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염불 사십팔법(持名唸佛 四十八法)
청(清) 묘공대사(妙空大師)
1. 호의근지명(護意根持名) : 의근을 보호하는 지명염불
이 마음으로 염불하고 나면 무릇 일체의 선과 악이 뒤섞인 일들을 모두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곧 날마다 인연에 응하여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을 응당 모두 곧 버리고 얽매이지 말아야 하느니, 나의 심념을 가로막고 잠시 동안 나의 심념을 얽어매는 것은 의지로 일을 처리하는 까닭이다.
만약 염불하여 마음 바탕이 광명에 이르게 될 때 의지는 관찰함에 절로 미묘해지나니, 염불이 능히 범부를 성인으로 바꿀 수 있어 세간 출세간에서 제일의 해탈방법임을 응당 알지어다.
2. 계구업지명(戒口業持名) : 구업을 지키는 지명염불
입으로 염불하고 나면 무릇 일체의 살생·도둑질·음란·망념의 일을 입이 희롱하도록 맡기지 말라. 만약 그중 하나라도 미치면 응당 스스로 사유하여 염불하는 사람은 이와 같지 않아야 하나니, 염불을 수차례 소리내어 힘껏 염불하여 이로써 일깨우고 이를 씻어버릴지어다.
3. 단신지명(端身持名) : 몸을 단정히 하는 지명염불
이 몸으로 염불하고 나면 일체의 가고·머물고·앉고·눕는 때에 항상 단정하길 힘쓰고 몸이 단정하면 마음이 곧 청정하리니, 마땅히 사람이 스스로 성실히 체험하여 나를 속이지 않을지어다.
4. 과주지명(過珠持名) : 염주 알을 넘기며 하는 지명염불
한번 소리내어 염불하고 염주 한 알을 넘기며, 단지 넉 자를 염하고 여섯 자를 섞지 말아야 하나니, 이로써 넉 자가 한 덩어리를 이루기 쉬우니라.
넉 자 가운데 혹 아(阿)자가 넘기는 염주 위에 있고 혹 타(陀)자가 넘기는 염주 위에 있어 규모를 구분하여 착란해서는 안 되나니, 이는 염주를 빌어 심지일법(心之一法)을 속박하는 것이다.
5. 고성염불(高聲持名) : 큰 소리로 하는 지명
정신이 혼미할 때 혹 망상이 일어날 때 정신을 일깨우려면 큰 소리로 염불하여 수백 번에 이르러 스스로 한번 경계를 바꾸고, 또한 이근이 가장 영민하여 바깥 인연에 쉽게 들어가고, 소리가 마음의 움직임을 느껴 잡스런 생각이 불타오르니, 오직 고성염불만이 능히 이근을 보호하고 심령을 개발할 수 있어 일체 쓸데없는 일을 따져 말하고 자연히 파하여 내보낼지어다.
6. 저성지명(低聲持名) : 낮은 소리로 하는 지명
만약 정신이 산실될 때나 혹 극도의 과로로 핍박당할 때 반드시 크게 소리 낼 필요는 없고 저절로 신명을 거두어들이고 낮은 소리로 세밀히 염하여 호흡을 충분히 살피면 정신이 왕성하게 일어나 곧 큰 소리로 염불할 수 있다.
7. 금강지명(金剛持名) : 금강지법의 지명
마음의 기가 부적절하여 혹 팔지(人地) 보살이라도 의문이 들고, 큰 소리이든 낮은 소리이든 전체로 깨닫기가 곤란하니, 곧 단지 입술을 이동해 금강지법(金剛持法)으로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고 결과적으로 글자글자가 마음속에서 지나가야 하느니라.
8. 묵연지명(默然持名) : 소리내지 않고 관하는 지명
또 혹은 큰 소리나 낮은 소리 모두 다 적절하지 않고, 염주 또한 자질구레하다 꺼리고 금강지도 흔적을 내는 것 같아 꺼리면, 옛날부터 지극히 교묘한 방편이 있으니, 입을 움직일 필요도 없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단지 마음을 한 연에다 매어두고 미세하게 혀뿌리로 앞니를 두드리고,
심념이 따라 응하여 음성이 역력하고 소리는 구멍(竅)을 넘지 않아도 듣는 성품 안에 원융하고, 마음을 혓바닥에 새기고 염근을 중심으로 잡아 들음을 따라 흐름에 들어가서 돌이켜 자기의 성품을 들어야 하니, 이 세 가지가 융회하여 생각 생각이 원통하여 오래 오래 되면 마침내 유심식관(唯心識觀)을 이루리라.
9. 조식지명(調息持名) : 호흡을 고르게 하는 지명
혹 기정심(氣靜心)이 평화로울 때 먼저 그 몸이 원광(圓光)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고, 코의 끝을 묵관(默觀)하며 출입하는 호흡을 생각하여 매 한 호흡마다 아미타불 일성을 묵념하고, 방편으로 호흡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고르게 하여 마음과 호흡이 서로 의지하여 그에 따라 출입하여,
가고 서고 앉고 누울 때 모두 이를 행할 수 있으며 중단함이 없이 항상 스스로 은밀히 지녀, 마음을 거두어 오래되어 호흡과 생각을 모두 잊어버리면, 곧 이 몸과 마음이 허공과 더불어 평등하고 순숙(純熟)에 이르러 심안이 열리면서 삼매가 홀연히 현전하니, 곧 유심정토(唯心淨土)이어라!
10. 수분지명(隨分持名) : 분에 따르는 지명
혹 혼침(昏沉)이 심하면 곧 경행하여 지명하고, 혹 잡란(雜亂;뒤섞여 어지러움)이 심하면 곧 단정하게 앉아 지명하고, 설령 행주좌와에 모두 맞지 않아도 혹 무릎 꿇을 때나 혹 설 때나 내지 잠시 누울 때도 또한 방편을 널리 지어 분(分)에 따라 지명하여 스스로 구제할지어다. 넉자 큰 명호에 일념이라도 망각하지 않고 마음의 마구니를 항복시키는 것이 요술(要術)이니라.
11. 도처지명(到處持名) : 도처에서 하는 지명
깨끗한 곳이든 더러운 곳이든, 한가한 곳이든 분주한 곳이든, 기분이 좋은 곳이든 우울한 곳이든, 단지 염불하는 마음을 돌려[迥光] 염불하는 나를 관하여 의심하며[返照] 스스로 생각하길, 이러한 등의 경계는 내가 구원의 겁 이래로 백천만 억 년을 지나오며 만난 바이니, 오직 염불 왕생하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변통하여 마치지 못하여 윤회 전전하는 까닭에 머리를 내밀 수 없노라.
나는 지금 또한 다른 다만 이 염불심, 죽을 때까지도 이 염두(念頭)를 중단하지 않겠노라 명세하노니, 무슨 까닭인가? 염불하는 염두(念頭)가 한번 끊기면 일체 선악·무기(無記)·갖가지 잡념이 곧 또한 생하기 때문이니라.
비록 대소변시나 여인이 출산시에 마음을 하나에 쓰서 단지 념을 다스려서 괴로운 생각을 벗어나고 통증의 생각을 벗어나니, 아이가 엄마를 부르듯 어찌 어머니가 싫어하든 싫어하지 않든 상관이 있으리오.
만약 남을 두려워하고 나를 싫어한다면 다시 외쳐 부르지 못하고 곧 어린아이가 구덩이에 떨어지나니, 다만 한번 죽을 뿐이어서 어느 날에 어머니를 만나 뵐 것인가 !
12. 유정무정지명(有定無定持名) : 선정에 드는 선정에 들지 않는 지명
선정에 드는 것은 아침 저녁 두 때에 상과(常課)를 확정하여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그 나머지 십이시 중에 높은 소리든 낮은 소리든 능히 일구(一句)를 염하고 곧 일구를 염할 수 있음이니, 고인께서는 일구의 말로 적게 말하고, 일성의 부처님으로 많이 염하라 이르시었네. 틀림없구나 ! 틀림없구나 !
13. 대상이상지명(對像離像持名) : 불상을 대할 때 대하지 않을 때 하는 지명
불상을 대할 때 이 불상으로 진불로 삼아 한 방위이든 삼신이든 간에 단지 나를 그침이 일심이고 마음을 그침이 일불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느낌을 마주하고 성과 경으로 알 수 있으며 성과 경이 지극하여 반드시 영감(靈感)을 맞이하리라.
만약 불상이 없을 때는 서방을 향해 단정히 앉아 마음을 일으키고 념을 움직일 때 응당 부처님의 광명이 자자 구구마다 나의 정수리위에 머문다고 념하면 절로 공에 떨어지지 않고 흑업이 절로 능히 소멸되리라.
14. 망중지명(忙中持名) : 바쁜 와중의 지명
능히 일구를 염하고 곧 일구를 염하고, 능히 일구를 염하고 곧 일구를 염하여 다만 매우 바쁜 와중에도 잠시의 여가를 얻어 신심을 내려놓고서 낭랑하게 지송하라. 백낙천이 시를 지어 읊으매, 일할 때도 아미타불 앉을 때도 아미타불 화살처럼 바빠도 아미타불 여의지 않네. 고인의 마음 씀을 또한 가히 볼지니라!
15. 한중지명(閒中持名) : 한가한 중의 지명
세간의 일체의 괴로움 받는 사람은 한가함을 찾을 수 없으므로 수행을 할 수 없도다. 지금은 한가한 듯하다! 또한 이 염불의 법문을 듣나니 필히 면밀히 지속하고 진작 수렴할지니, 바야흐로 더 이상 광음을 지탱하지 못하여 만일 세월만 헛되이 보내며, 생각만 가고 일을 이루지 못하고 쓸데없이 세월을 보내며 사은을 저버리고 있으니, 하루아침에 죽음이 홀연히 오면 장차 어찌 맞서겠는가?
16. 존귀지명(尊貴持名) : 존귀한 자의 지명
지금 세상의 복은 이전 세상에서 닦아 온 것이니, 존귀한 무리의 태반은 고행한 고승으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영화를 누린다고 하지만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설령 다시 서자로 이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필히 타락하리니, 스스로 사유할지라.
업을 진채로 돌아가는 대신에 이 물을 빌어 배를 뛰우는 것이 낫나니, 혹 염불당을 세우고 혹 염불 승려를 선출하고 혹 정토 책을 찍어내고 혹 아미타 불상을 모시고 높이 올라가 적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거두면서 왕생의 결연한 의지를 가다듬고 부귀하고 빈천한 일체 사람들을 위하여 수행의 모법을 보여서 법왕의 사자로 존귀하고 뛰어남이 어떠한가?
17. 비천지명(卑賤持名) : 비천한 자의 지명
아 ! 몸은 사람을 위해 괴롭게 일하는도다! 괴로움에서 벗어남[出離]를 구하지 않으니, 괴로움에 괴로움이로다!
마땅히 알라, 아미타불 넉자의 부처님 명호는 존비와 귀천 노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를 따지지 않고, 다만 매일 맑은 아침에 지극한 마음으로 서쪽을 바라보고 열 번 명호를 불러서 극락왕생을 간구하여 중단하지 않으면, 현재 세상에서는 절로 이익을 획득하고, 다음 세상에서는 절로 왕생을 획득하나니, 아미타 부처님은 진실로 고해 가운데 구명선이니라.
18. 정세지명(靜細持名) : 조용하고 미세하게 하는 지명
이미 지혜가 있다면 광란에 들지 말게 하고 가장 조용히 미세하게 염불하여 이를 견고하게 할지니, 마땅히 알라, 지혜인이 염불한 즉 천하의 염불자는 반드시 늘 것이고, 지혜인이 염불한 즉 외도의 수행자는 쉽게 되돌리리라. 무슨 까닭인가? 지혜(인)의 염불이 있어 이를 계발하고 지혜(인)의 작용이 있어 이를 구제하니라.
19. 노실지명(老實持名) : 노실히 하는 지명
이미 명리를 구하지 않고 또한 재능을 이루지 못한다해도 노실히 수행함이 가장 하기 어려우므로 조사께서는 이르시길, 참선 중에 어리석고 둔한 사람을 찾아도 얻을 수 없는데, 지금 염불하는 사람은 바로 그 어리석고 둔하여 듣지 못한고 걱정하는가?!
노실(老實) 두 글자는 서방극락에 왕생하는 똑바른 큰길이니, 무슨 까닭인가? 노실이란 아미타불 넉자 이외에는 추호의 망상을 보태지 않음이니라.
20. 희경지명(喜慶持名) : 기쁘고 경사스러울 때 하는 지명
혹 사람으로 인해 기쁘고 혹 일로 인해 경사스러우니 비록 사소한 시작이라도 모두 인생의 즐거운 경계이니라.
마땅히 알라, 저 즐거움은 허깨비이니 오래 항상할 수 없고, 이 좋은 때를 타서 빛을 돌려 염불한 즉, 부처님의 광명을 잡아 순경에 많고 적은 악념을 제거하고 길상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뜻대로 수행하여, 바로 임종에 이르러 극락에 왕생하니 또한 큰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21. 허원지명(許願持名) : 소원을 빌 때 하는 지명
지명은 원래 왕생을 위함이지만, 모든 부처님의 위광은 불가사의하여 저 명호를 념하면 원하는 바가 마음을 따르는 까닭에 경전의 말씀에 염불에는 열가지 이익이 있다(참조 ; 창진昌臻법사 문장《염불현세획십종수승공덕(唸佛現世獲十種殊勝功德)》천석淺釋에서 나옴)하지만, 기도귀신에 의지하고 사참을 잡다히 수행하며, 나쁜 원을 광대히 빌어 무당을 가까이 믿는 것은 염불로 그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지 않느니라.
혹자는 말하길, 그와 같이 응하지 않는 경우에 어떠한가?
답해 가로되, 사람이 아직 염불하지 않고, 먼저 응하지 않을까 근심하는 즉, 이는 응하지 않는 인이 필히 응하지 않는 과를 초래하나니, 이와같은 인에 이와같은 과이라, 가히 두렵도다!
22. 해석지명(解釋持名) : 역경을 해석하며 하는 지명
무릇 일체의 역경이 닥침은 모두 이 미혹의 인연이 마주치는 것이니, 다시는 나쁜 생각 일으키지 않아 장래의 악과를 일으키지 않나니, 다만 순응하여 피할 수 있으면 이를 피하고 소멸할 수 있으면 이를 소멸하여, 다만 인연을 따라 염불함을 잊지 말라. 부처님의 무량한 지혜, 복덕, 광명이 가피하면 경계와 인연이 곧 바뀌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23. 愧奮持名(괴분지명) : 부끄러워하고 흥분해 하며 하는 지명
무릇 지금 생애와 이전 세상에서 악과가 성취되면 괴로움의 과보가 필히 다가오므로 일체의 괴로움이 곧 일체의 악이라하여 명운이 가지런하지 않음에 전가하지 말고 다만 그 수행이 늦음에 부끄러워할지니,
부처님을 관상할 때마다 온 몸의 털이 서고 오장이 마치 찢어지듯 몹시 슬프고 감동에 흥분하며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통해 하여서, 이와 같은 즉 글자마다 간에서 골수 가운데로 흘러나와야 비로소 염불의 진경이라.
지금의 승려와 속인중 염불하는 사람은 혹 입으로 염불해도 마음이 치달리고, 혹 염불할 때 마음을 섭수하여 그친즉 혼몽해지고 또한 바로 염불할 때가 있어도 잡스런 말로써 멀어져 이와같이 비록 임종에 이르러 영감이 없이 끊어지는데, 사람중 이를 보는 자가 바로 염불왕생이라 이르면 마침내 허언이 되니, 어찌 부처님의 과실이겠는가!
24. 간절지명(懇切持名) :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지명
모든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에 처해서 슬프지 않는 자는 사람의 정이 아니로다! 하지만 모든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에 처해서 다만 슬퍼할 뿐인 자 또한 어찌 불성을 밝히겠는가!
이왕 슬퍼 바에는 마땅히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일체 중생을 구경에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며, 부처님이 대비자라 불리는 까닭을 생각해 보아서 그를 위해 능히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져내게 할 수 있나니, 나는 자비심으로 염불하여 부처님의 자비를 구하고 나의 괴로움을 뽑아주니, 그 생각이 정말로 얼마나 간절한가!
25. 공양지명(供養持名) : 공양하는 경우 지명
무릇 명절을 맞이하여 혹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향과 꽃과 등과 과일을 수시로 공양함을 재물공양이라 하나 법공양은 아니니라. 마음의 법공양이 일체의 재물공양보다 뛰어나니, 근래들어 사교(邪教)가 성행하여 제물을 바치는 법, 다양한 제사물품이 수행에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여청정보도황극수원(如清淨普度皇極壽元), 무위대승(無為大乘) 등의 갖가지 사교가 구슬점을 치거나 혼귀를 불러서 남의 집안재물을 쓰게 하고 세상을 망언으로 기만하지만, 염불 일문에 있어서는 확연히 각별하여 지식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미혹되는 바를 하지 말라.
26. 보답지명(報答持名) :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지명
부모의 은혜는 은혜중 가장 큰 은혜이니라. 이를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가? 일체의 음식을 올려 봉양하고 공을 세워 이름을 드날리며 세간의 법으로 가늠하여도 보답은 불선이 아니지만 결국 끝맺음이 아니니,
나는 염불로써 부모님을 위해 서방극락으로 회향하여 보답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금강 종자를 심는 것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와서 스스로 해탈하는 때가 있을 것이니, 하물며 가없는 업장이 모두 능히 사라질 수가 있겠는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이 법을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27. 보시지명(佈施持名) : 무량중생에게 보시하는 지명
무릇 고뇌를 보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편안히 하고 연후에 그 마음을 깨우쳐 인도하나니, 권하는 염불은 이른바 한때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보시를 급하게 여기고 역겁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염불을 중요하게 여긴다.
혹 사람이 난경에 처해 힘으로 구제할 수 없는 경우 마땅히 급히 그를 위해 염불하여 그 영혼을 안정시켜라. 혹 고요한 밤 낭송하여 귀신에게 베풀라.
무릇 큰 역병이 도는 해에 오경(새벽 세시에서 다섯시)에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면 능히 사나운 원한을 소멸시킬 수 있느니라, 마땅히 생각할지니, 나는 이 일성의 아미타불이 위로 유정천에 다하고 아래로 풍륜에 다하도록 무량세계의 중생들이 일시에 이익을 받나니, 그 보시가 불가사의하도다.
28. 심념심청지명(心念心聽持名) : 마음으로 념하고 마음으로 듣는 지명
마음으로 기억하고 이후에 혀로 움직이며, 혀가 움직여서 마음으로 돌아오니, 혀로 소리를 내고 귀로 돌아와 듣는 것이 마음으로 념하고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마음으로 념하고 마음으로 듣는 즉, 눈은 절로 헛되이 볼 수 없고, 귀는 절로 헛되이 맡을 수 없으며, 몸은 절로 헛되이 움직일 수 없나니, 한사람의 주인공이 저 아미타불 넉자에게 출래(出來)를 청하니라.
29. 성중지명(聲中持名) : 소리 가운데 안주하며 부르는 지명
염불 소리가 이미 순숙하면 육진 가운데 오직 일성의 진만 있을 뿐이다. 육근의 작용이 전부 귀에 맡겨지니, 몸 또한 그 맴도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라.
혀 또한 그 진동함을 깨닫지 못하고, 의 또한 그 분별함을 깨닫지 못하며, 코 또한 그 호릅을 깨닫지 못하고 눈 또한 열고 닫힘을 깨닫지 못하니 관세음 대세지 두 보살께서 원통한 즉 하나이니라. 통하지 않음이 없고 원만하지 않음이 없으며, 근이 곧 진이고 진이 곧 근이며 근진이 곧 식이고, 십팔계가 융합하여 하나의 계를 이루니라.
초기에는 혹 고르지 못하여 오랫동안 마땅히 스스로 들어가야하고 무릇 염불할 때 깨끗한 자리 사오 척을 취하여 우로 한 바퀴 돌고난 연후에 서서히 소리를 내고 점점 소리를 크게 하여 이와같이 염불하여 세바퀴를 돈 후에 자기의 마음 소리가 드러나는 것을 깨닫게 되느니라.
태공을 맴돌고 시방세계 안에 원만하고 법계를 두루하는 것이 신심세계를 염불소리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서 염불하는 것이니 이것이 능히 마음의 때를 멸하는 수승한 경계이니 마땅히 힘써 이를 익힐지어다.
30. 광중지명(光中持名) : 광명 가운데 안주하며 부르는 지명
소리란 마음의 소리이고 광명이란 또한 마음의 광명이니라. 마음의 소리가 맴도는 곳이 곧 마음의 광명이 환하게 빛나는 곳이니라. 마음의 소리 가운데 안주하면서 염불한 즉 광명가운데 안주하여 염불하는 것이니 이 또한 능히 마음의 때를 멸하는 수승한 경계이니 마땅히 힘써 이를 익힐지어다.
31. 경중지명(鏡中持名) : 거울 가운데 부르는 지명
마음의 소리가 맴돌고, 마음의 광명이 환하게 빛나면 마음의 본체가 자연히 드러나는도다! 무릇 이 하나의 참 마음은 대원경과 같이 통달하여 막힘이 없어 시방세계의 나와 부처와 중생 · 탁한세상 괴로움의 수레바퀴 · 극락정토의 연꽃받침이 모두 거울 가운데 그림자이니라.
소리 가운데가 곧 광명 가운데이고 광명 가운데가 곧 거울 가운데이니 이는 능히 마음의 때를 영원히 멸하는 가장 수승한 경계이니 마땅히 신경을 써서 힘써 이를 익힐지어다.
32. 부단지명(不斷持名) : 중단함이 없는 지명
아침에도 염하고 저녁에도 염하며, 할 일이 없어도 염하고 일이 있어도 염하며, 깨끗한 곳에서도 염하고 더러운 곳에서도 염하여, 일념이 부처가 아닌 때가 없는 사람은 설령 일용의 응수로 중단하는 시간이 있더라도 그러나 그 언구를 끊어 능히 그 참 명맥을 끊을 수 없나니, 공부가 이에 이르면 덩어리를 이루기가 쉽나니라 !
33. 부잡지명(不雜持名) : 잡되지 않음의 지명
잡되지 않음이란 곧 그침이요 그침이란 선정의 기틀이니, 잡념을 그치면 정념이 나타나느니라! 잡념에는 세가지가 있으니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무기의 생각이니 이 세가지를 제거하여야 비로소 잡되지 않느니라.
마음은 적적하여야 하나니, 적적한 즉 선악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마음은 성성하여야 하나니, 성성한즉 무기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나니라. 즉 부처 이외에는 무념인 까닭에 항상 적적하고, 생각 가운데 부처가 있는 까닭에 항상 성성하니라.
34. 부주지명(不住持名) : 머무르지 않음의 지명
머무르지 않음이란 곧 관함이요 관함이란 지혜의 기틀이니, 앞의 일구는 과거이고 후의 일구는 미래이며 현재의 일구에 또한 머물지 않느니라. 분명히 깨달아 얻을 수 없으며, 얻을 수 없어 분명히 깨닫는다.
35. 즉선즉불지명(即禪即佛持名) : 즉선 즉불의 지명
혹 하나의 화두를 살핌을 일러 참선이라 하고, 혹 앉아서 혹 호흡을 관찰함을 좌선이라 하나니, 참하고 좌해야 모두가 선이니라. 선하고 부처이라야 모두 마음이나니, 선은 곧 부처의 선이고 부처는 곧 선의 부처이니, 염불법문이 어떻게 참선 좌선에 장애가 되겠는가?
무엇보다 참선하는 자는 이 아미타불 넉자를 잘 거느리고 마땅히 일구 화두로 간주하여, 염하고 염하여서 반복하여 버리지 않으면 참선을 말하지 않아도 선이 그 가운데 있도다. 참선하는 자는 일념이 상응에 이르러 확연히 허공에 기댄 듯 비로소 순조롭고, 염불하여 염이 일심불란에 이를 때 상응이 아니겠는가?
염이 심공(心空)에 이를 때 영원히 상응이 아니겠는가? 염불시에 혼침하지도 산란하지도 않고 지관정혜(止觀定慧)가 생각 생각마다 원만히 성취되니, 만약 달리 선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 선은 응당 다시 어느 곳에 있겠는가?
36. 즉계즉불지명(即戒即佛持名) : 즉계 즉불의 지명
부처님 계율을 지녀서 몸을 다스리고 부처님 명호를 지녀서 마음을 다스리고, 오랫동안 지니면 마음이 순(純)하고 오랫동안 지니면 마음이 공(空)하니, 념의 성품과 계의 성품이 둘이 아니니라. 융통성이 없이 계율을 지니면 벗어나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염불하면 곧 목숨이 다하는 때에 임해 생사의 갈림길을 타파하고 삼계를 벗어난다!
만약 계율을 받들어 공부가 있으면 바로 이로써 회향하여 반드시 중품에 나고, 고루 돌볼 수 없는 사람은 무엇보다 부지런히 염불하여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라.
37. 즉교즉불지명(即教即佛持名) : 즉교 즉불의 지명
일대장경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니 마음에 만약 부처가 없으면 가르침 또한 쓸데없어지니라. 그러나 마음 가운데 또한 어떤 사람이 부처가 없으리오? 스스로 염하지 않을 뿐이다!
교하(教下)에 아직 능엄경을 잃지 않은 자가 있고 능엄경을 읽었지만 아직 대세지보살을 가볍게 여기고 관세음보살을 중하게 여기지는 자가 있다면 곧 이는 한번 보아 생사의 근본을 성취하고 제멋대로 두루 갖가지 지능을 배우며 괴로움의 싹에 촉촉하게 물을 주어 생사의 전환점에 모두 힘을 얻지 못하나니, 원컨대 속히 내려놓고 서방극락에 왕생하여 아미타 부처님을 몸소 관하기를 바라노라.
만약 내려놓을 수 없다면 머지않아 이는 경전을 배우고 공덕을 연설하여 서방극락에 회향하여 네 가지 큰 원을 발하는 것 또한 헛되지 않으리라. 만약 정토일문을 홍양(弘揚)한다면 염불공덕을 상설한 즉 눈을 들어보고 생각을 움직이는 모두가 서방극락을 장엄하여 상품에 왕생하리니, 다시 되풀이하여 어찌 의심하겠는가?
38. 부지이지지명(不持而持持名) : 지니지 않되 지니는 지명
하나의 일이라야 완성하고 하나의 말이라야 파하나니, 아직 염불을 점찍어두지 않아도 넉자의 부처님 명호가 세차게 흘러나면 이것이 삼매가 쉽게 이루어지는 모습이니라.
39. 지이부지지명(持而不持持名) : 지니되 지니지 않는 지명
지명(持名)을 해태하지 않고 빨리 걷고 빨리 걸어서 염불 할 때 이 넉 자를 명백히 지니면 생각 머리가 전도되지 않으며 넉 자가 홀연 멈추고, 또한 곧 넉 자의 생각에 즉해 있지 아니하고, 또한 넉 자의 생각과 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또한 넉 자 이외의 생각이 있지 아니하면 이것은 잠시 수승한 경계를 얻음이라 이르니 진실한 마음의 공(空)이 아니니라.
그러나 열심히 염불하여 이 경계가 여러 번 나타나는 즉 점차로 마음이 공(空)하고 만약 일념으로 인하여 마음이 공하면 마침내 혼침(昏沉)을 몰아내니 무혜(無慧)라 이르니라.
마땅히 알지니, 마음 더욱 공(空)한 즉 생각 더욱 영영(靈靈)하고, 마음 더욱 공(空)한 즉 생각 더욱 청정하니, 이에 부처님 마음 가운데 나이고 나를 염하는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니 공(空)과 불공(不空)이 다시 어느 곳에 있는가? 비유하면 해와 달이 뚜렷이 젖어 보궁(寶宮)을 타고 수미산을 맴돌아 두루 흘러 천하를 비추나니, 아 ! 이것이 어떻게 묘각원명(妙覺圓明)이겠는가
40. 고신지명(孤身持名) : 몸이 외로울 때의 지명
비구가 도를 닦음에 도반을 구하지 않고, 염불의 경계에 고적한 것이 가장 적당하고, 높고 낮음에 조화가 있고, 느리고 빠름이 본분에 따르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마침 이때이니, 마땅히 알라.
몸은 외롭지만 마음은 외롭지 않고, 모든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의 마음이 잠시도 나를 버린 적이 없어, 뜻을 들어 부처님을 알고, 입을 열어 부처님을 듣는다면 어떻게 고적하다 근심하겠는가?
만약 정토법문을 아직 분명히 알 수 없다면 미타경·관경·지자(智者)대사의 십의론(十疑論)·천여칙(天如則) 선사의 정토혹문(淨土或問)·대우(大佑) 선사의 정토지남(淨土指歸)·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정토진종(淨土신종)·서방공거(西方公據)·서방확지(西方確指)·운서법회(雲棲法匯)·미타소초(彌陀疏鈔) 등의 정토서적들을 많이 사서 읽고 마땅히 부지런히 펼쳐 읽어야 하리라.
이는 잠시 명백하여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들어 말한 것이니, 이 밖에도 아직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들 수 없도다. 혹 정토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가 붙잡고 이를 물어볼지어다.
43. 성취타인지명(成就他人持名) : 타인의 성취를 위한 지명
혹 청정한 곳에 편안히 거하게 하고, 혹 함께 염불을 결기하고, 혹 정토의 일이 고해지고, 정토의 서적을 빌려주고, 혹 그 염불의 의심을 부수고, 혹 그 염불의 뜻을 굳건히 함이 일체의 공덕 중에서 이것이 수승하도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임명종시에 그를 위해 염불해주고 혹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아미타불 넉 자를 기억하게 하여 부처님을 이어서 기억하고[隨憶] 이어서 염하게[隨念] 한다면, 여래를 친견하고 이 사람이 기가 다하면 왕생하게 하리니, 그 법신 혜명(法身慧命)을 성취하는 것이로다!
44. 난중지명(難中持名) : 곤란 중의 지명
무릇 곤란 중에 발심하여 염불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이한 응답이 있으리라. 비록 방패와 창이 땅에 두루 하고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도 부처님의 가호를 구한다면 한번 즉하여 한번 편안하고 백번 즉하여 백번 편안하며 부처님이 아님에 사사로움이 있나니 또한 평등 광명 가운데 무심하여 응하니라. 무슨 까닭인가?
생각을 움직여 소리를 내어 아미타불의 광명이 나의 정수리 위에 머무는 것을 깨닫는다면, 곧 자연히 념념이 구족하고 념념이 견고하며 념념이 장구하며, 부처님 광명의 가피를 받고 길한 신이 옹호하며 저절로 곤란을 여읠 수 있으니, 생각을 바꾸지 말지어다.
45. 몽중지명(夢中持名) : 몽중의 지명
원력이 견고하고 공부가 성숙하면 낮에 이미 면밀하고 야간 또한 그러하면 곧 꿈 가운데 저절로 염불할 수 있으니 이는 왕생의 조짐이니 숨쉬는 것을 조화해서 정진하여야 하고 물러나지 말고 광란하지 말라.
46. 병중지명(病中持名) : 병중의 지명
병이란 죽음의 계기이니라. 죽음이란 범부와 성인, 정토와 예토의 관문이니라. 병중에는 응당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갖고 부지런히 부처님 명호를 염하고 결정코 죽음을 기다리면 필히 광명접인이 있어 나의 왕생 발원을 이루리니, 만약 병 중에 한 몫의 생각을 둘러보게 되는데, 즉 일체의 사랑·공포·번뇌, 갖가지 잡념을 안배하여 일제히 현전하니 생사의 전환점은 여하히 성사할 수 있는가?
옛날에 한 스님이 병이 심해 아야 소리를 내고 스스로 그것이 아님을 깨달아 곧 아미타불을 념하니 이와같은 통증이 절로 그치지 않고 아야 한번 소리내고 아미타불 한번 부르고 주야로 끊어지지 않아 병이 낫자 남에게 일러 말하길, 나는 병 중에 아야를 염하고 아미타불을 념하여 지금 병이 호전되니 아미타불께서 아직 계시고 아야 두자는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도다! 좋구나, 이는 병 중에 정진한 사람이니라.
47. 임명종지명(臨命終持名) : 임명종시의 지명
단지 아미타불 넉자를 기억하여 잊지 말고서 크게 념하고 크게 념할 수 있고 낮게 념하고 낮게 념할 수 있으며, 혹 높고 낮음이 모두 불능이고 또한 장차 넉자를 침묵으로 마음에 기록하여 망실하지 않고 좌우에 모시는 사람 또한 항상 이 넉자를 거느리고 번번이 일깨우나니, 마땅히 알라 백겁 일천 번의 생에 모든 날뛰며 돌아다닌 길이 전부 이때의 일념에 있어 끊어서 분명함을 얻으리니, 무슨 까닭인가?
육도윤회는 모두 일념이 주인이 되고 만약 일념을 부처에게 열중하고 있는 즉, 형체가 비록 무너질지라도 신명이 산란하지 않으면 이내 일념을 따라서 정토에 왕생하도다! 오호라! 단 아미타불 넉자를 기억하여 잊지말라.
48. 발원참회지명(發願懺悔持名) : 발원참회의 지명
오호라! 세상의 염불을 알지 못하는 자 많도다! 유학자 가운데 불교를 이단으로 배척하여 염불하려 하지 않고, 출가인은 염불을 재래의 습관으로 여기어 염불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마른 지혜 지닌 교학자(狂慧者)는 부처가 있음을 알지만 염불할 가치가 없다 여기며, 어리석은 자는 부처를 알지 못하여 염불을 할 수 없으니, 이것이 대체적인 상황이노라.
즉 요사이 어떤 시골의 어리석인 부부가 인과의 설법을 듣고 또한 염불을 알아서, 다음 생에 복보(福報)를 받게 됨을 희구하나, 옛날 그대로 변함없이 윤회의 종자가 되므로, 첫째 생사를 요달하기 위해 염불을 구하는 사람은 백명 중에 한 두 사람으로 매우 적도다.
모름지기 지식인은 이미 염불을 하여 곧 응당 자애심으로 염불(唸佛)하고, 자비의 행으로 행불(行佛)하고, 광대한 원을 발해 중생을 제도하며, 일체 온갖 때와 원한으로 뒤얽혀 있음을 널리 참회하고, 일체의 크고 미세한 공덕을 서방극락에 회향하여야 하나니, 그와 같이 할 수 있어야 염불의 정인(正因)이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