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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

작성자상일|작성시간26.06.19|조회수12 목록 댓글 1

 

영남대로

 

조선 왕조는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뒤 한양을 중심으로 X자 모양으로 간선 도로망을 구축했다. 영남대로는 한양에서 동래까지 한강과 낙동강의 수계를 따로 좌로, 중로 및 우로 등 세 갈래 길로 구축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간선 도로 중 하나였다. 영남대로는 주변 인구가 조밀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중시되었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일본을 왕래하는 사신 및 통신사(通信使)를 접대하기 위해 역참을 설치하고, 통행인에게 숙식을 제공할 목적으로 원()과 주막을 설립함에 따라 물화의 이동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해져 교통로로서 크게 발달하였다. 개항 이후에는 신작로가 개설되고 새로운 교통수단인 철도가 도입되면서 쇠퇴하였으나, 정치적·군사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여 오늘날의 서울~부산 간 도로와 도시 및 취락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남대로는 사신들의 상경로를 좌로(左路)와 중로(中路) 및 우로(右路)로 분산시킴으로써 3개 도로망으로 형성되었다. 좌로는 울산 염포에서 출발하여 경주-영천-의흥-안동-풍기-죽령-단양-청풍-충주-여주-양근으로, 중로는 동래 부산포에서 양산-밀양-청도-대구-선산-상주-유곡-조령-음성-이천-광주로 연결되었으며, 우로는 웅천 내이포를 출발해 김해-현풍-성주-김천-추풍령-영동-청주-죽산-양재로 이어졌는데, 그 중 중로가 중심 역할을 하였다.

 

영남대로 (조선시대 과거길 산세가 험악하여 마차를 이용할 수 없었다 )

조선시대에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영남대로를 이용해야 했다. 영남대로는

ⓛ 김천 추풍령(영동)을 넘는 (열엿새길),

②영주 소백산의 죽령(단양)을 넘는 (열닷새길), 그리고

③ 경북 문경의 새재(충주 탄천)를 넘는 (열나흘길) 등 세 가지이다.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은 이 중에서도 문경새재(조령)를 넘는 열나흘길을 선호했다. 시간을 하루 이틀 단축하는 이점도 있지만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 동래에서 한양까지 가장 빠른 길을 닦은 게 영남대로의 옛길로 지금 경부고속도로는 450㎞정도 되지만 영남대로는 약 360㎞ 된다고 했다. 거의 90㎞ 차이다. 이는 고속도로 는 대도시(대전.대구.울산)를 연결하는 방향으로 만들었기 때문.

 

백두대간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에 위치한 조령관의 남쪽은 경북 문경이고 북쪽은 충북 괴산이다. 낙동강 뱃길과 영남대로를 달려온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어 한달음에 충주 탄금대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한강 뱃길을 이용해 한양을 향한다.

 

영남 선비들의 본 고장 함양과 전라도의 오지인 장수를 이어주는 고개는 백두대간의 덕유산 남쪽에 있는 육십령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 ④제6로 함양 선비길 코스로 한양에서 과천, 소사, 천안, 공주, 은진, 삼례, 전주, 남원, 함양, 진주, 사천을 거쳐 통영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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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백송 | 작성시간 26.06.20 상식을 넓혀주시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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