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62강 – 3 – c
문수ㆍ보현이 왜 그러면 중요하냐?
화엄경에서는 “三聖圓融(3성원융)” 이라고 그럽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가시적으로 사의할 수 있는 것!
생각하고 말로 논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문수ㆍ보현을 통해서
설명을 하고요. “보살법문”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불가사의한 것은 비로자나에 뭉쳐서 법신이 허공청정한 것.
허공처럼 볼 수 없는,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라.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라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니라.”
이렇게 법신의 입장에서 보면 “비로자나”!!!!!!
나타나는 입장에서 보면 “문수ㆍ보현” ←이렇게 얘기하지요.
원리적인 입장에서는 “보현”
지혜적인 입장에서는 “문수”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원리를 가지고 실천하니까 “행”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3. 三十門의 十行答
(1) 歡喜行
가. 菩薩의 十種力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持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佛力持와 法力持와 衆生力持와 業力持와
行力持와 願力持와 境界力持와 時力持와 善力持와
智力持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於一切法에 得無上自在力持니라
三十門의 十行答(30문10행답)
歡喜行(환희행)
菩薩의 十種力持(보살10종력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持하니 何等이 爲十고?
열 가지 힘의 유지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입니까?
“열 가지 힘”이라는 것도 부처님의 힘을 상징합니다.
所謂佛力持와, 이른바 부처님의 힘으로 유지함이며,
法力持와, 법의 힘으로 유지하며,
衆生力持와, 중생의 힘으로 유지함이며,
業力持와, 업의 힘으로, 업력으로 유지되고,
行力持와, 행하는 힘으로 유지하며,
願力持와, 원의 힘으로 유지하며,
境界力持와, 경계의 힘으로 유지하며,
時力持와, 시간의 힘으로, 시력으로 유지되고,
善力持와, 착한 힘으로 유지하고, 그리고
智力持가, 지혜의 힘으로, 지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저는 힘이 있습니다.
법력도 없고, 재력도 없고, 학력도 없고, 저는 딱 한 가지있습니다.
어른 스님이 “니, 범어사에서 얻어먹은 것 많다 아이가? 울력이다.”
저는 울력이 있습니다. 울력!!!!!!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則於一切法에
得無上自在力持니라. 자재한 힘으로 유지함을 얻나니라.
大方廣佛華嚴經 券第五十四
離世間品 第 三十八之二
나. 菩薩의 十種大欣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大欣慰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諸菩薩이 發如是心호대 盡未來世토록
所有諸佛이 出興于世어든
我當皆得隨逐承事하야 令生歡喜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彼諸如來가 出興于世어든
我當悉以無上供具로 恭敬供養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諸佛所에 興供養時에 彼諸如來가
必示誨我法하리니 我悉以深心으로 恭敬聽受하고
如說修行하야 於菩薩地에 必得已生現生當生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於不可說不可說劫에 行菩薩行하야
常與一切諸佛菩薩로
而得共俱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往昔에 未發無上大菩提心일새
有諸怖畏하니 所謂不活畏와 惡名畏와 死畏와
墮惡道畏와 大衆威德畏라
自一發心으로 悉皆遠離하야 不驚不恐하며 不畏不懼하며 不怯不怖하야 一切衆魔와 及諸外道의 所不能壞라하야
如是思惟호대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令一切衆生으로 成無上菩提하고
成菩提已하야는 我當於彼佛所에 修菩薩行호대
盡其形壽토록 以大信心으로 興所應供佛諸供養具하야
而爲供養하며
及涅槃後에 各起無量塔하야 供養舍利하며
及受持守護所有遺法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又作是念호대 十方所有一切世界를
我當悉以無上莊嚴으로 而莊嚴之호대
皆令具足種種奇妙하야 平等淸淨하고 ←그냥 넘어가십니다.
復以種種大神通力으로 住持震動하며
光明照耀하야 普使周遍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斷一切衆生疑惑하며
淨一切衆生欲樂하며 啓一切衆生心意하며
滅一切衆生煩惱하며 閉一切衆生惡道門하며
開一切衆生善趣門하며 破一切衆生黑暗하며
與一切衆生光明하며 令一切衆生으로 離衆魔業하며
使一切衆生으로 至安隱處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諸佛如來가 如優曇華를
難可値遇하야 於無量劫에 莫能一見이니
我當於未來世에 欲見如來인댄 則便得見하며
諸佛如來가 常不捨我하고 恒住我所하야 令我得見하며
爲我說法하야 無有斷絶이어든
旣聞法已에 心意淸淨하야 遠離諂曲하고 質直無僞하야
於念念中에 常見諸佛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未來에 當得成佛하고 以佛神力으로
於一切世界에 爲一切衆生하야 各別示現成等正覺하야
淸淨無畏大師子吼하며
以本大願으로 周遍法界하야 擊大法鼓하고 雨大法雨하고
作大法施하야 於無量劫에 常演正法호대 大悲所持로
身語意業이 無有疲厭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하나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十種大欣慰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無上成正覺智慧大欣慰니라
菩薩의 十種大欣慰(보살10종대흔위)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大欣慰하니,
또 흔쾌하고 기뻐하고 위로되는 것이 있다.
何等이 爲十고? 무엇이 기쁘고 위로 될만한 것인가?
여기서 부터 내용이 조금 깁니다.
1. 所謂諸菩薩이, 이른바 모든 보살이
發如是心호대, 이와 같은 마음을 내되,
盡未來世토록,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所有諸佛이, 모든 부처님께서
出興于世(출흥우세)라. 세상에 出興하실 때에,
我當皆得隨逐承事(아당개득수축승사)하야,
내가 마땅히 모두 다 얻는다. 따라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을 承事 = 받들
어 모시겠다. 받들어 모시면서
令生歡喜케하니라. 모든 부처님을 환희심이 돋아나게 할 것이다.
如是思惟하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心大欣慰하며, 마음에 크게 위안이 되었다.
2. 復作是念호대, 또 생각하되
彼諸如來가, 저 모든 여래께서
出興于世어든, 세상에 나시거든,
我當悉以無上供具로,
내가 마땅히 모든 최고의 無上의 으뜸가는 공양구로써
恭敬供養이라하야,
如是思惟하고, 이와 같이 생각하고
心大欣慰니라. 크게 위안을 얻나니라.
이런 것은 읽어도 신심이 나는 대목들이지요.
3. 復作是念호대,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於諸佛所에, 내가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興供養時에, 공양을 올릴 때에, 헌공할 때에
彼諸如來께서, 저 모든 여래께서
必示誨我法(필시회아법)이시라.
나에게 법을 제시하고 가르쳐 주시리니,
我悉以深心으로,
모두 깊은 마음으로, 아주 깊은 마음으로
恭敬聽受라. 공경하고 자세히 듣는다. ←이것이 참회하지 않으면 법문이
절대 안 들리지요. 깊은 마음이 되기 전에 정직한 마음이 먼저 우선이지요.
정직한 마음 이전에 바로 신심이고요.
如說修行하야, “如說修行”이라고 하는 것은,
“여실”하고 똑같은 말입니다. 설한 바와 같이 수행을 해서,
於菩薩地에, 보살의 지위에
必得已生現生當生이라하야, 필득 = 반드시 얻을 것이다.
“즉득”했다가, 단어를 살짝 바꿔서 “필득”했다가,
이생 = 과거세. 현생 = 지금. 당생 = 미래세.
이미 나고, 지금 나고, 장차 나리라.
‘보살의 경지에 내가 그렇게 탄생할 것이다.
옛날도 났고, 옛날에 하던 것이니까, 보살행이니까 지금도 하고,
다음에 또 할 것이다.’
如是思惟하고 心大欣慰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에 큰 기쁨을 얻나니라.
옛날 우리 치문배울 때 게송이 그것이지요.
“因果가 亦然(인과역연)한데 何憂何喜(하우하희)리요.
인과가 분명한데 우리가 걱정할 것이 뭐가 있노?”
뭐가 걱정이고, 뭐가 근심이냐? 이미 화엄경을 하면서 살아왔고,
이미 이 길대로 살아왔으면 근심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豈無憂懼(기무우구)리오?” 그렇지요?
“근심걱정할 것이없다.” ←이래 놨습니다.
“因果가 亦然한데...” ←이래 놨지요.
우리처럼 조금 못된 짓 한사람들은 인과가 역연하니까 아~~이, 상당히
걱정이 되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인과가 역연하니까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니까 정반대로 진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인과가 역연하니까 태평스
럽지요. 자연스럽고요.
4. 復作是念호대, 이런 생각을 하되
我當於不可說不可說劫에,
내가 마땅히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行菩薩行하야, 보리행을 행하여
常與一切諸佛菩薩로, 항상 일체의 제불보살로
而得共俱리라. 공양거리를 얻으리라.
如是思惟하고, 이와 같이 사유하고는
心大欣慰하며, 마음에 큰 기뻐하고 위로함을 얻었다.
5. 復作是念호대, 또 다시 생각하되
我於往昔에, 내가 옛날 옛날 옛적에
우리 얼마나 밴댕이 속같이 좁게 살아왔습니까?
未發無上大菩提心일새. 위없는 보리심을 내기 전에는
有諸怖畏(유제포외)라.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으니,
욕심이 있으면 두려움이 많잖아요. ←이 대목은 10지품의 34권 초두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익숙하게 알고 계시지요.
이 부분은 10지품의 34권에 나올 뿐만 아니라, 불교의 제반적인 문제가
이 문제고요. 불교에 속하지 않은 인생살이 문제가 여기에 속합니다.
所謂不活畏하고, 오래 못살까 죽을까시퍼 걱정하고,
惡名畏와, 남한테 나쁜 이름 들을까시퍼 걱정하고,
死畏와, 잘 살지 못할까 죽을까 또
墮惡道畏(타악도외)와, 악도에나 떨어지지 않을까,
별 걱정을 다하고 앉았네요.
大衆威德畏라. 대중들이 나를 헐뜯으면 어쩔까,
누구든지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지요.
자~~ 그런데 내가
自一發心으로, 발보리심 함으로부터는, 보리심을 한 번 냈다고 하면,
“心無罣碍 無罣碍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이라.”
悉皆遠離(실개원리)하야
不驚不恐(불경불공)하며, 놀랍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不畏不懼(불외불구)하며,
두렵지 않고 저어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고
不怯不怖(불겁불포)하며, 겁도 안 나고,
‘간덩이가 부었다.’ 이 말이지요. 不怖 = 공포를 느끼지 아니하며,
一切衆魔와 及諸外道의, 모든 마구니와 외도들이
所不能壞(소불능괴)라하야, 나를 깨뜨릴 수가 없다.
어떤 마구니들은 하도 무식해서 항마진언을 못 알아들어서 항마진언을
해도 안돼요. 약이 안든다는 마구니가 있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 지 욕하는 줄도 모르고 막 달려드는 마구니가...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구니도 공부를 좀 해야지, 그래 항마진언이나 좀 외워놔야지...
항마진언 어떻게 합니까? “옴~~ 악.” 하는가요?
항마진언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 있네요.
항마진언도 모르는 사람이 항마진언을 강의한다고 앉아가지고 참...
아이고 참 죄송합니다. 항마진언은 마구니한테나 필요한 건가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如是思惟호대, 이와 같이 생각하고
心大欣慰니라. 마음에 크게 위안을 얻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