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장구대다라니_여강스님
【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법 】
옛 큰스님들께서는 늘 참선을 시작하기에 앞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함으로써
업장을 소멸하고 마음을 비웠다고 하고 있습니다.
용성스님께서도 신묘장구대다라니 백만독을 하고 났더니
업장이 가벼워지고 그러고 난뒤 참선을 수행하니까
훨씬 공부하기가 쉬우셨다고 했다고 합니다.
선방의 스님들께서도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은 많이들 하십니다.
저 또한 행자때 스님들께서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 하시는 것을 많이 보아왔고
함께 독송하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수경과 천수경 안에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얼마나 많이 독송되는 경전인지는 잘 아시지요?
더구나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그리 길지 않다 보니
한 1,000여번 독송을 하고 나면
잘 모르시는 분들도 외우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외우고 난다면 한독을 외는데
한 일분 정도면 될 정도로 짧은 다라니입니다.
처음에는 10독 외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입니다.
입에 붙지도 않았고, 아직 외우지도 않았다 보니
처음에는 몇십독 하기도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많이 외다 보면 입에 딱 붙고
쉽게 외워지기 때문에 독송하기가 훨씬 수월해 질 것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복사를 하던가 해서
손바닥만하게 복사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외시고 그러다 보면
몇 일 안가 다 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부터는 쉬워요.
항상 생활속에서 독송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차를 운전해 가면서도 몇독씩 독송할 수 있고,
잠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도 한 열독씩 할 수 있으며,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몇 십독씩 독송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같으면 차를 운전하여
한 시간 정도가 되는 거리를 간다면
음악을 잠시 꺼두고 신묘장구대다라니 염송을 하면 빠를 땐
1시간 정도면 충분히 108독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처음에는 한 두시간 나중에는
한시간 정도를 짬짬이 나누어 시간을 낸다면 충분히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독송할 때의 한 가지 주의점은,
반드시 독송은 지(止)와 관(觀)이 함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란 멈춤, 비움, 놓음을 의미합니다.
독송하면서 마음이
온갖 생각이나 번뇌들로 물들게 하지 말고
그 모든 생각들을 다 놓아버리고
말끔히 비워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멈춤의 지(止)의 수행,
비움의 수행에서 정(定),
다시 말해 삼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삼매를 얻게 된다는 말에 걸리지는 마세요.
도대체 어떤 것이 삼매인가 하고 따지지 마세요.
그냥 하세요.
독송을 하면서 다른 생각이 일어나거나,
잡념이 끊임없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어떤 시비도 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곧 알아차리세요.
잡념이 일어나면 '잡념이 일어남'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대로 잡념은 사라지고
다시금 정(定)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불교의 모든 수행에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두가지 수행법인 것입니다.
지(止)와 관(觀)이 빠지면 불교 수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염불할 때도 비우고 관해야 하며,
독송할 때도 좌선할 때도
위빠싸나나 간화선을 할 때도
지와 관, 정과 혜는 항상 함께 해야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하면서
독송하고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십시오.
잡념이 일어나면 잡념이 일어남을 관하고,
소리가 들리면 소리가 들림을 관하며,
몸이 결리고 가려우면 결리고 가렵다고 관하면서
다만 꾸준히 독송을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중에
신묘장구대다라니 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를 하십시오.
그 시간은 내 마음이 비워질 수 있는 시간이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루 중에 얼마만큼 마음을 비우고 관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대로 내 마음의 평화와 직결될 것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 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고요해질 것이고 평화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평화나 고요를 바라면서 독송을 행하지는 마십시오.
다만 그렇게 하기만 하세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뜻을 새기고자 애쓰지 마세요.
뜻을 새기지 않았을 때
아무런 잡념도, 분석도, 해석도, 분별도 사라질 것입니다.
언어를 해석하게 되면
연이어 그 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지고 견해가 많아지며
자기 잣대로써 그 말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해석된 내 식대로의 진리이고,
내 견해대로 분석되어진 알음알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다라니는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해석을 하지 않고 다만 독송하면서 비우고 관하기만 하세요.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비움과 관을 통해
삼매와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터득할 수 있을 것이란 이 말에 걸리게 되면
그런 것은 터득할 수 없어요.
본래 그런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말일 뿐입니다.
다 놓아버리고 다만 행하기만 하세요.
지관과 정혜는
그대로 우리 안의 불성을
본래 성품을 발현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비좁은 길이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만 많이 읽는다고,
스님들 설법만 많이 듣는다고,
공부가 저절로 익어가지는 않습니다.
내 스스로 실천하며 수행하고
간절한 마음을 모아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것은 내 안에서 체험되지 않습니다.
배우는 것은, 읽거나 듣는 것은, 채우는 공부일 뿐입니다.
채우는 공부는 비우는 수행이 바탕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부디.
상을 놓아버리시길.
공부 많이 했다는 상을 비우시길.
알음알이로 나 잘난 마음을 키워가지 말고
부디 묵묵히 실천하시길.
그 실천에도 '잘하고 있다'거나 '수행이 안된다' 거나..
'난 참 수행을 잘하는 사람'이라거나 하는 견해도
놓아버리시길.
부디 다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면서
그 소리와 하나 되시길.
그 다라니로 인해 마음이 비워지고 지혜가 충만해지시길.
그래서 회향하는 날
경전이나 책을사서 이웃에게 나누어 주거나,
복지시설이나 어려운 이웃 돕기에 동참해도 좋고,
가까운 절에 가서 회향해도 좋을 것입니다.
좋은 회향을 위한 좋은 기도를 시작합시다.
출처: 미주현대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