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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 설교

20110123- 본문 : 행7:20~30, 제목: "고난 속의 축복", 설교 : 이하빈목사

작성자이하빈|작성시간11.01.24|조회수197 목록 댓글 0

본문 : 행7:20~30

제목 : "고난 속의 축복"

설교 : 이하빈목사

날짜 : 2011년 1월 23일 9시, 11시

 

 

"고난 속의 축복"

 

 

 

      미국에서 여고 농구부를 지도하는 감독이 선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불평의 말은 ‘unfair - 불공평해요!’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팀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각각 수비연습과 자유투연습을 시키면, 좀 더 힘든 훈련을 하는 선수들은 여지없이 ‘감독님 불공평해요.’라고 합니다.  좀 더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 여자선수들을 남자선수들과 함께 연습을 시켜도 “감독님,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라고 불평합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불공평에 대한 불만이 있어왔습니다.  한쪽은 아이를 가지려고 고심하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한쪽은 낳은 자녀들을 학대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한쪽은 불치병으로 어려서부터 바깥구경 한 번 못해본 아이지만, 한쪽은 멀쩡한 두 다리로 교도소만 들락거리는 인생도 있습니다.  한쪽은 머리가 나빠 밤을 새워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자살하지만, 다른 한 쪽은 좋은 머리로 사기나 치고 돌아다니는 쓰레기 같은 인생도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공평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마음에 담겨 있습니까?  “왜 저 아이는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나?  왜 저 사람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나는 만날 병치레만 하고 있는가?  왜 저 사람들은 장동건이고 김태희인데, 나는 이렇게 키도 작고 못 생겼는가?  내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등등.


      여러분~  훈련이 공평한지에 대한 판단은 선수들 몫이 아니라 감독의 몫이어야 합니다.  내 인생이 공평한지의 판단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신32:4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여호와 하나님)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2011년 들어서 첫째 주에는 ‘제자 되어 제자 삼으라.’는 올해의 주제설교를 했고, 둘째 주일부터는 ‘축복의 말씀’을 시리즈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축복의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 우리가 첫째로 감당해야 할 신앙의 덕목은 ‘순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삭이 순종했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흉년임에도 불구하고 백배의 풍년을 주셨고, 파는 곳마다 우물물이 솟구쳐 올랐고, 블레셋 왕과 군대장관이 와서 무릎을 꿇고 ‘화친할 것’을 간청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로,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축복의 출발점’은 ‘하나님과의 화목’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목적 지향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관계지향적인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기뻐하며 순종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탕자가 축복의 삶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길뿐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살길은 자기가 부인했던 그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길만이 축복의 통로란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뤘더니,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의 보화를 우습게 보는 영적 실력이 생겼습니다.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에 굴복하지 않는 실력이 생겼습니다.  기도하는대로 들어주십니다!  행하는 대로 도와주십니다!  마음의 겸손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해집니다!  무엇보다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순종과 화목’의 길에서 얻는 축복은 놀라운 기적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 오해할 수도 있음은, ‘현실적으로 고난의 문제는 어떻게 된 것이냐?’라는 의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축복 시리즈’ 가운데 ‘고난의 축복’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의 삶은 시작부터가 불공평한 삶이었습니다.  출생부터가 사회적인 축복이 아니라, 저주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 두려워서 산파를 시켜 남자아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숨겨져서 석 달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그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아므람이었고, 어머니는  요게벳이었습니다.  석 달 동안, 부모 된 마음으로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습니까?  피 말리는 일 아닙니까?  어쩌면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입니다.”라고 불평하고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에 불어 닥친 살인의 참극을 통해 오히려 모세에게 일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를 바로왕의 딸에게 보내 어려서부터 왕자의 신분으로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우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인간의 고난과 불행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선함으로 쓰임 받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출생 때부터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나신 분이 계십니까?  “나는 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는가?  우리 부모는 왜 저리도 못났는가?”라는 불평과 불만에 갇혀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그것조차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조차 축복의 통로로 사용될 수도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이 스데반을 통해 모세 이야기를 전하면서 재미있는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23절에 보니까 ‘나이가 사십이 되매’라고 했습니다.  마치 모세가 40세가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30절에 보니까 또 ‘사십 년이 차매’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지낸 기간이 40년이었는데; 하나님은 이 기간이 차기까지 기다리셨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사십이란 숫자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난과 준비’라는 공통점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사십일 동안 있었습니다.  이 홍수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사십일이 지난 후, 하나님은 노아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가나안 정탐꾼들이 정탐한 기간도 사십일이었습니다.  이 사십일은 가나안이란 새로운 땅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광야에서 머물렀던 기간도 사십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광야는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길이 험했습니다.  먹을 것이 만나와 메추라기뿐이었습니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여정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신 후, 즉 메시야로 등극하신 후 사단에게 시험받기 위해 사십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40’이란 숫자는 ‘고난의 숫자요, 준비의 숫자’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겪은 두 가지 사십년은 서로 조금 다릅니다. 

      첫 번째 사십 세가 되기까지 모세는 ‘자기의 뜻과 의지, 능력과 힘과 지혜’로 준비한 세월이었습니다.  세상의 학문인 애굽의 학문과 지혜로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 준비로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때리는 것을 보고 격분한 나머지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비록 애굽의 왕자로 컸지만; 자신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사람’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자랐던 것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가 80세에 광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40세에 이미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까지 그가 배운 것은 ‘애굽의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준비’로 보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다음날도 나갔다가, 이번에는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잘못한 사람을 나무랐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누가 너로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장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며 어제의 살인에 대해 폭로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했고, 모세는 할 수 없이 광야 미디안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 기간이 무려 40년이나 되었고, 이 기간은 ‘애굽의 지혜,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준비한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제 나이 이제 한국나이로 마흔 여덟입니다.  40년이란 기간은, 80~90세 어르신들이 보시기엔 짧은 세월일지 모르지만; 저로써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이후 지금까지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긴 기간을 ‘준비와 고난의 기간’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사실 저로서도 ‘준비와 고난’이란 세월이 40년씩이나 필요한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준비만 하다가 늙어 죽겠다.’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순종’만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어느 식당 주인이 말합니다.  “주문하자마자 음식을 빨리 내오라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나 라면 같은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잘 발효되어 구수한 냄새를 가진 청국장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외로운 시기를 지나보셨습니까?  고독과 고난의 시기를 겪어보셨습니까?  실패와 아픔의 시기에 눈물을 흘려보셨습니까?  그 기간을 지나시면서 어떤 마음으로 지나셨습니까?  ‘빨리 이 외로움을 떨쳐버려야지!  빨리 이 고독과 고난에서 벗어나야지!  빨리 이 실패와 아픔의 시기를 끝낼 방법을 찾아야지!’ 하시며 원망과 불평으로 시간을 낭비하셨습니까?  아무 유익이 없었던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신 이상, 그 시간들은 내게 유익한 시간들이었고, 내게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고, 어쩌면 ‘행복’이 ‘고난’으로 가장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증거가 모세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40세가 되기까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애굽의 궁궐에서 애굽의 지혜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이라고 하면 요즘의 미국으로 보시면 됩니다.  모든 문화와 권력,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곳의 지혜로 똘똘 뭉쳐진 모세였습니다.  ‘자기의 지혜와 힘’으로 자기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지혜와 능력을 벗겨내야만 했습니다.  힘으로 맞서는 세상의 원리를 씻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혈기왕성해서 무엇이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도도하고 오만한 태도’를 ‘순종과 겸손의 태도’로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은 ‘그래도 40년은 너무하다.’라는 생각이시죠?  저도 너무 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후 40년을 보십시오.  다는 이해되지 않아도 조금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이 차매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자신이 받은 사명을 밝히고 바로에게 갔습니다.  “여호와가 내게 명하셨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용기를 내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애굽의 학정이었습니다.  바로는 “너희가 몸이 편하고 시간이 많아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구나!”하면서 벽돌에 들어갈 짚을 별도로 준비해 주지 않으면서 벽돌의 숫자는 맞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이 고스란히 모세에게 돌아왔습니다.  모세는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40년이나 준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완성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또 한 가지, “모세에게 왜 40년이나 필요했을까?”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몇 년이었습니까?  40년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40년 동안 철없고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해야 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철병거가 쫓아온다고 비명을 지르며 두려워합니다.  광야의 길이 험해서 고생이라고 불평합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마실 물이 없다고, 정력을 지켜줄 먹을거리가 없다고 끊임없이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이나 이 불평과 불만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 어떤 위협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력한 영성과 힘이 필요했습니다.  이만하면, 미련한 우리의 생각으로라도 모세에게 40년이란 고난과 준비의 시간들이 필요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외로우면 외로움 안에서 무조건 나오려고만 하지 마시고, 그 안에 한 번 갇혀보시기 바랍니다.  ‘외로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가?’ 귀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외로움의 아픔은 훗날 또 다른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백신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실패와 아픔의 터널에서 무조건 빨리 나오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충분히 실패와 아픔의 늪에 빠져보십시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시간들을 쌓으십시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은 그 만남을 위해 우리를 몰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와 아픔의 터널 속에서 우리와 함께 견뎌내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편안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 조급하면 가짜를 선택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기다릴 줄 모르면 거짓의 유혹 앞에 쉽게 무너집니다.  편한 것만 추구하면 인생의 깊은 맛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립니다.

      오늘의 고난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의 아픔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해 줍니다.  오늘의 외로움과 고독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게 해 줍니다.  오늘의 실패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오늘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과 강력한 힘에 의존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니 이것이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입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나의 아픔을 공유하시는 축복입니다. 


      관현악의 명 지휘자 토스카니니(A.Toscanini)는 지독한 근시였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로서 근시 때문에 악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연주를 할 때마다 실수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 차라리 악보를 완전히 외워버리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남들보다 몇 배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속해 있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갑자기 무대에 서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유일하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그가 지휘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음악회를 계기로 토스카니니는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은 또 다른 축복을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오늘 겪고 있는 고난과 고독과 실패의 시간들이 단순히 원망과 불평과 불만의 시간이 되어 내 인생에서 잃어버리는 시간들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미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시키는지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고난의 시간조차 내 인생의 귀한 축복의 시간으로 자리매김하십시오.  진정으로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이상, 우리의 생애는 감사와 축복의 생애임을 고백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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