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승천人定勝天과 인능승천人能勝天
“사람이 정일定一하면 하늘을 이긴다.” 이를 인정승천人定勝天이라 한다. “사람은 하늘을 이길 수 있다.” 이를 인능승천人能勝天이라 한다. 전자는 조건이 있고, 후자는 조건이 없으며, 또한 전자는 원형이고, 후자는 변형이다.
경악전서景岳全書 전충록傳忠錄의 선천후천론先天後天論에 이르기를, “만일 사람의 작용作用으로 말한다면, 곧 선천에 왕강한 자는 호시怙恃해서는 안 되고, 호시하면 바로 그 왕강을 함께 잃는다. 후천에 쇠약한 자는 응당 근신을 알아야 하고, 근신하면 바로 사람이 천명을 이길 수 있다.”(若以人之作用言 則先天之強者不可恃 恃則並失其強矣 後天之弱者當知愼 愼則人能勝天矣)라고 한다. 여기서 인능승천人能勝天의 천天은 곧 천명天命이니, 바로 명운이고, 사주팔자이다.
기미독립선언의 수장이신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의암성사법설義菴聖師法說에 이르기를, “사람의 권능權能은 하늘을 이기니, 하늘은 사람의 명령 아래에 있고, 하늘의 권능은 사람을 이기니, 사람은 하늘의 명령 아래 있다. 이 양단은 단지 권능의 균형에 있을 따름이다.”(人之權能勝天 天在人之命令下 天之權能勝人 人在天之命令下 此兩端只在權能均衡)라고 한다. 여기서 승천勝天의 천天은 곧 천제天帝이다. 이는 인내천人乃天의 발로發露이고, 또한 변형의 극단이기도 하다. 인정승천人定勝天의 변형인 인능승천人能勝天은 나의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
서주西周의 선왕시宣王時 중국시가中國詩歌의 창시인創始人으로 후대에 중화시조中華詩祖라 칭송하는 윤길보尹吉甫(BC 852~775, 추정) 재상宰相이 이르기를, “하늘은 정일定一하여 사람을 이기지만, 사람도 정일하면 또한 하늘을 이긴다.”(天定勝人 人定亦勝天)라고 한다. 이는 인정승천人定勝天의 원형이다.
고래로 이 인정승천人定勝天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정定자에 대한 해석이 그러하다. 고려대학교에서 출간한 중한사전에 의하면, 천정승인天定勝人을 “팔자는 어쩔 수 없다. 하늘이 결정한 것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해석하고, 또 인정승천人定勝天을 “사람의 노력은 대자연을 이긴다. 운명은 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라고 해석한다. 후자는 “사람은 천명을 이길 수 있다.”라고 하는 인능승천人能勝天과 다를 바가 없다.
천정승인天定勝人과 인정승천人定勝天의 정定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가? 내가 이전에 쓴 대학의 제일주第一周 근본인과根本因果를 인용한다.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명明明에 있고, 그 덕德은 친근親近에 있으며, 그 인민人民은 지선至善에 그침에 있다. 지선止善을 알고 난 다음에야 정정正定이 있고, 정정이 있고 나서야 평정平靜할 수 있으며, 평정한 다음에야 편안便安할 수 있고, 편안한 이후라야 정려靜慮할 수 있으며, 정려한 다음에야 득의得意할 수 있다. 품물品物은 본말本末이 있고, 사상事相은 시종始終이 있으니, 선후가 되는 소이를 알면 대도大道와 친근할 것이다.”(大學之道在明明 德在親 民在止於至善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대학大學의 도道는 명명明明에 있고, 정려한 다음에야 득의得意할 수 있다. 고인은 명명부터 득의까지 팔강목으로 부득이하여 차제를 나누었지만, 실제는 차서가 없고, 일시에 있는 것이다. “지선止善을 알고 난 다음에야 정정正定이 있다.”(知止而後有定)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지止자나 유정有定의 정定자는 다를 바가 없다. 위에서는 정자를 정일定一이라 해석했다. 순일무잡純一無雜하다. 생각이 순일하여 조금도 잡념이 없다. “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경 삼백수를 한마디로 개괄하여 말하면, 사량思量이 없느니라.’라고 하셨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호사난상胡思亂想이 없다. “지선止善을 알고 난 다음에야 정정正定이 있다.”(知止而後有定)라는 지정止定의 경계가 또한 그러하다.
구마라집 법사가 번역한 불유교경佛遺敎經에 이르기를, “이 마음을 일처一處에 제지制止하면 판별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制之一處 無事不辦)라고 하셨다. 후세에 이 구절을 인용하는 호사가들이 이 제지일처制之一處를 제심일처制心一處라 변용했다. 그 뜻을 드러내고자 하는 호의의 발로이다.
원천강袁天罡 선생의 천강부天罡賦에 이르기를, “세간의 만사는 풍운의 변환처럼 순식간에 뒤집어진다. 설령 파도나 구름처럼 변환이 무쌍할지라도, 다만 이 마음을 일처에 제지하기만 하면, 판별하지 못할 일이 없다. 하늘은 정일定一하여 사람을 이기지만, 사람도 정일하다면야 하늘을 이긴다.”라고 한다.(世間萬事 風雲變幻 蒼黃翻覆 縱使波譎雲詭 但制心一處 便無事不辦 天定勝人 人定兮勝天) 또한 채근담에도 “사람이 정일하면 하늘을 이기고, 심지心志가 일여하면 천기를 움직인다.”(人定勝天 志壹動氣)라는 명구가 있다.
원천강 선생의 천강부는 진실로 나의 뜻에 부합한다. 이에 여러 문장을 함께 인용하여 기록하는 바이다.
2024. 10. 3. 08:24, 길상일 甲辰 癸酉 庚子 庚辰 만리강산 정덕성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