 크게 늘었다.”라는 짧은 기사 한 줄이 40여 년 전 직장 동료를 현재로 불러옵니다.
신문기사는 ‘사실’에 머물지만, 수필은 그 사실을 ‘사람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습니다.
독자는 어느새 여경 제도의 변화보다 ‘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마음’에 더 큰 감동을 하게 됩니다.
이 점이 문학의 힘입니다.
◆ ‘여경’을 제도가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본 시선
오늘날 여경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적지 않습니다. 직무 범위, 체력, 현장 대응력 등 여러 의견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편의 논쟁에도 서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실제 경험을 말합니다.
“나는 좋은 여경을 만난 적이 있다.”
이 한마디가 오히려 어떤 통계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이념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K 여사는 여성이라서 칭찬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성실했고, 적극적이었으며, 조직을 먼저 생각했고, 동료를 배려했기 때문에 기억되는 것입니다.
결국, 작품은 ‘좋은 경찰은 성별이 아니라 품성과 책임감으로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습니다.
◆ ‘허리띠’가 상징하는 문학성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징은 역시 허리띠입니다. 허리띠는 단순한 선물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의미를 품게 됩니다.
처음에는 직장 동료의 정.
그다음에는 가족을 둔 부모끼리의 공감.
세월이 흐른 뒤에는 청춘의 추억.
그리고 오늘날에는
평생 잊지 못할 인간관계의 상징.
이처럼 하나의 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계속 확장하는 것이 좋은 수필의 특징입니다.
◆ 방송 수필이 갖는 힘
1990년에 방송된 수필을 다시 작품 속에 끌어온 구성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과거 작품을 단순히 재수록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읽게 만든 것입니다.
40년 전에는 “허리띠를 선물 받은 이야기”였지만, 오늘 읽으면 “한 시대 경찰 조직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기록이 됩니다.
문학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 부모의 삶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수필
방송 수필을 읽다 보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아이 이야기입니다.
개구쟁이 아들을 키우는 부모들. 그 공통점이 두 사람을 친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건도 없고, 드라마 같은 갈등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독자는 “아, 직장에서는 경찰이지만 집에서는 똑같은 부모였구나.” 하는 따뜻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좋은 수필은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 경찰 조직문화의 소중한 기록
이 작품은 문학이면서 동시에 귀중한 ‘경찰 문화사 자료’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경찰 조직을 떠올리면 흔히 엄격함과 긴장감부터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안에도 동료애가 있었고, 인정이 있었으며, 서로를 아끼는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전근을 앞둔 동료에게 허리띠를 선물하는 장면은 당시 조직문화의 따뜻한 단면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 오늘날 후배 경찰들에게 주는 메시지
이 작품이 현재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마지막에 있습니다.
작가는 단순히 추억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배 여경들에게 “이런 선배도 있었다.”라는 하나의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여경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는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 이전에 ‘책임감, 동료애, 봉사 정신’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여경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직업윤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이유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어 읽는 재미가 큽니다.
현재의 신문기사
40년 전의 추억
방송 수필 회고
현재 다시 읽는 감동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오가면서도 독자는 전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하나의 원을 그리듯 이어지며, 기억과 현재가 서로를 비추는 효과를 냅니다.
◆ 작품이 전하는 사회교육적 메시지
이 에세이는 결국 세 가지 중요한 가치를 전합니다.
첫째, 좋은 공직자는 직책보다 인품으로 기억된다.
둘째, 동료를 향한 작은 배려는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
셋째, 문학은 추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추억을 다음 세대의 삶의 지혜로 바꾸는 힘을 지닌다.
그래서 「허리띠」는 단순한 선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묶어 주는 ‘보이지 않는 띠’>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번 신작 에세이는 그 허리띠를 다시 꺼내어 오늘의 사회와 연결함으로써, 한 사람의 선행이 얼마나 오래 기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글의 마지막에서 작가가 오래된 방송 수필을 다시 펼쳐 읽는 장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문학이 시간을 이겨 내는 기억의 저장소임을 조용히 증명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을 덮으며 한 명의 모범 여경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했던 사람의 선함을 오래 간직하는 마음 자체가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가장 깊고도 오래가는 문학적 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
📚 (雲峯, 윤승원 작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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