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춤
김예태
늦가을이었다. 어둑어둑해 오는 저녁 무렵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잿빛 구름덩이들이 하늘을 질러다닌다. 담장 밑에 몰려있던 낙엽들도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가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서걱서걱 울어댔다. 보름달이떴지만 구름 그림자들이 어른어른 돌아다니는 마당의 분위기는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때였다.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 한쪽에 세워진 통나무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흡’ 스산한 분위기에 쫓겨 집안으로 들어서려던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에 놀라 움찔! 숨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두 팔을 머리 위로 둥글게 올리더니 발끝을 모아 잔발질을 한다. 다시양팔을 수평으로 뻗어 에샤페 구페 두어 번 뛰다가다시왼팔을 가슴께로 당겨 접고는 왼쪽으로 휙! 몸 회전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세상에!’ 입이 떡 벌어지며 심장이 쿵쿵거린다. 짧은 그 순간에 부스럭대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건 정말 실수였다.
‘흡’ 나를 발견한 고양이도 같이 놀랐는지 회전 동작을 내려놓지 못하고 한 발을 든 채로 한동안 마주 보더니, 이내 몸을 풀고 유유히 담장을 넘어간다. 홀린 듯 고양이가 넘어간 담장을 눈으로 따라가 보았지만,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어둠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치수 운동의 확장으로 가정에서도 유실수를 심자는 운동이 한창일 때 아버지는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 여러 종류의 유실수를 심으셨다.감, 대추, 살구, 앵두, 석류, 사과, 은행, 호두… 묘목이 자라면서 전지가 안 된 나무들은 울 밖으로 뻗어나갔고, 은행나무는 해마다 수령을보태면서 옆집의 하늘까지 점령하기 시작했다. 다래 덩굴은 쪽문을 폐쇄시켰고 등나무가 대문을 휘어잡으며 뻗어나가는 바람에 밖에서 보면 울울하고 안에서는 침침하였다.길고양이들이 드나들었고 가끔씩 족제비 쫓기는 모습도 보였다.
어른들이 돌아가시자 빽빽하게 자라던 나무들은 한 그루, 두 그루시나브로베이면서, 마당에 통나무 몇 토막씩을 남겨놓았다. 교교한 달빛이 쏟아지는 날이면 통나무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달빛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고,마른 잎들 스산하게 날리는 밤이면 바람처럼 떠도는 마음이 되어 살아온 날들의 갈피를 뒤척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보게 된 고양이의 춤. 머리의 오른쪽 일부와 목덜미와 가슴 부분은 하얗고, 나머지는 모두 검은빛인 흔한 길고양이였지만, 그날 고양이가 보여준 한순간의 춤사위는 잊을 수가 없다.
고양이가 춤을 춘다는 사실도 놀라움이지만, 꺾임마디 없이 유연하게 기척도 없이 사뿐하게 돌아가는 몸동작은영락없이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발레리나의 모습이었다. 본시 고양이의 몸동작이 춤에 비견할 만큼 유연하며, 온 데 간 데를 모를 만큼 사뿐하게 돌아다닌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그러나 그날 고양이의 몸동작에는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무엇인가가 들어있었다. 가슴을 흝고 가는예술혼 같은 것이었다.혼자서 관객이 되었던 그 날의 이야기를 밖에서 몇 차례 꺼낸 적이 있다.그러나 묘사가 조금만 가미되면 듣는사람마다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허풍쟁이 취급을 한다.
“고양이가 발레를 한다구요? ”
그 후로 고양이의 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춤추는 고양이를 관심사 밖으로 밀어낸 것이 아니라,나 스스로 고양이 춤의 가능성을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수면 밑으로 가라앉혀 놓은 것이다.
혹시 고양이의춤을 무용 예술의 원형으로 볼 수는 없을까?모든 고양이에게는 춤을 출 수 있는 DNA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호기심도 고양이의 춤과 함께 묻어두고 20년 가까운 세월을 무심하게 지냈다.
고양이의 춤이 다시 의식 밖으로 다시 나온 것은 신경숙의 『리진』을 읽고나서였다. 작가는 100여 년 전에 살다 간여인을 과거에서 입양하여 조선 말기의 서글프면서도 장엄한 이야기 속에 풀어놓았다. 리진은 조선 최고의 궁중 무희다. 왕비는 리진을 흠모하는 왕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리진에게 프랑스 공사 콜랭의 구애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그리하여 리진은 어린 시절을 함께 자라온, 노트르담 성당의 못난 종지기와도 같은 강연을두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옮겨간 것이다.디아스포라의 외로움과 낯설음, 자기연민의 한스러움을 다스리기 위해 리진은 새벽마다 집을 빠져나가 불로뉴 숲을 거닐고, 외방전 교회나 앵발리드 광장에서 홀로 춤을 추었다. 그때마다 그의 곁에는 고양이 콰지모도가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의식의 거미줄에 영롱힌 이슬처럼내려앉은 슬프고도 맑은 눈물을 춤사위로 걷어내는 리진을 따라다니며, 기척 없이 그녀를 지켜보던 고양이 콰지모도.
콰지모도는 춤을 추듯 종탑의이쪽에서 저쪽으로날아다니며 종을 울려주던 노트르담의 콰지모도처럼, 자신을 온전히바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유일한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종지기 콰지모도처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리진을 따라 궁궐로 들어와 악공이 된 강연의 다른 얼굴이었다.
마침내 콜랭은 리진을 데리고 다시 조선으로 왔다.가歌와 무舞는 씨줄과 날줄의 직조처럼 한 덩어리로 어울리는 예술이다. 대금을 부는 강연과 춤을 추는 리진이함께함으로써 그들은 한 덩어리의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리진은 어떠한 속박에도 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가 되고, 강연의 대금 또한 절대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 사람의 생애에 거북의 등껍질처럼달라붙었던 심리적 외상이 치유될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연주와 춤사위가 있은 뒤,소설은 바로 결말로 치달았다.
양손이 잘린 사내(강연)가 리진의 무덤을 안고 죽어있었으므로, 바스러지는 강연의 유골을 추스려 합장을 해준것이다.합장의 의미는 무엇일까?영원성을 갖는 사랑의 승리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읽던 책을 덮고 마당으로 나섰다. 남쪽 하늘에 머물고 있는 흐릿한 반달 속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듯싶어서가만히 ‘콰지모도’ 하고 불러보았다. 달빛이 옆집의 지붕을 밟고 넘어가는 사이 어슬렁거리며 마당을 에둘러 가는 길고양이가 보인다. 이번에도 고양이를 향해 ‘콰지모도’ 하고 불러본다. 놀란 건지 서두른 건지 고양이는 담장 위에서휘청거리다가 이내 사라진다. 씁쓸했다.
그렇다면스산하던 밤,내 집 마당의 통나무 위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 보이던 길고양이 춤은 무엇이었나?리진의 춤을 바라보던 고양이 ‘콰지모도’의 망령이 어른거리면서 고양이 춤에 대한 기억은 말할 수없는 서정의 감동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마침 이즈음에 마크 브룸버그의 『본능(Basic Instinct)』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저자는 동물들의 어떤 행동 표현에 대해 “그 행동 특성을 유전자 탓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그는 동물들의본능은 개체에게 특별히 드러날 수 있는 우수성일 수 있으나 그것이 DNA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블룸버그에 의하면 내가 본 ‘춤추는 고양이’는 춤출 수 있는 DNA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춤의 욕구였으며그 춤의 아름다움은 그 고양이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우수성이 되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인가?’
왜 ‘콰지모도’는 바람 스산하게 불고 낙엽 다 떨어져 날리는 신산했던 날에, 그토록 황홀한 춤을 보여주고 쓸쓸한모습으로 그렇게 돌아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