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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부림 / 나날의 무대

작성자달섬|작성시간26.06.10|조회수45 목록 댓글 0

 




    나날의 무대


                                                          이부림




      '선배님 생각이 나서 글이라도 한 편 읽어보자 하니
      구수한 말씀 잘 들려오고 환한 웃음 여전하시네요.'
    

 


   커튼을 밀어붙인다. 동이 트면서 무대의 전경이 조금씩 또렷하게 나타난다. 50대 여인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주방기구가 갖추어져 있고 무대 한 켠에 식탁이 놓여 있다. 하루 종일 극이 전행되는데 필요한 소도구들이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첫 무대는 잠이 깨어가듯 점점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등장인물들도 퇴장하기 위해 나오는지 아침인사나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어쩌다 튀어나온 대사도 크게 몇 마디 내뱉고는 바쁘게 사라진다. 아버지와 아들 딸들. 그리고 할머니가 차례로 드나드는 동안 무대는 완전히 밝아져 더 넓어 보인다. 여인은 다시 혼자가 되자 잽싸게 놀리던 몸짓과는 달리 분장도 하지 않은 지친 표정으로 멍청한 펜터마임을 보여준다.

제2장은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시작된다. 서둘러 나가버린 출연자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미처 나누지 못한 대사를 줄줄이 엮어 FM멜로디 위에 소리 없는 독백으로 띄워 버린다.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추어 몸을 푼다. 주어진 박자에 따라 학창시절의 국민보건체조를 생각하며 멋대로 만들어 낸 율동으로 아침 운동을 대신한다. 기분이 바뀌면 모처럼의 외출에서 좀 더 우아하게 보일 수 있는 자세를 잡아본다. 벽에 걸린 거울에 얼굴을 디밀어 넣고 표정을 만든다.

   TV에서는 아침 드라마가 한창이다. 비슷한 연배의 여자들이 날마다 다양한 삶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의 연기도 저들만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연기가 생활 자체인 만큼 착각이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날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연기도 해내니까. 조간신문을 펴들고 목청을 돋우다가 생각나는 대로 전화번호판을 눌러 댄다. 수다로 이어지는 모노드라마는 끝이 없다.

  나는 초등학교 학예회 때부터 연극을 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학부형 소집일이었던가. 옛날 아녀자들이 외출할 때 두르던 쓰개치마처럼 자락치마를 뒤집어쓰고 백설공주의 계모인 왕비를 자처하면서 어머니들을 웃겼던 토막극, 그것은 지금의 코미디. 그것도 원맨쇼였다.

  전국 고등학교 연극제에 참가할 때는 할머니, <고래>라는 작품에서는 주방장 할아버지, 대학 개교 기념 공연 때도 과년한 딸을 둔 어머니 역으로 무대에 섰었다. 연극반이 따로 없었는데도 때마다 캐스팅 된 것을 보면 소위 ‘끼’라는 것이 보였던 모양이다.

  지금도 가끔 연극 구경을 간다. 징이 울리면 가슴이 뛴다. 무겁게 내려진 막이 지이잉-하는 여운을 따라 천천히 올라갈 때의 설렘은 여전하다. 오래 전 분장실에서 출연을 기다렸을 때나 지금 객석에 앉아 있어도 마찬가지다. 징소리의 파장 같은 흥분과 긴장을 느낀다. 5, 60대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연극을 볼 때면 무대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으로 바꾸어 보인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 결정을 하면서 아예 연극을 할까 하고 망설인 적이 있었다. 직업 배우가 되는 경우 전형적인 한국형의 납작한 미모(?)로는 아무리 연기력이 있어도 예쁜 여자주인공은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았다. 평생 단역 감이거나 기껏해야 노인 역 전담의 조연급에 머물 조건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상책이라고 거울을 보며 미련을 버린 때가 엊그제 같다.

   그때는 줄거리가 있는 한 개의 작품을 반복해서 연습. 공연을 했지만 지금은 매일 내용이 다른 극을 장기공연하고 있다. 나이에 어울리는 주인공만 맡는 대스타가 되어서. 관객의 박수도 없고 앙콜 공연도 아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극이라 주인공 여자는 쉴 틈이 없다. 더 좋은 연기를 위한 재충전의 여유를 갖고 싶지만 대역을 쓸 수도 없는 한 번뿐인 인생을 펑크낼 수도 없지 않은가.

  한낮의 햇살이 비껴가고 전체조명이 한 톤 낮아지면서 3장으로 이어지는 무대는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는 배우들로 활기를 찾는다. 나는 바뀌는 상대역에 따라 감정 표현이 달라진다. 모든 출연 배우는 정해진 대본 없이 그때그때 제멋대로 대사를 던진다. 상대의 내용에 따라 무표정하든가 웃든가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면서 과장된 연기로 무대를 설친다. 주인공의 튀는 연기가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가족들은 처지는 연기보다는 좋다고 한다.

  하루 중 가장 화려한 장면이 연출된다. 출연자 모두가 한자리에서 식사하기가 어려위 주인공은 무대를 비울 틈이 없다.  입대한 막내가 휴가를 왔다든가 시골에서 친척이라도 올라와 특별출연을 해주는 날은 분위기가 넘쳐 시끌벅쩍해진다.
  늦은 저녁에 반주라도 한두 잔 곁들인 밤이면 배경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아침보다 유연해진 몸놀림에 어울리는 콧노래를 한다. 끝까지 아는 곡이 별로 없어 첫머리만 메들리로 부르다가 마지막에는 동요를 흥얼거리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컬의 주인공이나 된 듯 흥겨워한다.

  마지막 장이라고 해야겠지. 커튼을 닫고 조명을 끈다. 식탁은 객석이다. 그 날의 장을 마감하는 시간이면 객석에 앉아 하루 동안 연출하고 연기했던 빈 무대를 바라본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던가. 그것은 나날의 토막극이 모여서 끝없이 이어지는 장기공연이다.
  연습이 없는 공연을 매일 되풀이하면서 감정이나 의사가 분명히 전달되는 살아 있는 연기를 했었는가 생각해 본다. 주부라는 역할은 변함없는데 세월 따라 연기의 폭은 깊고 넓어져 가는지 궁금하다. 큰 소리 대신 미소를 지으며 표정으로 말하고 밋밋한 제스처가 세련된 몸짓으로 바뀐다고 해서 노련한 배우라 하겠는가, 연륜만큼 두터워진 지혜와 정으로 무대를 가득 채울 때 주인공다운 어엿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스스로의 연기에 만족하는 날도 있지만 무대의 흐름을 잡지 못하거나 컨디션 조절이 안 된 날은 초조하고 찜찜하다. 날마다 이어지는 공연에 대사만 길어질 뿐이다. 내면의 연기가 자신 없고 극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할수록 수다스러워짐을 어찌하랴. 불안과 공허를 말로 채우다니.

  혼자만의 감정에 취해 전체적인 조화를 깨뜨리기도 했을 것이고, 상대역에 맞추느라고 즉석대본과 동작이 어울리지 않는 피에로 노릇도 했겠지. 지루한 대사와 맥빠진 표정이 한물갔다 해도 주인공을 바꿀 수 없고 다른 배우들도 고정 출연자들뿐이니 당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무리 없이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일은 어떤 대사와 몸짓으로 나의 무대에 설까. 세트를 바꾸고 의상을 갈아입고 분장을 다시 한 내일의 새로운 무대를 구상하면서 오늘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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