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문학>에 보낸 원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고에 쓰인 날짜가 없는데 내용 중에 ‘햇수로 7년째’라는 구절이 놓인 것으로 보아 2009년의 글로 추정됩니다.
2001년에 10월에 달섬문학이 출발하여 2003년에 첫 사화집이 나왔으니, 지금부터 23년 전의 <달섬>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서 카페에 올립니다.
최중태 여의도, 유배를 풀려나며 아직은 어쩔 수 없는 내 삶의 남루한 둘레로 끝이라기엔 너무 멀리 별로 뜨는 또 하루의 일상 흙으론 메울 수 없는 우리의 꿈이 흘러간다. 스스로의 하중에도 숨이 차는 교각 위로 불면의 가로등 위험수위를 조사하고 찬연히 자유의 모습으로 날아오르는 새, 새, 새. 달섬문학회를 찾아서 우리는 <달섬>이라는 이름의 문학회 안에 한 무리로 모이지만, 우리가 모이는 것은 함께 문학을 공부하고자 함에서이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 모임에는 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시에 대한 생각이 달라도, 추구하는 작품의 경향이 달라도, 생각하는 방법이 보편적이 아니어도 그것이 제약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문학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만 인식을 같이 하면 그 사람은 <달섬>의 회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문학을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모임이고 보니, 사화 집에 발표되는 작품의 모양새가 각양각색일 수도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직 정제가 덜 된 자연적인 소리로 들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런 부분을 의도적으로 어떤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 아직 리허설도 해 보지 않은 상태이니까, 시간이 가면 이 소리들이 정제될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 소리가 어떤 모습으로 정제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바라기는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윗글은 달섬문학회 사화집 창간호에 수록된 최중태 회장의 머리말 축하 인사의 일부분이다. 달섬문학회는 2003년 가을 고종목 김문억 김예태 이상원 이윤재 허순행 시인 등 몇몇이 발기를 하여 문단 변두리에서 묵묵히 시만 쓰고 있는 사람들로 엮어진 것이 특징이다. 같은 해 창립총회를 갖고 기념 시화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햇수로는 벌써 7년째 각종 문학 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시문학 전문 단체다 창립하면서부터 매월 네 번째 월요일 저녁에 시작한 시낭송회는 벌써 70회를 맞고 있으며 2005년부터 발행한 문학지는 해마다 거르지 않고 제 4 집까지 발행 해 오고 있다. 특히 회원들의 시 밭에 씨 뿌림을 위하여 그 동안 김정오 최중태 최금녀 김예태 허영자 추명희 성춘복 신세훈 한영옥 유자효 이 경 등 좋은 시인들의 초청 강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회원 상호간의 결속과 다짐 하면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가신 선배 문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현장 수업을 하는 문학 기행을 해마다 실천 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 및 기념관을 비롯하여 임꺾정의 작가 홍명희의 생가와 기념관 그리고 우리의 근대사와 문학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한용운의 생가를 비롯하여 상록수의 작가 심훈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 최용신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상록수 공원까지 답사를 해 오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주 1 회 2 시간 씩 6 개월 기간으로 시인학교를 운영 하면서 습작기에 있는 문학 지망생들의 학습을 무료 지도하고 있다. 지금은 1 기생을 배출한 후에 2 기생이 교육 중이다 그 뿐이 아니다. 회원들의 문학 눈높이를 위하여 수도 서울에 산재 해 있는 조선 5 백 년 역사의 현장을 더듬어 보는 역사탐방 팀이 있어 지금까지 꾸준하게 실시 해 오고 있다 매월 둘 째 토요일에 갖는 서울 역사 탐방은 지금까지 인왕산, 남산, 정동일대, 청계천 문화관 및 청계천 상류, 청계천 하류, 북촌마을, 서오능, 국립박물관, 홍릉 숭인원 영휘원 및 세종대왕 기념관. 현충원, 경복궁,을 답사 했으며 멀리 영릉까지 나간 때도 있다. 이렇듯이 길지 않은 동안에 오직 시를 갖고 뭉친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사람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매우 안타까운 현재를 살아가면서 시와 사람 냄새가 지독한 문학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지난번에 발간된 사화집 4호에는 고종목 김문억 김예태 김정숙 신은미 신필영 원공 이상원 이윤재 정기용 최동희 최상하 최상현 최중태 허순행 강혜련 박찬홍 등의 작품 78편이 수록 되었다 달섬문학회 시인들의 앞으로 활동을 크게 기대하면서 회원들의 주옥같은 시편들을 소개해 본다 고 종목 APT가 아프다 외 1편 - 조각보 1 아파트창이 환히 조각보를 펼친다. 창 하나, 빨간 가구 빨간 옷 빨간 몸짓이 창 하나, 파란 수족관속엔 파란지느러미의 물고기들이 창 하나, 주말 부부 뽀글뽀글 노랑머리 여자와 뽀메리온*이 흔들의자에 앉은 흔들 입맞춤이 창 하나, 설날저녁 삼대가 앉아 보는 축구경기 슛―초록축구공의 포물선 TV화면을 출렁 흔들고 창 하나, 낡은 차 안 불이 꺼졌다가 깜박 켜진다. 10년 무주택인 K씨가 타고 있다 2월 밤 불을 켠다. 소장. 대장. 십이지장. 신장. 비장. 췌장. 맹장. 애간장 아파트 내장이 부글거린다. 카페 스카렛에서 켜짐 꺼짐 카페 스카렛 2층 통유리 창가에서 켜짐, 다탁 위에 이마를 맞댄 네 개의 유리잔이 놓여 있다 찰랑대는 체리 차 속으로 내 눈동자가 빠진다 창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 건너 불 켠 간판들, ‘바람난 금촌 돼지’ 얼굴에 고추장 팩을 붙인 채 퐁당 빠죠 누드 춤을 춘다 카페 스카렛 유리컵 체리차 속으로 날개 달린 구름 누드 하나 날아와 퐁당 다이빙을 한다 붉은 지느러미들이 헉헉 허우적거린다 막 10시 9분 59초 초침이 바르르 떨고 카페 스카렛 꺼짐, 티스푼으로 체리차를 젓는다 한 모금씩 내가 사라진다 김문억 소낙비 2 외 2편 장엄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누구냐 물 막대로 현弦을 켜는 관현악의 앙상블, 연주자의 가슴에서는 태풍 일고 천둥 치고 오선지는 하늘 땅 사이에서 비바람 번개 치며 뒤집어지며 고꾸라지며 사랑이여 이별이여 죽음이여 통곡이여 휘몰아치는 휘몰이 악장이 거듭거듭 넘어가고 있다. 만취한 객석에서는 그치지 않는 박수 소리. 일식日蝕 달님이 시집가고 해님이 장가가던 날 긴 긴 세월 일구월심日久月深 첫사랑을 좇아서 맨발로 허공중천 나그네가 되었던 동정녀 달님과 동정남 해님이 마침내 서로 만나 긴긴 시간 꿈같은 합궁을 하고 있는 우주의 情事를 두고 사람들이 엿보고 있다 보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뜨거워요 눈 다쳐요 구태여 불 꺼진 신방 문종이를 구멍 내고 훔쳐보는 사람 중에 생산을 아직 못한 사람 있거든, 뒷날 달덩이 햇덩이 같은 딸 아들은 잘 낳겠네 목포 목포! 하고 이름만 불러 봐도 목 메이고 포근한 곳 서울에서 줄창 남행 열차를 끌고 내 가면 앞서 가던 영산강도 마침내 다리 뻗고 누워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고몰고몰 새끼 같은 작은 섬들을 끌어안고 갯벌같이 질퍽한 우리 어머니가 사는 곳 객지로 간 놈이나 다시 돌아 온 놈이나 아무 말 없이 그냥 따끈한 쌀밥 위에 곰삭은 어리굴젖 한 입 가득 넣어 주는 곳 생선비린내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늙어 가는 마음 좋은 큰형수와 유달산 하현달 같이 과년한 누이도 같이 눌러 사는 곳. 목포는 항구다 항시 떠나면서도 붙잡혀 있는 새삼 다시 젖을 것도 없이 언제나 축축이 물 위에 떠서 사는 목포는 사철 출렁이는 항구다 소금 바람 들고 나는 심장 깊은 곳까지 촘촘한 그물 힘껏 던지며 느낌표로 흐느끼며 막차로 가도 좋은 곳 목포는 종점이다 신은미 편지 외 2편 화창한 봄날 부끄러움이 가득 묻은 아들의 편지 수많은 낮과 밤을 엮은 햇살과 바람처럼 글자마다 빼곡하게 아들 마음이 박혀 있다 어미 마음 밭에 자주 다녀갔을까, 잡다한 생각의 밭에 바람 스치듯, 아껴둔 감동이 한 아름 꽃물로 내린다.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라서 자랑스럽습니다" 유통기한 없는 신선한 산소가 아름다운 향기로 온몸 가득 번져 온다 겨울 꽃 정신없이 찬바람이 불던 밤 그렇게 신음하더니 겨울 꽃으로 피어나려 했음이야 맑디맑은 눈송이 잠든 밤 남모르는 사랑으로 내려와 겨울 날 외로운 누군가의 위로가 되려 했음이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꽃, 가련한 어깨 어루만진다 울컥 뜨거운 눈물로 스러진다. 포근한 꿈 속 향기 나는 이불로 잠들게 함이야 흑백 사진 내 기억의 인화지 위에서 개나리꽃은 언제나 흰빛이다. 내 아들 코찔찔이 일곱 살 때 사월 열여드레 날 낡은 노끈에 꽁꽁 묶여 온 개나리 꽃 한 다발 책가방은 교실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학교 담장에서 소리쳐 웃고 있는 개나리 꽃 꺾어서 한 아름 안고 돌아온 아들이 준 생일선물 영문도 모른 채 흔들려 와서는 행복을 세례 주던 꽃잎 꽃잎들, 일곱 살 아이의 마음으로 정화된 순결한 빛깔의 성수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던 기쁨 신 필 영 바람의 시 외 2편 벌판에 집을 짓는 바람 너는 유목민이다 야크 떼 몰고 가는 카라반의 사내이다 절망의 산맥을 넘으며 발바닥에 물집 잡힌. 어딘가에 꽂아야 할 깃발을 펄럭이며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가는 먼 길 끝끝내 돌아서지 않는 너의 뜻은 화살 같다. 때로 포효하며 바다를 뒤엎지만 유랑을 즐겨하는 어느 지사 입술을 빌려 한 가락 피리소리로 닿고 싶은 가슴이 있다. 하현달 뱃길 없는 강물 벗은 발로 건너와서 쪽문 밖 서성이다 화들짝 숨어버리고 야위어 반으로 와도 알아볼 수 있겠지요 서라벌 어느 봄밤 잠 못 드는 기와장이 민망스레 새겨 올린 추녀 끝 얼굴 하나 그 막새 남은 미소로 하늘가를 오갑니다 새벽이 가까울수록 이끌리듯 더딘 발길 멀리 감빛 창문 곁불로나 따스한데 한 생각 가리지도 못해 옷자락 다 젖습니다. 명장 조팝나무 꽃그늘에 허기지는 늦봄 하루 물 잡아 부푼 논두렁 삽질 따라 윤을 내며 버려진 농경의 조각보 잇고 다려 주름 편다. 한 시절 다 바쳐서 살점이 된 논바닥에 모 한 춤 구름 한 춤 거친 손이 놓는 자수 눈썰미 녹록찮은지 개구리 첨벙 뛰어들고 내 한 생애 필름을 현상하면 그 봄날의 행복했던 시간 잊을 수 없는 흑백사진이 떠오른다. 이상원 꺽기 무릎을 꺾는다 전기기구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생활이 편하도록 굳은 무릅을 꺽는다 90도 110도 130도 아픔을 꺾는다 수개월 간의 고통이 이제 고지가 가까이 있으니 인내심을 시험하며 아픔을 꺾는다 100도 120도 130도 나를 꺾는다 교만과 아집과 죄로 얼룩진 자신을 내려놓으려고 지난날을 꺾는다 120도 130도 150도 최동희 멀리서 가까이서 외 2편 어디쯤 서 있어야 하는지 멀리서 순한 얼굴로 아예 미움 따윈 처음부터 없었던 듯 빙그레 웃어야 하는지 가까이서 조밀한 눈짓으로 오직 사랑만 있는 것처럼 품 넓게 안아야 하는지 항시 칼처럼 서 있는 나는 몸 둥근 산이 될 수도 없고 작은 것이 애처롭기만 한 나는 우주를 잉태한 꽃이 될 수도 없고 그저 해거름 산기운에 으스스 떨거나 우연히 만난 꽃향내에 무릎 꿇거나 있을 자리를 몰라 한 걸음 더 가까이 한 걸음 더 멀리 어디쯤 서 있어야 하는지 능소화 구부정한 샛길 따라 생각지도 않은 옛 친구 떠올리며 혼자 웃음 웃는데, 누군가 갑자기 팔을 잡았을 때의 꼭 그런 느낌 여름해가 아직 게을러 애써 그늘 찾지 않아도 그냥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인데, 어느 집 담을 넘는 된장찌개의 꼭 그런 맛깔 울음 생명은 온통 첫울음으로 시작한다 누가 듣든 말든 첫울음을 실컷 울고 당당해진다 울음은 열림이다 땅을 열고 하늘을 열어 꽃으로 피고지고 산이 되고 강으로 흐르고 무릇 생명은 자신의 울음으로 첫걸음을 떼고 세상의 울음과 더불어 살다 당신들의 울음으로 마지막 걸음을 한다 울음을 울지 않는 생명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울음, 빛나는 울음이다 김정숙 겨울 풍경風磬 외 2편 흔들리는 내 안에 겨울이 가고 있다 삼천 배 엎드려서 절하는 사이사이 고요한 흔들림이 와서 잔잔한 바람이 인다. 숨바꼭질 기쁨에 아름다움을 배우다 잠이 든 철부지 아이의 눈웃음 같은 오후 숨죽인 배롱나무도 긴 배앓이 한창이다. 메타세콰이어의 길 -담양에서 눈 감으면 묻어나는 은총의 눈빛같은 그 길을 걸어가면 생명의 푸른 냄새 은밀도 부활되어서 눈 뜨며 꿈을 꾼다. 산수유 이별을 얘기하다 산수유 발갛게 몰려드는 이곳에 애미는 연일 입 다물고 말이 없다 혈관 속 타들어가는 저놈의 빗줄기가 폭풍이 나뭇가지를 겁나게 흔든다 올해는 눈물없이 거두어 들이리라 강풍은 마음 강둑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김예태 상중喪中입니다요 검은 정장을 입고 친구를 만났지요 상중이라 했더니 “누가 돌아가셨냐”하대요 오늘 내가 나를 조문하는 중이며 깊이 애도하고 있다 하니 배꼽을 쥐고 웃는 친구를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때때로 꼭 죽어야 할 때가 있습지요 관념의 미세한 혈관까지 모두 갈아야 하는 대수술 끝에 마침내 절명하는 절명하고야 마는 그런데 요런 망할 놈의 사망이 있습니까 죽고 나면 꼭 부활을 하네요 아직 석관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그것도 모르는데 아무튼 난 살아서 나를 조문하고 부활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목을 빼고 세상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나는 죽어버린 나만도 못한 쓸개 빠진 놈입니다요 양치질 죽염을 듬뿍 묻혀 이를 닦는다 그에게도 달게 씹던 고기의 질긴 힘줄 하나가 세월에 포옥 삭아 내리지 못하고 하얀 잇새에 오물처럼 끼어 있는 것일까 비수 같은 통화음에 명치가 아프다 본디 우리들의 흰빛을 우롱하는 것은 곰삭지 못한 김치 속 고춧가루 한 점이거나 설익은 소채의 푸른 자존감일 뿐이라고 경전을 외듯 이를 닦는다 그와 나 사이 균열 간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 희지 못한 것들을 버리기 위해 잇몸이 아프도록 이를 닦는다 눈알을 빼다 어물전에서 잡아온 오징어 몇 마리가 검은 비닐을 뚫고 나와 눈을 홉뜨고 본다 툭 튀어나온 부릅뜬 눈알. 눈알을 뽑아버리자 오징어는 거짓말처럼 순해진다 좌르르 다리에서 빨판이 뜯기어 나가고 성기처럼 숨은 날카로운 이빨도 저항하지 않았다 빼버린 눈알을 무심히 쓰레기통에 넣다가 눈알 가득 고인 검은 눈물을 보았다 자칫하면 세상 하나쯤 뒤덮을 수 있는 슬픔이 그렁그렁 먹물로 고여 있다 수천의 집어등을 희망의 빛으로 착각한 그 날부터 눈알을 잃는 것은 예정된 길이었다 어머니가 감춰두었던 채권이며 어음, 통장잔고 집안을 집안답게 가꾸어주던 가구와 집기들이 오징어 다리의 빨판처럼 뜯기어 나가던 날 아버지도 눈을 잃고 대낮처럼 밝아지셨다 큰손들은 집어등 앞으로 몰려드는 오징어의 눈알을 처음부터 빼버리고 게임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윤재 사물놀이 두드림은 기다림 기다림은 그리움 그리움의 맛깔 난 한풀이 음이 양을 밀치면 양은 음을 보듬어 그래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신바람 한 점으로 먹구름 부르고 천둥 더불어 한바탕 소나기 치르면 이어 두드림은 안개처럼 너울대며 한을 풀어내는 것이렷다. 기다림으로 점멸하는 머리채와 땀 이슬에 젖은 너희들의 신명은 어해 그리도 부시게 아름답더냐 비니루에게 바람이 속빈 의장을 종일 풀다 지친 저녁 수몰지구 폐광 위로 달로 뜨는 인연이야 구천을 싸지르고도 썩지못한 죄 아니던가 아픔도 탄화해버린 이 땅의 고생대에는 가난도 가난에 썩어 가멸졌던 우리들의 삶 순수의 허구였었어 썩지않는 너의 의미는. 막차를 기다리며 돌아다보면 언제나 아득하기만 한 지난날은 꿈속에서 번쩍하고 사라져버린 그 이미지처럼 잊어야, 잊어야 한다면서도 놓지 못한 미련의 끈. 화려했던 꿈의 풍선들은 벌써 시야에서 멀어졌는데 그래도 풀지 못한 주먹 하나 가득한 아쉬움 늦은 밤 막차를 기다리며 또 내일을 헤인다. 허순행 채석강에서 이 봄, 채석강 물속에서 건져 올린 달처럼 동그란 돌 하나 건져들고 돌아오는 내내 가방 속에 채워둔 바닷물 소리를 들었다 그대가 떠난 빈자리에도 바닷물이 차올랐을까 차장에 기대면 검은 빛으로 사그러드는 내 육신 나를 보고 있다. 춘정은 지워진지 오래 돌아가야 할 밤의 적막은 멀고 나는 가방 속에 담아 온 밤바다 소리를 듣는다 당신이 떠난 빈 집에 도착해서야 수천 년을 견디었을 돌멩이 하나 꺼내 베란다에 놓았다 그대인 양 놓았다 상실 당신에게로 오는 편지는 당신이 떠난 빈자리를 알지 못해 아직도 내 우편함으로 와서 당신의 이름 석 자로 당신을 되살려 내고 거리를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흔들리던 당신의 걸음걸이를 되살려 내고 저녁노을 아래 앉아 붉어지는 얼굴 마주보며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지만 때때로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할퀴었던 죄 풀어내지 못해 밤새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앓다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새벽 오늘도 당신에게로 오는 편지를 받았네 습관 내 몸 아직 깨어나지 않았건만 닫힌 문은 나를 열고 나간다. 나무들은 어둠을 베고 누운 채 제 몸속에 잠들어 있고 간밤의 흔적 떼어내지 못한 내 구두에서는 목 쉰 소리가 난다 그대 잠 들어 있는가. 한낮이면 털어내야 할 내 몸의 무게가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는데 새털처럼 가벼운 그대는 추락할 줄을 모른다. 떨어져 내리는 것은 꽃잎이다. 4월이 가기도 전에 나는 두꺼운 잠옷을 벗어야 하고 봄은 마음에도 들어오지 않았건만 부옇게 밝아오는 거리는 홍매화 꽃잎처럼 붉다. 떠오르는 태양도 붉다. 내 피가 파란색으로 흐르지 않는 한 내 피도 붉으리라 오늘도 나는 하루 속에 빠진 나를 건져내지 못했다 정기용 선(禪) 바위 조선왕조가 경복궁을 세울 때 풍수지리상 좌청룡에 해당되는 내 사산의 하나인 인왕산에는 많은 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선바위는 인왕산 중턱에 있다. 서울역사문화포럼 문화강좌 생들 40여 명이 선바위를 답사하였다. 지하철 독립문역 1번 출구를 나와 북동쪽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두 사람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형상의 바위 두 개가 보인다. 이 바위를 선바위라고 부른다. 주위에는 우리나라 무당(巫堂)의 본당인 국사당(國師堂)과 인왕산의 명칭을 붙이게 한 인왕사(仁王寺)가 있으며 범바위, 붙임바위, 황학정 등 유적들이 많다. 선바위 선(禪)을 풀어보면, 닦을선, 고요할선, 중이 조용히 참선한다는 뜻이다. 선바위는 보는 이에 따라 모양과 생각이 다르게 느껴진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이성계 부부라는 설, 이성계와 무학대사 상이라는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다. 지금은 기자암(祈子岩)으로 더 유명하다. 나는 선바위 해설자로 문화강좌 생들에게 현재의 기자암(祈子岩)과 성곽을 쌓았을 때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주었다. 아들을 얻지 못해 아들을 낳고자 기원하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조용히 빌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가까운 국사당 마당에서 선바위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돌에 신령이 있거나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남근석, 여근석, 유사한 바위나 석물(石物)에 고사를 지내면 효험을 본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성석(性石)>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에 500여 개의 성스러운 성석이 있는데 그 모양이 다양하다고 한다. 강원도 홍천 팔봉산 입구에 있는 남근석은 세워 놓기 전은 남자 등산객이 한 해에 몇 사람씩 산행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한다. 팔봉산의 형세가 여자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남근석을 세워놓았다 한다. 정선 화암동굴에 있는 남근석은 손끝만 대도 효험이 있다고 하여 관광객들이 자주 만져 반들반들하다. 선바위는 옛날에 누구나 와서 기도를 드렸다. 특히 무당들이 많이 찾아와 촛불을 켜놓고 종이를 태워 주위가 지저분할 뿐만 아니라 산불 위험도 많아 접근을 못하게 했다. 지금은 서울특별시에서 민속사료 제4호로 지정하여 제단도 만들고 말끔하게 단장해 놓아 깨끗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든다. 조선 초 한양에 천도하면서 도성을 쌓게 되는데 조선말에 쓴 <동국여지비고>에 보면 정도전과 무학대사와 사이에 선바위를 놓고 안으로 쌓느냐 밖으로 쌓느냐 크게 다투었다 한다. 공사를 맡은 개국공신 정도전은 선바위를 밖으로 쌓자고 하고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는 성안으로 쌓자고 하여 의견이 대립되었다. 이성계는 두 사람 의견에 의문을 물으니 선바위가 안으로 들어오면 불교가 성하고 밖으로 나가면 유교가 성한다고 했다. 태조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튿 날 아침 장안에 흰눈이 내렸다. 사대문 안쪽의 눈은 모두 녹아버리고 성곽이 쌓아진 바깥쪽은 녹지 않아 기하게 생각한 이성계는 하늘이 내려준 계시로 알고, 선을 따라 성을 쌓으니 선바위는 자연 성의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무학대사는 한숨을 쉬며 중이 선비의 책 보따리나 짊어지고 따르는 신세가 되었다며 한탄했다 한다. 전설이나 미신은 크게 믿지 않지만 역사 공부를 하는 나로서는 역사의식으로 보기에 아주 무시하지 않는다. 경복궁 건립에도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대립이 심했다. 무학대사는 경복궁 앞이 동쪽을 보고 세워야 하고 정도전은 남쪽을 보고 세워야 한다고 했다. 정도전의 뜻대로 되니 무학대사는 200년 안에 큰 전쟁을 예언했으며 장자가 왕을 계승하지 못하고 차자나 삼자가 왕위를 물려받는다고 했다. 무학대사의 말대로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보위도 차자나 삼자가 주를 이었다. 역사를 살펴보아 무학대사의 예언이 맞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기엔 느끼는 바가 크다. 답사 중 일행 몇 사람은 선바위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국사당의 진오기 굿 소리와 함께 기자 신앙과 맞물려 온통 인왕산 중턱은 소망과 기원의 전당이 되어버렸다. 나는 인왕산을 내려오면서 지금도 기자 신앙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선바위 내력을 더듬어 봤다. 최상현 들 꽃 버려진 꽃이라 들꽃인가 들에 핀 꽃이라 들꽃인가 저 꽃들 좀 봐 우르르 모여 각색 분장하고 녹음에 안겨 교태를 부리네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 몰래 사랑을 나누었나 봐 파란 아람 안고 눈인사할 때 호랑나비 파도처럼 춤추며 가네 저 작은 색시꽃 수줍어하면서도 사랑 흉내 내네 저절로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저기도 좀 봐 연초록 흔들며 누굴 기다리나 봐 박찬홍 편지 소슬바람 가만히 불어오던 날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 가을편지 왔어요 은행잎 노랑 편지 가랑비 소리없이 내려오던 밤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 가을소식 왔어요 단풍잎 빨강편지 꿈 나는 한 마리 나비에요 겨드랑이에 날개 달아 팔랑팔랑 하늘을 날고 있어요 노랑나비 나풀나풀 호랑나비 너풀너풀 나비가 되어 세상을 보니 온통 어여쁜 꽃들뿐이에요 나는 한 마리의 산새에요 겨드랑이에 날개 달아 훨훨 하늘을 날고 있어요 산비둘기 구구 딱따구리 따꿍따꿍 산새가 되어 세상을 보니 온통 아름다운 나무들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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