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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문학 연구

성수연의 수필 2제

작성자달섬|작성시간26.06.05|조회수22 목록 댓글 0

 

 

상견례

 

성수연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가족이 결혼을 앞에 두고 만나는 자리

친정아버님은 상견례를 해야 서로 한 가족이 된다고 하셨다

여간 어렵지 않다

안사돈의 자상한 배려가 모두를 편안하게 했다

사람이 만나는데 유순한 마음으로 만난다면 즐거운 만남이 된다

 

어느새 차 마시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가족이 마음으로 위해 주면 더 많아진 가족들이 곧 행복이다

한 자리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길 기원한다

유자빛 봄 햇살도 따스하고

회색빛 고양이가 어디선가 나와 산으로 올라갔다

우리들의 시선은 어느새 고양이에게로 갔다

우린 머지않아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마나 결혼하다(MANA MARRIAGE)/ 성수연 / 파루/ 2014/ p21)                                           

 

 

성수연의 수필집을 읽고 있노라면 은은한 파스텔 톤의 빛깔들이 번져나온다. 그것이 글을 따라 일어서는 마음의 빛깔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이 책이 시집이었나 하는 착각에 번번히 확인을 한다. 그의 글들이 방심하고 있는 독자의 마음에 툭 하고 조약돌을 던져오면 지성보다 감성이 먼저 반응하여 둥글게 퍼져나가는 파문을 일으킨다.

「상견례」도 그런 글 중의 하나이다.

그는 친정아버지를 회억하며 상견례의 의미를 새긴다. 상견의 예를 거쳐야 양가가 한 가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담담한 현실로 견인해 준 것은 회색빛 고양이다. 고양이의 출현은 모두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아준다. 이 체험으로 작가는 그들이 앞으로도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출항하는 자녀들의 미래가 더욱 밝으며 사랑과 축원이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친정 아버님의 회상, 안사돈의 배려, 봄햇살의 배경이나, 고양이가 나와 산으로 가는 장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 등과 같이 최소한의 어구를 사용하여 상견례, 나아가 결혼의 의미까지를 깊이 다루며, 독자들의 은근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데에도 성공한다.

 

(시와 산문의 중간을 읽다/ 김예태(시인)                                          

 

 

 

개포동 素描 · 2

 

-쌀통 앞에서

 

 

 

정적을 깨고 버튼을 누른다. 소르르 쌀알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때마다 집요한 생각, ‘지금 나는 내 시간을 먹고 있는거야. 내 생명의 길이를 잘라먹고 있는거야. 쏟아져 나온 쌀만큼 쌀통의 쌀은 줄어들 것이고, 쌀로 한끼 밥 해먹는 만큼 나의 생명은 축이 나고 있겠지’. 진저리를 친다.

밥을 해서 먹는다는 것이 왜 이리 고역스러울가. 흔들린다. 그저 밥이나 짓기 위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쌀통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습성에 진저리친다.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생각들을 떼어내느라 쌀을 손바닥으로 박박 으깬다. 뽀얀 쌀뜨물은 삶의 혼란인 양 일어나 하수도로 흘러내린다. 쌀뜨물이 일어난 것과 쌀과는 상관이 없다. 혼란과 방황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해도 삶의 본질이 전혀 변하지 않음과 같다. 쌀뜨물은 뽀얗게 시야를 흐리며 일어났다 시궁창으로 처박힐 뿐이다. 뾰족한 방법도 없이 처박히고 마는 쌀통 앞에서의 생각들처럼 말이다.

“그래, 이렇게 생명을 엿가락 잘라 먹듯 잘라 먹다 어느날 나는 죽겠지. 쌀통에는 한두 되의 쌀알들을 남긴 채. 남아 있는 쌀알들은 다음 누군가의 손에 의해 대물림할 터이고, 그 또한 그의 생명을 그렇게 잘라 먹으며 쌀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쏟아져 내리는 쌀알들을 바라보겠지.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없이, 아니면 예쁜 생각들….”

다행이다. 삶의 양달을 바라보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아침마다 쌀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집요하게 생각에 매달린다. 밥을 짓는다는 행위가 왜 그렇게 탐욕스럽게 느껴지는지. 때로는 지독한 비극적인 체감마저 든다.

소르르 쏟아져 내리는 쌀알들. 내 시간의 부태에서 무참히 쏟아져나가는 시간들이다.

아침 정적 속에 쌀통에서 쏟아져내리는 쌀알들의 뽀얀 흩어짐은 언제나 나를 전울케 한다. 그만큼 살아있다는 실감을 하는 시간 또한 없으리라.

 

(조율할까요/ 성수연 / 교음사/ 1995// p17)

 

 

 

개포동 素描 · 2

(-쌀통 앞에서)를 읽으며 한 독자로서 적잖이 공감하였다. 매일 같이 쌀을 씻고 밥을 짓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며 또 기본적인 가사 일로서도 중요한 것인데도 일생을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어떤 회의가 일어남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는 평범한 일에 파묻혀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힘에 지배되는 여인들의 운명을 인식하고 있다. 웬만한 여성들이면 모두가 참여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리고도 너무나도 평밤한 일상의 일이지만 그것을 검토하여 그 의미를 탐구하는 작가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일상적 삶 속에 깃든 의미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흔히는 높은 이상을 관념으로 그리는 것과 비교할 때 하찮은 것으로만 여기기 쉬운 데서 오히려 심상치 않은 삶의 뜻을 발견하는 작가의 탐구정신이 돋보인다.

 

(자연과 교감하는 서정/ 신동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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