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티파트는 남성만을 통해 일어나며, 그는 은총 또한 직접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직접 은총을 받는 것은 어렵다. 여성에게는 은총으로 들어가는 문이 오직 삭티파트를 통해서만 열려 있다. 이것은 사실fact일 뿐 가치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여기에 높고 낮음이나 열등함과 우월함의 문제는 없다. 사실이 그럴 뿐이다. 이것은 남자가 사정하고 여자가 정액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어김없는 사실이다. 여자가 남자 안에 사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의 이치상 그럴 수가 없다. 여기에 어느 쪽이 우월하고 어느 쪽이 열등한가 하는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온갖 가치 평가가 행해졌다. 여성은 받는 쪽이기 때문에 열등한 위치로 내려가고, 주는 쪽인 남성의 가치는 올라갔다.
전 세계에 만연한 남녀 간의 불평등은 남자가 자신을 ‘주는 자’로 생각하고 여성은 자신을 ‘받는 자’로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받는 쪽은 왜 반드시 열등해야 하는가? 누가 그렇게 말하던가? 받는 자가 없다면 주는 자가 무슨 소용인가?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주는 자가 없다면 받는 자가 무슨 소용인가? 이것은 열등함과 우월함의 문제가 아니다. 둘이 서로 보완적인 위치에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들은 서로 돕는 관계이다. 서로가 연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쪽은 주고 다른 쪽은 받는다.
그러나 ‘주는 자’라는 개념이 대개의 경우 우리의 마음속에 우월함이라는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받는 자가 열등해야만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많은 현상이 이런 착각과 관련되어 있다. 여성의 위치는 남성에 이어 두 번째로 여겨졌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성들까지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실은 남녀 각자가 서로의 영역에서 첫 번째 위치에 있다. 남자는 남자로서 첫 번째 위치에 있고, 여자는 여자로서 첫 번째 위치에 있다. 두 번째 위치란 없다. 서로가 보완적인 관계이다.
- 오쇼의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