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로 폄하된 ‘夷’
동양 역사의 초기 넓고 넓은 중원 땅에는 화하족(華夏族)과 동이족(東夷族)이라는 걸출한 두 종족이 살고 있었다.
화하족(華夏族)은 갈래로 보면 지금의 지나족을 일컫는 말이고 동이족(東夷族)은 우리 한겨레를 일컫는 말이다.
이 두 종족의 수장이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다.
그래서 보통 황제족(黃帝族)과 염제족(炎帝族)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이들의 갈래를 구분하면 우리는 신농씨의 후예이고 화하족 즉 지나인은 황제의 후예들이다.
중원을 분할하여 통치하던 두 종족의 세력이 점차 커지고 두 세력 사이에 잦은 충돌이 일어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결혼동맹을 맺게 되고 결혼동맹의 결과로 맺어진 한 쌍의 부부가 바로 삼황오제시기의 전욱 고양(高陽, 朱氏)씨와 그의 부인 칭(稱)이라는 사실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다.
천자문(千字文)에 전하는 ‘朱稱夜光(주칭야광)’은 바로 고양씨와 그의 부인 칭의 업적을 칭송한 글귀로 ‘주와 칭의 업적은 어둔 밤을 밝히는 빛과 같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자 두 집안의 동맹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의미에서 아이의 이름을 ‘成’이라 만들고 ‘성’이라 불렀다.
동양 고대사에 등장하는 소위 성축(成祝)씨 또는 남방(南方) 적제(赤帝) 축륭(祝隆)이라고 하는 인물이 바로 ‘成’이다.
이렇게 해서 동이족(東夷族)의 갈래가 시작된다.
사실 ‘동이(東夷)’라는 말은 ‘동쪽(東)의 이족(夷)’이라는 말이므로 ‘동이(東夷)’의 핵심은 ‘夷’에 있다.
우리 겨레의 호칭인 ‘夷’를 우리 자전(字典) 에서 찾아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夷 ① 오랑캐 이
② 평평할 이
③ 온화할 이
④ 마음이 편안하다
우리 겨레의 호칭인 ‘동이(東夷)’의 ‘夷’는 우리 자전류에 보면 ‘오랑캐’로 되어 있다.
‘오랑캐’는 무엇이고 우리 겨레는 왜 오랑캐일까?
‘夷’자가 역사적인 용어인 만큼 ‘夷’자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동양 고대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夷’자와 관련해서는 지나족의 사서(史書)『後漢書』에 의미심장한 기록이 있다.
“동방을 이라한다. 이는 뿌리라는 뜻이다.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다”
「東方曰夷, 夷者?也, 君子不死之國(後漢書 85)」
‘?’자는 ‘뿌리 저’자이므로 ‘夷者?也’는 ‘이족은 뿌리가 되는 종족이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오랑캐’라고 풀이하는 ‘夷’자를 지나인들은 어떻게 ‘뿌리’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나의 글자가 어떻게 이처럼 극명하게 다르게 인식될 수가 있는 것일까?
‘夷’자와 관계된 몇몇 글자들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쇠 철) : 쇠는 이족이 발명한 이족의 금속이다
痍(상처 이) : 몸의 상처를 ‘夷가 불완전(?)하다’라는 식으로 표현함
姨(이모 이) : 어머니의 여자 형제(이모)를 ‘夷같은 여자’라고 표현함
荑(삘기 제) : 새 싹, 새 순을 ‘夷와 같은 풀’이라고 표현함
?(무리 이) : 무리(여럿)를 ‘夷를 닮았다(?)’라는 식으로 표현함
?(복 이) : 몸을 부풀려 둥그렇게 만드는 복을 ‘夷를 닮은 고기’라고 표현함
?(웅크릴 이) : 몸을 웅크리는 것을 ‘夷처럼 둥그렇게(足)’라는 식으로 표현함
?(등심 이) : 등심을 ‘夷를 닮은 고기(月)’로 표현함
?(크게 부를 이) : 입(口)을 ‘크게 벌리는 것’을 ‘夷’로 표현함
이 한자들은 모두 ‘夷’자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들이지만 어디에도 ‘오랑캐’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夷’자는 원래 ‘오랑캐’를 나타내는 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생전에 자전(字典)을 펴내기도 했다.
나는 2011년 우연히 들른 인사동의 한 헌책방에서 육당 최남선 선생이 편찬한『신자전(新字典)』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이미 낡을 대로 낡아서 출간 시기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으나 서문 말미에 ‘을묘년 중추절’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915년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만지기만해도 부스러지는 헌책을 뒤적이며『신자전(新字典)』32p에서 관심있던 ‘夷’자 항목을 찾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둘러 거기 쓰인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夷 大弓(큰 활 이), 東方之人創造大弓故從大從弓
平易(편편할 이)
悅也(깃거울 이)
傷也(상할 이)
陳也(베풀 이)
等也(무리 이)
誅滅(멸할 이)
안도의 한숨이란 ‘夷’자 풀이의 ‘오랑캐’에 대한 일말의 단서를 찾았다는 기쁨과 사견을 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옮겨준 육당 선생에 대한 고마움에서였다.
육당 선생이 펴낸 자전에 ‘夷=오랑캐’의 흔적이 없는 것은 원래 중국 자전에 없던 것이기 때문이며 육당선생이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夷’자를 ‘오랑캐’로 자전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 누구로부터일까?
『논어(論語)』의 다음 기록을 살펴보자.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자왈 이적지유군 불여제하지망야)’『논어(論語)』제3편「팔일(八佾)」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보통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공자님 말씀하시기를 (夏에는 예악이 있는데 예악이 없는)오랑캐의 나라에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의 여러 나라에 인물이 없는 것만도 못하다”
『논어(論語)』「팔일(八佾)」편 그대로라면 ‘夷’족인 우리 겨레는 ‘오랑캐(야만인)’가 되고, 우리 겨레에게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나와도 夏(중국=지나)의 일개 망한 나라의 백성만도 못한 것이 된다.
『논어(論語)』를 공부하는 이들은 왜 ‘夷’를 ‘오랑캐’라 풀이하는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夷’를 ‘오랑캐’라고 풀이하는 것일까?
‘夷’를 ‘오랑캐’로 부른 것은 지나의 유학자(儒學者)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존주주의(尊周主義)의 기치아래 주(周)나라 왕실 중심의 정치질서를 모색하면서 주나라 동쪽에 사는 우리겨레 ‘동이족’을 ‘동쪽의 오랑캐’로 부르기 시작했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사대사상에 찌든 우리 지식인들이 ‘夷’자를 풀이하면서 중국의 자전에는 나와 있지도 않는 ‘오랑캐’를 그것도 ‘夷’자의 첫머리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아마도 육당 선생이『신자전(新字典)』을 펴낸 1915년 이후 자전류 편찬사업에 참여한 지식인들의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지나인(支那人=중국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지나인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기를 중심에 두고 세계를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라면 자기 뿌리도 모르면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남의 생각을 비판 없이 수용하여 스스로 ‘오랑캐’로 자처하며 ‘夷’가 마치 원래부터 ‘오랑캐’를 나타내는 글자인 것처럼 버젓이 사전에 올려 왜곡에 앞장선 우리 학자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있다고 할 것이다.
‘夷’의 실체를 알았다면 ‘以夷制夷(이이제이)’, ‘攘夷(양이)’처럼 우리가 즐겨 쓰기 보다는 스스로 삼가해야 하는 용어들도 있다.
② ‘夷’는 ‘태양’, 동이족(東夷)은 태양족
‘夷’자의 ‘오랑캐’라는 풀이는 이처럼 단순히 글자 하나를 잘못 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고 ‘夷’를 겨레명으로 사용하는 우리 겨레 전체를 욕되게 할 뿐 아니라 선조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대대로 구성원들의 하나됨을 훼손한다.
자기 선조가 ‘오랑캐’라는데 이를 자랑스럽게 여겨 그 전통을 계승하려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夷’는 어떻게 해서 우리 겨레를 나타내며 ‘夷’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우리 겨레의 정체는 무엇일까?
‘夷’자에 대하여 다시 살펴보는 것은 ‘夷’자가 우리 겨레와 관련하여 그리고 동양 문명과 관련하여 그만큼 침중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夷’자는 ‘大’와 ‘弓’이 결합한 모양의 글자이므로 대체로 ‘큰(大) 활(弓)’로 풀이하여, ‘동이(東夷)’를 ‘큰 활을 사용하는 종족’으로 풀이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이 풀이는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겨레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활은 ‘큰 활’이 아니다.
우리 활은 단궁(檀弓) 또는 맥궁(貊弓)이라 부르는데 이 활들은 대체로 크기가 작은 반면 그 위력이 뛰어나 당(唐)나라에서는 우리 활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따라서 ‘夷’자를 단순히 ‘큰(大) 활(弓)’로 풀이하는 것은 ‘夷’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의 단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夷’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夷=大+弓
‘夷’자는 ‘大’와 ‘弓’의 합체자로써, ‘큰(大) 활(弓)’을 나타내는 듯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상징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弓’자의 상징을 아는 것이 필요한데, 다음 한자들을 통해서 ‘弓(활 궁)’자의 쓰임을 살펴보기로 하자.
弓(활 궁) : 불을 일으키는 활(활은 불을 일으키는 도구, 활에서 불이 나오다)
穹(하늘 궁) : 해(弓)가 떠있는 공간(穴)이 하늘
弘(넓을 홍, 클 홍) : 해(弓)가 미치는(?) 영향은 크고 영역은 넓다
躬(몸 궁) : 마음(弓)을 담은 몸(身)(몸은 마음을 담은 그릇)
粥(죽 죽) : 쌀(米)에 열(불,弓)을 가하고 또 가해서 만드는 죽
위의 사례를 통해서 ‘弓(활 궁)’자의 의미가 단순히 ‘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 ‘해’, ‘마음’ 등과 관계가 있으며, 이 관계의 바탕에는 ‘해-햇살-기운’, ‘활-화살-화살촉’, ‘마음-몸-기운’ 등 세상이나 사물을 셋의 관계로 보는 사고체계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 셋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해’와 ‘화살’과 ‘마음’이 ‘해=화살=마음’의 등식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大弓’의 ‘大’는 ‘太’로, ‘弓’은 ‘陽’으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며 ‘大=太=크다’ ‘弓=陽=불, 해, 양가 되어 ‘大弓’은 태양(太陽)이 되고 ‘夷族(이족)'은 ‘太陽族(태양족)이 되는 것이다.
‘大=太=크다’
‘弓=陽=불, 해, 양
‘夷=태양, 태양족
‘오랑캐’로 불렀던 ‘夷’자로부터 ‘태양’이라는 의미 회복은 동양사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동양에서 태양족으로 추정되는 ‘夷’가 출현한 것이므로, ‘夷’의 출현은 동양문명의 주인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 고대사에 관한 한 ‘이(夷)’와 ‘하(夏)’라는 걸출한 두 종족이 대륙을 분할 지배하였으므로 고대사에 관한 한 지나족의 것이 아니면 우리 한겨레의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시기는 이분법적 논리의 적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夷者?也(이자저야)’라는 표현은 ‘하(夏)’의 관점에서 ‘이(夷)’의 위상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바탕에는 ‘夷族(이족)이야말로 동양 문명의 뿌리’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동양 고대사에서 문명을 열었던 우리 선조 ‘이족(夷族)’, ‘동이족(東夷族)’의 실체다.
동양 문명은 동이족으로부터 비롯된다. 동이를 알아야 동양문명의 실체를 알 수 있고 동양학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동양학에는 만이활하(蠻夷猾夏), 혁사만하(?使蠻夏), 종이활하(宗夷猾夏) 등 ‘이하(夷夏)’의 관계를 보는 세 개의 관점이 존재한다.
1)이는 소남자 김재섭 선생의 풀이다.
2)李家源 張三植 지음『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夷’자 참조
3)당시만 해도 책이 너무 낡아서 구입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또 사진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 어딘가 또 다른 소장자가 있을 것이므로 언젠가는 독자들도 확인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4)①以夷制夷(이이제이) : 고사성어(故事成語)의 하나로, ‘변방의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제압한다’라는 말이다. 지나족이 주변의 나라들을 이간질하여 서로 싸우게 한다는 것으로, ‘夷’가 ‘오랑캐’의 의미로 쓰였으므로 ‘以夷制夷(이이제이)’와 같은 표현은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
② 攘夷(양이) : ‘서양 오랑캐’라는 의미로, 대원군이 득세하던 시절 물밀 듯이 밀려오는 서양세력을 두고 부른 말이지만 역시 ‘夷’자를 ‘오랑캐’로 보고 만든 용어이므로 교육용으로써의 사용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5)셋의 논리 구조란 ‘천지인’, ‘원방각’으로 표현되는 논리 체계로써 이 세상을 ‘셋’의 구조로 본다는 사고 체계다. 고대 동이 겨레는 이 세상 만물의 관계를 둘의 관계, 셋의 관계로 구분해서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였던 것이다.
6)大(큰 대)는 ‘사람의 모습’을 이용해 만든 글자로, ‘천지인 셋을 갖춘 사람은 크다’, 또는 ‘하늘 닮은 사람은 크다’라는 의미이며, 太(클 태)는 ‘大 +?’로 된 것으로 크다는 뜻의 ‘大’에 하늘의 상징인 ‘?’를 더하여 ‘크다’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弓(활 궁)은 ‘활’을 나타내지만 ‘셋’의 논리체계에서 보면 ‘하늘=활=마음’의 관계이므로 ‘해’와 ‘마음’에 비해 모양이 있는 ‘활’을 이용해서 비교적 쉽게 ‘해’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8)大(큰 대)는 ‘사람의 모습’을 이용해 만든 글자로, ‘천지인 셋을 갖춘 사람은 크다’, 또는 ‘하늘 닮은 사람은 크다’, ‘하늘만큼 크다’라는 의미이며, 太(클 태)는 ‘大 +?’로 된 것으로 크다는 뜻의 ‘大’에 하늘의 상징인 ‘?’를 더하여 ‘크다’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자전에는 大가 아니라 화살(矢)로 표시된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활과 화살의 뜻으로 해와 햇살을 나타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9)弓(활 궁)은 ‘활’을 나타내지만 ‘셋’의 논리체계에서 보면 ‘하늘=활=마음’의 관계이므로 ‘해’와 ‘마음’에 비해 모양이 있는 ‘활’을 이용해서 비교적 쉽게 ‘해’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10)① 만이활하(蠻夷猾夏) <尙書 堯傳>서경 요전의 기록이다. ‘만이활하(蠻夷猾夏)’는 ‘야만스런 이족이 하나라의 변방을 소란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요임금 때에 우리 이족이 하나라의 변방을 소란하게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으로. 꾸며낸 기록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왜냐하면, 요임금 때 동양에는 ‘夏’라고 이름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夏’라고 하는 나라는 요임금의 다음인 순임금 그리고 그 다음인 우임금의 아들이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夏’라고 불렀으므로 요임금의 기록에 ‘만이활하(蠻夷猾夏)’라는 기록이 있다면 이것은 훗날 꾸며낸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② 혁사만하(?使蠻夏)<秦 穆公 ?和鐘)>진시황의 6대조 목공을 모신 사당의 종에 새겨진 글귀다. ‘혁사만하(?使蠻夏)’는 ‘야만인인 하나라로 하여금 두려워서 벌벌 떨게하라’라는 뜻이다.
진시황의 6대조인 목공을 모신 사당의 제기(祭器)에 이렇게 쓰여 있다면 진의 목공이 말한 야만족인
‘夏’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사마천의『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도 ‘진(秦)’나라를 초(楚)나라, 오(吳)나라, 월(越)나라와 함께 ‘오랑캐’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③ 종이활하(宗夷猾夏)<梁雄>한나라를 대표하는 학자로 첫 번째로 손꼽히는 인물이 ‘양웅(梁雄)’이다. 양웅의 기록 중에 나오는 말이 ‘종이활하(宗夷猾夏)’이다.
‘종이활하(宗夷猾夏)’는 ‘종갓집인 이족이 하나라를 침범하여 소란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夷’족을 동양의 ‘종가집’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이것을 보면 한나라 때까지 학자들은 ‘夷’가 동양 역사의 종가(宗家)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