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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화경 수행

중국 초기 선종과 천태종의 조사 비교 /천태종 종조의 천태대사 지의의 법맥과 천태종의 조사.

작성자삽달마|작성시간19.03.24|조회수455 목록 댓글 2

중국 초기 선종과 천태종의 조사 비교

 

선종의 조사들은 익히 잘 알고 계셔서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국 초기 선종과 천태종의 조사 비교

28

달마

? ~528

보리달마

(인가 후 입적)

1

혜문

(생졸미상)

북제선사

29

혜가

487~593

107세입적

정종보각대사

남악혜가

2

혜사

515~577

63세 입적

(생졸미상)

남악선사

(책을 빌려 무덤속에서 법화를 독송하고 涕泣)

30

승찬

?~606

537년생

으로 추정

감지선사

(평생은둔)

3

지의

538~593

60세 입적

천태지자대사

천태지의선사

31

도신

580~651

72세 입적

대의선사

4

관정

561~632

72세 입적

장안대사

32

홍인

602~675

74세 입적

대만선사

5

지위

537~

(생졸미상)

지위선사

법화존자

(평생은둔)

33

혜능

627~713

76세 입적

(15년 은둔)

6

혜위

590~680

(생졸미상)

혜위선사

천궁존자

(평생은둔)

34

혜사

677~744

68세 입적

대혜선사

남악회양

7

현랑

673~754

82세 입적

좌계삼사

35

도일

709~788

80세 입적

대적선사

마조도일

8

잠연

711~782

72세 입적

형계기연

(38세에 재가자로 출가)

 

 첨부파일 중국 초기 선종과 천태종의 조사 비교.hwp


천태종 종조의 천태대사 지의의 법맥과 천태종의 조사.

 

慧光

 

468~537

70세입적

율종의 시조가 됨. 지론종이 일어날 기초를 만듬. 천태대사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가르침.

중국 남북조 때 정주 장로 사람으로 속성은 양씨. 13세 때 불타선다에게 출가하여 계율을 배움.

13세때 불타삼장(불타선다)에게 출가하여 계율을 배워 사분율弘闡하여 중국 율종의 시조가 됨.

 

륵마나제와 보리유지가 낙양전을 역장으로 하여, 십지론을 함께 번역하다가 도중에 분쟁을 일으켜, 따로 있으면서 한 본씩 번역한 것을 혜광이 비교하여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이에 대한 주석서를 지어서 중국 지론종이 일어날 기초를 만들었음. 세상에서 그를 광통율사라 부름.

 

항상 극락정토를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정업을 닦다가 업의 대각사에서 세수 70세에 입적함.

 

천태지의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가르침. 천태지자대사가 22(560), 혜사에게 심관을 받았으므로, 경론과 율장을 배운 후 심관을 받으니, 그 이전으로 보아야 함.

 

선종의 전등사는 한결같이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가 많은 사람들의 시기를 사서, 독살되었다고 전하는데, 그 주모자는 역대법보기,보림전,경덕전등록등에서 보리유지와 광통율사라고 전하고 있으나, 사실로 입증하기는 힘들며, 다만 당시의 선종과 교종의 반목을 반영하는 것이다. 천궁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난다면서 업성 대각사에서 세수 70세로 입적 함.

 

저서로는 현종론,대승의 율장,인왕칠계,유교경소,화엄경소10,십지론소등 수 십종이 있다.

律宗은 계율을 지키는 종파라는 뜻. 율장에 의해 세운 총지. 석존일대 설법중에서 제자가 부정한 행위를 하였을 적마다, 낱낱이 그 근기에 응하여 바로잡은 것.

 

석존입멸후 제1결집때, 우바리존자가 80회에 나누어 외어 내어 팔십송률을 결집하고, 그 뒤에 가섭, 아난, 말전지, 상나화수, 우바국다의 5사가 차례로 전승.

 

중국에서는 중인도의 담가가라가 처음으로 사분율1분을 전하고, 그후 150여년을 지나 요진때에 구마라습이 404십승률을 번역. 불타야사가 408사분율을 번역함.

 

우리나라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종남산 운제사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보름마다 계를 설하여, 율종의 초조가 되다.

 

 

慧遠

523~592

70세 입적

지론종의 종조. 정영사에 거주하여 정영이라 호칭함. 진혜원과 구별하여 소원이라 불렀다 함. 수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이씨이며, 돈황 사람으로 신장이 8척이며 허리가 9. 592(개황12)년에 세수 70에 입적.

13세에 출가하여 여러 율사에게 삼장을 배웠다.

諸經의 소를 짓는데, 모두 4자를 1구로 하였다. 대승의장을 지으니, 불법의 강요가 이곳에서 극진하여 진실로 석가의 太斗라 할 것이다.

 

수 문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불교와 유교를 부흥시킬 때, 혜원을 위해 정영사를 짓고 강설하는 법석을 열게 하여, 개황12년 칙명으로 칙명으로 역경사업을 주관하다가 이 해에 정영사에서 세수 70세 입적함.

 

대승의장은 전무후무한 대규모의 개론서로서 양진과 육조시대에 이루어진 불교연구의 업적을 총괄적으로 결산한 저술이다.

 

혜원은 지론종의 거장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점은 진심연기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당시 유행했던 비담종성실종섭론종 등, 여러 학파의 교의를 모두 다루고, 대소현밀의 모든 경론을 인용하여 종횡무진으로 불교의 심오한 뜻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사전체식 백과사전의 성경을 띤 저술방법은 6세기 전후에 불교계에서 유행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중명할 수 있는 것은 혜원의 스승인 법상이 대승의장6권을 짓고, 중수법문40권을 지었다는 기록과, 천태지의대사가 법계차제초문이라는 책을 지음.

 

저서로는 지지소5,십지소7,대승의장14,무량수경소2,관무량수경소2권 등이 있음.

 

地論宗 십지론에 의하여 배우는 종이기 때문에 이름한 것.

십지론이란? 화엄경16회 십지의 일품으로 별행하는 십지경을 석론한 것. 십지론은 견혜와 금강군과 세친의 諸論이 있으나, 여기서는 세친의 십지론이다.

 

십지론은 6상이 원융함을 말하고, 일승의 불성을 밝혀(一乘成佛), 비록 화엄과 같으나, 三祗成佛을 세우고, 一念成佛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圓敎가 아님.

 

당대에 이르러 현장과 규기가 일으킨 법상종과 특히 법장이 일으킨 화엄종에 의해 화엄경의 일부분을 해석한 십지경론에 근거하고 있던, 지론종은 화엄종에 병합되기에 이른다.

 

 

慧灌

(?~424,453)입적설

70에 입적

혜원의 제자. 일대교를 판별하여 25시를 세움.

중국 후진 청하사람. 속성은 최씨.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이름이 높았고, 라집을 스승으로 섬기고 후에 혜원의 제자가 됨.

 

401(요진홍시3), 구마라습이 관중에 온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됨. 뒤에 불타발타라가 빈척되어 여산으로 가게 되니, 그를 따라가서 혜원을 뵙고 그의 제자가 됨.

 

慧遠

334~416

83세 입적

여산 백련사 혜원은 여산 백련사의 개조임. 노장학에 정통하였고 도안을 스승으로 대승의 깊은 뜻을 깨달음. 제자 혜관과 혜광이 있음.

중국 동진 안문사람. 속성은 고씨.

처음에 유학을 배우고, 21세에 출가하여 도안을 찾아가 여산에 있으면서 법정·법령 등을 멀리 서역에 보내어 범본을 구하고, 계빈국승려 승가바제에게 청하여 아비담심론,삼법도론을 다시 번역함. 또 담마류지에게 청하여 십송률을 완전히 번역하는 등, 불교학계에 크게 기여함.

 

대승대의장은 혜원이 구마라습과 문답을 통하여, 그의사상이나 신념을 명확히 나타낸 것으로 두 사람의 사상적 논쟁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초기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수 있다.

 

혜원은 여산에 사람들을 모아 세속을 떠나 수행하는 불교의 실천적인 면모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구마라집은 인도 구자국 출신으로 경전의 번역이나 강설에 많은 업적을 남김.

 

384(동진 효무제 태원9)년 혜원이 여산에서 123인과 더불어 백련사를 짓고, 백련사라는 결사를 만들어 무량수불상전에서 염불을 수행하고 또 이를 권장하였다. 30여년 동안 산을 벗어나지 않고 계를 지키며, 수행정진 하다가 416년 세수 83세에 입적함.

 

저서로는대승대의장,대지도론요략20,문대승중심의십팔과3,법성론2,사문단복론1권 등이 있음.

 

412년 다시 불타발타라와 함께 형주에 가니, 태수 마휴지가 고리사를 짓고 스님을 청하여 있게

. 늙어서는 경사에 와서 도장사에 있으면서 교화에 종사하다 412~453(송원가 때)년에 입적하니 세수 70이다.

 

412년 그때 떠돌아다니는 말에 의하면 [을 통하는데는 생(도생)과 융(도융)이 첫째요, 詰難(

져물음)에 정밀하기는 관(혜관)과 조(승조)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만년에 도장사에서 법화종요를 지었는데, 구마라습이 보고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함. 또한 일대교를 판별하여 25시의 상으로 나눔. 이것이 중국의 상판석교의 놀랄만한 결실이다.

저서로는 법화종요,변종론,돈오점오등이 있음.

 

慧次

 

434~490

57세 입적

도량인 혜관의 주장을 이어 받아 35시의 교상판석을 세움.

중국의 승려. 속성은 윤씨. 기주 사람으로 출가하여 법천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18세에 벌써 경·론에 정통함. 성실론 삼론 등을 여러 번 강의하고, 또 혜관의 주장을 이어 받아 35시의 교상판석을 세움. (457~464)년 때, 전도에 힘씀. 제 영명 8년에 세수 57세에 입적함.

 

 

慧文

(생졸미상)

천태 1조 또는 2(천태지자대사재기예찬문에서 [천태종 2대 조사이신 북제존자에게 청하옵니다.])

천태종이 일어날 기초를 열었다.

일찍부터 불도에 뜻을 두어 깨달은바 있더니,

 

하루는 대지도론을 보다가 제27권에 이르러 일심삼지의 묘한 말을 얻고, 곧 이 말에 의하여, 심관을 닦고 이르기를 [과를 이미 일심으로 얻었다면, 인을 어찌 전후로 얻었으리요. 이 관이 만약 이루어졌다면 일심삼지가 쌍망쌍조를 증득하여 곧 바로 초주무생인 위에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또 용수의 중관론에서 관사제품의 게송인 인연소생법구 등을 보고, 공제·가제·중제의 깊은 뜻을 황연히 대오하였다.

 

제법이 인연에 생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확 깨쳤으며, 이 인연은 있으면서도 꼭 있는 것도 아니며, 공하면서도 반드시 공한 것도 아니어서, 공과 유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하여 중도라고 한다.

 

이 심관을 남악혜사에게 전하여 천태종의 시조가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대승법을 설하여, 그때 교계의 제일인자로 손꼽히었다.

 

 

 

慧思

(생졸미상)

515~577

63세 입적

천태 2조 남악혜사존자를 말함. 속성은 이씨 남무진 사람이다.

마음에 법화를 사랑하여 책을 빌려, 무덤 속에 들어가서 경을 대해 涕泣(울면서 눈물을 흘림)했다. 꿈에 선길보살이 이마를 만지고 갔다. 만져진 이마 위에 육계가 생김.

15세에 출가하니, 혜문선사가 심관의 을 주어 활연히 크게 깨치어 법화삼매를 얻고, 이에대소산에 암자를 지었다.

 

제나라 운이 점점 기울어져 그 난을 피하고자 남악으로 석장을 돌렸다. 남악에서 강석을 펴고 선양함.

 

將順世에 크게 문인을 모아 설법하고, 고절하책하기를 만약 십팔인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법화참을 닦게 되면, 내가 공급해 주겠지만 만일 없다면, 나는 멀리 가버릴 것이다.”하였으나 끝내 답하는 사람이 없어 마침내 단좌하여 불이 맞이하러 온다하고 하였음. (生卒未詳).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15세에 출가하여 묘법연화경만을 전공하고, 혜문의 가르침을 받아 일심으로 연구 정진하여 드디어 법화삼매를 얻음.

568년 남악으로 석장을 돌려 강설하다가 도사들의 참소함을 여러번 받다가 577(진 대건 9)6월에 세수 63세에 입적함.

 

저서로는 대승지관2,사십이자문2,안락행위1,남악원문1무쟁행문2권 등이 있음.

 

 

智顗

538~597

60세 입적

천태종의 개조. 이름은 지의. 법화경을 수행하여, 법화삼매를 증득하고, 현의·문구·지관을 강설 함. 중국 수나라 승려. 속성은 진, 자는 덕안, 형주 화용현사람.

천태산 석성에서 입적하였으므로 천태대사라 하였음.

사의 어머니가 꿈에 흰쥐를 삼키고, 지의를 낳았다 함.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흰쥐는 용이 변화한 것이다.”하였다.

 

7세에 절에 가기를 좋아했는데 승이 보문품을 口授하니, 한 번에 외워버렸다. 18세에 법서에게 출가하였다.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처음으로 광통율사인 혜광에게 율학과 방등제경인 대승교를 배워 모두 통했다.

 

560(진천가1)년 광주 대소산에 머물고 있던, 혜사를 찾아가 심관을 받음.

지의가 가서 정배하니,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는데, 숙연을 따라 지금 다시 왔구나하고 즉시 보현도장법을 보이고, 법화 사안락행을 설하니, 지의가 日夜로 스스로 가다듬어 14일 동안 경을 외웠음. 이것이 참 공양으로 진법공양여래라 한다.

신심이 확연히 에 들어가 법화를 비추어 보고 나니, 혜사선사가 찬탄하기를 네가 아니면 증하지 못하고, 네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所入이란? 법화삼매의 전방편이며, 所發한 공덕이란 초선다라니다. 비록 문자가 천군만중이라 할지라도 또한 너의 변론을 당하지 못할 것이니, 앞으로 법을 설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이 될 것이다하였다.

 

30(567)에 혜사의 명으로 금릉으로 감. 32세 의동삼사 침군리가 와관사에 하면서, 법화를 강의하기를 청하자, 一憂九月玄義를 말하였다. 와관사에서 전후 8년을 머무는 동안 대지도론을 강하고, 선문차제를 설하였다.

 

38(575)에 천태산에 들어가 佛隴(불롱)에 안거하였다. 40세에 마침내 절을 창건하고,묘법연화경을 중심으로 불교를 통합함.

 

48(수 개왕5)에 다시 금릉에 가서 陳少主의 청으로 태극전에서 지도론묘법연화경을 강설 함.

 

54(591)에 여산에 있으면서 진왕 楊廣에게 보살계를 주고, 지자대사의 칭호를 받음.

55(592)에 당 양현에 옥천사를 창건하고, 5934법화현의,5944마하지관을 을 강설함.

 

60(597,수개왕17)에 천태산 석성에서 입적함. 이때, 가부좌를 하고는 오직 삼보의 이름을 창하면서 삼매에 들어간 듯 하였다.

 

天台宗 법화경을 본경으로 삼고, 지도론을 지표로 삼으며,열반경을 부소로 삼고,대품경을 관법으로 삼아서 일심삼관의 묘리를 밝혔다.

 

앞서 본종의 제1조인 북제 혜문이 중관론에 의하여, 처음 이 묘리를 발견하여,

2조인 남악혜사에게 전하고, 혜사는 제3조인 천태지의대사에게 전하였다.

지자가 말하기를 도를 전함은 행하는데 있고, 설은 삼부를 강설함에 있다.

⑴「玄義이것은, 一家敎相한 것.

⑵「文句이것은, 法華經文解釋한 것.

⑶「止觀이것은, 一心觀行을 보이는 것. 일종의 敎觀이 이것에 具備된다.“하여, 이 대사가 宗名을 나타낸 것.

다음 제4조 장안의 관정이 천태의 강설을 필수하여, 3부의 서,현의·문구·지관이 이루어져서 일종의 전형이 길이 남게 되었다.

 

다음 제5조 천궁과 제6조 좌계의 삼사, 7조 형계의 기연이다. 형계로부터 송나라 사명에 이르는 동안 천태종이 쇠하여 不進하였다. 사명은 이 모두 하여 다시 일종을 일으키니, 천태가 처음으로 산가와 산외의 2종류로 나누어졌다.

 

보통 모든 종은 각각 따로따로, 자신의 법을 이을 제자를 정하지만, 천태종은 종단 내의 모든 승들은 천태종단의 최고종정스님 한 분의 제자가 됨. 종정스님이 다음 종조를 정함.

 

그래서 천태 계보가 자꾸, 누락되고 바뀌고 하는 것 같습니다.

 

灌頂

561~632

72세입적

천태종 4, 혹은 2. 천태삼부의 강설을 듣고 필사하여, 후대에 전함. 삼론학 거장 길장도 관정의 가르침을 받음.

성은 오씨, 자는 법운, 중국 임해 장안사람. 장안대사라 함.

7세에 섭정사 혜중을 은사로 출가. 20세에 비구계를 받고,

 

20(583)에 천태지의대사를 13년 동안 모시며(36세 까지), 대사의 설법을 듣고, 法華玄義 ,法華文句,摩何止觀의 삼대부를 말년에 편찬함. 천태교관이 전해지게 된 것은, 스님의 공적이며, 지의대사가 입적 후, 지의대사의 명으로, 국청사, 칭심정사 등에서 강설에 종사하였는데, 삼론종의 종조이며, 삼론학의 거장인 사상사 길장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6328월 국청사에서 72세로 입적한 뒤, 세간에서는 장안대사·장안존자라 칭함.

 

智威

(?~537~?)

천태종의 제6조 법화존자 지위선사. 어려서 출가한 14세 혜위에게 천태학을 가르치고, 23세에 심관을 줌.

공식적인 계보에서는 제6조가 좌계현량 삼사로 되어 있음.

그가 태주 보통산에 있다가 다시 軒轅鍊丹山에 가서 낮엔 법화경을 강설하고, 밤엔 선을 하면서, 그 지명을 법화라고 했다. 이에 선을 익히는 자가 3, 강설을 듣는 자가 7백이었다.

후에 그를 법화존자라 칭함.

 

 

慧威

(590~680)

생몰미상

천태종의 5, 혹은 7. 어려서 출가하여, 지위에게 천태학을 배우고, 천태삼관의 법문을 모두 깨침. 사람들은 그를 小威라 불렀다. 제자 현랑에게 법을 전함.

절강성 금화부 동양현사람. 속성은 유씨. 호는 천궁존자.

어려서 출가하여 지위 문하에 들어갔고,

14세에 지위를 만나 지위에게 천태학을 배우고, 삼관을 모두 깨침.

뒤에 고향에 돌아가 숨어서 세상과 인연을 끊음. 그 문하에 많은 구도의 선비가 나왔다.

(년수 모두 미상), 뒤에 오월왕이 전진존자라 시호하였다.

 

법을 이은 제자로는 천태 6조 현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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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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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부처님 별 | 작성시간 19.03.25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자굴산 | 작성시간 19.04.23 0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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