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심각하지만
분위기는 부드럽고 화기애애했어요.
큰스님 피곤하시겠다고 자꾸만 쉬시라는 지혜월님께
"지혜월, 오늘은 큰스님 기분 최상이니까 괜찮아."
하고 어느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2018년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봉정법회날과 똑같았어요.
이런 날은 없던 기운이 막 나는 거라고 옆에 계시던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것
데쟈뷰~하고 웃음이 났어요.
그때처럼 신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하고 마당에서 울려 나오는 웃음소리는 또
어떤 내용인지도 궁금하고, 잔치는 그런 것이죠.
신나는 곳을 찾아
마당으로 나가려는 저를 지혜월님이 부르시면서 방안에 큰스님께서 킵(keep) 해 두신
설정스님의 글씨들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하셨어요.
횡재죠. 저는 너무 신나서 사진을 찍었어요.
낙관을 찍으러 설정스님은 다시 한 번 화엄전을 방문하셨을까요?
이 글씨들 덕분에 큰스님께서 쉬시고
화엄경 법문도 하시는 방안에 묵향이 은은했어요.
올해 8월 30일에 화엄경에서 성내지 말라는 홍도비구 게송을 배웠고,
9월 법회때 화엄전에 갔을 때
사기를 치는 사람을 만나서 최근 어마무시하게 화가 나서 크게 당황했다는
대선스님에게 큰스님께서 '일기진심수사신(一起瞋心受蛇身)'이라고 적어서 곳곳에 눈에 띄게 붙여놓고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원래 그렇게 벽에 붙여놓고 공부하는 거야."
"큰스님은 어릴 때 공부하면서 무슨 글귀들을 붙여놓으셨어요?"
하고 제가 여쭤봤어요.
"나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스님들 사진을 붙여놨지."
"예?"
게으르고 싶을 때 저 사람은 얼마나 공부하고 있을까, 그래서 정신차리고 공부하셨다는
취지였던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은 원효스님 의상스님이 라이벌이신가봐요?"
"그래? 그렇지."
하하 하고 큰스님께서 웃어주셨어요.
큰스님의 방에는 법성게(法性偈)와
장대교망(張大敎網) 녹인천지어(漉人天之魚) 도장이 걸려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