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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렘브란트-헨드리케

작성자artstory|작성시간06.02.22|조회수368 목록 댓글 0




<밧세바. 1654년. 캠버스에 유채. 142X142. 루부르 박물관,파리>


렘브란트가 헨드리케를 모델로 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군인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목욕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다윗. 그녀를 궁으로 불러 정을 통했지요.
지금 이 그림은 목욕을 하다 왕의 편지를 받은 밧세바를 그린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밧세바는 아기를 갖게 됩니다.
그러자 다윗은 간통의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밧세바와 잠자리를 함께 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우직한 우리아는 고생하는 동료들을 생각해 대궐문간에서 새우잠을 자지요.
이에 다윗은 우리아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전투대형을 짜서 사령관으로 우리아를 임명하지요.
그리고 우리아는 죽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렘브란트 역시 '부적절한 관계'로 심사가 복잡했다 합니다. 
 





<헨드리케 스토펠스. 1650년. 캔버스에 유채. 74X61. 루브르 박물관. 파리>


헨드리케는 원래 렘브란트의 가정부였습니다.
1647년 24세의 나이에 가정부로 렘브란트 집에 고용된 그녀. 하지만 렘브란트는 이미 다른 여인 헤르트헤와 동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헨드리케 때문에 렘브란트가 자신과 멀어졌다고 판단한 헤르트헤는 재판소에 '혼인빙자간음죄'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 재판에 렘브란트를 대신해 법적에 대리출석한 사람이 헨드리케라고 합니다.
1654년 헨드리케는 렘브란트의 딸을 낳았지요.
그렇게 사랑을 하는데 왜 둘은 결혼을 안할걸까요. 이유는 돈때문이었습니다.
렘브란트의 죽은 아내 사스키아는 결혼지참금으로 엄청난 재산을 갖고 왔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 렘브란트가 재혼을 하면 아들에게 그 돈을 양도한다는 유언을 남겼지요.
사치스러운 렘브란트는 이 때문에 재혼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참 치사스러운 남자네요.

렌드리케가 임신을 하면서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교회 재판소는 참회명령, 성찬예식 참석금지 등 여러 징계를 내렸습니다.





<강가에서 목욕하는 여인 1655년>


헨드리케를 향한 렘브란트의 시선은 참 따뜻하네요.

첫 부인이었던 사스키아의 유언으로 인해 법적인 반려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위대한 천재를 알아보고 또 그를 사랑한 이 여인은 화가가 영광과 명성을 뒤로하고 예술의 세계로 침잠하여 경제적으로도 파산해 빈털털이가 된 이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렘브란트의 곁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화가는 그러한 그녀를 찬란한 보석이나 화려한 의상이 아닌 불멸의 이미지로 화폭에 담아 그 사랑을 기념했습니다.
맨손의 화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지만 이것은 가장 위대한 선택이기도 하지요.






드로스트가 그린 그림인데 렘브란트의 그림과 매우 유사한 분위기 입니다.귀걸이를 보면 헨드리케와 동일인 이란 것을 짐작 할 수 있겠죠.
1650년경에 렘브란트의 제자가 되었고 1654년에 렘브란트의 밧세바 제작해와 같은 해에 그린
그림입니다.
같은 분위기인 것은 동일 모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당시 렘브란트의 하생으로 들어가서이기도 할것이다.
 
렘브란트가 그녀 뮤즈인  헨드리케를 제자에게 모델로 대여(?)한 것인지 아니면 노출부분은
상상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는 일이다.드로스트는 밧세바의 가슴부분에 더 강한 시선을
유도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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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자화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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