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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노트 (161-1 이세간품 4.보현보살의 이천답)

작성자慧明華|작성시간24.06.25|조회수173 목록 댓글 7

기쁜 선물

 

6월 첫 번째 월요일 부산으로 내려가는 오전 KTX가 모두 매진이었다.

한 달에 단 한 번 화엄전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섭섭했다.

문수선원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회장스님 초청으로 재무스님과 성보박물관에서 <환희의 정원>이라는 오현주 사경장의 사경전을 감상할 수 있었다.

두 분 스님 모두 화엄전에 올라갔다가 큰스님께서 출타중이셔서 뵙지 못했다고 했다.

마침 이날 큰스님은 주바라밀과 조바라밀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다.

날마다 화엄경을 듣는 분들이 매일 아침 큰스님과 함께 하는 화엄경 공부를 주바라밀로 삼고 있습니다하고 댓글을 쓰셨다.

큰스님께서 미리 공지하신 대로 4일과 5일은 요즘 드물게 휴강이었고, 6일 법문에서는 십지중에서 초지인 환희지는 나머지 9지를 인도하는 선두 주자가 됩니다. 장사꾼을 거느린 장사의 물주와 같습니다.”라고 법문하셨다.

*

<환희의 정원>을 관람하는 시간, 재무스님은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서 이런 날은 인생의 보너스 같아요.”라고 하셨다.

작년 7월에 큰스님을 뵈러 갔던 날 여기 성보박물관에서도 전시를 해야죠.” 하고 회장스님께서 사경장님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막연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기억하고 있어서, 특별한 느낌으로 사경 전시회를 보았다.

전시회가 끝나는 날, 큰스님께서도 용학스님과 함께 이 전시회를 관람하신 것을 사진으로 보았다.

범어사 방장스님이신 정여스님의 선화와 글씨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석교스님과 거창의 무성스님께 주소를 받아서 <야곰야곰 증도가>6권을 다음날 우편으로 보내드렸다. 전국의 도서관에 이 책을 기증하려고 스무 질 모아두었는데 전화를 해보니 요즘엔 기증도서를 받지 않는 도서관이 많았다.

무성스님은 큰스님의 증도가는 정말 다르지요. 나는 삼배를 하고 이 책을 봐요.”라고 하셨다.

*

이날 최초로 대중공양 공지가 없다고 회장스님께서 말씀하셨는데 1교시가 끝나고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이 법공양비를 주셨습니다라고 다시 정정하셨다. 회장스님과 법명이 같으셔서 기억하고 있었고, 해마다 거의 정기적으로 문수경전연구회를 후원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항상 보시하시던 액수가 두 배로 올랐고, 범어사 주지스님이라고 해서,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었다.

*

621일에 회장스님의 카톡을 받았는데 ‘1500년 된 불국사, 주지스님 첫 투표로 선출할까?’ 라는 제목의 신문기사였다. 정오스님도 후보등록을 하셨고, 72일에 스님들의 투표로 불국사 주지스님이 선출된다는 기사였다.

정오스님이 6월 법회날 밭에서 뽑아오셨다는 상추를 주셔서, 매일매일 듬뿍듬뿍 감탄하면서 감사하면서 먹고 있었는데 카톡을 받은 날은 마침 마지막 상추를 먹은 날이었다.

그렇게 짙은 초록색에, 이파리가 억세고 무기질 가득할 것 같은 맛좋은 상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

코끼리는 어디를 만져도 코끼리라는 법문이 놀랍고 좋았습니다.” 라고 법회가 끝나고 용학스님께 말씀드렸다. 그런 이야기들을 적는 이 순간 문득, 날마다 불법승 삼보님께 선물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모든 순간이 가피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三

[托法進修成行分 第三]

[成行因果周]

[第八會 一品 二千行門]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一

. 普賢菩薩二百答

 

오늘은 326페이지(민족사3)를 할 차례다.

이세간품 발심주를 답하는 부분을 지난 시간에 공부했었다.

근수차법하면 질득만족보현행원이라, 만약에 보살이 이 법을 부지런히 수행하면 보현행원을 만족시키는 것을 질득할 것이다곧바로 보현행원을 만족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해놓았다.

그것을 보고 보현행원품하고 연결해서 보면 딱 떨어지겠구나해서, 다른 부분과도 다 연관이 있겠지만 보현행원품 중에서 항순중생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한 번 짚고 가겠다.

<항순중생편>의 내용이 좀 더 있는데 앞뒤로 정리해서 이렇게만 정리했다.

 

 

<유인물>

 

화엄경 보현행원품 중에서(40권본 화엄경)

 

항순중생 (恒順衆生)

 

p.1

 

부차(復次) 선남자(善男子)야 언항순중생자(言恒順衆生者)는 위진법계허공계(謂盡法界虛空界) 시방찰해(十方刹海) 소유중생(所有衆生) 종종차별(種種差別)이니

 

선남자여, 항상 중생들의 뜻에 수순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여러 가지 차별이 있으니

 

소위난생태생습생화생(所謂卵生胎生濕生化生)이 혹유의어(或有依於) 지수화풍(地水火風)하야 이생주자(而生住者)하며 혹유의공(或有依空)과 급제훼목(及諸卉木)하야 이생주자(而生住者)하야

 

이른바 알에서 나고 태에서 나고 습기로 나고 변화하여 나기도 하느니라.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고 허공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며 풀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느니라.

 

종종생류(種種生類)와 종종색신(種種色身)과 종종형상(種種形狀)과 종종상모(種種相貌)와 종종수량(種種壽量)과 종종족류(種種族類)와 종종명호(種種名號)와 종종심성(種種心性)과 종종지견(種種知見)과 종종욕락(種種欲樂)과 종종의행(種種意行)과 종종위의(種種威儀)와 종종의복(種種衣服)과 종종음식(種種飮食)으로 처어종종촌영취락성읍궁전(處於種種村營聚落城邑宮殿)하며

 

여러 가지 종류와 여러 가지 몸과 여러 가지 형상과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수명과 여러 가지 종족과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성질과 여러 가지 소견과 여러 가지 욕망과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위의와 여러 가지 의복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여러 가지 시골의 마을과 도시의 궁전에 사는 이들이니라.

p.2.

 

내지일체천룡팔부인비인등(乃至一體天龍八部人非人等)과 무족이족(無足二足)과 사족다족(四足多足)과 유색무색(有色無色)과 유상무상(有想無想)과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인 여시등류(如是等類)를 아개어피(我皆於彼)에 수순이전(隨順而轉)하야 종종승사(種種承事)하며 종종공양(種種供養)호대 여경부모(如敬父母)하며 여봉사장(如奉師長)과 급아라한(及阿羅漢)과 내지여래(乃至如來)하야 등무유이(等無有異)하며

 

내지 천신과 용과 팔부신중과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이며, 발이 없는 것과 두 발 가진 것과 네 발 가진 것과 여러 발 가진 것들과 또 몸이 있는 것과 몸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이와 같은 갖가지 종류들을 내가 모두 그들에게 수순하여 갖가지로 섬기고 갖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아라한과 내지 부처님이나 다름이 없이 받드느니라.

 

어제병고(於諸病苦)에 위작양의(爲作良醫)하며 어실도자(於失道者)에 시기정로(示其正路)하며 어암야중(於暗夜中)에 위작광명(爲作光明)하며 어빈궁자(於貧窮者)에 영득복장(令得伏藏)이니 보살(菩薩)이 여시평등요익일체중생(如是平等饒益一體衆生)하나니

 

병든 이에게는 의원이 되고 길을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고 캄캄한 밤에는 빛이 되어주며, 가난한 이에게는 묻혀 있는 보배를 얻게 하면서 이렇게 보살이 일체중생들을 평등하게 이롭게 함을 말하는 것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보살(菩薩)이 약능수순중생(若能隨順衆生)하면 즉위수순공양제불(則爲隨順供養諸佛)이며 약어중생(若於衆生)에 존중승사(尊重承事)하면 즉위존중승사여래(則爲尊重承事如來)

 

왜냐하면 보살이 만약 중생들을 수순하게 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만약 중생들을 존중하여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p.3

 

약령중생(若令衆生)으로 생환희자(生歡喜者)면 즉령일체여래(則令一體如來)로 환희(歡喜)니라

 

만약 중생들을 기쁘게 하면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제불여래(諸佛如來)가 이대비심(以大悲心)으로 이위체고(而爲體故)로 인어중생(因於衆生)하야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인어대비(因於大悲)하야 생보리심(生菩提心)하며 인보리심(因菩提心)하야 성등정각(成等正覺)하나니

 

왜 그런가.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으로 바탕을 삼으시기 때문이니라. 중생으로 인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정각을 이루느니라.

 

비여광야사적지중(譬如曠野沙磧之中)에 유대수왕(有大樹王)하니 약근득수(若根得水)면 지엽화과(枝葉華果)가 실개번무(悉皆繁茂)ㄴ달하야 생사광야(生死曠野)의 보리수왕(菩提樹王)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비유하자면 마치 넓은 모래사장에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가 물을 만나면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무성함과 같아서 나고 죽는 광야의 보리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일체중생(一體衆生)으로 이위수근(而爲樹根)하고 제불보살(諸佛菩薩)로 이위화과(而爲華果)하야 이대비수(以大悲水)로 요익중생(饒益衆生)하면 즉능성취(則能成就) 제불보살(諸佛菩薩) 지혜화과(智慧華果)하나니라

 

일체중생은 뿌리가 되고 부처님과 보살들은 꽃과 열매가 되어 자비의 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느니라.

 

p.4

 

 

하이고(何以故)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이대비수(以大悲水)로 요익중생(饒益衆生)이면 즉능성취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則能成就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라 시고(是故)로 보리(菩提)가 속어중생(屬於衆生)이니 약무중생(若無衆生)이면 일체보살(一體菩薩)이 종불능성무상정각(終不能成 無上正覺)이니라

 

왜냐하면 보살들이 자비의 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게 달렸으니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善男子) 여어차의(汝於此義) 응여시해(應如是解)니 이어중생(以於衆生)에 심평등고(心平等故)로 즉능성취원만대비(則能成就圓滿大悲)하며 이대비심(以大悲心)으로 수중생고(隨衆生故)로 즉능성취공양여래(則能成就供養如來)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이 이치를 이렇게 알아라.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함으로써 원만한 자비를 성취하고,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수순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라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菩薩)이 여시수순중생(如是隨順衆生)하야 허공계진(虛空界盡)하며 중생계진(衆生界盡)하며 중생업진(衆生業盡)하며 중생번뇌진(衆生煩惱盡)하야도 아차수순(我此隨順)은 무유궁진(無有窮盡) 염념상속(念念相續)하야 무유간단(無有間斷)하야 신어의업(身語意業)이 무유피염(無有疲厭)이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들을 수순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나의 수순함은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잠깐도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한글로만 읽겠다.

*

선남자여, 항상 중생들의 뜻에 수순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여러 가지 차별이 있으니 이른바 알에서 나고 태에서 나고 습기로 나고 변화하여 나기도 하느니라.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고 허공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며 풀을 의지하여 살기도 하느니라.

여러 가지 종류와 여러 가지 몸과 여러 가지 형상과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수명과 여러 가지 종족과 여러 가지 이름과 여러 가지 성질과 여러 가지 소견과 여러 가지 욕망과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위의와 여러 가지 의복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여러 가지 시골의 마을과 도시의 궁전에 사는 이들이니라.

내지 천신과 용과 팔부신중과 사람인 듯 아닌듯한 것들이며, 발이 없는 것과 두 발 가진 것과 네 발 가진 것과 여러 발 가진 것들과 또 몸이 있는 것과 몸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이와 같은 갖가지 종류들을 갖가지 구류중생 만류들을 빈부귀천 선악 중생을 막론하고 내가 모두 그들에게 수순하여 갖가지로 섬기고 갖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과 아라한과 내지 부처님이나 다름이 없이 받든다.

? 동일법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시마지 할 때 청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

어제병고(於諸病苦)에 위작양의(爲作良醫) 어실도자(於失道者)에 시기정로(示其正路)하며 어암야중(於暗夜中)에 위작광명(爲作光明) 어빈궁자(於貧窮者) 영득복장(令得伏藏) 평등요익일체중생(平等饒益一體衆生) 하는 대목이 보살이 이와같이 일체중생들을 평등하게 이롭게 한다.

병든 이에게는 의원이 되고 길을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고 캄캄한 밤에는 빛이 되어주며, 가난한 이에게는 묻혀 있는 보배를 얻게 하면서 이렇게 보살이 일체중생들을 평등하게 이롭게 함을 말하는 것이니라.

평등하게 무차별, 무차법회(無遮法會)라고 한다.

무차대회, 대시회를 베푼다.

왜냐하면 보살이 만약에 중생들을 수순하게 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만약 중생들을 존중하여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만약 중생들을 기쁘게 하면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세주묘엄품 사자좌에서의 대목이 이 대목과 똑같이 나온다.

야마천궁게찬품을 우리가 그 유명한 게송 60권 화엄경에 뭐라고 나오는가?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 보현행원으로부터 세주묘엄품, 입법계품, 지금 우리가 하는 이세간품에서 여지없이 동일법성에 대해서 나온다.

법계를 논하자면 입법계를 표전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생멸법을 논하자면 이세간, 세간을 떠난다는 말이나 공히 같은 말씀이 되겠다.

거기에서 행하는 것은 보현행원이다.

화엄경을 우리가 읽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대승경전은 그대들에게 제시하기를 보살의 길을 추구해야 된다라고 나온다.

반야심경도 그렇고, 금강경도 그렇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성제나 12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관자재보살이 바라밀행을 행할 때 조견해서 오온이 개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는,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래서 그대들도 아라한의 길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보살의 길을 추구해야 된다, 이렇게 나온다.

입법계품도 어떤가?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이 입법계품 근본법회에서 아무것도 못 보았다. 그때 유일하게 부처님의 장엄을 볼 수 있는 분들은 누구인가? 보살들만 볼 수 있었다.

아라한들은 여롱여맹(如聾如盲) 눈먼 사람 같고 귀 먼 사람처럼 보고 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 대목들이 나온다.

그런 대목들처럼 자세하게 보살정신을 설명해놓은 것이 이 항순중생이다.

*

항순중생을 다른 말로는 보현행원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을 바탕으로 삼기 때문이다.

일승보살의 삼매로 가는 근본이 이 자비심이다.

오늘 하는 대목에도 똑같이 나온다.

앞에 보현행원을 성취했으니까 뒤에 언급할 때는 뭐로 나오겠는가? 자비심을 먼저 언급한다.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 발보리심 해서 가는 것을 언급하고 발보리심 한 사람이 득정각심이다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반야심경에 이렇게 보여줬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제시를 하고 있다.

왜 그런가? 부처님께서는 자비하신 마음을 바탕으로 삼으시기 때문이니라.

중생으로 인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킨다. 기대비심이라고 제가 한문을 빨간 글씨로 써놨다.

*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인어대비(因於大悲)하야 생보리심(生菩提心)하며 보리심을 내고, 발보리심하고, 인보리심(因菩提心)하야 보리심을 인하여 성등정각(成等正覺)하나니라.

세주묘엄품에는 이런 대목을 이렇게 해놨다.

자비심을 내서 보리심을 냈는데 제일 앞부분이 시성정각하고 사자좌에서는 최정각을 이루었다, 성최정각(成最正覺)이라고 나왔지 않는가.

그걸 눈여겨 보신 분들은 아 이거 세주묘엄품이랑 똑같은 구절이다이렇게 아실 수가 있고 이것이 저 뒤에 보현행원품까지 학교 공부하듯이 하면 그렇게 이어진다고 할 수가 있겠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으로 바탕을 삼으시기 때문이니라. 중생으로 인하여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내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정각을 이루느니라.

*

비유하자면 마치 넓은 모래사장에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가 물을 만나면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모두 무성함과 같아서 나고 죽는 광야의 보리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일체중생은 뿌리가 되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반적인 오류를 많이 범한다.

부처님이 뿌리가 되고 중생은 가지 줄기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화엄경에서는 감히 이렇게 해놓았다.

일체중생은 뿌리가 되고 부처님과 보살들은 꽃과 열매가 되어 자비의 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느니라.

열매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중생을 향한 믿음이라든지 이런 것은 공덕일 것이다.

중생을 향해서 뿌리, 공덕을 지으면 깨달음의 열매를,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이랬다.

왜냐하면 보살들이 자비의 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니라.

여기도 써 놓았다.

최상의 깨달음 즉능성취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라.

세주묘엄품을 정확하게 성최정각이라고 써놨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게 달렸으니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

선남자여, 그대는 이 이치를 이렇게 알아라.

중생들에게 마음을 평등하게 함으로써 원만한 자비를 성취하고,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수순함으로써

계속 이 이 말씀은 반복이 된다. 자비심으로써 중생들을 수순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라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들을 수순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나의 수순함은 다함이 없느니라. 염념이 계속하여 잠깐도 쉬지 않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은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느니라.

오늘 할 부분도 신구의 삼업에 대해서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계속 뜻을 짚어나가는 대목이다.

이제 오늘 공부 들어가겠다.

2. 二十門十住答

. 薩摩十種觀衆生

 

佛子菩薩摩訶薩以十種觀衆生하야 而起大悲하나니 何等爲十所謂觀察衆生無依無怙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性不調順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貧無善根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長夜睡眠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行不善法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欲縛所縛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沒生死海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長嬰疾苦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無善法欲하야 而起大悲하며 觀察衆生失諸佛法하야 而起大悲是爲十이니 菩薩恒以此心으로 觀察衆生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로 중생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이 의지할 데 없고 믿을 데 없음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의 성품이 고르지 못함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이 가난하여 착한 뿌리가 없음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느니라.

중생이 긴긴 밤에 잠자는 것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이 착하지 못한 법을 행함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이 욕심에 얽매임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이 생사(生死) 바다에 빠짐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느니라.

중생이 병고(病苦)에 길이 얽혔음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이 착한 법에 욕망이 없음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며, 중생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잃어버림을 관찰하고 큰 자비를 일으키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은 항상 이 마음으로 중생을 관찰하느니라.”

*

보살(薩摩)의 십종관중생(十種觀衆生)

*

불자(佛子):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마하살이

이십종관중생(以十種觀衆生)하야 : 열 가지로 중생을 관찰하여

이기대비(而起大悲)하나니 : 큰 자비심을 일으키나니, 항순중생한다.

하등(何等): 이것이

위십(爲十): 무엇인가.

*

소위관찰중생(所謂觀察衆生): 소위 중생을 관찰한다. 이른바 중생이

무의무호(無依無怙)하야 :의지할 데도 없고, 믿을 때도 없음을 관찰하고는, 오온이 공한 것을 관찰하고는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을 잘 챙겨준다. 잘난 사람은 그냥 자비심이 일어난다. 두 번째

*

관찰중생(觀察衆生): 중생의 성품이

성부조순(性不調順)하야 : 조순하지 못하다. 중생이 거칠기 짝이 없다. 깬 자갈처럼 막 울퉁불퉁하고 침처럼 뾰족뾰족하다.

우리 절에서는 흔히 머트롭다라고 한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매끄러운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머트롭고 걸끄러운 사람들한테 잘 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참 어렵다. 계속 엥겨붙어 싸워야 된다. 반칙의 왕들하고 끊임없이 싸워야 된다.

중생의 성품이 고르지 못함을 관찰하고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큰 자비심을 일으키며

*

관찰중생(觀察衆生): 또 중생이 가난해서, 가난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것을 못 베풀어줘서 가난한 것이다. 가난하여

빈무선근(貧無善根)하야 : 무선근이라. 선근, 공덕을 짓는 공덕이, 착한 뿌리가 없음을 관찰하고는 아유 저 박복한 중생이라면서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자비심을 일으킨다.

여기 나온 다섯 가지는 중생들이 욕심에 떨어져서, 욕심에 눈이 멀어서, 눈앞의 말초 신경이 헐떡거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다섯 군데에서 지금 집어놓았다.

*

관찰중생(觀察衆生): 중생이

장야수면(長夜睡眠)하야 : 장야수면이라. 캄캄한 무명번뇌에 사리 분별없이 미혹해서 이리저리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낱낱이 잘 챙겨서 갖춰준다.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거기에 대해서 아유 제 갈 길도 모르는구나해서 그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말씀이다.

*

관찰중생(觀察衆生): 중생을 잘 관찰해야 되는데

행불선법(行不善法)하야 : 하는 일마다 불선법, 악법만 표독하게 못된 짓만 자꾸 하기 때문에, 착하지 못한 법을 하는 것을 보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 저걸 어떻게 잘 챙겨줘야 되겠다싶어서 그래서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대비심을 일으킨다.

부처님을 향해서는 자비심이 없어도 괜찮다. 자비심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아주 못난 사람들을 위해서 내야 되는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못난 사람이나,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비심을 내기가 만만치 않다. 제법무아나 제행무상을 느꼈을 때, 삼매를 얻은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

관찰중생(觀察衆生): 관찰중생이

욕박소박(欲縛所縛)하야 : 욕심에 얽매인 바를 잘 관찰해서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그 중생들을 구제해 준다.

우리는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눈이 멀어버리지 않는가.

여기까지 다섯 가지가 욕심에 허덕거리는 중생들, 말초 신경에 끄달려서 중추 신경, 도덕적인 신경이 무너져버린 사람들을 관찰해서 구제해주는 이야기다.

*

또 중생이 하는 일을 자세히 관찰한다.

관찰중생(觀察衆生): 관찰중생이

몰생사해(沒生死海)하야 : 생사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잘 관찰하고는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큰 자비심을 일으킨다.

여기 생사의 바다에 빠졌다고 하는 것, 생사라고 하는 것은 앞에 나온 것처럼 업에 빠졌다이 말이다.

업장, 생멸이라고 하는 것은 업으로부터 야기되지 않은가.

업으로부터 야기해서 생멸의 끝이 결과가 생사라고 한다.

업상에서 일어나서 저 끝에 가면 그것이 뭔가?

무명(無明)이 연행(緣行)하고 무명에 업상이 일어나서 행연식(行緣識) 식연명색(識緣名色) 명색육입(名色緣六入) 육입연촉(六入緣觸) 촉연수(觸緣受) 수연애(受緣愛) 애연취(愛緣取) 취연유(取緣有) 유연생(有緣生) 유라는 것이 업이지 않은가?

업을 지어서 유연생노병사(有緣生老病死生).

업을 지으면 업과가 따라온다,라고 하였다.

*

관찰중생(觀察衆生): 관찰중생이

장영질고(長嬰疾苦)하야 : 장영질고하여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이기대비하며, 중생이 병고에 영원히 아주 뺑뺑 돌아서, 탱탱 길이 병의 괴로움, 질병의 고통에 얽혀있음을 관찰하고 큰 대비심을 일으킨다.

장영질고(長嬰疾苦), 사람이 길게 오래오래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으면, 삿되어진다. 판단력이 없으면 삿된 짓만 한다.

*

관찰중생(觀察衆生): 관찰중생이

무선법욕(無善法欲)하야 : 무선법욕하야

이기대비(而起大悲)하며 : 이기대비하며 중생이 착한 법에 의욕이 없다.

선법에 대해서 욕심, 욕망을 일으키고 의욕이 없다.

의욕이 있는 사람이라야 승해(勝解).

수승한 이해력이 돋아나고, 수승한 이해력이 돋아나야 생각이 올발라진다.

생각이 올발라진 사람이라야 고요한 본심으로 가는 전주일치하는 삼매의 길이 열리게 된다. 삼매의 길이 열린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지혜의 바탕이고 지혜의 바탕이 열리면 갖가지로 조목조목 다 할 수가 있다.

여기서 욕()이라고 하는 것도 의욕이 없는 사람은 공부를 아무리 시켜도 공부가 안된다.

의욕이 있는 사람이 이해력이 확 돋아나고, 이해력이 돋아나는 사람들은 기억력이 또렷해진다.

기억력이 또렷또렷하고 분별력이 완전히 서진 사람들은 기초가 완전히 단단하게 다져진 것과 같다.

여기에도 의욕이 없는 사람들한테, 기초가 없는 사람들한테 자비심을 일으킨다라고 나와 있다.

*

관찰중생(觀察衆生): 관찰중생이

실제불법(失諸佛法)하야 :실제불법이라. 중생이 불법을, 부처님법, 정법을 잃어버림을 관찰하고, 정법을 어떻게 해서 잃어버리느냐?

정법은 불신(不信)으로부터 잃어버린다. 믿음이 없는 것으로부터 잃어버린다. 해태 게으름 혼침 도거 산란 실념으로 실()제불법이라, 그리고 부정지라 제대로 알지를 못한다.

같이 견주어서 공부할 것은 오위백법(五位百法) 중에 대수번뇌에 해당된다.

대수번뇌가 있다면 소수번뇌는 어떤 것인가?

분심을 내고 한이 많고 남 해코지 하고 자기 것 많이 아끼고 남 골치 아프게 하고 이런 것들이 소수번뇌다.

쪼잔하게 사는 것, 달달달 볶는 사람들 있잖은가.

후라이팬에 콩볶듯이 달달달달 볶아버린다.

이기대비(而起大悲):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들,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나면 불법이 뭔지도 모르고, 혼침하는 사람들, 방방거리고 산란스러운 사람들 이런 중생을 여기서는 아주 좀 묵직하게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10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되겠다.

마지막에는 부정지 제대로 알지 못해서 정신줄 놓는 것, 그 사람들을 보고 이 사람들 이러면 안 되는데해서 잘 챙겨준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보살(菩薩): 보살이

항이차심(恒以此心)으로 :항상 이러한 마음으로

관찰중생(觀察衆生)이니라 : 중생을 관찰해야 한다.

. 菩薩十種發菩提心因緣

 

佛子菩薩摩訶薩有十種發菩提心因緣하니 何等爲十所謂爲敎化調伏一切衆生故發菩提心하며 爲除滅一切衆生苦聚故發菩提心하며 爲與一切衆生具足安樂故發菩提心하며

爲斷一切衆生愚癡故發菩提心하며 爲與一切衆生佛智故發菩提心하며 爲恭敬供養一切諸佛故發菩提心하며 爲隨如來敎하야 令佛歡喜故發菩提心하며 爲見一切佛色身相好故發菩提心하며 爲入一切佛廣大智慧故發菩提心하며 爲顯現諸佛力無所畏故發菩提心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보리심을 내는 인연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기 위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내며, 일체 중생의 고통 무더기를 제멸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 중생에게 구족한 안락을 주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느니라.

일체 중생의 어리석음을 끊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주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여래의 가르침을 따라서 부처님을 환희케 하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육신과 상호를 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지혜에 들어가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며, 모든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발보리심인연(十種發菩提心因緣)

*

보살은 10가지로 보리심을 낸다. 조금 전에 무슨 마음이 일어났는가? 대비심이 일어났다.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막 쓰는 것이 아니고 임상실험이 끝나고 수행의 순서대로 써놓은 것이다.

어른 스님께서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경전만 잘 읽어도 해오(解悟)는 온다

제 의견은 경전만 제대로 이해하면 정오(正悟)도 된다

오늘 아침에 우리 학인이 물었다.

경전만 잘 읽어도 우리 어른스님께서 해오는 한다 했다.”

라고 하니까

스님 그럼 정오는 경전을 읽어서 안 됩니까?”

경전을 읽어서 정오한 사람이 있다.”

누굽니까?”

정오라고 하는 것은 정오스님 계시잖는가?

정오, 완전히 확실하게 체득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누구인가? 간화선을 주창하신 대혜종고(大慧宗杲)스님이다.

서장(書狀)의 행장을 보면 호구사(虎丘寺)에서 열화엄(閱華嚴)이다가호구사에서 화엄경을 보시다가 칠지보살(七地菩薩)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는 대목에서 활연대오했다라고 나온다.

그래서 앙굴리마라가 발우를 가지고 와서 산부(産婦)를 구한다는 화두가 타파되어 버렸다. 그 뒤로부터는 다시는 공부에 미련이 없었다.

간화선의 주창자인 대혜종고 스님 말씀이다.

제가 써놓은 것이 아니라 서장에 간화선 표지에 나온다.

대표적인 간화선 주창자가 대혜종고선사인데

그분보다 더 확실한 분이 있다.”

진짜입니까?”

그렇게 물은 학인은 대교반으로, 남방에서 소승 비파사나를 한 5년 닦다가 10년차 되는 스님이다.

정오하신, 그보다 확실한 분이 있다.”

누구십니까?”

이분은 소주 먹고 깨쳐버렸다. 응무소주(應無所住)로 깨쳤다.”

그거는 본 게 아니고 들은 거 아닙니까?”

, 맞네. 내가 틀렸다.”

경전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뜻으로 아는 것이잖은가.

육조 혜능스님은 금강경 한 구절에서 당신 평생의 살림살이를 다 정리해버렸다.

요즘 화엄경 세주묘엄품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다.

세주묘엄품과 보현행원품과 야마천궁게찬품, 십지품이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혼자 조용히 경이나 봤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영가 현각스님께서도 육조스님한테서 점안은 하셨지만 그전에 유마경을 보고 소식이 있었다.

남악 회양스님은 산하대지가 본연청정하다는 능엄경에서 소식이 있었다.

경전 글 구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과 경전에서 전하는 부처님의 뜻이 계합해서 알아졌다고 하기 때문에 경전을 문자로만 보지 않는다.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이니, 나한테 하나의 경전이 있으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이라. 글자로 된 것이 아니다.’종이나 글자로 된 경전 말고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라 펼치면 한 글자도 없지만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라.’

그런 뜻이 하도 좋으니까 선가귀감에 서산스님께서도 차용해 놓았다.

육조스님도 금강경에 대해 삼세제불이 차경출이다, 삼세제불이 이 금강경에서 나온다라고 해설해 놓았다.

그때 이 금강경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 금강경이 아니다.

금강경은 어디 있느냐? 그대의 무심이 바로 금강경이다, 라고 육조스님이 분명히 해석해놓으셨다.

금강경 오가해 때 다 배웠지 않은가?

그런 구절에서 우리가 접근해 들어간다면 화엄경이 다른 안목으로 보일 것이다.

어쨌든 저는 문자 강사니까 여기저기 해서 여기 나옵니다.

저기 나옵니다끼워 맞춰서 소개만 시켜드릴 뿐이다.

*

불자(佛子):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마살이

유십종발보리심인연(有十種發菩提心因緣)하니 : 열 가지의, 십종발보리심 인연이 있다.

발심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선지식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재동자다.

발심은 어디서부터 촉발되는 것인가?

공덕을 짓는 자비심, 신심에서 유발된다.

그런 것들을 유심히 생각해 보면 경전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 될 목적지를 정확하게 안내하는 글이라고 볼 수가 있다. 부처님이라고 볼 수가 있다.

발보리심인연이 있으니

하등(何等): 무엇이

위십(爲十): 열 가지냐.

소위위교화조복일체중생고(所謂爲敎化調伏一切衆生故): 소위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기 위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낸다.

대비심에서 보리심으로 넘어왔다. 아까 했던 항순중생하고 똑같다.

*

위제멸일체중생고취고(爲除滅一切衆生苦聚故):일체 중생의 고통의 무더기를 제멸하기 위해서, 싹 없어지게 멸절하기 위해서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보리심을 낸다.

허망한 고통, 고취(苦聚)의 고()자에다가 동그라미를 쳐놓으시면 되겠다.

아주 주도면밀하게 사성제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고성제에 해당한다. 허망한 고성제를 사라지게 한다.

중생제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고집멸도다이렇게 한다.

위여일체중생구족안락고(爲與一切衆生具足安樂故): 일체 중생에게 구족한, 완전히 퍼펙트한 안락을 주기 위하여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낸다.

적멸의 즐거움을 주도록, 진멸, 일체중생에게 상락아정, 진짜 그런 즐거움, 진멸, 원멸, 원만한 원적, 고요한 적멸을 선물하기 위해서 보리심을 낸다. 이것은 멸성제다.

고성제 다음으로 멸성제다. 우리가 극락을 열반이라고 한다.

니르바나, 멸성제라고 한다.

고성제로부터 멸성제 그다음 집성제가 되겠다.

위단일체중생우치고(爲斷一切衆生愚癡故): 일체 중생의 우치고로, 일체 중생의 어리석음을 끊어버린다.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를 조작해서 업을 짓는 도리에 매몰돼 버린다.

그 집성제를 끊어버린다. 인연을 다 끊어버린다.

일체 중생의 어리석음을 끊기 위해서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낸다.

고집멸 다음으로는 무엇이 남았는가? 도성제가 남아 있다.

한 서너 개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쓱 웃으면서 알아야 된다.

전생에 경을 좀 본 사람들은 그다음에 뭐 나오겠네하고 글자가 좀 빠져 있어도 나머지 문장을 알 수가 있다.

*

위여일체중생불지고(爲與一切衆生佛智故): 일체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혜를 주기 위하여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낸다.

부처님의 지혜는 어떤 것인가?

진도(眞道) 진짜로 정말로 진실한 도성제를 증득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지혜이고, 부처님이 가신 길이다.

여기서는 조작 없는 사성제 도리를 견주어서 보리심을 내게 한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보리심이 뭡니까?”“팔정도다. 보리심 중에도 제일 좋은 보리심이 팔정도다.” 이렇게 볼 수가 있다.

*

다음으로는 보리심을 끈으로 해서, 연을 삼아서 복과 지혜를 닦아나가는 대목들을 설명해 놓았다. 어떻게 보리심을 내느냐?

위공경공양일체제불고(爲恭敬供養一切諸佛故): 일체의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기 위하여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내고

123, 4, 5불 이종선근(而種善根) 이어무량천만불소(已於無量千萬佛所).

위수여래교(爲隨如來敎)하야 :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간다는 것은

영불환희고(令佛歡喜故):부처님을 환희하게 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즐겁게 한다. 영불환희라.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여서, 중생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낸다.

그래서 공경 공양하는 것은 부처님한테 복을 심는, 불전에서 복전을 심는 것이고,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는 것은 지혜를 심는 것이다.

*

위견일체불색신상호고(爲見一切佛色身相好故): 모든 부처님의 색신과 상호를 보기 위하여, 신과 상과 호 이에 대해 낱낱이 구분을 안 하겠다.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내고, 여기서는 신업을 이야기한다.

*

위입일체불광대지혜고(爲入一切佛廣大智慧故): 모든 부처님의 광대한 지혜에 들어가기 위해서, 의업을 이야기한다.

발보리심(發菩提心)하며 : 보리심을 낸다.

위현현제불력무소외고(爲顯現諸佛力無所畏故): 여러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발보리심(發菩提心): 보리심을 낸다.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이다.

발심주는 여기서 끝난다.

발심주에서 뭐까지 얻었는가? 대비심과 발보리심을 얻어서 다음으로 치지주(治地住)로 넘어간다.

치지는 지를 다스린다는 뜻인데 곧 선지식을 찾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금 전에 나눠드렸던 유인물이 또 한 장 있는데 그것을 한 번 보겠다.

이걸 같이 이렇게 봐버리고 난 뒤에, 참고서를 먼저 컨닝하고 난 뒤에 본문을 보면 금장 이해가 된다.

저는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어쨌든지 화엄경 속에 있는 것들을 끼워 맞춰서 전해드리는 수밖에 없다.

*

선지식을 믿고 의지하라. 이 대목은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최적정바라문자 다음에 누구인가? 덕생동자 유덕동녀에 나온다.

최적정바라문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가장 고요한 것은 무엇이냐?”

가장 고요한 것은 경계가 꺼진 것이 아니라 일심이 불생이다. 내 한 생각마저 꺼져서 무념이 됐을 때를 가장 고요하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내가 꺼져버리고 나면 시장 바닥에 가서 앉아 있더라도 시끄럽지가 않다.

또 오늘 여기 나눠드린 어른스님의 <108자재어> 45번 보겠다. 페이지는 17페이지 (108자재어 사경1)

 

45. 마음이 형편에 따라 바뀌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며, 형편이 마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과 현인이다.

 

생각이 형편에 따라 바뀌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108자재어> 다 가지고 계실 것이다.

동글동글하고 작고 땐땐하게 생긴 손바닥만한 책, 그 책에 한문 원문이 있다.

 

심수경전시범부(心隨境轉是凡夫).

마음이, 생각이, 신념이, 경계가 바뀔 때마다 빨간 거 쫓아갔다가 노란 거 쫓아갔다가 똥개처럼 이리저리 쫓아가는 것은 범부들이 할 짓이다, 이렇게 해놓았다.

원문이 여기 안 나와 있는데 그 원문을 한번 찾아보시면 된다.

 

경수심전시성현(境隨心轉是聖賢)

일체 성현은 개이무위법으로 이유차별한다. 그건 어떠냐?

경계가 바뀌고,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내가 덥게 써야 될지 차게 써야 될지를 구분한다.

마나라(摩拏羅) 존자의 게송에 그랬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나, 마음이 모든 경계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범부처럼 말초 신경에 집착해서 따라가지는 않는다. 전처(轉處)에 실능유(實能幽), 눈길이 가고 발길이 가고 귀가 들리고 맛을 보고 하는 데 따라서, 전부 다 심오한 이치에서 본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러니까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라, 흐름을 따라서 지말을 잡아서 모세 혈관을 잡아서 동맥으로 심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수류인득성이라.

가지 끝, 잎사귀를 잡고, 열매를 딱 잡아서 이것이 무슨 나무에서 어느 뿌리에서 나오는 줄 안다.

맛을 보면 감나무 맛을 알잖는가?

감나무 맛은 어떻겠는가? 떫기도 하고 달짝지근하기도 한다.

감나무가 떫고 달짝지근하니까 열매도 떫고 나뭇가지도 떫고 달짝지근하다.

산초나무는 딱 베물면 어떻겠는가? 뭐 그렇겠지, 잡솨보시라.

나무하고 잎사귀하고 절대 다르지가 않다.

마늘 뿌리 다르고 마늘 이파리 쫑지 다르고 안 그렇다.

매우면 다 똑같이 매운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전처(轉處) 실능유(實能幽)라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라

제가 어릴 때는 강의를 할 때도 그 구절이 해석이 안 됐다.

흐름을 따라서 인득성이라. 성품을 알면, 나중에 보니까 그 성품이라는 것이 근성이다.

말초 신경, 분별사식, 의식을 통해서 점점 아집이 떨어져 나가고 근본으로 딱 가서 견성성불을 해버리고 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그 자리가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로다.

마나라 존자의 게송에 나온다.

그것과 똑같은 것이 증도가 게송에도 고대로 1번으로 나온다. 전부 똑같이 나와 있다.

6조 스님의 오도송하고 똑같이 나와 있다.

그래서 아 옛날 어른들은 다 똑같은 걸 가지고 허공을 이렇게 모사하고 허공을 저렇게 모사하고허공이 없는 것은 똑같은데, 그것을 잡아서 설명하는 게 다 다르다.

그다음에 47(108자재어) 보면 방금 했던 해석이 나온다.

 

47. 산이 돌지 않으면 길을 돌리고, 길이 돌지 않으면 사람이 돌아가고, 사람이 돌아갈 수 없으면 마음을 돌려라.

 

산이 돌지 않으면 길을 돌리고, 길이 돌지 않으면 사람이 돌아간다. 사람이 돌아갈 수 없으면 뭘 돌린다? 마음을 돌린다.

이것이 되는가?

돌 게 있고, 안 돌 게 있는데 우리는 계속 산을 돌리려고 달려든다.

내가 돌아갈 생각은 안 하고 산을 돌리려고 한다.

이런 구절들을 유인물을 통해 다시 확인하겠다.

<유인물>

 

화엄경 입법계품 지말법회 덕생동자 유덕동녀 중에서

 

() 선지식을 믿고 의지하라

 

선남자여, 그대는 선지식을 구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나니, 선지식을 보고 싫어함을 내지 말며, 선지식에게 묻기를 수고로워 하지 말며, 선지식을 친근하되 물러갈 생각을 내지 말며, 선지식에게 공양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며,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되 잘못되고 착오됨이 없어야 하며, 선지식의 행을 배우되 의심하지 말며, 선지식이 벗어나는 문을 말함을 듣고 망설이지 말며, 선지식의 번뇌를 따르는 행을 보고 싫어하고 의심하지 말며, 선지식을 깊이 믿고 존경하는 마음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 선지식을 통하여 성취하다 {~}

 

선지식이 가르치는 행을 밝히다

 

무슨 까닭입니까, 선남자여, 보살이 선지식을 인하여 일체 보살의 모든 행을 들으며, 일체 보살의 공덕을 성취하며, 일체 보살의 큰 원을 내며, 일체 보살의 착한 뿌리를 이끌어 내며, 일체 보살의 도를 돕는 일을 모으며, 일체 보살의 법의 광명을 열어 밝히며, 일체 보살의 뛰어나는 문을 드러내 보이며, 일체 보살의 청정한 계율을 닦으며, 일체 보살의 공덕 법에 머물며, 일체 보살의 광대한 뜻을 청정하게 합니다. 일체 보살의 견고한 마음을 증장하며, 일체 보살의 다라니와 변재의 문을 구족하며, 일체 보살의 청정한 갈무리를 얻으며, 일체 보살의 선정의 광명을 내며, 일체 보살의 훌륭한 서원을 얻으며, 일체 보살과 동일하게 서원하며, 일체 보살의 훌륭한 법을 들으며, 일체 보살의 비밀한 곳을 얻으며, 일체 보살의 법보(法寶)의 섬에 이르며, 일체 보살의 착한 뿌리의 싹을 늘게 합니다. 일체 보살의 지혜의 몸을 자라게 하며, 일체 보살의 깊고 비밀한 갈무리를 보호하며, 일체 보살의 복덕더미를 가지며, 일체 보살의 태어나는 길을 깨끗이 하며, 일체 보살의 바른 법의 구름을 받으며, 일체 보살의 큰 서원의 길에 들어가며, 일체 보살의 보리의 결과에 나아가며, 일체 보살의 묘한 행을 거두어 가지며, 일체 보살의 공덕을 열어 보이며, 여러 지방에 가서 묘한 법을 듣습니다. 일체 보살의 광대한 위엄과 공덕을 찬탄하며, 일체 보살의 크게 자비한 힘을 내며, 일체 보살의 훌륭하고 자재한 힘을 거두어 가지며, 일체 보살의 보리의 부분을 내며, 일체 보살의 이익하게 하는 일을 짓습니다.”

 

*

유인물을 읽어보겠다.

선남자여, 그대는 선지식을 구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나니, 선지식을 보고 싫어함을 내지 말며, 선지식에게 묻기를 수고로워하지 말며, 선지식을 친근하되, 발보리심을 하면 누구를 찾아가게 되어 있는가?

선지식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

선지식을 안 찾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화엄경을 본다.

화엄경을 보게 되어 있다는 것도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에 효봉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발심하는 사람들은 선지식을 찾아가고,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 선지식한테 물어야 된다.

바둑을 두려면 바둑을 아는 사람한테 물어야 되고, 모르면 바둑책이라도 봐야 되지 않는가? 선생님한테 안 물으려면 참고서라도 봐야 된다.

자기의 문제이니까 우리는 참고서인 화엄경을 봐야 된다.

그런데 선생님이 성격이 안 좋다, 그러면 배워야 되겠는가, 안 배워야 되겠는가? 성격은 배우지 말고 문제만 풀면 된다.

능력만 배우면 된다.

주방장이 성질이 안 좋다. 음식을 배워야 될까 말아야 될까? 일단 음식은 배워라. 주방장 성질까지 배울 거는 아니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53 선지식 중에 별 선지식이 다 등장하는 것이다.

*

그런데 오늘 왜 이리 많이 오셨지?

초파일도 끝나고 단대목을 다 보신 것 같다.

*

선지식을 친근하되 물러갈 생각을 내지 말며, 어릴 때 이런 구절 때문에 선지식을 찾아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이창호를 만나면 바둑 8급에서 8단이 될 줄 알았다. 만나도 소용없잖은가?

어릴 때 혜암노스님 찾아가고 성철스님 찾아가고 고암스님이랑 선지식이라는 선지식은 다 찾아가는 것이다. 별로 성질도 안 좋은 사람들끼리 뭉쳐서 도반 3명이서 모여서 다녔다.

저에게 참선 지도해 주시는 스님께서 물으셨다.

니 요즘 뭐 하노?”

어떤 스님 만나고, 어떤 스님 만나고, 어떤 스님 만나고.”

가만히 듣다가 당신이 기가 찼을 것이다.

그래 아무리 물어봤자 답은 니한테 있지.”

그때는 그렇게 수긍이 안 되었었다.

문제는 문수보살한테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재동자 자신에게 있었다.

그래서 범행품 말미에는 뭐라고 나오는가?

지일체법(知一切法) 즉심자성(卽心自性)이라.

일체법이 전부 마음의 자성으로 되어 있다.

성취혜신(成就慧身) 부처님의 몸을 얻는 데는, 법신을 얻는 데는, 자기의 견성성불하는 데는, 불유타오(不由他悟). 남에게 빌려서 얻는 것이 아니다. 자기 마음 자기가 깨쳐야 된다, 이렇게 해놨다.

일단은 여기 선지식을 보겠다.

*

선지식에게 공양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며,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되 잘못되고 착오됨이 없어야 하며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단디 들어야 된다.

선지식의 행을 배우되 의심하지 말며

입법계품 같은 데서는 선지식을 의심하는 것이 세 대목 나온다. 탐진치로 누가 나오는가?

승열바라문 그다음에 탐심에 누구인가?

삿된 소견인 치심에는 승열바라문, 탐심에는 바수밀다, 화 잘 내는 것은 무염족왕이다. 이들은 역행(逆行) 선지식이다.

불교 공통적으로 역행 선지식은 누구인가? 제바달다, 정확하게 제바달다가 역행 선지식의 제일 대표적인 예다.

제바달다가 아니면 내가 성불하지 못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제바달다처럼 악독하지도 않은 조그만 사람 때문에 내가 저거만 아니면 공부를 할 텐데이런 생각, 남 핑계를 많이 대지 않는가.

부처님은 우리가 그런 핑계를 못 대게 아예 누구를 박아버렸는가? ‘제바달다의 극악무도함 속에서도 부처님은 성불을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

선지식이 벗어나는 문을 말함을 듣고 망설이지 말며, 선지식의 번뇌를 따르는 행을 보고 싫어하고 의심하지 말며그러니까 선지식이 하는 행은, 그대로 그냥 하면 된다.

*

선지식을 깊이 믿고 존경하는 마음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선남자여, 보살이 선지식을 인하여 일체 보살의 모든 행을 들으며, 일체 보살의 공덕을 성취하며, 일체 보살의 큰 원을 내며, 일체 보살의 착한 뿌리를 이끌어 내며, 일체 보살의 도를 돕는 일을 모으며, 일체 보살의 법의 광명을 열어 밝히며, 일체 보살의 뛰어나는 문을 드러내 보이며, 일체 보살의 청정한 계율을 닦으며, 일체 보살의 공덕 법에 머물며, 일체 보살의 광대한 뜻을 청정하게 합니다. 일체 보살의 견고한 마음을 증장하며, 일체 보살의 다라니와 변재의 문을 구족하며, 일체 보살의 청정한 갈무리를 얻으며, 일체 보살의 선정의 광명을 내며, 일체 보살의 훌륭한 서원을 얻으며, 일체 보살과 동일하게 서원하며, 일체 보살의 훌륭한 법을 들으며, 일체 보살의 비밀한 곳을 얻으며, 일체 보살의 법보(法寶)의 섬에 이르며이것을 흔히 자득명 법등명이라고 하지 않는가.

일체 보살의 섬. 법주, 보주.

일체 보살의 착한 뿌리의 싹을 늘게 합니다. 일체 보살의 지혜의 몸을 자라게 하며, 일체 보살의 깊고 비밀한 갈무리를 보호하며, 일체 보살의 복덕더미를 가지며, 일체 보살의 태어나는 길을 깨끗이 하며, 일체 보살의 바른 법의 구름을 받으며, 일체 보살의 큰 서원의 길에 들어가며, 일체 보살의 보리의 결과에 나아가며, 일체 보살의 묘한 행을 거두어 가지며, 일체 보살의 공덕을 열어 보이며, 여러 지방에 가서 묘한 법을 듣습니다.”

자비심이 있어야 의욕이 있고, 여러 지방에 간다.

일체 보살의 광대한 위엄과 공덕을 찬탄하며, 일체 보살의 크게 자비한 힘을 내며, 일체 보살의 훌륭하고 자재한 힘을 거두어 가지며, 일체 보살의 보리의 부분을 내며, 일체 보살의 이익하게 하는 일을 짓습니다.”

*

거기까지 하고 다시 화엄경으로 넘어오겠다.

선지식을 친근하고,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오는 마음은 선지식을 찾아나선다라는 마음이다.

발심을 안 한 사람들은 선지식을 찾아가지 않는다.

제가 행자 때 사미계를 40명이 받았다. 해인사에서 남자 스무 명 여자 스무 명 큰 절에서 받았다.

그때는 단일계단도 있고 본사계단도 있는데 본사계단에서 받고 3월 보름날 받고 백련암에 올라가서 방장이신 성철스님께 인사하러 올라갔다.

그때 우리 사미들 중에도 건방이 끓어넘치는 분이 있었다.

지 성철이 지 성철이고 나는 내 갈 길로 간다.”

하면서 인사를 안 하고 가버렸다.

백련암에도 안 올라갔다.

그분은 행자 생활을 한 6년 했다고 했다.

행자 생활 몇 년 했어요?”

상무대에서 1년하고

지금도 그 수계 도반스님이 눈앞에서 삼삼하다.

지금쯤 도를 깨우쳐서 우화등선했는지 모른다. 개금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연락도 없이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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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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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극락영 | 작성시간 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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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묘덕 | 작성시간 24.06.28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작성자眞 覺 心 | 작성시간 24.06.28 _()()()_
  • 작성자法雨性 | 작성시간 24.06.30 _()()()_
  • 작성자日覺心 | 작성시간 24.07.07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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