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용자(잉걸)의 말 :
1. 이 글은 박희병(朴熙秉)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서기 2000년 현재)가베트남의 고전인『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을 국문(國文)으로 옮긴 글과 그 원문을 인용한 것이다(박 교수는『영남척괴열전』을『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고, 이 책은 돌베개에서 서기 2000년에 출판되었다).
2. 이 글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이나 땅 이름 가운데 베트남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은 될 수 있으면 비엣(킨)어[베트남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다수민족인 비엣[킨]족의 말] 발음으로 소개하고 괄호 안에 한국식 한자발음을 따로 적었으나, 상고시대의 중국 역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의 이름이나 땅 이름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국식 한자발음으로 소개했으며, 설령 전자라 할지라도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한국식 한자발음으로 소개했다.
3. 역시 반랑국을 다루는 베트남의 역사서인『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에 따르면(『대월사기전서』는 베트남판『삼국사기』고『영남척괴열전』은 베트남판『삼국유사』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반랑국은 서기전 2879년(지금으로부터 4893년 전)에 세워져 서기전 258년(지금으로부터 2272년 전)에 망했다. 참고로 역사 기록과 유물/유적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지금으로부터 4347년 전에 세워졌고, 그보다 수백 년 전 - 5천년 전 - 에 환웅천왕이 신시[神市](홍산문화)를 세웠다.
4. 이 글의 이름인「홍방씨전」에서, ‘씨(氏)’는 오늘날처럼 개인의 성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일족’이라는 뜻이고, ‘전(傳)’은 ‘전기(傳記)’나 ‘열전(列傳)’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이나 집안의 내력을 담은 기록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홍방’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를 살펴봐야 한다. 자전(字典)을 뒤져보면 ‘홍(鴻)’은 ‘기러기/큰물(홍수)/원기(元氣)/크다/넓다/번성하다/굳세다/같다.’라는 뜻이고 ‘방(厖)’은 ‘두텁다/창(:무기)/두텁게 하다/크다/섞이다/넉넉하다/두께’라는 뜻이다. 이 뜻 가운데 그나마 말이 되는 뜻을 모아서 풀이하면 ‘홍방(鴻厖)’은 ‘큰 기러기’나 ‘크고 넉넉하다.’라는 뜻이 되는데, 본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글에는 기러기가 전혀 안 나오고, ‘크고 넉넉한 일족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대목도 안 나오기 때문에(무엇보다 뜻이 너무 막연하다), 나는 ‘홍방’을 한자의 뜻이 아니라 ‘훙 브엉’이라는 비엣 어 낱말을 발음이 비슷하고 뜻이 좋은 한자로 옮긴 것(이것을 ‘쯔놈’ - 한자로는 ‘자남字喃’ - 이라고 부른다. 베트남판 이두/향찰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으로 풀이한다. 그러니까 ‘홍방씨전’은 ‘훙 브엉 일족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5. 이 글에 나오는 씩꾸이국은 우리 식으로는 신시(또는 배달)에 빗댈 수 있고, 락룽꿘(룽꿘)은 환웅에, 어우꺼는 웅녀(熊女)에, 첫 번째 훙브엉은 단군왕검에 빗댈 수 있다. 또 “대대로 왕위를 전하면서 훙브엉이라 부르고 그 칭호를 바꾸지 않았다.”는 설명은 반랑을 세운 사람뿐만 아니라 그 후계자들도 훙브엉이라고 불렸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 설명이『삼국유사』「기이」<고조선>조에 실린『고기(古記)』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말하고 싶다(『고기』에 단군이 1908세였다는 말은 단군왕검 한 사람이 1908살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왕검의 후계자들이 ‘단군’이라는 말을 임금의 칭호로 쓰면서 1908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늘날의 비엣 족은 자신들을 ‘미르(: 용龍을 일컫는 순우리말)의 자손’이라고 말하는데,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은 왜 그런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 박 교수는 번역문과 원문에 나오는 ‘貉’이라는 한자를 ‘낙’이라고 읽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워드프로세서에(<한글 2007>)는 그 한자가 ‘맥’이라는 음으로 실렸기 때문에, ‘맥’이라고 쓰고 F9로 한자를 찾은 다음 ‘貉’으로 바꾸었다. 번역문에서는 ‘낙’으로 통일했으므로 착오가 없기를 바란다.
(인용 시작)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3세손 데민(제명帝明)이 데응이(제의帝宜)를 낳은 후 남쪽에 순수(巡狩 : 임금이 지방에 행차하고 두루 돌아보는 일 - 인용자)하여 우링(오령五嶺 : 중국의 남쪽 변방에 있는 다섯 고개. 대유령[大庾嶺]/기전령[騎田嶺]/도방령[都龐嶺]/맹저령[萌渚嶺]/월성령[越城嶺]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의 강서성[江西省]/호남성[湖南省]/광동성[廣東省]/광서성[廣西省 : 광서장족자치구] 사이에 자리하며, 지금의 남령[南嶺]산맥에 해당한다 - 박 교수의 주석)에 이르러 부띠엔(무선婺仙)의 딸을 만났다. 데민은 그녀를 데리고 돌아와 록뚝(녹속祿續)을 낳았는데, 록뚝은 용모가 단정했으며 총명하고 숙성(夙成. 이르게[夙] 이루어졌다[成] ->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럽다/조숙하다 - 인용자 잉걸. 이하 ‘인용자’)하였다. 데민이 기특하게 여겨 제위(帝位 : 여기서는 ‘황제의 자리’가 아니라, 그냥 ‘임금의 자리’/‘왕의 자리’라는 뜻이다 - 인용자)를 물려받게 했다.
그러나 록뚝은 고사(固辭 : 제의나 권유를 사양하다 - 인용자)하여 그 형에게 양보했다. 이에 데민은 응이(의宜)를 세워 제위를 잇게 하고 북쪽 땅을 다스리게 했다. 한편 록뚝을 경양왕(涇陽王)에 봉해 남방을 다스리게 했는데, 그 나라 이름을 ‘씩꾸이’국(적귀국赤鬼國)이라고 했다. 경양왕은 능히 수부(水府 : 물[水]의 신이 산다는 바다 밑 나라의 서울[府]. 용궁 - 인용자)에 출입 할 수 있어 동딘꿘(동정군洞庭君) 용왕의 딸에게 장가들어 숭람(崇纜)을 낳았으니 이 분이 곧 락룽꿘(낙용군貉龍君)이다. 경양왕은 락룽꿘에게 자기 대신 나라를 다스리게 했는데, 그후 행방을 알 수 없다.
락룽꿘은 백성들에게 밭 갈고 씨 뿌리고 농사짓고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군신(君臣 : 임금과 신하 - 인용자)과 존비(尊卑 : [신분의] 높음과 낮음 - 인용자)간에 차등을 두게 했으며(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다르게 대하도록 했으며 - 인용자), 부자(父子 : ‘아버지와 아들’. 크게 보면 ‘어버이와 자식’ - 인용자)와 부부 사이의 인륜을 마련했다. 락룽꿘은 때때로 수부(水府)로 돌아갔지만, 백성들은 편안하여 아무 일이 없었다. (식꾸이 국의 - 인용자) 백성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큰소리로 룽꿘(락룽꿘을 줄인 말 - 옮긴이)을 부르기를,
“아버지! 어디 계시나요? 왜 얼른 와서 저희를 살려 주시지 않나요!”
라고 하였다. 그러면 룽꿘이 즉시 달려왔으니, 그 신령한 감응은 사람들이 능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데응이는 그 아들 데라이(제래帝來)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데라이는 북방에 아무 일이 없자 할아버지 데민이 남쪽에 순수하여 무녀를 만났던 일을 생각하고, 가까운 신하 치우(蚩尤)에게 자기 대신 국사를 맡아 보라 분부하고는 남쪽의 식꾸이국을 순수했다. 마침 그때 룽꿘은 수부에 가고 없었다. 이에 데라이는 사랑하는 딸 어우꺼(구희嫗姬) 및 시종과 시비(侍婢 : 윗사람을 곁에서 모시는[侍] 여자 종[婢] - 인용자)들을 행재(行在. ‘가서[行] 있는[在] 곳[所]’인 ‘행재소’를 줄인 말. 그러니까 임금이 순행을 하며 잠시 머무르던 곳 - 인용자)에 남겨 둔 채 천하를 두루 다니며 널리 형세를 살폈다.
거기에는 아름답고 기이한 꽃과 풀, 진귀한 날짐승과 들짐승, 무소와 코끼리와 큰 바다거북, 금과 은, 산초나무(이 나무의 열매 껍질을 약으로 쓴다 - 인용자)와 계수나무, 종유석, 침향목(아열대지방에서 나는 나무. 이 나무의 진을 가공해서 향료로 쓴다 - 인용자) 과 단향목(열대지방과 아열대지방에서 나는 나무. 이 나무의 목재는 불상/미술 조각/가구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리고 목재 가운데에 향기가 나기 때문에 이 부분과 뿌리를 증류해서 얻은 기름은 비누와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 인용자), 각종 산나물과 해산물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또한 사철(봄/여름/가을/겨울 - 인용자)의 기후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데라이는 이곳을 사랑하여, 즐겁게 지내며 돌아갈 것을 잊었다.
남방의 백성들은 괴롭게도 북방의 닦달을 받아 옛날처럼 편히 살 수 없게 되자 밤낮으로 룽꿘이 돌아오기만 바랐다. 그리하여 서로 모여 큰 소리로 룽꿘을 부르며 말하기를,
“아버지! 어디 계시나요? 어서 와서 저희들을 구해 주세요!”
라고 하였다. 그러자 룽꿘이 얼른 달려왔다. 룽꿘은 어우꺼가 혼자 있는데다 얼굴이 퍽 예쁜 것을 보자 기뻐했다. 이에 룽꿘은 미소년으로 변신했는데, 그 모습이 수려하였다(빼어나게[秀] 아름다웠다[麗] - 인용자). 룽꿘의 전후좌우에는 시중드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행재에까지 들렸다. 어우꺼는 이를 보고 룽꿘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룽꿘은 어우꺼를 맞아 용대암(龍垈巖)으로 갔다.
마침내 데라이가 (행재로 - 인용자) 돌아왔다. 데라이는 어우꺼가 보이지 않자 뭇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천하에 두루 찾게 하였다. 이에 룽꿘은 신술(神術 : 신기한[神] 술법[術] - 인용자)을 부려 온갖 모습으로 변신해, 요정이 되기도 하고, 귀매(鬼魅 : 도깨비/두억시니. ‘매魅’는 ‘도깨비 매’, ‘도깨비 미’라는 뜻이다 - 인용자)가 되기도 하고, 미르나 뱀, 줄범(호랑[虎狼]이를 일컫는 순우리말 - 인용자)나 코끼리가 되기도 했다. 어우꺼를 찾던 이들은 두렵고 겁이 나 감히 수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 인용자) 데라이는 그만 북으로 돌아갔다.
데라이에게 제위를 물려받은 제유망(帝楡罔) 때 이르러 치우가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黃帝)가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치우와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다. 치우는 짐승의 모습이었으나 사람 말을 했는데, 용맹스럽고 위엄이 있었다. 어떤 이가 황제로 하여금 짐승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 그것으로 명령을 내리며 싸우라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치우가 놀라 탁록(涿鹿 : 오늘날의 중국 하북성 탁록현 - 인용자)에서 패하였다.
제유망이 황제와 판천(阪泉 : 하북성[河北省] 탁록현 동쪽에 있다. 사마천의『사기』「오제본기」에 황제[黃帝]가 판천의 들에서 염제와 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 박 교수의 주석)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세 번 싸워 (모두? - 인용자) 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 인용자) 낙읍(洛邑 : 중국의 낙양[洛陽]을 말한다 - 박 교수의 주석)에 갇혀 있다가 죽었다. 이로써 신농씨는 마침내 망하였다.
룽꿘과 어우꺼가 함께 산 지 1년 만에 어우꺼는 삼(뱃속의 아이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을 가리키는 말 - 박 교수의 주석) 하나를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들판에 내다 버렸다. 7일이 지나자 삼이 열리며 100개의 알이 나왔는데, 알 하나마다 사내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그래서 데려와 길렀는데, 젖을 먹이지 않아도 각자 자랐다. 그 모습은 수려하고 기이했으며, 지혜와 용맹함을 다 갖추었다. 사람들은 두려워 복종하면서 비상한 형제들이라고 했다.
룽꿘은 오랫동안 수부에 있어 자식이 있는 줄 잊고 있었으며, 뭇 자식들도 아버지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모자(母子 : 어머니와 아들 - 인용자)는 가장(家長) 없이 지내고 있어 북쪽 나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모자가 국경에 이르자 황제(黃帝)가 이 사실을 전해듣고 두려워하여 군사를 나누어 변방을 막았다. 그래서 모자는 돌아가지 못하고 남쪽 나라로 되돌아와 룽꿘을 부르며 말하기를,
“아버지! 어디 계시나요? 왜 우리 모자를 이다지도 슬프게 하시나요!”
라고 하였다. 그러자 룽꿘이 얼른 달려와 양야(蘘野)에서 서로 만났다. 어우꺼가 울며 말했다.
“저는 본래 북쪽 사람인데 당신과 살아 100명의 사내아이를 낳았어요. 이 아이들을 키울 길이 없으니 당신을 따라갔으면 해요. 우리를 내팽개쳐 남편 없고 아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슬픔에 잠기게 하지 마세요.”
룽꿘이 대답했다.
“나는 미르의 종내기(종류/종자 - 인용자)로 수족(水族)의 우두머리고, 당신은 선인(仙人. 신선[神仙] - 인용자)의 종내기로 지상의 사람이니, 비록 음양의 기운이 합해져(성관계를 맺어 - 인용자) 자식이 태어나기는 했으나, 물과 불처럼 상극이요, 종류가 서로 다른지라 오래 함께 살기는 어렵소. 그러니 이제 서로 헤어집시다. 50명의 아이는 내가 수부로 데리고 가서 각처(各處 : 각각의 장소. 그러니까 ‘여러 곳’ - 인용자)를 나누어 다스리게 할 테니, 당신은 나머지 50명과 함께 지상에 남아 자식들로 하여금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오. 산(山)에 있든 물 속에 있든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알리고 관계를 끊지 말도록 합시다.”
100명의 자식들은 그 말에 따랐다. 그리하여 룽꿘과 50명의 자식은 (바다로 - 인용자) 떠났다.
어우꺼와 나머지 50명의 자식은 퐁쩌우(봉주峯州 :『영남척괴열전』을 찾아내서 감수한 다이비엣[한자로는 대월大越. 베트남의 옛 이름] 사람 무경[武瓊]이 단 주석에 따르면, “지금[서기 15세기 말]의 백학현[白鶴縣]이 그곳이다.” 백학현은 베트남의 땅 이름이다. 참고로 ‘무[武]’는 비엣어로는 ‘보’라고 읽으며, 보 씨는 베트남의 성씨 가운데 하나다 - 인용자)에 거처했는데, 자식 가운데 웅장(雄長 : ‘남자들 가운데 맏이인’? - 인용자)한 자를 추대해 임금으로 삼아 훙브엉(웅왕雄王)이라 칭하고, 국호를 ‘반랑’국(문랑국文郞國)이라 했다.
반랑국은 동으로 남해(南海 : “지금의 중국 광동성 일대” - 박 교수의 주석)를 끼고, 서로는 파촉(巴蜀 : 오늘날의 중국 사천성[四川省] - 인용자)을 경계로 했으며, 북으로는 동정호(洞庭湖. 중국 호남성 북부에 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민물호수 - 인용자)에 닿고, 남으로는 호손정국(狐猻精國. 무경의 주석에 따르면 “지금의 점성[占城]이 그곳이다.” 박 교수의 주석에 따르면 “‘점성’은 옛날 베트남의 남쪽에 있던 왕국인 점파[占婆 : 참파Champa]를 말하는데, 지금의 베트남 중부 지역이 그 영토였다.” - 인용자)에 접했다.
(훙브엉은 - 인용자)나라를 15부(部)로 나누었는데, 교지(交趾), 주연(朱鳶), 육해(陸海), 복록(福祿), 월상(越裳), 영해(寧海 : 무경의 주석에 따르면 “지금의 남녕[南寧]이 그곳이다.” 남녕은 중국 광서장족자치구[광서성]의 중심지다 - 인용자), 양천(陽泉), 계양(桂陽), 무녕(武寧), 회환(懷驩), 구진(九眞), 일남(日南), 진정(眞定), 계림(桂林), 상군(象郡)등의 부(部)가 그것이다.
훙브엉은 이들 부를 아우들에게 나눠 주어 다스리게 했다. 그 다음 위계(位階)로 장상(將相)을 두었는데, 상(相. 정승/재상 - 인용자)은 락후(貉侯)라 하고, 장(將. 장수/장군 - 인용자)은 락장(貉將)이라고 했다. 왕자는 관랑(官郞), 공주는 미랑(媚娘), 일을 맡은 벼슬아치는 포정(蒲正), 하인은 앙(卬), 여종은 초칭(稍稱), 신하는 괴(瑰)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대로 아버지가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걸 포도(逋導)라고 했다. 그리하여 대대로 왕위를 전하면서 훙브엉이라 부르고 그 칭호를 바꾸지 않았다.
당시 숲과 산록(山麓 : 산기슭 - 인용자)의 백성들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왕왕 교룡(蛟龍. 이무기. 모양이 뱀과 비슷하고 네 발이 넓적하고 머리가 작으며, 가슴이 붉고 등에는 푸른 무늬가 있고, 옆구리와 배는 비단처럼 부드럽다고 한다. 한국/조선 공화국의 전통 신앙과 동아시아 문화권의 전통에 따르면 이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자신을 오랫동안 갈고 닦으면 미르가 되어 하늘로 날아 오른다고 한다 - 인용자)에게 해를 입었다. 그래서 임금(훙브엉 - 인용자)에게 사뢰었더니(옛 언어로 ‘윗사람에게 말씀을 올리다.’를 ‘사뢰다.’라고 한다 - 인용자) 임금이
“산만(山蠻 : 산악지대나 내륙에서 사는 ‘남만인南蠻人’. 박 교수의 주석에 따르면 ”원래 산간에 거주하는 중국 남방 민족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베트남인을 가리킴” - 인용자)의 종내기는 수족(水族 : 물[水]속에서 사는 동물붙이[族] - 인용자)과 다르거늘, 교룡은 자기 부류를 좋아하고 다른 부류를 싫어하는지라 너희들을 침해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백성들의 몸에다 먹으로 룽꿘의 모습과 수중 괴물의 형상을 새기게 했는데, 이후 백성들이 교룡에게 물리지 않았다. 백월(百越 : 모든[百] 비엣[越] 족. 여기서는 말레이계인 중국 남부의 원주민과 비엣족 - 인용자)의 문신(文身)하는 풍속은 실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국초(國初 : 나라의 초기. 여기서는 반랑국의 초기 - 인용자)에 백성들이 물자가 모자라서 나무껍질로 옷을 삼았고, 왕골로 자리를 만들었으며, 쌀뜨물로 술을 담그고, 광랑(桄榔. 야자과에 딸린 나무. 또는 그 열매 - 인용자)과 종려(“야자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 - 박 교수의 주석) 열매로 밥을 삼았으며, 금수/물고기/새우로 젓갈을 담그고, 생강 뿌리로 소금을 삼았다. 화전으로 농사를 지었는데 땅에 찰벼가 많이 나 죽통에다 밥을 해 먹었다. 그리고 나무를 엮어서 집을 지어 범이나 이리의 해를 피하였다. 또 머리를 짧게 깎아 숲 속을 다니기에 편하게 했다. 자식이 태어나면 바나나 잎에다 누이고, 사람이 죽으려 하면 절구질을 해 (이 일을 - 인용자) 주변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와서 (그 사람을 - 인용자) 구하게 하였다. 남녀가 혼인할 때에는 먼저 소금 한 봉지를 예물로 보낸 뒤에 소와 양을 잡아 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찹쌀밥을 방에 넣어 주며 서로 다 먹게 한 뒤 첫날밤을 치르게 하였다. 그 때는 빈랑(檳榔. 아시아의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빈랑나무의 열매. 구충제나 군것질거리로 쓴다. 박 교수의 주석에 따르면 “베트남의 옛 풍속에 여자 집에서 남자 집에 빈랑을 보내어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혼인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 인용자)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어우꺼가 낳은 100명의 아들은 백월(百越)의 시조다.
-『영남척괴열전(嶺南摭怪列傳)』권(卷) 1「홍방씨전(鴻厖氏傳)」
* 원문 :
卷之一
* 鴻厖氏傳
炎帝 神農氏 三世孫 帝明生帝宜. 旣而南巡至五嶺, 接得婺仙之女悅之, 納而歸 ; 生祿續, 容貌端正, 聰明夙成. 帝明奇之, 使嗣帝位. 祿續固辭, 讓其兄帝宜, 不敢奉命. 於是帝明立帝宜爲嗣以治北地. 封祿續爲涇陽王以治南方, 號其國爲 赤鬼國. 涇陽王能入水府, 娶洞庭君女曰龍女, 生崇纜, 是爲貉龍君, 代父以治國. 涇陽王不知所終.
龍君敎民耕種衣食, 始有君臣尊卑之序, 父子夫婦之倫. 或時歸水府, 而百姓晏然無事. 民或有事, 則呼貉龍君曰 : “逋乎何在! 不來以 救我輩(南人呼父曰逋 ; 呼君曰 + 王자 아래에 布자가 있는 한자)!” 龍君卽來, 其威靈感應, 人莫能測.
帝宜傳帝來, 以北方無事, 因思及祖帝明南巡接得仙女之事, 乃命親臣蚩尤代守國事, 而南巡赤鬼國. 見龍君已歸水府, 國內無主, 帝來乃留愛女嫗姬與部衆侍婢居于行在, 而周流天下, 遍觀形勢, 見奇花怪草, 珍禽異獸, 犀象玳瑁, 金銀椒 桂, 石乳沉檀, 山殽海錯, 無物不有. 又四時氣候不寒不熱, 心愛慕之, 樂而忘返.
南國人民苦此生煩擾, 不得安帖如初, 日夜望龍君之歸, 乃相率揚聲呼曰 : “逋在何方! 當速來救我!” 龍君倏然而歸, 見嫗姬獨居, 容貌絶美. 龍君悅之, 乃化作一好兒郞, 豊姿秀麗, 左右前後侍從衆多, 歌吹之聲達于行在. 嫗姬見而悅之, 龍君迎歸于龍岱岩. 及帝來還, 不見嫗姬, 命群臣徧尋天下. 龍君有神術, 變現百端 : 妖精鬼魅, 龍蛇虎象. 尋者畏懼, 不敢搜索. 帝來乃北還.
再傳至帝楡罔, 蚩尤作亂, 黃帝率諸侯兵戰不克. 蚩尤獸形人語, 勇猛有威. 或敎黃帝以獸皮鼓爲令戰之, 蚩尤乃驚, 敗于涿鹿. 帝楡罔與黃帝戰于阪泉, 三戰而敗. 囚于洛邑, 死之. 神農氏遂亡.
龍君與嫗姬相處, 期年而生一胞, 以爲不祥, 棄諸原野. 過七日, 胞中開出百卵, 一卵一男, 歸而養之, 不勞乳哺, 各自長成, 秀麗奇異, 智勇俱全, 人皆畏服, 謂其非常之兄弟. 龍君久居水府, 乃忘其有子, 衆子亦不知有父, 母子獨居, 故思歸北國.
行至境上, 黃帝聞之懼, 分兵禦塞外, 母子不得北歸, 回南國, 日夜呼龍君曰 : “逋在何處! 使吾母子悲傷!” 龍君忽然而來, 遇於襄野. 嫗姬泣曰 : “妾本北人, 與君相處, 生得百男, 無由鞠有, 請與君從, 勿相遐棄, 使爲無夫無父之人, 徒自傷耳.” 龍君曰 : “我是龍種, 水族之長, 你是仙種, 地上之人, 本不相屬. 雖陰陽之氣, 合而有子, 然方類不同, 水火相剋, 難以久居. 今爲分別, 吾將五十男歸水府, 分治各處, 五十男從汝居地上, 分國而治, 登山入水, 有事相聞, 無得相廢.” 百男各自聽受, 然後辭去.
嫗姬與五十男居于峯州(今白鶴縣是也), 自推尊其雄長者爲主, 號曰 雄王, 國號 文郞國. 其國東來南海, 西抵巴蜀, 北至洞庭, 南至狐孫國(今占城國是也). 分國中爲十五部, 曰交趾, 朱鳶, 陸海, 福祿, 越裳, 寧海(今南寧是也), 陽泉, 桂陽, 武寧, 懷驩, 九眞, 日南, 眞定, 桂林, 象郡等部, 命其群第分治之. 置其次爲將相. 相曰貉侯, 將曰貉將, 王子曰官郞, 女曰媚娘, 有司曰蒲正, 臣僕奴隸曰卬, 婢隸曰稍稱, 臣曰瑰, 世世以父傳子曰逋導, 世世相傳皆號雄王, 而不易.
時山麓之民漁于水, 往往爲蛟龍所傷, 白於王. 王曰 : “山蠻之種, 與水族殊, 彼 好同惡異, 故爲侵害.” 乃令人以墨刺身, 爲龍君之形, 水怪之狀, 自是蛟龍無咬傷之患. 百粤文身之俗, 實始于此.
國初民用未足, 以木皮爲衣, 織菅草爲席, 以米滓爲酒, 以桄榔椶櫚爲饌, 以禽獸魚蝦爲鹹, 以薑根爲鹽. 刀耕火種, 地多糯米, 以竹筒炊之. 架木爲屋, 以避虎狼之害. 剪短其髮, 以便入山林. 子初生也, 以蕉葉臥之. 人之死也, 以杵春, 今鄰人聞之, 得來相救. 男女嫁娶, 先以鹽封爲問禮, 然後殺牛羊以成禮. 以糯飯入房中, 相食畢, 然後交通, 以此時未有檳榔故也. 蓋百男乃百粤之始祖也.
(인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