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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62강 – 2 – b

작성자釋대원성|작성시간24.07.19|조회수76 목록 댓글 9

 

 

             화엄경산림 대법회 162강 – 2 – b

 

 

 

  6조스님께서는,

      “문장을ㆍ경전을 환하게 아는 사람은 해설을

       빌릴 필요가 없고, 모르는 사람은 해설을

       빌려야 되는데 정말 모르는 사람이 모르면서

       경전을 해설을 하는 것은 가급적이면 옛날 근거를 대서

       해석을 하면 된다.”

 

  지금 제가 근거를 갖다 대는 것은 천친보살이 했던 근거입니다.

천친보살이 했던 근거고요.

조금 전에 했던 것은 화엄경에 있는 근거를 했던 것이고요.

不由他悟라고 하는 것도요. 자기 의미대로 뜻도 모르면서 해석하는

것을 “전도설법”이라 그럽니다.

顚倒(전도). ‘확 눈 뒤집어진 설법이다.’

선가에서는 남의 눈을 까버린다고 “??종사”라 그러지요.

 

그리고 돈을 받고 강의하고, 설법하고 하는 것은,

“오염설법이다.” 6조스님의 그 당시에도 그것이 있었나봐요.
남한테 밥이라도 한 끼 잘 해주면 법문하러 가주고 그런 건가봐요. 

 

5위 100법도 전에 여러분께 도표를 나눠드린 적이 있습니다.

혹시 못 받으신 분들은 말씀하십시오. 따로 나눠드겠습니다.

 

  아홉 번째,

於一切法에 眞實說辯才와,

온갖 법에 진실하게 말하는 변재와, 마지막으로 더 중요한 것은,

 

  10. 隨一切衆生心하야 令歡喜辯才가,

일체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그들을 환회하게 하는,

남기분 좋게 하는 변재가 是爲十이니, 열 가지이니,

 

  제가 문수선원에 와서 어느 날,

우리 도반스님이 한 분 계신데요. 어른 스님 물건도 같이 정리하고 같이

지내다가 그 스님의 마음에 드는 책이 하나 나온 겁니다.

욕심낼 스님도 아닌데, “스님! 이것 내 주면 안 돼요?”

“안 된다. 어른 스님 것인데, 조금이라도 손대면 안 된다.

잘 가지고 있다가 누구 밑의 사람들한테 물려줘야된다.”

 

얘기해 보라니까 자기가 어릴 때 보던 그 책이래요.

당신 절의 도장이 콱 찍혀 있다네요.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줘야 되겠다.’시퍼서,

“스님, 그것 가져가이소. 스님 책 같습니다.” 했더니,

“그러지 말고 스님! 기분 좋은 날 주세요.” 이러더라고요. 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늘 내 기분 제일 좋습니다. 가져가이소.”

그것을 넣어드릴 때는 점심 때도 안 된 때인데, 점심 때 이 밑에 가서

칼국수 같이 먹기로 해놓고는 바랑에 넣고 가버리더라고요.

 

“왜 가느냐?”고 했더니,

“마음이 변할까? 싶어서...”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그 스님께서 참 고마운 것이 “기분 좋은 날 주세요.” 이러더라고요.

우리는 남 기분 좋든지 말든지 내가 갖고 싶으면 “이것 지금 주이소.”

“좀 됐구만” 이래도 지금 달라고 막 우기잖아요.

 

그런데 그 스님은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은데도,

“스님! 기분 좋은 날 주세요.” 이러더라고요.

아~~이고, 그런 말 들으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든지...

 

“모든 중생심을 따라서 그들을 환회하게 하는 마음”

우리는 이것이 안 되고, 강사 노릇 오래하다 보면 남 막 달달 끓고 볶고

콕콕찌르고 이런 것을 막 하잖아요.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만약에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則得如來無上巧妙辯才니라

즉득,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무상교묘 변재를 얻게 된다.

 

여러 얘기가 있지만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진도가 있으니까요.

 

 

나. 菩薩의 十種自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自在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敎化調伏一切衆生自在와 普照一切法自在와

修一切善根行自在와 廣大智自在와 無所依戒自在와

一切善根廻向菩提自在와 精進不退轉自在와

智慧摧破一切衆魔自在와 隨所樂欲하야

令發菩提心自在와 隨所應化하야 現成正覺自在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自在니라

 

  菩薩의 十種自在(보살10종자재)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自在하니

何等이 爲十고? 어떠한 것이 열 가지의 자재한 것인가?

 

  所謂敎化調伏하야 一切衆生自在와,

소위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자재와,

普照一切法自在와, 일체 모든 법을 두루 비추는 자재와, 또

 

  修一切善根行自在와, 일체 모든 착한 뿌리의 행을 닦는 자재와,

착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지만, 악업장이 많은 사람은 마음은

있으나 실천이 잘 안 되지요.

 

  廣大智自在와, 광대한 지혜의 자재와,

 

  無所依戒自在와,

여러분! 이것도 범행품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의지할 데 없는 계율의 자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 근본을 두느냐? “본래 무일물이다.”

계율은 어떻게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생멸 인연에 따라서 서로

기준이 있어야 생겨진 것이지, 원래 계율이 있을 수는 없다.’

 

‘부처님이 있을 수도 없는데, 중생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부처님이

기준을 둔다.’ ←이것이 범행품은 열 가지 조건으로써 출가한 스님들을

위한 품이 범행품이지요?

범행품의 유명한 마지막 게송이 뭡니까?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그렇지요.

 

  初發心時便正覺!

初發心이라고 하는 것이, “無所依”를 뜻하는 겁니다.

무분별ㆍ무차별 ←이것이 초발. 發心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터전이

되는 것이지요. 탁구를 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탁구라켓도 아니고,

탁구공도 아니고, 탁구치는 사람도 아니고, 탁구대가 제일 중요합니다.

 

농사지으려면 씨도 아니고, 농부도 아니고, 제일 중요한 것이 地! 땅이

지요. “복전”이라고 그럽니다. 福田!!!!!!

중생이 모든 수행자들의 福田이고, 또 부처님은 모든 수행인들의

敬田(경전)이라고 그럽니다. 우리가 위로 받들어야될 敬田!!!!!!

우리를 많이 거두어 주는 부처님 나오는 불전!!!!!!

*

자~~ 여기서 “일체법”이라는 말은 그렇게 해서 넘어갑니다.

“수일체선근행ㆍ넓고 큰 지혜ㆍ의지할 데 없는 계율.”

 

범행품 간 김에 하나 짚어봅시다. 범행품에 뭐뭐 나옵니까?

       “부처님도 본래 없다.

        법도 본래 없다.

        수행도 본래 없다.”

불ㆍ법ㆍ승의 기준을 딱 잡고, 주춧돌처럼 버티는 자리가 계율이지요.

불법승이 계율로 인해서 딱 지탱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계율이 없다. 이 네 가지를 근본적으로 딱 들고, 그 다음에는

 

身業 = 몸과 몸의 업.

口業 = 말과 말의 업. 그 다음에

意業 = 뜻과 뜻의 업. ←여섯 가지.

“열 가지가 전부 본래 어디에도 없다. 無所依니라.”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가 아뇩다라3먁3보리를 닦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계율과 불법승을 의지해서 신구의 3업을 닦아나간다.

       여기에서 발심을 잘 해라.

       모든 것은 지일체법이 즉심자성인줄 알아야 된다.

       마음에 잘 발해라.”

이래서

 

      “초발심시 변성정각!

       초발심시에 즉득아뇩다라3먁3보리”

라고 범행품 말미에 그래놓고, 바로 초발심공덕품으로 넘어갑니다.

 

↑저렇게 하나씩 딱딱 깨물고 넘어가게 화엄경은 정리가 되어있지요.

그냥 중구난방으로 막 써놓은 것이 아니지요.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서대로 쭉~~ 써놨습니다. 순서대로요.
경은 그대로 읽으면 그냥 여과지 통과해서 내린 커피 같아서 쪽~~ 빠

지게 되어있습니다.

 

  一切善根廻向菩提自在와,

모든 착한 뿌리를 보리에 회향하는 자재와, 또

  精進不退轉自在와, 정진하여 물러가지 않는 자재와,

 

  智慧摧破一切衆魔自在(지혜최파일체중마자재)와,

지혜로 모든 마군이를 깨뜨리는 자재와, 또

 

  隨所樂欲하야

좋아하는 욕락을 따라서, 치문에 그냥 나오지요?

      “盖衆生之根欲性이殊(개중생지근욕성수)라.

       若一以論之(약1이론지)ㄴ댄 恐非得旨也(공비득지야)로다.”

하는 대목들이 여기서 따간 것이지요.

 

隨所樂欲하야, 중생들이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令發菩提心自在와, 보리심을 내게 하는 자재와, 그 다음에

 

隨所應化하야 現成正覺自在가 是爲十이니,

교화할 바를 따라서 현성정각자재가 열 가지이다.

 

  혹시 졸리십니까? 대부분이 안 조는데요. 딱 두 스님이 좁니다.

제가 잘 아는 스님인데요. 왜 조느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스님한테 물어봤습니다.

“저는 왜 참선하면 잘 졸립니까?”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그럼 관심이 어디 있느냐? 안 올 자리에 끌려온 것 같습니다.

제 제자라고 얘기는 못합니다. 제 바로 옆방 옆방에 있는데요.

지금 얼굴 벌~~ 개서 죽을 지경입니다. 재미있지요?

 

그것은 제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이미 아마 그 뜻으로

깊이 들어가는데, 저 두 분은 화엄경이 생소하거든요.

익숙하지 않으니까 먹으면 설사할 것 같거든요.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그러니까 그 스님을 위해서 “약”써놨습니다.

이 품의 문장은 99프로가 불가능이라는데, 만약에 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 스님이 이 법에 안주한다면,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래서 위로를 하잖아요.

 

則得如來無上大智自在니라.

즉득아뇩다라3먁3보리라. 자~~ 문장이 어떴습니까?

“즉득아뇩다라3먁3보리라. 초발심시변정각이라.” 똑같은 얘기지요?

그렇지요? 같은 얘기가 계~~속 이렇게 문장을 바꿔가면서 하는데요.

우리가 지겨워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들입니까?

똑같은...

 

  제 상좌가 있는데요.

옛날에 제가 출가하기 전에 소림사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이연걸이 이린처에 나오는 영화를, 그것을 스무 번 보더라고요.

제 사형이 있었는데요. 열 세번 보더니,

“와~~ 나는 니한테 졌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숙이 조카한테 “졌다.” 하더라고요.

결국은 출가해서 뭘, “외워라.” 이러니까 꾸준하게,

머리는 돌대가리인데 글은 잘 외우데요. 저보다 더 많이 외우고

열심히 하대요.

그래 ‘아이고 내 저것 좀 닮았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것이 안 되는 겁

니다. 한 줄도 안 외우는 사람은 조실스님되셔서 계속 좁니다.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푹~~ 익어져서 외워야 됩니다.

자~~ 한 구절 더 하겠습니다.

 

 

        (9) 法王子住

         가. 菩薩의 十種無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無着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一切世界에 無着하며 於一切衆生에 無着하며

於一切法에 無着하며 於一切所作에 無着하며

於一切善根에 無着하며 於一切受生處에 無着하며

於一切願에 無着하며 於一切行에 無着하며

於一切菩薩에 無着하며

於一切佛에 無着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速轉一切衆想하야

得無上淸淨智慧니라

 

  法王子住(법왕자주)

     菩薩의 十種無着(보살10종무착)

法王子住는 한 발작만 띄면, 子자만 떼내버리면 法王입니다.

그렇지요? 法王이 되면 관정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사실은 법왕자주는 4무애변재가 톡톡 튀어 나오는 것이지요?
法王子가 되면, 태자가 되면, 세자가 되면 이제 거칠것이 없잖아요.

일촉즉발입니다. 一觸卽發요.

 

法王子 중에서는,

“능선지10법이라. 열 가지의 법을 잘 안다. 열 가지의 무착이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또

有十種無着하니, 열 가지의 무착이 있으니,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열 가지의 무착이냐?

 

  所謂於一切世界에 無着하며, 이른바 일체 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於一切衆生에 無着하며, 일체 중생에 집착하지 않고,

  於一切法에 無着하며,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고,

  於一切所作에 無着하며. 일체 소작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만 딱 자르면 흔히 이렇습니다.

능엄경 제 4권.

       “深窮萬法決通疑滯(심궁만법결통의체)”라고
하는 부분에,
      “만법을 전부 깊이 궁구해서 의심나는 것을 뚫어라.”

하는 대목 있잖아요. 그렇지요?
거기에는 “世界起始(세계기시). 세계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다.” 귀에

익어서 얘기하는 그런 쪽으로 여기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땅기운이 물에, 水기운에 밀리면 木기운이 된다.”

이렇게 얘기하고요.

      “돌에 金기운이 있는데, 이것이 불기운에 녹으면

       물기운으로 흘러버린다.” 또

      “돌이 딱딱한데 부딪치면 불이 나온다.

       바다에서도 불이 일어닌다.”

이런 얘기들 있잖아요. 자세하게 나오는 것이 능엄경 제 4권에 나옵

니다.

 

상권 말미에는 이것이 나오지요.

상권에서는 완전히 우리의 신심을 안 흔들리게 확실하게 붙잡아 놓

고, 4권으로 넘어갑니다.

 

상권 말미에는 기억이 오래돼서 희미하지만, 여러분이나 저나 누구든

지 중이면 다 외우는 구절이 있습니다.

      舜若多性(순야다성)이 可銷亡(가소무)언정

      爍迦囉心(사가라심)은 無動轉(무동전)이라.

망할 亡자를 없을 無자로 읽어야 됩니다. 舜若多性.

舜若多는 허공입니다. 可銷亡 = 녹을지언정

舜若多性이 可銷亡언정 = 허공이 녹을지언정

爍迦囉心 = 대해바다 같은 마음은, 철석같은 내 마음은,

無動轉 =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야~~ 비유하자면 보현행원품의,

      “허공 끝이 있사온들 이 내 소원 다하리까?”
차라리 허공이 녹지. 야~~ 없는 것 가지고, 허공이 녹으면 녹았지

내가 안 변하겠다고 하는 투철한 신심을, 발보리심을 능엄경에서는

그런 식으로 해놓고,

         “世界起始” ←이렇게 나오는데요.

 

제가 지금 읽으면서 童眞住 그렇게 해놓고,

9주 이렇게 法王子住로 이렇게 넘어오잖아요. 그렇지요?

‘야~~ 이것이 그렇게 연결을 잘 해놨네!’ 이런 생각이, 착각으로

그렇게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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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자인월 | 작성시간 24.07.20 감사합니다-()()()-
  • 작성자송적 | 작성시간 24.07.20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 작성자묘심행 | 작성시간 24.07.28 소나기 같이 쏟아붓는
    강사스님의 강의 소리가 들리는듯...
    참~고맙습니다
  • 작성자묘덕 | 작성시간 24.07.29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작성자堅悟行 | 작성시간 24.08.25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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