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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입법계품 제40강-枝末法會, 德雲比丘(大方廣佛華嚴經 解釋)

작성자은우|작성시간08.01.25|조회수671 목록 댓글 37

[무비스님 화엄경 입법계품 제40강 (枝末法會, 德雲比丘)

 

2. 正示法界

......如東方하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하니 一一方中의 所有諸佛이 種種色相과 種種形貌와 種種神通과 種種遊戱와 種種衆會의 莊嚴道場과 種種光明의 無邊照耀와 種種國土와 種種壽命으로 隨諸衆生의 種種心樂하야 示現種種成正覺門하사 於大衆中에 而師子吼하시니라

 

화엄경(華嚴經) 참 쉽지요? 세상에 이렇게 쉬운 글이 어디 있어요? 글로는 아주 쉬워요. 그 뜻이 무어냐? 마음에 와 닿는 그게 중요해요.

지금까지는 동방만 이야기 했어요, 이렇게 많은 부처님이 끝없이 끝없이 동쪽으로 오듯이 남서북방과 사유상하(四維上下)도 역부여시라, 동쪽으로 그 많은 부처님을 보듯이 또한 서쪽으로, 남쪽으로, 북쪽으로, 간방(間方)으로, 상으로, 하로 똑같이 그렇게 많은 부처님을 본다고 해 놨어요.

그럼 이게 무슨 말이냐?

동쪽으로 보는 부처님만 하더라도 그 수가 도대체 얼마입니까? 무수한 부처님, 무량한 부처님, 무변(無邊) 무등(無等) 불가수(不可數) 불가칭(不可稱) 불가사(不可思) 불가량(不可量) 불가설(不可說) 불가설불가설불(不可說不可說佛)과 내지 염부제미진수불(閻浮提微塵數佛)과 사천하미진수불(四天下微塵數佛_과 천세계미진수불(千世界微塵數佛)과 이천세계미진수불(二千世界微塵數佛)과 삼천세계미진수불(三千世界微塵數佛)과 불찰미진수불(佛刹微塵數佛)과 내지 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부처님, 이런 많은 부처님을 본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부처님을 딱 정해놓고 생각을 해요. 지장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 그런 분만 훌륭한 성인으로 치고, 또 역사적으로 존재하신 어느 조사스님, 아니면 어느 큰스님, 이런 식으로 전부 차별화 분별화 하는 선을 긋고 점수를 매겨놓고는 친견을 하고 그럽니다.

기도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어디는 좋은 기도처이고 어디는 덜 좋은 기도처이고, 요렇게 급수를 전부 매겨놓습니다.

장소에도 그러지만 선지식이나 성인을 대해서도 역시 그 나름대로 점수를 매겨 놓은 뒤 찾아 가서 기도를 하고 친견을 하고 그래요.

그게 우리 중생들의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동방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서북방 사유상하의 이 많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사람 아닌 동물, 식물, 광물 등 모든 존재를 전부 똑 같이 부처님으로, 선지식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화엄경이 어렵다고 하는 건,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느냐 안 닿느냐, 이런 이치가 가슴에 와 닿느냐 안 와 닿느냐 하는 그 점이 어려운 거예요.

 

우리가 살다보면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우연찮게 생각지도 않은데서 일이 풀리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저 사람이 나에게는 부처님이다.” 이러잖아요. 이럴 때가 있거든요. 살다보면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어느 절의 법당에 가서 기도를 하다 보니 그 절의 부처님도 아니고, 그 절의 스님도 아니고, 그 절에 다니는 신도도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서 우연찮게도 그 어려운 문제가 확 풀려 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그럴 때야말로 ‘그 사람이 나에게는 부처님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이라고 하는 ??을 우리는 아직 어리석어서 분별을 하지만 화엄경의 차원에 오며는 특별히 어떤 형식을 갖춘 그런 이가 부처님이다 하는,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를 떠나서 어떻게 이 많은 부처님이 있겠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석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부처님을 마음속에 그린다면 도대체 그런 부처님이 얼마나 있어서 이런 숫자를 채울 수 있겠느냐는 거지요. 채울 수 없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예요.

팔만대장경 안에는 불명경(佛名經)이라는 경이 있는데 그 속에는 천불명호경, 만불명호경 그런 것이 있어요. 기껏해야 만불명호경이지요. 십만불명호경도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래봤자 십만불명호경 밖에는 안 되지요. 이 경전 내용과 비교가 돼요, 안돼요? 어림도 없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이냐? 결국 모든 사람,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약찬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 주지신(主地神) 주하신(主河神)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그 무슨 말입니까? 바람신(神,) 물신(神), 불신(神), 하늘신(神)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이 아닌 게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다 부처님이고 이 세상은 바로 佛세계, 화장세계라는 거지요.

화엄경에서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세계가 화장세계이거든요. 아미타경의 이상적인 세계는 극락세계지요,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이상세계를 화장세계라 그래요.

그 화장세계도 결국은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의 이 장소가 화장세계이지 이 장소를 떠나서 딴 화장세계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많은 부처님을 친견한다고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본다는 거예요.

부처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입니다!

 

법화경을 공부하신 분들은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상불경보살품]이라고 아주 미묘한 품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상불경이라는 보살이 나옵니다. 이 보살은 염불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경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을 향해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께 예배 올리듯이 예배를 올리는 거예요.

예배를 올리면서 하는 말이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는 진심을 다해서 하는 이야기지요. 정말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니 까짓게 뭔데 나보고 부처된다며 부처님께 하듯이 예배를 하느냐”며 욕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때리기도 합니다. 상불경보살은 멀리 피해가서는 또 그 사람을 향해서 예배를 하고 절을 하면서 “아무개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며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예배 공경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수행을 삼습니다.

이처럼 법화경에서도 결국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거예요.

 

화엄경의 이치대로 우리가 수행을 다 하기는 어렵고하니 만 분의 일, 십만 분의 일로 팍 줄여서라도 수행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야겠지요.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 하면

첫째, ‘우리 식구가 다 부처님이고 내가 아는 사람이 다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자꾸 해야 하는 겁니다.

안 되지, 그게 되나요? 미워 죽겠는데 그게 어떻게 부처님으로 보입니까. 경에서는 틀림없이 부처님이라고 하지마는 도대체가 부처님으로 안 봐진다고요.

그런데 나하고 인연 있는 그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게 제일 급선무지요.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을 보는 거 그거 사실 별 의미 없어요.

그건 훈련이고 연습이지요. 실제로 집에서 우리 식구들을 부처님으로 보고, 우리 이웃을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훈련을 자꾸 쌓아야 돼요.

그것 참 어려운 주문이지요. 어려운 주문이지만 이 말을 새겨듣고는 직접 실천을 해서 아주 어려운 일을 실제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미워서 죽겠는 그 사람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하루 세 번씩 절을 하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죽었으면 죽었지 못하겠다고 해요, 그럼 출근한 뒤에 책상 위에 사진이라도 올려놓고 절을 세 번씩 하라고 해요. 한 달만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다음은 틀림없이 달라져 보인다고요. 한 달 후에는 그 사람 앞에서 직접 절을 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훈련을 하라는 겁니다.

한 달만 사진을 올려놓고 혼자서 절을 해보라니까요?

아, 절에 가는 것보다 돈도 안 들고 좋잖아요? 진짜 그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게 하고부터는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좋게 되는 그런 상황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실지로 있어요.

그 이야기도 화엄경의 이야기에 비하면 사실은 천분의 일, 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거예요.

 

여기 한 번 보십시오.

이 많은 부처님들,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님인 거지요. 화엄경이 좋다는 것은 일체 존재를 전부 부처님으로 격상시켜 주는 데 있어요. 여러분도 전부 부처님이요, 여러분도 부처님인데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똑같이 부처님이지요.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고 화엄경에서 언필칭(言必稱) 하는 말 아닙니까?

마음과 중생과 부처가 차별 없이, 똑 같이 하나라는 거지요.

걸핏하면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하거든요.

덕운비구 편의 본문에 별다른 내용이 뭐 있습니까? 동방으로 일불, 이불, 십불, 백불, 뭐 천불이라며 그 많은 부처님들의 숫자만 나열했지요, 이런 부처님들을 내가 친견한다는 거지요. 동방과 같이 남서북방 사유상하가 역부여시하다고 그렇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 다음

일방(一方) 중의 소유제불(所有諸佛)이, 동방 남방 서방 북방 가운데 있는바 모든 부처님의 종종색상(種種色相)과, 일일이 얼굴색상이 다 다르지요.

종종형모(種種形貌)와, 얼굴 모양이 다 다르지요. 가지가지 형모와

종종신통(種種神通) 종종유희(種種遊戱), 어떤 생활과 노는 것이 다 다르지요. 유희란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노는 것이지요. 모든 부처님들이 무얼 하며 놀든지 간에 노는 모습들이 다 다릅니다.

또 종종중회(種種衆會)라, 그 사람은 그 사람들대로 모임이 다 있어요. 무슨 깡패 모임이든지 놀러가는 모임이든지, 무슨 춤추는 모임이든지, 노래하는 모임이든지 그런 모임들이 있다고요.

장엄도량(莊嚴道場)이라, 그 나름대로 자기들의 장소가 다 있어요.

종종광명(種種光明), 가지가지의 광명, 마음 씀씀이

무변조요(無邊照耀), 끝없이 펼치는 마음 작용들,

종종국토(種種國土)와 종종수명(種種壽命), 또 가지가지 국토와 가지 가지 수명 그런 것으로서

수제중생(隨諸衆生)의 종종심락(種種心樂)하야, 또 다른 사람들의 가지가지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지고서

시현종종성정각문(示現種種成正覺門)하사, 가지가지의 어떤 바른 깨달음, 정각문을 나타내 보이사

어대중중(於大衆中)에 이사자후(而師子吼)하시어, 대중 가운데서 그 나름대로의 어떤 표현을 하신다는 거지요.

 

석가모니부처님이 말씀 하시는 것처럼 표현을 했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이나 여러분의 삶이나, 소나 말의 일생이나 다 그 나름의 삶은 그 만치의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거예요. 석가모니만 훌륭한 삶 의미 있는 삶을 산 게 아니라 저기 서 있는 이름 없는 나무 한 그루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 못지않은 훌륭한 삶을 살았어요.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의미와 존엄성과 가치성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함부로 자기 인생을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에요.

왜냐 하면 부처님을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석가모니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의 삶이나 석가모니의 삶이나 한 인생의 가치로 보면 똑 같아요.

그는 그이 나름의 삶의 가치를 한껏 펼치며 살았고 우리는 또 우리 나름대로 한껏 삶을 어쨌든 살아가는 거예요.

식물이든 동물이든 모든 존재는 같아요. 하루살이라고 칩시다. 하루살이는 그 나름대로 하루 동안 ‘애~앵~’하며 자기를 한껏 표현하며 자기의 삶을 한껏 펼치다 가는 거예요.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거예요. 하루살이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어요. 자기의 그 ‘앵~’ 거리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요.

석가모니가 부처가 됐든 관계가 없는 거지요.

 

우리가 가만히 화엄경의 도리를 생각해보면 이게 참 맞는 거예요. 그래서 화엄경의 가르침은 일체 모든 존재를 부처의 삶으로 격상시켜 주는 것이지만, 사실은 격상이 아니라 본래 그 모습이에요. 올라간 것도 아니고 내려간 것도 아니고 사실을 사실대로 그대로 알려주는 거지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러한 것들을 다 친견한다는 거지요.

 

덕운비구는 문수보살을 빼고 보면 처음 만난 첫선지식이지요. 첫 선지식의 첫 법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바로 맨 처음으로 나온 덕운비구편이며 발심주(發心住) 아닙니까?

처음으로 마음을 낸다고 해요. 십주(十住) 중의 초주가 발심주(發心住)이지요. 처음 마음을 낸다는 거지요.

그럼 마음을 어떻게 내느냐? 이런 마음을 내어야 준비가 제대로 되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내고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그 마음속에 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은 별 것 아니면서도 그 속에 담고 있는 뜻이 무궁무진한 거예요. 발심했다는 발심주 법문이 이러 이러하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이 화엄경 공부는 대심(大心)공부, 마음 큰 공부라고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불교에 처음 입문을 했던지, 여기서 경전을 처음 대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화엄경과 인연을 맺었으면 일단은 대심공부야. 마음 큰 중생, 대심중생 또는 대심 법문입니다.

그런 큰 마음을 가진 범부라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자세이지요. 정말 까마득하고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상불경보살도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부처님이다”그랬어요. 무슨 소나 돼지를 만나서 “당신이 부처님이다”라고 했다는 그런 말은 없고 사람을 만났을 때 부처님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우리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려면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요.

 

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 전체는 못되더라도 가장 가까운 우리 식구, 우리 이웃, 나와 인연 있는 사람만이라도 부처님으로 대하자는 거지요. 겉으로 못하면 가만히 속으로라도 ‘저게 저 인간 같지 않아도 그래도 부처님인데...’ 이런 생각을 해야 해요. 그런 생각을 한다 해도 경전의 내용에 비하면 만 분의 일도 안 되게 축소된 거지요. 그렇지만은 우리가 마음가짐을 그렇게라도 가지게 되면 화엄경 공부를 한 보람이 있지요.

 

3. 謙己推勝

善男子야 我唯得此憶念一切諸佛境界智慧光明普見法門이어니 豈能了知諸大菩薩의 無邊智慧와 淸淨行門이리오 所謂智光普照念佛門이니 常見一切諸佛國土의 種種宮殿이 悉嚴淨故며 令一切衆生念佛門이니 隨諸衆生心之所樂하야 皆令見佛하고 得淸淨故며 令安住力念佛門이니 令入如來十力中故며 令安住法念佛門이니 見無量佛하고 聽聞法故며 照耀諸方念佛門이니 悉見一切諸世界中等無差別諸佛海故며 入不可見處念佛門이니 悉見一切微細境中諸佛自在神通事故며 住於諸劫念佛門이니 一切劫中에 常見如來諸所施爲하야 無暫捨故며 住一切時念佛門이니 於一切時에 常見如來하고 親近同住하야 不捨離故며 住一切刹念佛門이니 一切國土에 咸見佛身이 超過一切하야 無與等故며 住一切世念佛門이니 隨於自心之所欲樂하야 普見三世諸如來故며 住一切境念佛門이니 普於一切諸境界中에 見諸如來가 次第現故며 住寂滅念佛門이니 於一念中에 見一切刹一切諸佛이 示涅槃故며 住遠離念佛門이니 於一日中에 見一切佛이 從其所住而出去故며 住廣大念佛門이니 心常觀察一一佛身이 充 一切諸法界故며 住微細念佛門이니 於一毛端에 有不可說如來出現이어든 悉至其所하야 而承事故며 住莊嚴念佛門이니 於一念中에 見一切刹에 皆有諸佛이 成等正覺하야 現神變故며 住能事念佛門이니 見一切佛이 出現世間하사 放智慧光하야 轉法輪故며 住自在心念佛門이니 知隨自心所有欲樂하야 一切諸佛이 現其像故며 住自業念佛門이니 知隨衆生所積集業하야 現其影像하야 令覺悟故며 住神變念佛門이니 見佛所坐廣大蓮華가 周遍法界하야 而開敷故며 住虛空念佛門이니 觀察如來所有身雲이 莊嚴法界虛空界故니 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이리오

 

그 다음 3번은 겸기추승(謙己推勝)이라, 자기 자신은 겸손하면서 스스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미루어주고 양보해 주는 그런 내용이에요.

선남자야, 아유득(我唯得), 오직 나는 이것만 얻었다. 무엇을 얻었는고 하니 이, 일체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기억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얻었다.

부처님을 생각한다고 아까 그랬지요?

부처님을 생각하는 지혜광명보견법문(智慧光明普見法門)이어니,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는 지혜광명보견법문을 나는 얻었다는 거지요.

이 법운비구가 말이에요, 지혜의 광명으로 널리 전체적으로 본다는 거지요. 모든 중생을 부처로, 전체를 부처로 보는 그런 법문을 내가 얻었거니와, 어찌 능히 알 수 있겠나, 요지할 수 있겠나, 무엇을?

대보살(大菩薩)의 무변지혜(無邊智慧)와 청정행문(淸淨行門), 다른 보살들의 모든 지혜, 가이없는 지혜와 청정한 수행을 어찌 내가 알 수 있으리오.

그러면 이런 청정지혜라는 것이 뭐냐? 소위지광보조염불문(所謂智光普照念佛門), 여기는 전부 염불문으로 나와요, 지혜의 광명 널리 비치는 그런 염불문, 또 상견일체제불국토(常見一切諸佛國土) 종종궁전(種種宮殿)이 실엄정고(悉嚴淨故)로, 일체 제불 국토의 모든 궁전이 아주 장엄하고 청정한 것을 항상 보는 연고다.

 

그다음 두 번째는 영일체중생염불문(令一切衆生念佛門)이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문인데, 그건 왜 그렇습니까?

모든 중생들의 마음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개령견불(皆令見佛)이라, 이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지요. 그러니까 부처님께 인도하려고 하더라도 중생들의 마음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가지고서 다 부처님을 친견하게 한다는 거지요. 친견해서 청정함과 훌륭함을 얻게 하려는 연고라고 그랬어요.

사실 불교를 소개하고 불교로 인도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잘 알아 가지고 중생의 마음이 즐겨하는 바 좋아하는 바를 가지고 달래야 되지요.

만약에 예뻐지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어느 절에 가면 샘물이 있는데 그 물을 떠다놓고 집에서 마시면 효과가 적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마시면 예뻐진다더라, 여기서 말하는 게 이런 거지요.

말하자면 중생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달래야 돼요. 거기 보십시오, 경전에 그렇게 해 놨지요. 그걸 가지고 소개를 해야 돼요. 무턱대고 “화엄경 공부 좋단다” 해서 와보면 아무 것도 아닌걸.

기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곳으로 인도를 하고, 경전공부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경전공부를 하는 곳으로 인도를 해야지요. 그걸 잘 파악해야 돼요. 자기 좋다고 해서 무턱대고 끌고 와서는 이거 좋다 해봐라 해가지고는 안 된다고요.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 일반적인 말인데도 불구하고 중생들의 근기를 제일 많이 살펴요.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 취향, 성격 같은 걸 잘 살피라는 말이 자주 나와요. 이 이야기도 그거 아닙니까? 중생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 중생이 만약 등산을 좋아한다면 등산을 자꾸 데려가는 거야. 그러다가 부처님의 법문 쪽으로 가까이 이끌어 주면 나중에는 더 발전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성지순례 가는 걸 좋아하는 신도들이 많지요. 그런 사람은 계속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기도도 할 수 있고, 법회도 나올 수 있고 얼마든지 가능한 길이 열린다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마음을 쓰면 가능한 일이지요.

 

그 다음은 세 번째는

영안주력염불문(令安住力念佛門)이니 영입여래십력중고(令入如來十力中故)며, 안주하게 하는 힘의 염불문이니 여래의 열 가지 힘 가운데 다 들어가게 하는 연고이다.

십력(十力)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갖추신 열 가지의 힘을 말하는 것인데, 다른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넘어 가겠습니다.

 

그 다음 영안주법염불문(令安住法念佛門)이니, 여기서는 법에 안주하는 그런 염불문입니다. 왜냐?

견무량불(見無量佛)하고 청문법고(聽聞法故)라,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청하는 바라, 부처님을 친견했으면 으레 법을 청해야지요. 그래서 법을 듣는 연고이다, 라는 겁니다.

 

그 다음은 조요제방염불문(照耀諸方念佛門), 모든 집안, 방향들을 환히 밝게 비치는 그런 염불문인데

실견일체제세계중등무차별제불해고(悉見一切諸世界中等無差別諸佛海故)다, 모든 세계 가운데, 평등해서 차별이 없는 그런 모든 부처님 바다를, 부처님 세계를 실견(悉見), 전부다 보는 그런 연고이다.

 

또 입불가견처염불문(入不可見處念佛門)이니, 가히 볼 수 없는 그런 곳에 들어가는 염불문이니, 거기 아주 상당히 깊은 도리를 말했는데

실견일체미세경중제불자재신통사고(悉見一切微細境中諸佛自在神通事故)로, 모든 일체의 미세한 가운데 모든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신통의 일을 다 보는 연고이며

 

주어제겁염불문(住於諸劫念佛門)이니, 모든 겁, 모든 시간에 머무는 그런 염불문이니 일체 겁 가운데 상견여래제소시위(常見如來諸所施爲), 시위(施爲)라고 하면 하는 일이지요? 여래의 모든 시위하는 바를 항상 봐서 무잠사고(無暫捨故)니라, 잠깐이라도 그것을 놓치지 않는 그런 연고이니라.

 

그 다음 여덟 번째는 주일체시염불문(住一切時念佛門)이니, 일체 시에 머무는 염불문이지요.

저 위에는 일체 겁에 머물렀다고 했지요. 겁이라고 하는 것은 긴 시간을 말하고 여기처럼 시(時)라고 하는 것은 보통시간을 말하지요. 일체 시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어일체시(於一切時)에 상견여래(常見如來)하고, 항상 여래를 친견하고

친근동주(親近同住)하여 불사리고(不捨離故), 친히 가까이 하여 부처님과 같이 머물러 살면서 잠깐도 떠나지 아니하는 연고이다.

 

또 주일체찰염불문(住一切刹念佛門)인데, 일체 찰, 세계에 머무는 염불문인데 일체국토(一切國土)에 함견불신(咸見佛身)이 초과일체(超過一切)에 무여등고(無與等故)로, 일체 국토에서 모든 불신이 다 뛰어 넘어, 더불어 같을 이가 없는 최상의 경지를 다 보는 그런 연고이며

 

주일체세염불문(住一切世念佛門), 일체 세(世)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지금 많이 쪼개느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찰·세·시·겁으로 쪼개 놓았지요.

수어자심지소욕락(隨於自心之所欲樂)하야, 자기 마음에 좋아하고자 하는 것을 따라서 보견삼세제여래고(普見三世諸如來故), 과거·현재·미래의 제 여래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연고며,

 

열한 번째는 주일체경염불문(住一切境念佛門)이니, 일체 경계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어일체제경계중(於一切諸境界中), 일체 경계 가운데에서

견제여래(見諸如來) 차제현고(次第現故), 모든 여래가 차례로 나타나는 것,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는 연고며

 

주적멸염불문(住寂滅念佛門)이니, 적멸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어일념중(於一念中) 견일체찰일체제불(見一切刹一切諸佛) 시열반고(示涅槃故)니라, 일념 가운데에 이 열반을 보여주는 것을 보는 연고이다.

 

주원리염불문(住遠離念佛門)이니, 멀리 떠나는 것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멀리 떠나는 것을 수용한다는 뜻이겠지요.

일념 가운데 일체 불(佛)이 그 머무는 바로부터 나와서 가는 것을 보는 연고이며

주광대염불문(住廣大念佛門)이니, 광대한 곳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심상관찰일일불신(心常觀察一一佛身)이, 부처님 몸이 일체 법계에 가득 차고, 우주에 가득 차는 것을 항상 마음으로 관찰하는 그러한 연고며,

 

열다섯번째 미세염불문(微細念佛門)이니, 미세한 데 머무는 염불문이니 어일모단(於一毛端) 유불가설여래출현(有不可說如來出現), 한 털끝 작은 것에서 가히 말할 수 없는 많은 여래가 출현하는 것을 보거든

실지기사(悉至其所)하야 이승사고(而承事故)라, 모두 그 곳에 가서 받들어 섬기는 연고니라.

 

그다음 열여섯 번째는 주장엄염불문(住莊嚴念佛門)이니, 장엄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견일체찰(見一切刹)에 개유제불(皆有諸佛)이 성등정각(成等正覺)하여 현시변(現神變)며, 일념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있고 그 부처님이 등정각을 이루어서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것을 보는 그러한 연고이다.

 

그 다음은 주능사염불문(住能事念佛門)이니, 능히 하는 일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견일체불(見一切佛)이 출현세간(出現世間)하사 방지혜광(放智慧光)하야 전법전고(轉法輪故)며, 일체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해서 지혜광명을 놓아서 법륜을 굴리는 연고이며

 

열여덟 번째는 주자재심염불문(住自在心念佛門)이니, 자재한 마음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지수자심소유욕락(知隨自心所有欲樂)하야 일체제불(一切諸佛)이 현기상고(現其像故)며, 자기 마음에 있는 바 욕락, 하고자 하는 것, 즐겨하는 것을 따라서 일체제불이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아는 연고이다.

 

또 주자업염불문(住自業念佛門)이니, 자기 업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지수중생소적집업(知隨衆生所積集業)하야 현기영상(現其影像)하야 영각오고(令覺悟故)며, 중생들이 쌓고 쌓아놓은 그 업에 따라 그 그림자를 나타내서 하여금 깨닫게 함을 아는 연고이다. 그러니까 중생들을 깨닫게 하는 방편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그 다음 주신변염불문(住神變念佛門)이니, 신통변화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견불소좌광대연화(見佛所坐廣大蓮華)가 주변법계(周遍法界)하야 이개부고(而開敷故)며, 부처님이 앉아 있는 광대한 연꽃이 법계에 두루두루 해서 개부(開敷), 곱게 피어나는 것을 보는 연고이다. 연꽃이 피어서 법계에 가득하는 것을 보는 연고이다. 드디어 연꽃이야기가 나오지요.

 

끝으로 주허공염불문(住虛空念佛門)이니, 허공에 머무는 염불문이니

관찰여래소유신운(觀察如來所有身雲)이 장엄법계허공계고(莊嚴法界虛空界故)니, 여래의 있는 바 크고 많은 몸이 법계와 허공계를 장엄하는 것을 관찰하는 연고이다. 여기서 운(雲) 자는 많다, 크다의 뜻으로 씁니다.

이아운하능지능설피공덕행(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이리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저 보살들의 공덕행을 능히 알고 능히 말할 수 있겠는가.

저 앞의 다른 보살들은 여기서 소개하는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이러한 것을 알겠느냐? 나는 모른다는 것이지요. 모른다 하면서도 결국은 다 소개를 한 것이지요.

말이 참 어렵지요. 나는 잘 모르니 그래서 다른 사람을 소개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내용을 여기서 열거를 했는데 자기가 한 법문보다 그 양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더 높이 이야기 하다가 보니까 형식이 그렇게 되었지요.

 

4. 指示後友

善男子야 南方에 有國하니 名曰海門이요 彼有比丘하니 名爲海雲이라 汝往彼問호대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修菩薩道리잇고하면 海雲比丘가 能分別說하야 發起廣大善根因緣하리니 善男子야 海雲比丘가 當令汝로 入廣大助道位하며 當令汝로 生廣大善根力하며 當爲汝하야 說發菩提心因하며 當令汝로 生廣大乘光明하며 當令汝로 修廣大波羅蜜하며 當令汝로 入廣大諸行海하며 當令汝로 滿廣大誓願輪하며 當令汝로 淨廣大莊嚴門하며 當令汝로 生廣大慈悲力하리라 時에 善財童子가 禮德雲比丘足하며 右遶觀察하고 辭退而去하니라

 

그다음 네 번째입니다.

지시후우(指示後友)라, 뒤의 벗, 후우를 지시해 준다는 말입니다. 뒤에 나오는 선지식을 지시해 준다는 말입니다.

선남자야(善男子)야 남방(南方)에 유국(有國)하니 명왈해문(名曰海門)이요, 선남자야 남방에 나라가 있으니 이름이 해문(海門)이요,

피유비구(彼有比丘)하니 명위해운(名爲海雲)이라, 거기에 비구가 있으니 이름이 해운이라. 덕운 해운 그랬지요? 해운비구라는 말입니다.

 

앞에 소개한 법문내용이 어쩌면 알아들은 것도 같고 어쩌면 전혀 모를 것 같기도 한데, 알아듣는 말이 십분의 일만 되어도 그게 어디입니까? 화엄경은 십분의 일만 알아들어도 상당한 공덕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러니까 부정적인 사람은 모르는 것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사람은 아는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한 구절만 알아도 그게 어디냐?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지요. 무엇이든지 자기 발전을 꾀하는 데는 긍정적인 사고가 제일 중요합니다.

화엄경 공부도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열 줄 가운데 한 마디만 귀에 들어와도, ‘아, 대단하다. 내가 어떻게 화엄경을 한 줄이라도 듣는단 말인가!’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요. 감사와 함께 인연의 다행함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지 아니 하면 신심이 잘 날 수가 없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그런 내용들이기 때문에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여왕피문(汝往彼問)하대, 너는 거기에 가서 묻되

보살(菩薩)이 운하학보살행(云何學菩薩行)이며 수보살도(修菩薩道)이릿고, 어떻게 보살행을 배웠으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았느냐고 물으면

해운비구(海雲比丘)가 능분별설(能分別說)하야, 해운비구가 능히 분별을 해 가지고 설명을 해서

발기광대선근인연(發起廣大善根因緣)하리니, 광대한 선근 인연을 일으켜 줄 것이다. 크고 큰 그런 선근 인연을 일으켜 줄 것이다.

선남자(善男子)야 해운비구(海雲比丘)가 당령여(當令汝)로, 선남자야 해운비구가 마땅히 너로 하여금

입광대조도위(入廣大助道位)하여, 광대조도위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조도(助道)라고 하는 것은 직접 도를 닦는 것 말고, 도를 닦는 일을 도와 주는 것을 말합니다. 조도행위(助道行爲)라고 해서 불교용어로서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디 절에 기도를 하러 간다고 하면 물론 자기 혼자서 갈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옆에서 도반이 끌어주고 같이 가주고 도와주면 훨씬 좋지요. 결국 기도는 자기가 하겠지만 주변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어려운 겁니다. 조도(助道)라는 것이 바로 그런 거지요. 도와주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주변의 조건이 안 닿는단 말입니다. 조건을 형성시켜주는 것이 조도(助道)입니다.

성불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이 마음을 깨달음으로써 하는 것이지만 그 이전에 닦는 육바라밀인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바라밀이 전부 조도(助道)입니다. 도를 돕는 거예요.

그래서 37조도품이라고 그러지요. 37가지의 도를 닦는 데 도움이 되는 품목들이지요. 그러니까 조도라는 말은 상당히 좋은 말이니 마음 속에 잘 새겨야 해요.

너로 하여금 광대한 조도의 지위에 들어가게 한다.

 

당영여(當令汝)로 하여 생광대선근(生廣大善根力)하며, 마땅히 너로 하여금 광대한 선근의 힘이 나게 한다는 거지요. 크고 광대한 아주 좋은 선근이 나게 한다는 거지요.

당위여(當爲汝)하여 설발보리심인(說發菩提心因)하며, 마땅히 너를 위해서 보리심을 발할 수 있는 씨앗을 설해줄 것이며

당영위(當令汝)로 생광대승광명(生廣大乘光明)하며, 마땅히 너로 하여금

아주 훌륭한 가르침의 광명을 내게 하며

당영여(當令汝)로 수광대바라밀(修廣大波羅蜜)하며, 마땅히 너로 하여금 광대한 바라밀을 닦게 할 것이며

당영여(當令汝)로 입광대제행해(入廣大諸行海)하며, 마땅히 너로 하여금 여러 가지 수행의 바다에 들어가게 하며, 수행도 워낙 많으니까 바다 해(海)자를 쓰지요.

당영여(當令汝)로 만광대서원륜(滿廣大誓願輪)하며, 마땅히 너로 하여금 광대한 서원의 수레바퀴를 가득하게 하며

당영여(當令汝)로 정광대장엄문(淨廣大莊嚴門)하며, 마땅히 너로 하여금 광대한 장엄문을 청정하게 할 것이며

당영여(當令汝)로 하여 생광대자비력(生廣大慈悲力)하리라, 마땅히 너로 하여금 광대한 자비의 힘이 생기게 할 것이다.

그 선지식, 해운비구를 만나면 너로 하여금 틀림없이 그렇게 하게 할 것이니 꼭 가서 만나 보아라는 말이지요.

시(時)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예덕운비구족(禮德雲比丘足)하며, 덕운비구의 발에다 예를 올리며

우요관찰(右遶觀察)하고 사퇴이거(辭退而去)하니라, 오른쪽으로 돌면서 이렇게 물끄러미 덕운비구를 바라보고는 물러나서 이제 해운비구를 향해서 가더라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덕운비구라고 하는 십주(十住) 중에서 초주(初住)인 발심주(發心住) 법문에 해당되는 선지식을 만난뒤 떠나는 거지요. 덕운 비구에 대해서 알려면 인쇄물에도 있듯이 발심주에 해당하는 선지식이라고 이해를 해야 되요.

덕운비구를 만나서 선재동자가 주로 배운 법문은 많은 부처님을 친견한다는 거지요. 어째서 그렇게 많고 많은 부처님이 계시냐?

결국은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가 곧 부처님이므로 그랬을 때는 한 순간 한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전부 부처님이야, 그래서 일체 색이 전부 불색(佛色)이야, 일체 성(性)이 모두 불성(佛性)이야. 일체 색, 모든 사물은 전부 다 부처님이야, 모든 소리는 전부 부처소리야. 싸우는 소리, 떠드는 소리, 욕하는 소리, 비난하는 소리가 전부 그냥 부처소리야.일체 성(性)이 불성(佛性)이라고 써져 있어. 일체 색이 불색(佛色)이고 부처의 모습이야. 집은 집대로 부처의 모습이고, 차는 차대로 부처의 모습, 산은 산대로 부처의 모습이라는 그 말 이예요. 일체 색이 불색(佛色)이라는 말은 그 뜻인데 이게 우리 마음에 탁 와 닿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큰 안목으로 마음준비를 하게 하는 그런 내용이 발심주 단계의 정시법계(正示法界)에서 주로 설해진 법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백분의 일, 만 분의 일, 십만 분의 일로 줄여서라도 생각해 보자라는 입장이지요.

그런 입장에서는 우리 가족과 이웃, 내가 아는,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생각하는 그런 마음 자세이면 덕운비구의 법문을 들은 보람이 백만분의 일이라도 있지 않겠나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입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덕운비구를 만나서 공부한 의미라고 정리를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내용은 덕운비구 딱 한 분을 만나 가지고 그분의 법문을 듣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강의 정리: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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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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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운화 | 작성시간 16.07.03 _()()()_
  • 작성자釋法玄燈 | 작성시간 17.05.09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답댓글 작성자釋法玄燈 | 작성시간 18.04.28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작성자堅悟行 | 작성시간 21.08.06 _()()()_
  • 작성자堅悟行 | 작성시간 26.01.20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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