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4월 18일 저녁방송 법화경 제4 신해품(信解品-2)법문 녹취 정리

작성자미륵골|작성시간07.01.12|조회수194 목록 댓글 4
법화경 제 4 신해품(信解品-2)

안녕 하십니까?오늘 4월 18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월요일 입니다.어제 우리가 하루 쉬었죠. 오늘 법화경 공부 교재 137쪽
궁자의 비유 라고 하는 그 단락부터 공부 할 차례입니다.

요즈음 완연한 봄날씨이고 또 한참 기온이 아주 높아서 상당히 그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눈여겨 보게됩니다. 매일매일 다른 것 같예요. 사실 뭐 순간순간 다르고
시간시간 다르고 하겠지만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그 하루하루
새순들이 자라는 것이 다르 다는 것을 아주 볼수가 있습니다.

그 만큼 무럭무럭 잘 자라내요. 우리들 공부도 그렇게 잘 자랐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모르 겠어요 저도 공부하느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라고 있는지 어떤지 잘 알 수가 없어요.
저렇게 봄날씨에 그 새싹들처럼 저렇게 새싹들처럼 무럭무럭 자라야 할 텐데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궁자의 비유 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그 법화경에서 비유중에 아주 또 빼놓을수
없는 그런 중요한 그러한 비유입니다. 두 번째 비유죠. 이 비유는 이야기인 즉선 이야기는
간단한데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경전을 설하신 것을 이 하나의
비유로써 설명했다. 이렇게 이제 봅니다. 또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하면서 어떤 과정과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또 어느 경지에 까지 이르러야만 하는가. 하는것도 이 하나의 비유
속에서 다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이야기는 간단 하지만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뜻은 평생을 우리가 공부해야
할 내용이 함축 되어 있다고 이렇게 이제 보는 거죠. 이 비유는 부처님이 드신 비유가 아니고
제자들이 사대성문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공부해 오면서 오늘 법화경을 공부하게 되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 그 어떤 느낌 소감과 당신들의 깨달음의 경지 이것을 함축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 지난 시간 공부끝에 보면은저희들이 오늘 부처님 앞에서
성문들에게 최상의 깨달은에 대한 수기 주신것을 듣고는 마음이 매우 환희하여 미증유를
얻었습니다. 생각지도 아니하다가 이제 홀연히 희유(稀有)한 법을 듣고 매우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우며 저희들로서는 큰 이익을 얻었습니다. 마치 한량없는 보물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얻은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까지 아주 의미심장한 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한량없는 보물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얻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앞에서 표현한 대로
성문들에게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주었다. 이런 이야기 입니다. 이 궁자의 비유를
어떻게 해서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을 다 함축하고 있는 비유냐.
또 그렇다면은 우리 불자들이 공부를 해가는 그 과정이 결국은 이 궁자의 비유 하나 속에
다 포함되었다고 할수 있는가. 이걸 이제 마음에 새기고 들어야 할 내용이죠.

이 궁자의 비유는 그렇습니다. 경문을 이제 하나 하나 읽겠지만은 우선 줄거리를 간단하게
표현을 하면 부자(父子)가 있었는데 서로 이제 떨어지게 되요. 아들이 집을 나가게 되고
집을 나가서 객지를 혜매게 되는데. 완전히 거지가 되어 객지를 헤매게 되죠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그런 부자가 되어 있고 아들은 거지가 되어있고 이런 처지죠.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 집
에서 나중에 품팔이를 하게 되고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품팔이를 하게되고 그기서 하루하루
품값을 받아서 연명해가고 그러다가 차츰 차츰 그집에 출입을 자유자재하게 자유롭게
하게되고 그 다음에 그집안에 있는 보물을 재산 상황이란 든지 보물을 다 알게되고

나중에는 가서는 그집 재산을 전부 물려받는 된다. 그래서 이제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판명이되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선포를 하면서" 저 사람은 우리집 일꾼이 아니라
사실은 아들이다" 이제 그래서 모든 가업을 물려주게 되는 그런 이야기 인데.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들이 라고 보고 반가워서 수십년동안 찾아 헤매든 아들을 보자마자 단숨에
아들이 라고 찾아가서 덥석안을려고 했을때 그때 아들이 아버지란 생각을 미쳐 못하고
자기를 잡으러 온사람으로만 여기고 그만 놀라서 기절하게 됩니다.

그 놀라서 기절하게 되는 그런 순간을 부처님의 일생동안 경전을 설하신 내용에다 이제
비유하면 화엄경을 설 할때다 그래요. [궁자경악화엄시] 그렇게 합니다. 못난 아들이
아버지가 쫓아 오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가지고 그만 기절하게 될때가 호엄경을 설 할때다
그래 화엄경은 부처님이 최초로 설했다고 하는데 그 수준이 너무 높아서 너무 높아서
아무도 알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죠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십대제자 상수제자도 [여론양명이다] 마치귀머거리와 같고 맹인과 같았다 하는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와 같이 화엄경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그 높은 경지를 순수하게
그대로 설명한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도 이해 하느 사람이 없었다. 마치 여기
궁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반가워서 아들을 덥석 안으려고 갔지만은 아들은 놀라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기다 비유를 한거죠.

그 다음에 이제 아들을 일꾼들로 시켜서 유혹을 해가지고 여기 품팔이 할것이 있다 라고
유인을 해서 그집에서 거름을 쳐주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하는 그런 그 가장 하천한 일을
시키고 그기서 품값 좀 쳐주는 그런 정도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부장자의 아들
임에도 그야 말로 독자죠. 독자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기서 아주 저급한 일을 하는
그런 그 막 노동이나 품값이나 받는 그런 정도의 취급을 받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건
아함경을 설할 때다. 그래요 

그리고 그 다음에 차츰차츰 이제 근기가 상승해서 그집에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출입자재 방명시] 그래요 출입을 자유롭게 할때가 방등부의 경전을 설하든 때다.
그럽니다. 그 다음에 근기가 더 성숙 해졌어 그집에 재산 상황을 다 알게 되었다. 이 창고
에는 무슨 보물이 있고 저 창고에는 무슨 양식이 있고 어디에는 논이 얼마나 있고 어디에는
밭이 얼마 있고 또 외국에는 돈을 누구에게 얼마나 빌려줬고 이러한 재산 상황을 소상하게
알기까지 되느 그런 경지에 이릅니다. 그걸이제 [영지보물 반야시]라 그렇게 표현을 해요.

그 집의 보물을 다 알게 된것이 반야부의 설하든 때다. 21년간이죠. 그래 우리가 이제 
반야심경. 금강경.그외 대반야경 등등 이런 반야부 경전을 설하든 그 시기를 말하자면
그 집의 재산 상황을 다 알든 그러한 때와 같은 것이다. 이런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최후에 이제 팔년간인데 [전부가 법화시]라 해서 그 아들이 출입을 자유롭게
했죠. 보물이 있는걸 알았죠. 그러다가 어느날 관료들을 다 모아놓고 동네유지들을
다 모아 놓고 그래 놓고는 중대 선언을 하는데. 이 사람은 일꾼이 아니라 본래 내 아들
이 였다. 그런데 이러이러한 연유로 해서 우리집에 와서 품팔이도 하게 되었고 오늘날은
말하자면 나의 재산을 물려주게 되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렇게 알고 나를 생각하듯이 이 아들을 그렇게 생각하시요. 하고
가업을 전부 전해주게 되는 그런 그 법화시가 있는데 그래서 법화경을 설하는
때는 바로 그러한 시기에 해당된다. 그랬어요

그래서 아함 12 방등 8, 21재담반야. 종단 법화우 8년, 최초화엄삼칠 이런게송이 있어요
아함경은 12년동안 설하고 방등부는 8년동안 아함12 방등8 그래요 21재담반야 21년동안
반야부 경전을 설하고 그리고 종단법화 우 8 또 마지막으로 법화경8년동안 설했다
그리고 최초 화엄삼칠일 최초에 화엄경을 삼칠일 21일간 설했다 이렇게 이제 팔만대장경을
회통치는 그런 게송을 전통적으로 강원에서는 그렇게 외우게 되어 있어요.

아까 그 비유와 연관시켜서는 궁자경악 화엄시. 재분전과 아함시. 출입자재 방등시.
영지보물 반야시. 전부가업 법화시. 이렇게 외우는 게송과 아함 12 방등 8, 21재담반야.
종단 법화우 8년, 최초화엄삼칠 요렇게 외우는 두가지 게송이 있습니다. 그것만 외우면
아 몇년간 무엇을 설했는데 무엇을 어느단계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것을 정리해서
알수 있도록하는 전통적인 게송이죠.

그처럼 부처님의 일생동안 설법을 그렇게 다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고 또 그설법의 순서에
따라서 우리들의 불교에대한 정신적이 발전도 그렇게 발전되어 가야하는 것이다 하는
그런뜻에서 이 궁자의 비유는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아버지라고 하는 이는 세존이시고
또 이제 아들이 라고 하는 이는 우리에 해당되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그런 의미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쉬운 이야기이지만 또 경전이니까 한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우리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궁자(窮子)의 비유

(1)부자(父子)가 서로 떨어지다

3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 비유를 들어서 이 뜻을 밝히겠습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여 집을 나가서 다른 지방에서
십 년,이십 년 내지 오십 년을 살았습니다. 나이는 이미 많아졌고 곤궁하기가 막심하여
사방으로 헤매면서 의식(衣食)을 구하여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고향으로 향하
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아들을 찾아다니 다가 만나지 못하고, 중도에서 어느 도시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 집은 매우 부유하여 재물이 한량없고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파리.진주들이 창고마다 가득 차서 넘쳐 났습니다. 거기다가 노비와 시종들과 청지기 등
관리들도 많았습니다. 코끼리. 말. 수레. 소. 양이 무수히 많았으며, 전곡이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들이는 일이 다른 지방에까지 퍼져서 이 집에는 장사하는 이들과
거간꾼들이 들끓었습니다.

그 때 빈궁한 아들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두루 돌아다니고 이 지방과 저 지방을 지나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살고 있는 도시에 이르렀습니다.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아들과 이별한 지가 벌써 오십 년이 되었으나 아직 다른 이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한 번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홀로 한탄하였습니다.

나이는 늙었고 재산은 많아서 금. 은. 진보가 창고에서 넘쳐나는데 자식이 없으니
어느 때든지 죽게 되면 재산은 모두 흩어져서 전해줄 데가 없겠구나.’하고 은근히
기다리며 그 아들을 매일 못잊어하였습니다. 또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아들을
만나서 재산을 전해 준다면 무한히 즐겁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라.’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바지는 이렇게 거부장자가 되었는데 아들을 기다리면서 세월을 보내고 이 걱정
저 걱정 무려줄 재산은 많은데 물려 받을 아들은 도대체 돌아 올 줄 모르고 이 걱정
저 걱정 하고 있어 드라.

(2)부자가 서로 만나다

4 세존이시여, 이 때에 궁한 아들은 품을 팔면서 이리저리 다니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사는 집에 이르러 대문 옆에 머물렀습니다. 멀리서 그 아버지를 보니 사자좌(獅子座)에
앉아서 보배로 만든 궤로 발을 받들었고, 많은 바라문과 찰제리와 거사들이 공경히
둘러 모시고 있었습니다. 값이 천 만 냥이나 되는 진주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였고
시종과 하인들이 흰털로 만든 불자(拂子)를 들고 좌우에 시위(侍衛)하였습니다.

보배 휘장을 치고 꽃을 새긴 번(幡)을 드리웠으며, 향수를 땅에 뿌리고 여러 가지
훌륭한 꽃을 흩어놓았습니다. 보물들을 늘어놓고 내어주고 받아들이며 이러한 여러 가지
호화로운 장식들이 있어서 위엄과 덕이 높고 훌륭하여 보였습니다.
이런 표현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그 위덕과 이러한 것들을 표현한 내용이죠. 여기 뭐 아주 호화로운 그런
거부장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갖추신 그런 그 자비와 지혜와
온갖 힘과 두려움 없슴과 삼매와 선정과 해탈 부처님이 증득하신 모든 능력들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궁한 아들이 그 아버지가 큰 세력(勢力)을 가진 것을 보고는 곧 두려운 생각을 품고
여기에 온 것을 후회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저이는 아마 왕이거나 혹은 왕족일
터이니 내가 품을 팔고 삯을 받을 곳이 아니다. 다른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면 힘들여
일할 곳이 있으리라. 거기 가서 품을 팔아 의식을 구하면 쉽게 얻으리라. 만일 여기에
오래 있으면 나를 붙들어다가 강제로 일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이렇게 생각하고는
빨리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 집을 멀리서 바라보니 도대체 자기가 일 할 그런 그 수준이 아니거든요. 너무
화려하고 어마엄한 부잣집이라 품팔이 하는 사람도 이렇습니다.거름치고 청소하는
하찮은 일을 하는데도 어떤 집에서 하는가 하는 그런 격이 있다는 거죠. 이 못난 아들은
얼마나 격이 떨어지게 살았드지간에 그 하찬은 일도 이런집에서는 하찬은 일도 못한 다
이거죠.

아주 가난한 동네에서 가서 겨우겨우 사는 그런 마을에 가서 역시 품팔이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이렇게 까지 생각했든 것입니다. 하찬은일 거름치고 똥치고 청소하는 일 어느 집에
가서 하든지 역시 거름치는 일은 거름치는 일인것이고 마당쓰는 일을 하더라도 똑같이
마당쓰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으리으리한 집에서는 도저히 떨려서 겁이나서 못하겠다는
그런 못난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우리 중생들의 그 어떤 뭐라고 할까요
전혀 성인의 가르침을 접하지 못했을 때는 그저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못난 삶을
영위 해가는 그 당시의 그 사람의 입장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생각할수가 있습니다.

5 그 때에 부호인 장자는 사자좌에서 아들인 줄을 알아보고 크게 기뻐서 이렇게 생각
하였습니다. ‘나의 창고에 가득한 재산을 이제 전해 줄 데가 있구나. 내가 항상
이 아들을 생각하면서도 만날 수가 없었는데 이제 문득 스스로 왔으니 내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구나. 내가 비록 나이는 늙었으나 재산을 아끼는 마음이 변함이 없던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알아보고 아들은 몰라보지만은 아버지는 자식을 알아보고 저것이
내아들 이구나 가장 급한일 얼른재산을 물려주고 죽어야 할텐데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
스스로 찾아 왔으니까. 그생각부터 먼저 하게 되었다. 이것도 의미하는 바가 크죠
사실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최상의 경지를 자기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다 이렇게 전해
주고 일러주고 가르쳐주고 가는 것. 이게 열반을 앞둔 부처님에게는 큰 문제꺼리 였고
큰 마음의 짐이 였을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들 만난것 반가운것은 그건 둘째예요.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눈을 감아야
된다고 하는 이 사실이 크게 자신을 흔들었든거죠. 그래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뭐 아들 반가운것 좋습니다. 아들을 만나서 반가워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자기
재산을 물려 준다는데 그기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평생동안 갈고
닥으신 그 법력을 남김없이 우리 중생들에게 다 깨우쳐 줘야 할텐데. 오로지 자나깨나
그 마음 하나뿐이였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 할수가 있죠.

아들이 놀라 기절하다. 이게 이제 궁자경악화엄시 못난 아들이 놀라서 기절하고
마는 화엄경을 설할 때 화엄경의 경지는 높아서 아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그냥
경악할 뿐이다.그런 표현이죠.

(3)아들이 놀라 기절하다

6 그래서 곧 곁에 있는 사람을 빨리 보내어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데리러 갔던 사람이 빨리 쫓아가서 붙드니 궁한 아들이 크게 놀라서 원통하다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붙드느냐" 데리러 간 사람은
아들을 더욱 단단히 붙들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궁한 아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죄도 없이 붙들려 가게 되니 반드시 죽게 되리라." 하고 더욱 놀라서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거죠. 궁자경악화엄시라 못난 아들이 놀라서
기절하고 기절하고 말았다. 화엄경을 설했을때 근기가 하열한 중생들은 전부 놀라기만
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이렇게 했다는 거죠.
아버지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심부름꾼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필요 없으니
억지로 데려오지 말라. 찬물을 낮에 뿌려서 다시 깨어나게 하고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그 까닭은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이 용렬(庸劣)한 줄을 알았고 자신의
호화로운 부귀영화가 아들에게 두려움이 되는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같이 위대한 인생은 하열한 중생들에게는 오이려 두려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근기를 자꾸 성숙시켜야 그런 부처님의 경지도 우리가 한번 도전해
볼만한 경지다. 나도 [피기장부아역}이라 그대도 장부고 나도 또한 장부인데 난들 못할소냐
하는 그런 아주 큰 마음이 생기도록 그렇게 자꾸 우리가 마음을 스야 되겠죠.
여기표현이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못난 옹졸한 자식이란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에
그런 방편을 쓰게되었다는 거죠.

자신의 아들임을 분명히 알았지마는, 일종의 방편으로서 자기의 아들이라는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심부름꾼을 시켜서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제 내가 너를
놓아 줄 터이니 어디든 마음대로 가거라. 하였습니다. 궁한 아들은 좋아라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땅에서 일어나서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자기 수준에 맞는 그런 그 가난한 마을로 가서 밥벌이를 했다. 하는 얘깁니다

7 그 때 장자는 그 아들을 유인하여 데려오려고 한 방법을 생각하였습니다.
형색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생긴 두 사람을 비밀리에 보내면서 이렇게 일렀습니다
"너희들은 거기 가서 그 사람에게 넌지시 말하기를 저기 품팔 곳이 있는데 품삯은 곱을
준다고 하라. 그래서 그가 듣고서 만약 가자고 하거든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도록 하라.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묻거든 거름을 치는 일인데 우리들도 함께 일하겠노라고 하라"
그 때 두 사람은 궁한 아들을 찾아가서 앞서 말한 대로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궁한 아들은 장자의 집에 가서 삯부터 먼저 받고 거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한편 가엾기도 하고 한편 어이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자기 아들임에도 이렇게 그 어마엄마한 재산을 가진 그 자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름을 치는 기껏해야 가장 하천한일 거름을치는 품삯을 겨우 받아서 연명 해가는 그런일을
우정하고 있었다. 참 기가막힌 일이죠. 자기 아들이 그렇게 까지 되어있으니까. 그 이제
그런한 상태를 제분전가 아함시 분 똥을쳐주고 거름을 쳐주고 값을 받는 아함경
설할때다. 이렇게 표현해요

아함부 경전은 그 수준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법화경 입장에서 보면은 그래요
그래서 이것은 천태 지자스님이 교판한 교판내용인데 교상판석이라고 하죠. 팔만대장경
전부를 이 법화경 궁자 비유에 다가 배대를 해서 이렇게 배속을 시켰는데 아주
뛰어난 해석이라고 그렇게 봅니다. 그래서 제분전가 아함시죠.
못난 아들이 놀라서 기절하다. 그 다음에 아들을 유인하여 일을 시키다.

(4) 아들을 유인하여 일을 시키다

8 장자가 어느 날 창 틈으로 바라보니 아들의 몸은 야위어 초췌하고 먼지와 거름이 몸에
가득하여 더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곧 영락과 화사한 의복과 장식품을
모두 벗어버리고 때 묻은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또 흙과 먼지를 몸에 묻히고
오른손에 거름치는 기구를 들고 조심조심 일꾼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대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게으르지 말라" 고 하면서 그러한 방편으로 아들에게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가엾구나. 이 사람아 그대는 항상 여기서만 일하고 다른 곳으로는
가지 말라. 품삯도 차츰 올려 줄 터이다. 그리고 지내기에 필요한 그릇. 쌀. 밀가루.
소금. 초 따위도 걱정하지 말아라. 늙은 일꾼이 있어서 필요한 대로 줄 것이니 안심하고
지내라.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으니 염려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나는 늙은이요 너는
아직 젊었으며 너는 일할 적에 속이거나 게으르거나 성내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나쁜 점을 볼 수 없더구나
이런식으로 칭찬 하는 거죠.

그러면서 차츰차츰 접근합니다. 그 아들의 근기에 마추느 라고 그 호화로운 옷 다 벗어
던지고 가서 은근하게 그 아들의 근기에 맞는 그런 말만 넌져시 이렇게 하게 된 그런
처지입니다. 그래 우리가 내용을 미리 끝까지 알고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보니 얼마나
한심하고 딱한 일입니까.

우리가 지금 거부장자의 아들이면서 어쩌면 이 사람처럼 이러고 있는지 모르죠.
불교 라고 하는 참 이 어머어마한 가르침 속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건지니까. 불교라고
하는 정말 이 거부장자 보다 더 천배만배 훌륭한 법의 재산을 우리가 만났는데 여기서
우리가 얻어가는 것이 도대체 뭐냐구요 뭘 얻어가고 있는가 뭐 다야몬드가 잔득 쌓아져
있는 창고에서 기껏해야 돌 몇개 주어가는 것이 아닌가. 흙덩이 몇개 줏어 가는게 아닌가
이런 것을 우리가 경전의 말씀을 읽어면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낳은 친아들과 같이 생각하겠노라.
친아들이다` 라고 이렇게 
못하고 또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으니라고 이렇게 표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낳은
친아들과 같이 생각하겠노라고 우회해서 은근히 표현 하고 있죠. 아들이다 이렇게 말을
못하는거죠 아직... 하면서 장자는 그에게 이름을 다시 지어주고 자신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양아들 형식을 여기서 취하고 있는 거죠그 때 궁한 아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기뻤으나 여전히 스스로 머슴사리하는 사람이라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십 년
동안 항상 거름만 치고 있었습니다
그랬어요 경전에 20년이라고 그렇게 했는데

아함 12 방등 8  함함경 12년동나 설하고 방등경을 8년 설했습니다. 그럼 방등부 까지
합하면은 여기에 경전 표현대로 20년이 되는거죠. 방등부는 출입자재 방등시그러는데
기껏해야 이 집에 여기저기 청소하러 다니고 화장실 뭐 치고 거름치고 하러 다니느라고
이 구석 저 구석 출입 그저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이였죠.

방등부 경전도 이제 그런 수준에 해당 된다는 것입니다. 아함부 방등부를 합하여
20년 동안 항상 거름을 치고 있었다. 이렇게 이제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이렇게
분명하게 법화경에서 이렇게 해놧는데. 우리가 아직도 소승경전을 그렇게 무슨
참고로 읽는 정도는 괜찮지만 정말 뛰어난 대승경전이 많은데도 그것을 도외시 하고
소승경전에 만 탐착하고 그것이 불교의 전부인냥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이건
대단히 참 못난 일이죠.

그 때 궁한 아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기뻤으나 여전히 스스로 머슴사리하는 사람이라
자처하였습니다.
참 우리가 불교안에서 높은 차원의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그런
그 차원의 가르침은 별 관심이 없죠. 관심없고 수십년 절에 쫓아 다녀서도 아이구 나는
산신각이 좋다든지 아니면 뭐 어디 가서 어느 법당에 가가지고 내 평송에 해오든 대로
그냥 부모님 또는 집안 또 뭐 사업 자식들 이런 이들의 안녕이나 빌고 그리고 기도나 좀
하고 돌아 가겠다.

이렇게 수십년을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거죠. 수십년을 거름만 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되는데. 그 집 아들이면서 오직 하나뿐이 거부장자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입장으로 살아간다. 어떻게 보면은 근기가 그릇이 커지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 참 크지지
않는 만큼 그만큼 딱하구요. 우리가 불교와 인연 맺은 이 일이 보통 소중한 인연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늘 말씀 드리지만은 이런 불교 공부를 하는 일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선택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또 따라서 불교는 그런 표현을 당당하게 할수 있을 만큼 그런 그
가르침이고  그 속에는 인생에 필요한 무궁무진한 보물이 있다 라고 하는 이런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기서 다이아몬드 창고에 들어가서 돌이나 한 두 개 줏어 오고 쇠로된
쓰잘데도 없는 쇠붙이 몇개 줏어 오는 그런 불교신행을 하고나 있지 않는지 참 이점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 해봐야 되고 진정한 보물은 무엇인지 이것을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그런 그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대승경전 공부라고 하는 것이 이게 사실은 쉽게 접하게 되어서 쉽게
공부한다고는 하지만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지중한 인연으로 우리가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도 우리가 마음에 새겨서 참으로 우리가 불교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만났는데 가장 소중한 것 중에서도 또 가장 소중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부처님이 정말 가장 아끼는 그런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이왕이면 우리가 그것을 취해야죠
그것을 얻어 가야죠 글쎄 그게 얻는 것인지 취하는 것인지 버리는 것인지 그 결론은 나중에
우리가 알게 되겠습니다 만은 이왕이면 가장 값진 가르침을 만났고 값진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또 소중한 가르침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이런데서 우리가 한번쯤 반성 해보고 곰곰히
생각해서 우리들의 어떤 확신을 꿋꿋하게 세워야 할 그런 자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여기 이제 궁자의 비유라고 하는것은 이건 참으로 의미 심장한거죠. 오늘 법화경
궁자의 비유는 아직 비유 이야기가 좀 남았습니다 만은 여기 까지 하고 내일 우리가 또
반복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법화경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백련화* | 작성시간 07.01.28 _()()()_최상승의 대법 묘법연화경을 만나 신행하고 있음을 가장 큰 선택이고 가장 큰 행운이고 저의 삶 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 작성자백련화* | 작성시간 07.09.12 감사드립니다._()()()_
  • 작성자정법륜 | 작성시간 08.08.29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하면서 어떤 과정과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또 어느 경지에 까지 이르러야만 하는가. 하는것도 이 하나의 비유속에서 다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봅니다....나무묘법연화경
  • 작성자정법륜 | 작성시간 09.06.02 마치 한량없는 보물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얻은 것과 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