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일 토요참선 큰스님법문
선의 의미와 칠불사 아자방의 전설
1. 금융위기의 원인
이번 추계 사찰 순례를 갔을 때 하동 전체가 차밭이었다. 결국 차가 과잉 생산될 것 같았다. 이 처럼 현재 세계의 금융위기도 주택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나 세상의 일에는 균형감각과 화합이 필요하다.
2. 게송1
萬物(만물)은 0이지만
항상 깨어있음이고
밝음이고 살아 있음이고
불변이고
불멸이다.
나무아미타불
3. 사람이 죽으면 몸은 끝나지만 영은 죽지 않는다.
4. 0에 관한 가사를 붙여 노래로 전파하고 싶다.
5. 게송2
0은 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본래지가 무언지 무언지
나무아미타불
6. 답은 깨달음이다.
0에 대해 판단, 지혜 및 신이 서는 것이 깨달음이다.
7. 간화선과 묵조선의 차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관세음보살’을 반복한다. 계속 반복하면 마음에 기쁨이 일어나고, 편안해진다. 간화선의 선에 들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고, 한번 송화두를 시작을 했다면 ‘공’을 들여야 한다.토요 참선방을 통해 송화두를 끊임없이 실천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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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조선(默照禪) |
간화선(看話禪) |
송화두(誦話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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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심시불(直心是佛) -마음이 곧 부처다. |
심즉시불(心卽是佛) - 마음이 곧 부처라는 이 실체는 무엇인가? |
간화선이 잘 되지 않는 근기자(根機者)는 우선 송화두로서 발심해야 함. ‘관세음보살’을 계속 반복. ※구도자는 물러서지 않는 지극한 신심이 먼저이지 도, 깨달음이 먼저가 아니다 -정관 스님 간화선의 길 12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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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한 답이 마침표로 끝이 남 |
진리에 대한 답이 물음표로 끝이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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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이 없음 |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발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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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마음의 안식과 평안에는 도움이 됨 |
의문에 시동이 걸렸으므로 공부에 끝이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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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리지 않는 ‘차’와 같음 |
시동 걸린 ‘차’와 같음 |
8. 게송3
일체중생은 진성본각이다.
나무아미타불
일체중생의 본래지는 똑같다. 일체중생의 후천적인 지혜지는 다르다. 참선은 정과 사를 바로 판단하는 것이다.
9. 칠불사 아자방에 얽힌 이야기
이 부분은 뒤에 큰스님께 원고를 받은 뒤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까페 법성행 보살이 올린 아자방 관련 글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10. 게송 4
마음이 0이고 0이 마음이다.
0인 마음 밖에 世上事(세상사) 모두는 지나가는
꿈이고 지나가는 바람이고
잠시 생겼다가 없어지는 물거품으로
보는 智慧(지혜)가 禪(선)의 지혜이다.
나무아미타불
11. 禪(선)
禪(선)은 거듭 眞如門(진여문)과 生滅門(생멸문)을 論(논)함이다.
眞如門(진여문)은 認識(인식)이전 연기이전 12연기 이전을 말함이고
生滅門(생멸문)은 인식이후 연기이후
12연기 이후를 말함이다.
認識(인식)이전 연기이전은 0이다.
0이 곧 太初(태초)이다.
0은 어느 때부터가 아니고 本來(본래)부터이다.
하늘땅 이전 本來(본래)부터이다.
萬物(만물)은 0이지만 항상 깨어있다.
항상 깨어있음이 0이다.
禪(선)은 우주와 交感(교감)이다.
0이 곧 眞如(진여)이다.
如如(여여)이다.
本來知(본래지)이다.
眞理(진리)이다.
淨土(정토)이다.
天堂(천당)이다.
自利利他(자리이타) 本堂(본당)이다.
아미타불이다.
0이 法身(법신)이다.
0이 淸淨法身(청정법신)이다.
비로자나불이다.
0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이 0이다.
원효스님은 0을 本來一覺(본래일각)이다하셨다.
화엄경에 의하면 0을 두고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이라고 함이다.
法華經(법화경)에 의하면 0을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이라 한다.
아무 파장 없는 寂寂(적적)이 0이다.
生滅門(생멸문)은 認識(인식)이후 연기이후
12연기 이후이기 때문에
파장과 形形色色(형형색색) 頭頭物物(두두물물)이 끝없이 펼쳐짐이다.
0은 절대자의 源泉(원천)이다.
0은 절대자의 源泉(원천)이지만
緣(연)이 닿으면 卽刻(즉각) 反應(반응)이고 感應(감응)이다.
지체 없이 感應(감응)이다.
0이 衆生(중생) 衆生(중생)들의 依支處(의지처)이다.
信仰處(신앙처)이다.
0은 神秘(신비)이다.
極秘(극비)이다.
0이 自性(자성)이다.
自性(자성)이 0이다.
自性(자성)은 0이기 때문에 處所(처소)가 없음이다.
無處所(무처소)이지만 緣이 닿으면
즉각 지체 없이 反應(반응)이고 感應(감응)이다.
지체가 아니다.
禪(선)은 12연기 順法(순법)으로 發展(발전)했으나
다시 無常(무상)으로 逆法(역법)으로 還滅門(환멸문)으로
本來知(본래지) 0으로 되돌아옴이
大自然(대자연)의 法則(법칙)이라는 것을 지도해 줌이
禪(선)의 智慧(지혜)이고 禪(선)의 慈悲(자비)이다.
12연기 순서는 별도로 공부해야 함이다.
禪(선)은 또 敎外別傳(교외별전)이고
格外道理(격외도리)로 사람들을
濟度(제도)하는 고마움이다.
어느 他人(타인)이 나에게 “무엇을 두고 부처라 합니까?”
라고 질문이 쏟아진다면
나는 金井山(금정산)이 야밤에 춤을 춘다.
거듭 묻는다면 금정산이 하품을 하고 있네.
계속 질문이 들어오면 그때 마다 정신 못 차리게
앞산에서 까마귀가 울고 있네.
뒷산에서 새가 울고 있네.
오늘 날씨가 화창 화창하네.
하고 앞뒤가 안 맞는 엉뚱한 말만 되풀이 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높고 낮고
어떤 身分(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모두 禪(선)을 안하면 안 되는 이유와 禪(선)속에 스며 있는 功德(공덕)을 다시 論(논)해본다면
禪(선)은 첫째가 自己(자기) 自性佛(자성불) 參究(참구)의 공덕이고
自性佛(자성불) 修行(수행)의 功德(공덕)
자기 省察(성찰)의 功德(공덕)
자기 濟度(제도)의 功德(공덕)
자기 自性(자성) 깨달음의 공덕
자기 自性(자성) 悟性(오성)의 공덕
자기 자성 섬김의 공덕
자기 자성 禮讚(예찬)의 공덕
자기 자성 찬탄의 공덕 等等(등등)이다.
禪(선)의 本質(본질) 0은 처소가 없다.
자기 自性(자성) 信仰(신앙)의 功德(공덕)
자기 自性(자성)을 자기가 사랑함의 功德(공덕) 등등이다.
자기 自性(자성)을 사랑하고 證得(증득)함으로써
離苦得樂者(이고득락자)가 되고
大安息者(대안식자)가 되고
休息者(휴식자)가 되고
大解脫者(대해탈자)가 되고
大自由者(대자유자)가 되고
五濁惡世(오탁악세)에 살면서도
五濁惡世(오탁악세)에 물들지 않는 자가 되고
獨居樂者(독거락자)가 되고
獨居遊戱樂者(독거유희락자)가 되고
人間勝利者(인간승리자)가 됨이다.
獨居遊戱樂者(독거유희락자)가 못되면
人間勝利者(인간승리자)라 할 수 없음이다.
五濁惡世(오탁악세) 속에서도
人間勝利者(인간승리자)가 人間(인간)의 全部(전부)이지
五慾樂成就(오욕락성취)가 人間(인간)의
全部(전부)가 아니라고 結論(결론)함이
禪(선)의 次元(차원)이고 禪(선)의 智慧(지혜)이고
禪(선)의 價値觀(가치관)이다.
질문자에게 疑問(의문)의 덩어리가
쌓여서 本人(본인)들이 깨닫게 하고
本人(본인)들이 밤잠을 설치게 하고
本人(본인)들의 분발심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차게 하는 지도 방법이
禪工夫(선공부) 지도 法(법)이다.
공식적인 교육 틀 안에서 사람들이
대자유자가 될 수 없음이다.
공식적인 교육의 틀을 벗어나야 만이
자기의 뜻을 자유자재하게 하는
해탈자가 되고 大自由人(대자유인)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누리는 安息者(안식자)가 됨이다.
自性佛(자성불) 參究(참구) 공부로서 自利利他(자리이타) 平和者(평화자)가 됩시다.
마음이 0이고 0이 마음이다.
0인 마음 밖에 世上事(세상사) 모두는 지나가는
꿈이고 지나가는 바람이고
잠시 생겼다가 없어지는 물거품으로
보는 智慧(지혜)가 禪(선)의 지혜이다.
他宗敎(타종교)와 佛敎(불교)의 죽음의 뜻 차이점
佛敎(불교)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涅槃(열반)이다.
열반의 뜻은 일의 연속이다.
자기 自性佛(자성불) 參究(참구) 精進(정진)이 今生(금생)에 못 다한 것을 다음 生(생)에 까지 이어간다는 뜻이 열반이다.
자기가 하는 공부를 끊지 않고
이어가고 이어간다는 뜻이 涅槃(열반)이다.
끊어지고 쉬는 것이 열반 아니다.
佛敎(불교) 願力(원력)의 뜻과 涅槃(열반)의 뜻이 같은 맥이라 하겠다.
願力(원력)의 뜻도 今生(금생)에 完成(완성)못한 佛事(불사)를
다음 生(생)에 다시 와서 成就(성취)시킨다는
佛敎(불교)의 願力(원력) 사상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없어지고 끊어짐이 죽음이지
일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이어져 간다면 죽음이 아니고 열반이다.
일이 없어지고 끊어짐에서 孤獨(고독)이고
우울증이고 쓸쓸함이고 허전함이지
自性佛(자성불) 參究(참구) 佛事(불사) 일이
끊어 지지 않고 初發信心(초발신심)에서
물러서지 않는 至極(지극)한 信心(신심)만 계속 유지된다면 孤獨病(고독병)이 없어지고 樂園으로 樂으로 獨居遊戱樂者(독거유희락자)가 되고 涅槃者(열반자)가 됨이다.
스님들 涅槃前(열반전)에 祝願(축원)이
再明大事(재명대사) 速還(속환) 사바하이다.
사바세계에 다시 오셔서 스님이 하시든 佛事(불사) 빨리 완성하소서
하는 發願(발원)이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佛紀 2552년 11월 좋은날
金井山人 佛國 正觀 心
사족
법문은 월화심이 받아 쓴 것입니다. 11번은 큰스님께서 선에 대해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