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그의 첫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 세트인 Op.2를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그는 이미 하이든과 모차르트로부터 시작한 빈 고전
주의 스타일을 숙지했고, 여기에 자신의 영혼 속에 내재돼 있던 음악적 아이디어와 방법을 얹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토벤에게
있어서 이러한 중용적인 ‘변주적 발전’은 한 번의 시도만으로 족했다. 그는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면서 매 작품마다 엄청난 큰 개별성과 독립성을 부여했을 뿐더러, 작곡 시기상 세 개의 시기(초기, 중기, 후기)로 구분되는 그룹마다 고전주의를 벗어나 낭만
주의로 향하는 엄청난 에너지와 진취적인 방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비극적 강렬함을 주제로 삼은 최초의 피아노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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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초기에 해당하는 빈 시절에 있어서 피아노라는 악기는 그의 음악적 경험의 중심이었다. 그가 주력했던 작곡 형식인 피아노 소나타들을 초기부터 일별해 보면 하나 하나마다 스타일이 발전하고 있고 기술 또한 날로 세련되어져 갔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보다 창조적인 방법을 통해 전통을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개인적 심상을 음악 속에 담아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작곡가 자신이 주역이었다. 이런 모습이 극대화되어 나타난 작품이 바로 [영웅 교향곡]이다. 이 교향곡은 음악미학에 대한 당대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예술가로서 음악가가 갖는 위상 또한 당당히 세운 작품이었다.
[비창 소나타]는 1798년부터 1799년 사이에 작곡되어 그 해 가을 빈의 에더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베토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칼 폰 리치노프스키(Carl von Lichnowsky)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이 소나타의 부제로 알려져 있는 ‘비창 Pathétique’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출판시 출판업자에 의해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곡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무엇보다도 이전 시대의 음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긴장감과 강렬함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비창 소나타]는 베토벤이 최초로 드러낸 드라마틱한 자신의 모습이며, 어둡고 침침하며 비극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최초의 심리주의적, 표현주의적 피아노 소나타로 기록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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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비창 소나타]에서 빈 고전주의를 넘어서는 강렬한
낭만파적 음악을 시도했다. <출처: W.J. Baker at fr.
wikiped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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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베토벤 작품들이 그렇듯이 음악 주제들의 밀접한 관계 또한 특징적이다. 이 작품의 첫 악장의 2주제는 제2악장의 2주제에서 역
전된 형태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마지막 피날레 악장에서는 변형되어 다시 주제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바그너에
의해 활성화 된 순환주제의 개념이 바로 이 작품에서, 작곡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살며시 엿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또
한 혁신적이다. 그리고 하이든, 모차르트가 완성한 느린 서주와 활기찬 알레그로 - 느린 아다지오 - 빠른 론도라는 특징적인 3악장
구성을 채용했지만, 그 안에서 베토벤은 극적인 다이내믹과 비장함의 극대화라는 새로운 심리적 표현력을 만들어냈다. 이 점도 [비
창 소나타]를 특징짓는 창조적 에너지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비창 소나타]의 조성은 [운명 교향곡]과 같은 C단조이다.
베토벤이 좋아했던 이 어둡고 비장한 C단조는 [5번 소나타]와 마지막 [32번 소나타]와 더불어 총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사용
되었다.
1악장 그라베-알레그로 디 몰토 에 콘 브리오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느림 - 빠름이라는 하이든 교향곡의 형식을 인용한 장중한 서주가 붙은 악장이지만, 그 내용의 깊이와 시적 감수성에 있어서 온전히
베토벤의 개성이 발휘된 대목이다. 비장한 무게감과 위력적인 에너지감이 휘몰아치는 1악장은 이후 베토벤이 발전시켜나간 소나타
형식의 설계에 밑거름이 된 역사적인 악장이 되었다. 불안한 분위기의 서주를 거쳐 빠르고 정열적인 1주제와 단음계의 장식적인 효
과가 두드러지는 2주제를 거치며 그 비창적 에너지를 더하다가, 제시부 마지막에서는 에너지가 고갈된 듯한 침묵이 음악에 긴장감
을 더한다. 갑작스러운 종지부는 이 악장에 비극적인 느낌을 배가시킨다. | |

[비창 소나타]는 어둡고 극적인 표현이 폭풍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출처: N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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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 (Adagio Cantabile)
슬프지만 아름다운 멜로디가 처연함을 더하는 악장.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1악장의 아름다움에 비견할 만한 악장으
로서, 영화음악과 팝, 락, 힙합, 재즈를 넘나들며 즐겨 사용될 정도로 친밀성이 강한 악장이다. 하나의 구슬픈 주제가 세 번 반복되는
동안 두 개의 에피소드가 삽입되고, 슈베르트적인 성격이 강한(슈베르트가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예상되는) 여덟 마디의 코다
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빠르기인 안단테 칸타빌레가 일말의 동화적 환상을 부여한다면, 이보다 조금 느린 아다지오 칸타
빌레라는 빠르기는 여전히 동화적이지만 우울하고 염세적인 느낌이 기저에 깔려있는 절묘한 상상력을 자아낸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Rondo: Allegro)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열정적인 1주제의 멜로디(첫 악장의 2주제를 차용한)와 목가적인 청량함을 머금은 중간의 에피소드가 상호
시너지 효과를 고조시키다가, 마지막 짧고 드라마틱한 코드의 하행 아르페지오와 함께 이 작품 특유의 극적인 박력은 최고도에
이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