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마지막 자존심 그것은 자신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버려 가면서 무엇을 얻자는 말인가?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고 뜻이 있다. 그렇기에 내가 소중하듯 상대를 공경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존이 없을 때 진정으로 상대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공경은 내가 나를 이해하듯 상대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무엇을 진정 이해하고 있는가? 이해가 없으면 독단과 독선으로 흐르게 됨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그 속에는 무지(無知)라는 속성을 항상 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빠져있는가? 무조건 자기는 옳고 상대는 잘 못되었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병폐이다. 이해는 다가서는 것이고 진실로 여백의 멋이 있다.
흔히 우리는 일본의 국보 다완 기좌애몽 대정호(大井戶)에 잘 못된 개념에 빠져있다. 과연 우리가 말차에 심취되어 있어서 그럴까? 선조 도공의 혼이 그리워 그럴까? 문제는 말차에 심취되어 있지도, 선조의 혼이 그리운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존도 없이 맹목적 추종과 고도의 상업적 이해타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도 나도 우상화된 다완에 본질이 왜곡되어 가고 있음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의 자존을 지키는 것은 지금보다 차원 높은 다도로 회귀하는 것이고, 기좌애몽의 모방의 환상에서 벗어나 독창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독창성의 개발 그것은 오직, 철저한 말차 다도수업을 통한 체험으로 다져 져야 한다. 머릿속의 얕은꾀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불가능이 통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사회이다. 왜 통할까? 진정한 마음을 쓰는 이가 없기 때문이며,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모두 길을 잃고 있다. 해소의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 그래서 안내자인 스승이 그리운 법이다. 스승을 찾지 않고 참된 가르침을 외면할 때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떠하겠는가? 우리의 자존을 세울 길을 지금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자립(自立), 스스로 서는 자는 한 눈 팔지 않는다. 구차하게 남의 명성을 갖고 살림을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문에 독립적이며, 창의성이 있다. 모방은 자립인의 수치요, 모욕이다. 좀 더 개성적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만큼 목숨을 건 사투가 있어야 한다. 그 길은 무엇일까? 노력밖에 없다. 진실로 승부하는 길이다. 왜 이 길을 두려워하는가? 쉽게 얻으려는 습성 때문이다. 결코 담으려 하지 말고 그대만의 길을 개척하라. 그 길은 결코 외롭지 않다.
이제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 자존인 을 찾고, 자립인 에게 갈채를 보내자. 여기에 혼을 더한다면 또 다른 차원이 전개된다. 혼이란 무엇인가? 지워지지 않는 자취요, 다하지 않는 생명이다.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독창적이어야 하며, 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성이 있어야 한다. 깨달음의 다도에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뜻을 바탕으로 우리의 국보 다완을 창조해 낸 것이다.
넉넉하기는 깨달은 이의 마음 같고, 그 마음을 담기에는 너무도 소박하여 자취를 잊었다. 함께 하기에 모난데 없고, 흐름에는 자연(自然)과 같다. 세월의 나이는 많지 않지만 그 세월을 넘어 섰고, 세상의 부귀공명에 무심했다. 무기교를 말하지 않아도 무기교를 넘어섰고, 갖추지 않아도, 본래 자태가 넉넉하다. 우주를 담는다 말은 안 해도 본래 우주와 같았고, 한결같음이야 이만한 걸물이 있겠는가? 그래서 초암선다류의 제일 국보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차 다도에 심취된 만큼의 도구의 가치도 상승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하자 아무리 훌륭하여도 밑받침이 주어지지 않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기에 1차적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1차적 책임을 다하기 전에 우리의 자존(自尊)을 버리고 자립(自立)의 의지(意志)가 없다면 또 다른 차원을 전개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데로 공부와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쯤에서는 다도를 수행의 차원으로 새롭게 전개시키고자 하는 것은 일본의 이천가(裏.千家), 표천가(表千家)를 넘어 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도구 특히 묵적, 다완, 다입(茶入)은 이러한 의미를 담기에는 소중한 도구(道具)이다.
깨달음의 다도 초암선다류는 이러한 뜻을 전개 시키고자 형성된 대한민국의 말차전문의 다도 가문이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자존이며, 자립이며, 혼이다. 그래서 앞서가는 이를 향해 겸손이 배우고, 익히며,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노력하고 있다. 그 중심에 대정호(大井戶) 순청절점(純淸絶點) 다완(茶碗)이 있다는 것은 기좌애몽을 능가하고 있다. 이 말에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출처: www.말차.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