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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철의 잡학사전]
진시황, 후계자를 ‘2세 황제’라 불러… 호해 즉위 4년 만에 진 멸망
권력자의 자녀가 실세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2세(二世)’라고 부르는 이유다. 특히 아들은 부모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존재이기 때문에 딸보다 더 힘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탓인지 주로 아들에게 2세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한자문화권에서 ‘2세’라는 표현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은 진시황이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2세 황제’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 2세가 있으면 3세, 4세 등 그 후도 있게 마련이다. 진시황은 자신의 뒤를 잇는 황제들이 2세, 3세 등 만세까지 진 제국이 지속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진시황 사후 최초의 ‘2세 황제’ 자리는 장자(長子)인 태자 부소(扶蘇)가 아닌 작은 아들 호해(胡亥)가 차지했다. 진시황이 전국을 순시하던 도중 병사하자 당대의 권신인 환관 조고(趙高)가 호해와 짜고 가짜유서를 보내 부소를 죽이고 호해를 진나라 두 번째 황제로 세웠기 때문이다. 사약을 받을 당시 부소는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만류하다 부친의 노여움을 사서 변방으로 쫓겨가 있었다. 호해는 재능도 포부도 없이 포악한 정치를 일삼다가 환관 조고에게 시해된다. 호해가 2세 황제가 된 지 4년 만에 진나라는 망하고 만다. 한자문화권 2세 표현의 효시(嚆矢)인 호해는 2세의 중요성을 너무나 실감나게 알려주는 존재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호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진시황은 제국의 장래를 위협할 존재가 궁금했다. 당시는 모든 중요한 나랏일을 점을 쳐서 행할 때다. 당대 최고의 점쟁이들이 점괘를 뽑은 결과 정답으로 ‘胡’가 나왔다. 진시황이 ‘胡’가 무엇을 가리키냐고 묻자 점쟁이들은 “호는 흉노를 가리킵니다” 하고 대답했다. ‘호’는 ‘오랑캐’라는 뜻인데 당시 호는 흉노족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은 진시황은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해 만리장성을 증축하고 당대 최고의 명장인 몽염(蒙恬)에게 30만 대군을 주어 흉노족을 치게 한다. 그러나 진나라는 진시황 사후 불과 4년 만에 망하고 만다. 점괘가 틀렸던 것일까? 아니다. 점괘는 맞았다. 사실은 이렇다. 점쟁이들은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사람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진시황의 노여움을 사서 죽임을 당할까봐 왜곡 보고를 했다. 점괘의 ‘호(胡)’는 ‘호해(胡亥)’를 가리킨 것이다. 소설가 채만식의 ‘태평천하’에도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란 표현이 나온다. 만년제국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 사회도 창업자에서 2세, 3세로 넘어가는 기업과 조직이 적지 않다. 호해 같은 2세는 저절로 나오지만 유능한 후계자를 키우려면 2세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천운도 따라야 한다.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어려운 법이다. 출처 : 주간조선 2009.0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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