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산림 대법회 163강 – 2 – c
그리고 탐ㆍ진ㆍ치 중에 진심이 많은 사람들은 불과 같아요.
탐심이 많은 사람들은 물과 같아서 도둑놈처럼 쓱~~ 숨어 들어 문구멍
뚫어놓고 보거나 이러면, ‘아~ 저 사람은 탐심이 많구나.’
그 집에 딱 가서 CCTV가 많다.
‘아~ 이 집에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사는구나.’ 이렇게 보면 됩니다.
간소하고 간결하지 못하고... 우리가 다 CCTV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지요? 유독 CCTV를 많이 달아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짜도 달고 진짜도 달고 해놓은 사람들. 그러면 욕심이 많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안 일어나고 악착같이 딱 붙어가지고...
그 사람들 나중에 다음에 지옥가면 능엄경에서 “한빙지옥 간다.” 그랬
습니다. “왜 그러냐?” 이러니까 하도 많이 들이마셔서요.
내놓지 못하고 들이마시면 “냉촉이 생긴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래서 “한빙지옥 간다.”
욕심 많은 사람들 냉정하잖아요. 남 잘 안 나눠주고 아주 냉정하거든요.
제가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경전에 근거해서 얘기하면 됩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화가 많이 나는 사람은, 신경질 잘 내는 사람은
“불과 같다. 불길 같다.” 그러지요.
그리고 삿된 소견이 많은 사람은 “바람결 같다.”
지수화풍. 고집세고 이런 사람들은, 아집덩어리 같은 사람들은 땅 같
습니다. 땅 같아요. 안 움직입니다.
아~~이고... 그러니까 “어느 것이 좋다.” 할 수는 없고 다 헛것이지요.
그것이 이치적으로는 그러는데요.
사실적으로ㆍ현실적으로 지수화풍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자꾸... 화엄경에서 그래놨습니다.
“理(이)가 완성되면,”
“理”라고 하면, 이법계는 뭡니까?
이법계는 무조건 “覺도 不覺도 없고ㆍ중생도 부처도 없고,”
‘아~ 이것은 이법계 얘기구나! 이론 얘기구나! 理의 얘기구나!’
事로 나오면, “부처는 부처이고, 중생은 중생이고,”
理事無礙로 보면, “중생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고,”
‘아~~~!!!!!!’ 그렇게 가다 보면 모든 중생이 전부 다 한 사람도 뺄 수 없는
부처화 돼버리면, 유정무정이 전부 다 똑같이 해서 事事無礙法界가 펼쳐
지는 것입니다.
이법계는 순수한 완전 부처! = 본래무일물!
사법계로 넘어가면 완전 인연터! 모든 인연!
일체 유위법 여몽 환포영같은 事法界! 생주이멸하고 성주괴공하고,
생노병사하는 이것이 완전 사법계!
이법계ㆍ사법계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이사무애법계! ←여기서
한 단계 더 넘어가면 사사무애법계!
화엄경의 극치인 보현행원은 事事無礙法界로써 법칙을 삼습니다.
경전에도 “理다ㆍ事다.”해서 가끔씩 글자로 나오고,
“法界다.” 이렇게 해서 따로따로는 나오지만, 뭉쳐서 해석한 것은 옛날
어른들이 해놓은 것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요.
發十種無疑心하야 於一切佛法에 心無疑惑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열 가지 의심이 없는 마음을 내어 모든 불법에 의혹이 없나니,
무엇이 열 가지 의심 없는 마음인가?
의심 없는 마음은 완전히 갑옷입고 “돌진 앞으로” 하는 겁니다. 돌진!
뜻이 완전히 결정되고 의심이 없으면, 정진만 있잖아요. 그래서...
자~~ 열 가지를 한 번 보겠습니다.
1. 所謂菩薩摩訶薩이 發如是心호대,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발하되
我當以布施로 攝一切衆生하며,
내가 마땅히 보시로써 일체중생을 다 거두어 주고,
“보시로써” ←이러면 그 다음에 쪽~~ 나올 것이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以戒忍精進禪定智慧慈悲喜捨로 攝一切衆生이라하야,
계율로써ㆍ인욕으로써ㆍ정진바라밀로써ㆍ선정바라밀로써ㆍ반야바라
밀로써ㆍ일체중생을 거두어 준다.
‘아~~! 이것이 우리가 의심이 없다는 마음은, 신심을 낸다는 마음은
바로 10바라밀로써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것이고,
그렇게 가다보면 자연적으로 모든 부처님한테 섬기고 공양하는 것이고,
그것이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우리들이
사는 사바세계를 장엄하고, 빛나게 하고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이런 것들이 영원토록 내가 쉬지 않고 나를 조순하게 다듬어
가면서 익혀가고,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완전히 일체지를,
본래면목을 내가 갖추게 돼서 모든 세상의 등불이 되겠구나!’ ←이런 뜻이
겠지요? 그 다음에
慈悲喜捨. 자무량심ㆍ비무량심ㆍ희무량심ㆍ사무량심.
‘4섭법으로써 일체중생을 거두어 주리라.’하여,
‘6바라밀과 4섭법으로 일체중생을 거두어 주리라.’하여,
發此心時에,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決定無疑(결정무의)니, 결정코 의심이 없다.
若生疑心하면, 만약에 의심이 돋아난다하면
無有是處니라. 옳지 아니하리라.
是爲第一發無疑心이요.
이것이 첫째 의심 없는 마음을 발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둘 째.
2. 菩薩摩訶薩이
여기서 부처님을 잘 모시는 것이지요. 又作是念호대
未來諸佛이 出興于世어든,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시거든
我當一切로 承事供養이라하야,
내가 마땅히 일체 모든 부처님한테 승사공양하리라 하여서
發此心時에,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決定無疑라. 결정코 내가 의심이 없을 것이니,
若生疑心하면, 내가 만약에 의심을 일으킨다면
無有是處라. 옳지 못한 것이라.
是爲第二發無疑心이요.
이것이 제 두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고, 세 번째
3.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 이러한 생각을 내되,
我當以 種種 奇妙光明網(아당이종종기묘광명망)으로,
내가 갖가지 기묘한 광명의 그물로,
화엄경은 “張大敎網漉人天魚(장대교망녹인천어)라.
큰 광명의 대 그물을 펼쳐서 人天의 고기를 건진다.”
周遍莊嚴一切世界하리라. 모든 세계를 두루 장엄하리라. 하여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 마음을 낼 적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가,
만약 이와 같은 마음이 없으면 옳지 못하리라.
是爲第三發無疑心이요. 이것이 세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4.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 이런 생각을 짓되,
我當盡未來劫토록, 내가 미래 겁이 다하도록
修菩薩行호대, 보살행을 닦되,
장~~ 시간 동안, 오랫동안 몇 년이 될지 술이 익어가듯이,
위스키ㆍ꼬냑같은 것이 30년ㆍ50년ㆍ100년씩 익어가듯이
‘그렇게 장시간 조숙할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無數 無量 無邊 無等과, 수 없고 한량없고 그지없고 같을 이 없고,
不可數 不可稱 不可思 不可量 不可說과,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不可說不可說로, 말할 수 없이
過諸算數(과제산수)하는, 모든 산수를 초월해서 = 過해서
究竟法界 虛空界一切衆生을,
마지막에 가서는, 진법계와 허공계 일체 중생들을 다해서
我當 悉以無上敎化 調伏法으로,
내가 마땅히 실무상교화 조복시키는 법으로써,
而成熟之하리라. 성숙케 하리라하여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분명히 의심이 없나니,
若生疑心하면, 만약 이러한 마음을 내면
無有是處라. 옳지 아니하니라.
是爲第四發無疑心이요. 이것이 네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5.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 이러한 생각을 짓되,
我當修菩薩行하야, 내가 마땅히 보살행을 닦아서
滿大誓願이라. 큰 서원을 만족하고,
具一切智하야, 온갖 지혜를 갖추고,
安住其中이라하야,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물리라해서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라.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결정코 의심이 없나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라. 만약에 의심을 내면 옳은 것이 아니니,
是爲第五發無疑心이요. 이것이 다섯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고,
6.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 이러한 생각을 짓되,
이것은 세간의 밝은 등불이 된다고 하는 것이지요.
我當普爲 一切世間하야, 내가 마땅히 보위. 널리 일체 세간을 위하여
行菩薩行이라. 보살행을 행하되,
爲 一切法 淸淨光明하야, 모든 법의 청정한 광명이 되어서,
照明 一切所有佛法이라하야,
‘일체에 존재하는 모든 불법을 다 비추어 밝히리라.’ 하여서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라. 만약에 의심을 내면 옳은 것이 아니라.
是爲第六發無疑心이요.
이것이 여섯 번째 의심 없이 마음을 발한 것이다.
7.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이라. 또한 이러한 생각을 내되,
我 當知一切法이 皆是佛法하고,
내가 마땅히 모든 법이 부처님 법임을 알고,
隨衆生心하야, 중생심을 따라서
爲其演說하야, 그들을 위하여 연설해서
悉令開悟케하리라. 모두 다 깨닫게 하리라.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라. 만약에 의심을 내면 옳은 곳이 없으니,
是爲第七發無疑心이요.
이것이 제 일곱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라.
8.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한 이러한 생각을 짓되,
我當於一切法에 得無障碍門하야
내가 마땅히 온갖 법에서 장애가 없는 문을, 장애가 없는 방편을 얻고,
知一切障碍가 不可得故라.
이무소득고라. ‘일체 장애가 본래 없다.’ 이 말입니다.
其心이 如是無有疑惑하야, 그 마음이 이와 같이 의혹이 없으면,
“일체 장애가 어딨노? 없다.” ←이렇게 돼버리면
住眞實性하며, 내가 진실한 성품에 머물러서
乃至成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야,
‘내지는 아뇩다라3먁3보리를 이를 것이라.’ 해서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라. 만약에 의심을 낸다면 옳은 곳이 없으니,
是爲第八發無疑心이요.
이것이 제 여덟 번째 무의심이요. 아홉 번째
9.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또한 이러한 생각을 내되,
我當知一切法이 莫不皆是出世間法하야,
내가 마땅히 일체 법이, 온갖 법이 출세간법인 줄을 알고,
모든 허망한 법을
遠離一切妄想顚倒(원리일체망상전도)라.
일체 모든 망상전도 법을 멀리 여의며,
以一莊嚴으로 而自莊嚴호대, 한 가지 장엄으로써 스스로를 장엄하되,
而無所莊嚴라. 이무소득고라. 아무 것도 장엄할 것도 없으며,
於此自了요 不由他悟라하야,
‘이것은 스스로 깨닫고 남한테,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으리라.’ 하여,
‘내가 내혼자 깨치기도 충분하다.’ 이 말이지요?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 마음을 낼 적에 의심이 없으리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가 是爲第九發 無疑心이요.
만약에 의심을 내면 옳은 곳이 없으니, 이것이 제 아홉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10.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我當於一切法에, 내가 마땅히 일체 법에
成最正覺이니, 가장 바른 깨달음 = 성최정각!
성최정각이 제일 먼저 나왔던 데가 세주묘엄품이지요?
세주묘엄품이 시성정각나오고 살짝 틀어서 두 번째 단락에서는
성최정각이라고 나옵니다.
여기 이세간품에도 다시 한번 더 나오네요.
세주묘엄품 한 번 찾아보세요. 세주묘엄품 제 1권 제일 앞에 나옵니다.
成最正覺! 시성정각나오고 성최정각나오니까 잠시 멈추고,
‘야~~~! 글 잘 써놨네!’ 이러고 멈추지요?
시성정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성최정각입니다.
成最正覺!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뤘다.
모든 법에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니,
離一切妄想顚倒故며, 일체 망상 전도를 여읜 까닭으로
得一念相應智故며, 得 = 얻는다. 한 생각에,
바로 진심하고 생각하고 달라붙어 서로 상응하는 지혜를 얻는 연고고,
若一若異를 不可得故라.
한 개다. 다르다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금강경에는 “一相無相分” 이라고 아예 그냥 딱 해버렸지요.
“이일체상 즉일체법” 이라고 하지요.
그것을 “즉명제불”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일체상을 떠나서 일체법에 즉한 것이 즉명제불이다.”
능엄경에도 공히 “즉일체법 이일체상” ↑이 대목입니다.
離一切數故며, 모든 수효를 벗어나는 연고로
究竟에 無爲故며, 끝까지 조작이 없는 까닭으로
離一切言說故며, 일체 언설을 떠났다.
언설은 전부 허구지요. 虛口. 입만 떼면 거짓말 하잖아요.
입만 떼면 거짓말. ←이것을 口耳之學(구이지학)이라.
“입하고 귀하고 거리가 네 치 밖에 안 된다.” 하지요.
네 치 = 四寸(사촌).
住不可說境界際故라하야,
말할 수 없는 경계의 경계에 머무는 연고라하여,
發此心時에 決定無疑니,
이러한 마음을 낼 적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니,
분명코 의심이 없으리니,
若生疑心하면 無有是處가 是爲第十發無疑心이니,
만약에 의심을 한다면 옳지못한 곳이니, 이것이 열 번째 의심 없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만약에 보살이 이러한 법에 차주하면
則於一切佛法에 心無所疑니라.
즉 일체 불법에 대해서 마음에 의심하는 바가 없을 것이니라.
여기까지 하고 잠시 쉬었다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