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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노트 (161-2 이세간품 4.보현보살의 이천답)

작성자慧明華|작성시간24.06.25|조회수141 목록 댓글 7

(2) 治持住

. 菩薩十種心

 

佛子若菩薩發無上菩提心인댄爲悟入一切智智故親近供養善知識時應起十種心하나니 何等爲十所謂起給侍心歡喜心無違心隨順心無異求心一向心同善根心同願心如來心同圓滿行心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만일 보살이 위없는 보리심을 내었을진댄 일체 지혜의 지혜에 깨달아 들어가기 위하여 선지식을 친근하고 공양할 때에는 마땅히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키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시중드는 마음과, 환희하는 마음과, 어기지 않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과, 따로 구함이 없는 마음과, 한결같은 마음과, 착한 뿌리가 같은 마음과, 소원이 같은 마음과, 여래의 마음과, 원만한 행이 같은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

치지주(治持住)

*

보살(菩薩)의 십종심(十種心)

*

불자(佛子): 불자야

약보살(若菩薩): 보살이

발무상보리심(發無上菩提心)인댄 : 발무상보리심인댄

위오입일체지지고(爲悟入一切智智故): 위오입일체지지고로

친근공양선지식시(親近供養善知識時): 선지식을 친견하고 공양할 때는

응기십종심(應起十種心)하나니 : 마땅히 열 가지 마음을 일으킨다.

하등(何等):무엇이

위십(爲十): 열 가지냐?

조금 전에 이야기했지 않은가? 먼저 그렇게 공부해놓고 여길 보면 이 글이 싹 들어와 버린다.

*

소위기급시심(所謂起給侍心): 이른바 시중들 마음과

환희심(歡喜心): 선지식을 보고 환희하는 마음을 내고

무위심(無違心): 선지식을 어기지 않는 마음과.

앞에 유인물에서 나왔다.

덕생동자 유덕동녀가 미륵보살을 만나기 바로 직전에 나오는 말이 선지식에 대한 마음가짐, 찬탄이었다.

덕생이라는 말이나 유덕이란 말이 같은 말이잖은가.

공덕이 있는 천진난만한 사람들이 덕생동자 유덕동녀인데 입법계품에는 동남동녀가 다섯 명 등장한다.

보살도 다섯 명이 등장하고 우바이도 다섯 명 등장한다.

수순심(隨順心): 순종하는 마음과

무이구심(無異求心): 따로 구함이 없는 마음과.

따로 구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선지식한테 달라붙으면 내 이름이나 좀 올라갈랑가, 은사스님 정해놓으면 먹고 사는 거는 좀 나을랑가하면서 선지식에 대해서 명성이 높은지, 선지식이 잘살든지 못 살든지, 또 선지식이 과실이라든지 허물이 많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 자기 공부할 것만 찾아가서 챙겨라, 하는 뜻이다.

일향심(一向心): 일향심과

동선근심(同善根心): 선근이 같은 마음, 그것을 우리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한다.

동원심(同願心): 원력이 같은 마음, 소원이 같은 마음을 딱 회통쳐서 한마디로 해놨다.

여래심(如來心): 부처님과 같은 마음으로, 선지식을 부처님처럼 여겨야 된다는 말이다.

초발심자경문에서 부처님과 같이 여기는 대목을 여대대빈(如對大賓)이니라라고 했다. 마치 부처님을 마주하고 있는 듯이, 혼자 있을 때 부처님을 마주하고 있는 듯이 하라고 했다.

선지식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동원만행심(同圓滿行心): 원만한 행과 같은 마음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니라.

 

. 薩摩十種淸淨

 

佛子若菩薩摩訶薩起如是心하면 則得十種淸淨하나니 何等爲十所謂深心淸淨이니 到於究竟하야 無失壞故色身淸淨이니 隨其所宜하야 爲示現故音聲淸淨이니 了達一切諸語言故辯才淸淨이니 善說無邊諸佛法故智慧淸淨이니 捨離一切愚癡暗故受生淸淨이니 具足菩薩自在力故眷屬淸淨이니 成就過去同行衆生諸善根故果報淸淨이니 除滅一切諸業障故大願淸淨이니 與諸菩薩性無二故諸行淸淨이니 以普賢乘으로 而出離故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키면 열 가지가 청정하여지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깊은 마음이 청정하니 끝까지 이르도록 없어지지 않는 연고며, 육신이 청정하니 마땅한 바를 따라서 나타내는 연고며, 음성이 청정하니 일체 모든 말을 모두 통달하는 연고이니라.

변재가 청정하니 그지없는 모든 부처님 법을 잘 연설하는 연고며, 지혜가 청정하니 모든 어리석음을 여의는 연고며, 태어남이 청정하니 보살의 자유자재한 힘을 구족한 연고며, 권속이 청정하니 과거에 함께 행하던 중생의 착한 뿌리를 성취하는 연고이니라.

과보가 청정하니 일체 모든 업장을 제멸한 연고며, 큰 서원이 청정하니 모든 보살로 더불어 성품이 둘이 없는 연고며, 모든 행이 청정하니 보현의 법으로 벗어나는 연고라, 이것이 열이니라.”

*

보살(薩摩)의 십종청정(十種淸淨)

*

선지식을 친근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현상은 어떠냐? 그들은 청정해서 집착심이 없는 사람들이 된다.

자비심이 있고 보리심이 있고 선지식을 친근하는 친근심이 있고 그다음에 무엇인가? 청정심이 돋아난다.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경전에는 아주 자세하게 써놨다. 뒤죽박죽이 아니고, 화엄경만 읽고 이대로만 밟아가면 된다.

음식 재료를 갖다가 살짝 볶든지 많이 볶든지 다시물을 내든지 할 때 그 순서가 다 있다. 콩나물은 푹 삶아야 되고 시금치는 살짝 데쳐야 되는데, 시금치를 푹 삶아버리고 콩나물을 살짝 데쳐놓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는가. 뭘 푹 삶아야 될지 약하게 삶아야 될지를 안다.

화엄경을 잘 보면 음식 솜씨도 있어진다.

화엄경을 잘 보면 글을 쓰든지 운동을 하든지 뭘 하든지, 연설을 하든지 그 흐름대로만 흘러가 버리니까, 결이 살아난다.

거꾸로 되는 것이 없고 껄끄럽지가 않다.

불자(佛子): 불자야

약보살마하살(若菩薩摩訶薩):만약에 보살마하살이

기여시심(起如是心)하면 :이와 같은 마음을 내면, 이와 같은 마음이 무슨 마음인가?

선지식에 대해서 순수한 마음을 낸다면, 선지식에 대해서 남의 시시비비에 안 휘말리고, 의심을 안 하고 무조건 오직 공부를 위해서 선지식을 친근한다면

즉득십종청정(則得十種淸淨)하나니 : 열 가지가 청정해진다.집착심이 다 떨어져 나가버린다.

그 열 가지 집착이 다 떨어져 나가버리면 아주 지혜롭기 때문에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햇빛이 바람 속에 흔들리지 않듯이 그냥 환하다.

이익이나 손해에 대해서 예민하게 이해타산이 없어져 버린다.

안 그러면 하루종일 모였다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술을 살짝살짝 올리면서 남 욕하는 것뿐이잖은가.

하등(何等): 하등이

위십(爲十): 위십고

소위심심청정(所謂深心淸淨)이니 : 소위 깊은 마음이 청정이다. 깊은 마음이 오기까지는 기신론에서 뭐라 했는가? 먼저 오는 현상이 직심(直心)이라고 했다. 직심 정직한 사람은 마음이 깊어진다. 깊은 마음이 청정하다. 의업이 청정해져 버린다.

도어구경(到於究竟)하야 : 끝까지 이르도록

무실괴고(無失壞故): 없어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깊어져 버리느냐?

완전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하듯이, 뿌리가 천 척 만 척이 되어서 엔간한 바람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구경까지, 끝까지 이르도록, 지구가 없어지면 없어졌지 그 나무뿌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산천이 몇 번 바뀌어도 부처님은 안 바뀌시잖는가.

도어구경하야 무실괴고니라. 없어지지 않는 연고다.

여기는 삼업(三業)의 청정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방금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무슨 업인가? 의업이다.

의업이 나왔으니까 신업과 구업 두 개가 남았다.

이렇게 뒤에 뭐가 나오겠다고 짐작이 가야 된다.

그걸 모르시면 돌때가리, 우리 방장스님이 옛날에 돌때가리는 빠싸 뻐려야 된다고 하셨다.

색신청정(色身淸淨)이니 : 색신이 청정하니 생무애자재하시며 구세대비자와 기신론 같은 데 그렇게 나온다. 색신이 청정하니

수기소의(隨其所宜)하야 : 그 마땅한 데를 따라서

위시현고(爲示現故): 나타낸다.

크게 나타날 때 크게 나타내고, 멀리 갈 때는 멀리 가고 가까이 올 때는 가까이 온다.

술잔에는 달이 작게 뜨고 바다에는 달이 크게 뜬다.

중생수기득이익이다.

법신충만어법계(法身充滿於法界)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색신이 아바타로 안 가는 데가 없다.

삼성 텔레비전 있는 사람은 삼성 텔레비전만큼 나오고, 소니 텔레비전 있는 사람은 소니 텔레비전만큼, LG 텔레비전 있는 사람은 LG 텔레비전만큼, 그 인치에 맞춰서 나온다.

색신은 본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크기에 따라, 신업이 마땅한 데 따라, 거기에 적당하게 나타난다. 살 돈도 없는 사람한테 큰 거를 가져다 주면 기절해 버린다.

*

음성청정(音聲淸淨)이니 : 음성이 청정하다.

음성이 청정하다고 하는 것, 청정하다는 말은 집착이 없다는 말씀이다. 음성이 청정하니 집착이 없다.

요달일체제어언고(了達一切諸語言故): 온갖 말에 모두 통달하는 연고다. 말에 붙어서 뜻을 전한다.

*

변재청정(辯才淸淨)이니 : 작용이 어떻게 청정하냐? 앞에서는 업의 청정을 이야기하고 여기서는 작용하는 마음이 어떻게 청정한가? 이것을 다양하게 한 서너 가지 설명해놨다.

변재가 청정하니

선설무변제불법고(善說無邊諸佛法故): 무량무변한 부처님 불법을 잘 설법하는 연고다.

구업도 다양하게 큰소리로 했다가 작은 소리로 했다가 농담도 했다가 진담도 했다가 울기도 했다가 별 공연을 다 한다. 구업이 다양한 것이 변재청정이다.

약사들이 오면 약을 가지고 이야기해 주고, 컴퓨터 하는 사람들 오면 컴퓨터 가지고 이야기해 주고, 농사 짓는 사람에게는 농사를 가지고 이야기해 준다.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세탁업을 하는 사람이 오면 세탁을 가지고 법문해주고 대장장이가 오면 대장장이 대로 법문을 해주었다.

그것이 변재청정이다.

지혜청정(智慧淸淨)이니 : 지혜가 청정하니, 온갖 종종 지혜가 있다. 일체 종지가 이루어져서 음식이면 음식, 옷이면 옷, 모든 솜씨가 다 발휘되는 것이다.

사리일체우치암고(捨離一切愚癡暗故): 이 어리석은 삿된 소견머리를 멀리 벗어나니 지혜가 총명해져 버렸다.

매미가 껍데기 홀딱 벗어버리듯이, 껍데기 있는 매미는 굼벵이나 되지 날 수가 없잖은가.

*

수생청정(受生淸淨)이니 : 태어남이 청정하다. 구업이 나왔고, 지혜는 의업이고, 수생은 신업이다.

그래서 아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하는구나하고 아는 것이다.

구족보살자재력고(具足菩薩自在力故): 태어남이 청정하니 보현일체중생전하니 보살이 자유자재한 힘을 구족한 연고며

권속청정(眷屬淸淨)이니 : 권속이 청정이다. 권속이 청정이라고 하는 것은 유유상종을 말한다.

성취과거동행중생제선근고(成就過去同行衆生諸善根故): 과거에 함께 행하던 중생의 착한 뿌리를 성취하는 연고다.

자석도 쇳가루나 자석에 달라붙지 모래나 흙이 자석에 달라붙는 법은 없잖은가.

*

과보청정(果報淸淨)이니 : 과보청정정이라. 과보가 청정하니 지난 시간에 했던 인업청정, 만업청정이라고 한다.

제멸일체제업장고(除滅一切諸業障故):일체 모든 업장이 다 제멸되는 까닭이고

대원청정(大願淸淨)이니 : 큰 서원이 청정하니

여제보살(與諸菩薩): 모든 보살들과 더불어서

성무이고(性無二故): 성품이 둘이 없는 연고다. 법성무이상이다.

원이 나왔으니까 원 다음엔 뭐가 나와야 되는가? ‘보현행원행이 나와야 된다. 바로 뒤에 나오는 보현승이 보현행이다.

제행청정(諸行淸淨)이니 : 모든 행이 청정하니

이보현승(以普賢乘)으로 : 보현의 법으로, 보현승으로, 일승법으로 보현승은 일승이다. 일승 보현승으로

이출리고(而出離故):출리하나니, 벗어나느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이렇게 취지주까지 했다.

 

(3)修行住

 

. 菩薩十種波羅蜜

 

佛子菩薩摩訶薩有十種波羅蜜하니 何等爲十所謂施波羅蜜이니 悉捨一切諸所有故戒波羅蜜이니 淨佛戒故忍波羅蜜이니 住佛忍故精進波羅蜜이니 一切所作不退轉故禪波羅蜜이니 念一境故般若波羅蜜이니 如實觀察一切法故智波羅蜜이니 入佛力故願波羅蜜이니 滿足普賢諸大願故神通波羅蜜이니 示現一切自在用故法波羅蜜이니 普入一切諸佛法故是爲十이니 若諸菩薩安住此法하면 則得具足如來無上大智波羅蜜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바라밀다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시 바라밀다니 일체 모든 가진 것을 다 버리는 연고며, 계율 바라밀다니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이 하는 연고며, 참는 바라밀다니 부처님의 인욕에 머무는 연고이니라.

정진 바라밀다니 모든 짓는 일이 물러나지 않는 연고며, 선정 바라밀다니 한 경계를 생각하는 연고며, 반야 바라밀다니 모든 법을 사실대로 관찰하는 연고며, 지혜 바라밀다니 부처님의 힘에 들어가는 연고며, 서원 바라밀다니 보현의 여러 가지 큰 서원을 만족하는 연고며, 신통 바라밀다니 온갖 자유자재한 작용을 나타내는 연고며, 법 바라밀다니 모든 부처님 법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라.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 바라밀다를 구족하게 되느니라.”

 

*

수행주(修行住)

*

수행주, 일승수행, 화엄의 수행을 바라밀행이라고 하고, 다른 말로는 보현행원이라고 한다.

수행자를 인격적으로 보현보살이라고 한다. 반드시 문수보살의 근본지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문수 보현은 누구하고 똑같은가? 비로자나 부처님하고 항상 똑같다. 경전은 이렇게 된다.

금강경을 할 때도 봤지만, 주수항(住修降)이라고 했다. 주라고 하는 것은 앞의 십주에서 이야기한 것이고, 수행주로 넘어간다면 행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

 

보살(菩薩)의 십종바라밀(十種波羅蜜)

*

마음이 청정해지면 바라밀행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마음이 청정해진 사람은 선지식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바라밀행이 우러나오면 한약의 약재가 우러나듯이 진액이 우러나오는 것과 같다.

*

불자(佛子):.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유십종바라밀(有十種波羅蜜)하니 :열 가지 바라밀행이 있다.

열 가지 바라밀을 수행주라고 했지만 이것을 그대로 업그레이드 해놓으면 십지품의 십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십주는 십지를 조금 줄여놓은 것이다.

십행도 십바라밀을 줄여놓은 또 다른 이름이다.

산수하다가 수학하다가 대학수학하다가 이런 식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볍씨를 뿌려서 못자리에서 묘목으로 키울 때가 있고, 묘목을 이양해 키워서 모내기를 해야될 때가 있다.

묘목의 모를 빽빽하게 그냥 놔두면 나락이 안 영근다. 분리시키고 다시 심어야 된다.

농사짓는 것이나 수행하는 것이나 경우가 똑같다.

천년 만년 달걀에 있는 사람, 부화 못하는 사람들을 절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이승의 성문연각 12 연기나 사성제만 들고 파는 사람들을 볶은 종자라고 한다.

제 얘기가 아니라 경전에 나온다.

볶은 종자라고 볶을 초()자 초종(炒種)이라고 한다.

초종이라는 볶은 종자보다 더 비참하고 지저분한 종자는 패종(敗種)이라고 해서 썩을 패자 실패할 패()자를 쓴다.

패종, 썩어 문드러진 종자는 아예 싹을 틔울 수가 없다.

지금 여기 나오는 보살종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종자를 끊지 않는다할 때의 불종자를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종자는 어디에 뿌리박느냐 하면 허공에서 자란다.

허공의 불종자 그러니까 여기 바로 청정무착에서 자란다.

불종자는 허공에서 자라는데, 허공은 무엇인가? 제법의 무아요, 제행의 무상이다. 이것이 불종자가 자랄 수 있는 무념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의 터전이 된다는 말씀이다.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바라밀다가 있으니

하등(何等): 무엇이

위십(爲十): 열 가지냐. 여기서 무착행 성공스님을 이야기 한다. 법의 법성이 공한 이치를 이야기한다. 성공.

소위시바라밀(所謂施波羅蜜)이니 : 소위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실사일체제소유고(悉捨一切諸所有故):모든 가진 것을 다 버리는 연고이고

계바라밀(戒波羅蜜)이니 : 계율바라밀이니

정불계고(淨佛戒故): 청정한, 부처님의 계율을 청정히 깨끗이 하는 연고이고

인바라밀(忍波羅蜜)이니 : 인바라밀이니, 부처님의 인욕에

주불인고(住佛忍故): 머무르는 연고다.

부처님의 인욕은 어떤 것인가? 절대 무심이다.

상대적인 무심이 아니고 절대 무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여래종자는 허공 같은 데서 자란다그랬다.

*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니 : 정진바라밀다니, 정진바라밀, 여기서부터 악업장이 하나씩 하나씩 소멸된다.

일체소작(一切所作): 일체 지은 바 업이

불퇴전고(不退轉故): 불퇴전고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무조건 용맹 정진하는 것이다.

정진은 찬찬히 정의롭게 나아간다.

서장에 보면 그런 구절이 있다.

활 쏘는 걸 배울 때는 습사(習射)에 구구하면 자연 적중이라고 하지만, 먼저 배울 것은 활을 시위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을 땅에 딱 고정시켜서 기마자세, 힘부터 길러야 된다.

발바닥부터 딱 버티고 서라이래 놨잖은가.

정진까지 오자면 앞에 나온 보시부터 잘해라.

그다음에 계율 잘 지키고 그다음에 잘 참는 것이다.

그렇게 못하고 선정바라밀을 하려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선정이 찾아올 리가 없다.

계정혜라고 그냥 해놓은 것이 아니다.

선바라밀(禪波羅蜜)이니 : 선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말과 생각이 소멸되어 버린다.

우리는 참선한다면서 요리조리 생각이 생각을 자꾸 굴리면서 앉아서 참선한다고 한다.

염불이 극치에 올라가면 무염불이 되고 무념이 되는데 무념을 부처님이라 하고 염불은 중생이라고 한다.

말과 생각이 소멸된다. 선정바라밀이다.

념일경고(念一境故): 한 경계를 생각하는 경계이며, 전주일치라고 이야기한다. 전주일치 사마타 수행 중에 다섯 번째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니 : 여섯 번째는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이 되면

여실관찰일체법고(如實觀察一切法故): 여실히 알고, 진실다운 견해를 가진다.

여실지관이 되기 때문에 여실관찰 여실수행이 되는 것은 기신론에서 여실수행자등 하옵나니할 때 원효스님께서는 해석하기를 여실히 자기가 아는 만큼 견해만큼 수행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십지보살부터 시작한다이렇게 해놨다.

여기서 여실관찰하는 것도 우리가 반야심경할 때 행심반야바라밀다(行深般若波羅蜜多) 할 때 조견(照見)해서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사리자(舍利子)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은 뭔가?

사리자야부터는 성문아 잘 들어라. 보살은 이렇게 살았다보살은 누구인가? 관세음보살은 이렇게 사셨다.

관세음보살은 오온이 공한 걸 꿰뚫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니까 성문인 너희는 사성제에도 메이지 말고 12연기에도 매이지 말라.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무명진(無無明盡) 내지(乃至) 무노사(無老死)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 일체법이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로 보리살타(菩提薩埵) 보살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간다? 마음의 무가애(無罫碍) 무가애(無罫碍) 무유공포(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므로 구경열반(究竟涅槃)에 들어간다.

삼세제불(三世諸佛)도 그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었다.

그래서 이 반야심경은 시대신주(是大神呪)고 시대명주(是大明呪)고 시무상주(是無上呪)고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그러나 본래 없지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현행원을 해 나가야 된다.

보현행원은 어떻게 하는가?

아제아제(揭諦揭諦) 바라아제(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모지(菩提) 사바하(娑婆訶)

우리 다 함께 자타일시성불도 하는 것이 보현행원이다.

반야심경 한 구절에도 그렇게 해놓았다.

롤모델로 누구를 제시하는가?

관세음보살이다.

관자재보살이 관이 자재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실관찰한다. 일체법을 잘 관찰해 봐라. 일체법을 관찰해보니까 응관법계성하니까 일체유심조니라. 일체법을 잘 관찰해 보니까 요지일체법 하니까 자성이 무성이라. 있는 법이 없다.

모든 법은 어디서 일어난다? 제법은 종연생이라, 인연으로부터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법도 사그라들어서 없어진다.

아사대사문은 우리 부처님께서는 상작여시설이라.

마승비구의 이야기, 부처님이 녹야원 5비구한테 게송으로 했던 게송이 있잖은가?

그것이 능가경이나 기신론 같은 데, 화엄경 같은 데 여지없이 나온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는

지바라밀(智波羅蜜)이니 : 지바라밀이니. 이때 지자는 반야지로부터 파생되어진 방편지다. 방편바라밀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방편바라밀이니 지바라밀이니

입불력고(入佛力故): 부처의 힘에 들어가는 것이다.

방편이 있고 차별, 분별심이 있어야 부처님의 불력에 그 방편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에 지바라밀이라고 해놓았다.

방편 다음에는 원바라밀이 아니겠는가.

원바라밀(願波羅蜜)이니 : 다음은 여덟 번째 원바라밀 제8 부동지에서 원바라밀이니

만족보현제대원고(滿足普賢諸大願故): 보현보살의 모든 큰 원력을 만족하는 고다. 원바라밀 다음에

신통바라밀(神通波羅蜜)이니 : 신통바라밀이니 이 신통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역바라밀이 된다.

구족신통력(具足神通力) 광수지방편(廣修智方便)’이라고 하는 것처럼 삼매에 역이 있어야, 올바른 것인지 치우친 것인지 그런 것을 가리지 않게 된다. 신통이 열리는 것은 안팎이 없잖은가.

시현일체자재용고(示現一切自在用故): 시현일체자재, 일체의 모든 조건에서 묶어놓든지 풀어놓든지 거기에 대해서 자유자재하게 작용을 시연하는 까닭으로 신통바라밀이다. 역바라밀이라고 한다. 그다음에 마지막에

법바라밀(法波羅蜜)이니 :법바라밀 법바라밀이 또 다른 말로는 지바라밀이라고 한다.

일체종지 갖가지에 대해서 모든 법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색법이나 소리를 듣는 법이나 맛을 음식을 하는 법이나 모든 법에 대해서 일체 다 환하다. 법바라밀다니

보입일체제불법고(普入一切諸佛法故): 모든 부처님 법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다.

일체종지라고도 이야기한다.

약제보살(若諸菩薩):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무른다면 안주한다면

즉득구족여래무상대지바라밀(則得具足如來無上大智波羅蜜)이니라 : 즉득이라든지 질득이라든지 지난 시간에 우리가 질득을 배웠잖은가. 불교에서는 늘 즉득이라든지 속득을 이야기한다. 그 자리에서 바로 여래의 위 없는 무상대지바라밀다를 구족하게 되느니라.

 

. 薩摩十種智隨覺

 

佛子菩薩摩訶薩有十種智隨覺이니 何等爲十所謂一切世界無量差別智隨覺一切衆生界不可思議智隨覺一切諸法一入種種하고 種種入一智隨覺一切法界廣大智隨覺一切虛空界究竟智隨覺一切世界入過去世智隨覺一切世界入未來世智隨覺一切世界入現在世智隨覺一切如來無量行願皆於一智而得圓滿智隨覺三世諸佛皆同一行으로 而得出離智隨覺是爲十이니 若諸菩薩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法自在光明하야 所願皆滿하야 於一念頃悉能解了一切佛法하야 成等正覺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의 한량없이 차별한 것을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일체 중생계의 불가사의한 것을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일체 모든 법이 하나가 가지가지에 들어가고 가지가지가 하나에 들어가는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니라.

온갖 법계의 광대한 것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허공계의 끝닿는 데를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세계가 과거 세상에 들어감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세계가 미래 세상에 들어감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니라.

모든 세계가 현재 세상에 들어감을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모든 여래의 한량없는 행과 원을 모두 한 지혜에 원만함을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세 세상 부처님들이 다 같은 행으로 벗어남을 얻음을 지혜로 따라 깨달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의 자재한 광명을 얻고 소원이 다 만족하여 잠깐 동안에 모든 불법을 다 능히 이해하고 정등각을 이루느니라.”

*

보살(薩摩)의 십종지수각(十種智隨覺)

*

열 가지의 지수각이라. 지혜가 깨달음을 따른다. 따라서 깨달아진다.

근본 원료인 금덩어리로 금가락지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고 숟가락, 젓가락을 형편에 따라서 다 만든다.

지혜라는 것이 근본이고, 뒤에 따라오는 지각은 거기에서 수반되어져 나오는 지류가 된다. 이것이 지수각이다.

기신론 같은 데서는 진여문에서는 각과 불각이 없다고 나온다. 우리 진심에서는 각과 불각이 없고, 생멸문에 와서 각과 불각이 나온다.

자성청정의 각이라고 하는 본각 중에서도 성정본각(性淨本覺)이 있고 생멸문 중에서도 각을 가지고 생멸의 인연을 따라 도는 각을 수염본각(隨染本覺)이라고 한다.

성정본각에서는 여실공경(如實空境) 인훈습경(因熏習鏡) 법출리경(法出離鏡) 연훈습경(緣熏習鏡)이 있다.

수염본각에서는 지정상(智淨相)이라고 하는 지혜가 청정한 모습과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이 있다.

그런 것을 이해하면 여기 나오는 지수각이라는 말이 생소해도 금방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문수보살은 진심, 진여문의 부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구나, 보현보살이라면 중생을 따라서 끝없이 돌아가는 생멸문을 이야기하는구나, 그러니까 진여문과 생멸문, 진망이 화합해서 하나로 이루어진 것을 비로자나 부처님이라고 하는구나, 그것은 본래 없는데 형편에 따라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알 수가 있다.

*

불자(佛子):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지수각(有十種智隨覺)이니 : 열 가지 지혜를 따라서 깨달음이 있으니

하등(何等): 무엇이

위십(爲十): 열이냐. 근본이 지말을 따라서 간다.

근본지로서 후득지를 따라서 성숙하면, 솜씨가 무르익어버리면 아무거나 다 만들 수가 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다.

소위일체세계무량차별(所謂一切世界無量差別): 소위 일체 모든 세계의 한량 없이 차별하는 것을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일체중생계불가사의(一切衆生界不可思議): 일체 중생 세계가 불가사의한 것을

지수각(智隨覺): 지수각이라. 불가사의한 것을 지혜가 따라 깨닫는다.

붓글씨를 써도 왕희지체도 있고 구양순체도 있고 한석봉체도 앉은뱅이체도 있고 별 글씨체가 다 있다.

무르익어서 자기 쪽으로 다 가버리는 것이다.

일체제법(一切諸法): 일체 제법이

일입종종(一入種種)하고 : 일입종종하고

종종입일(種種入一): 종종입을

지수각(智隨覺): 지수각이라.

모든 법이 하나가 가지가지에 들어가고, 하나가 종종에 들어간다.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하듯이, 하나가 각각에 다 들어가고 갖가지가 하나에 다 들어온다.

우리가 여기서 등불을 비추어도, 오늘 불이 좀 환하지 않은가? 여기 등불을 공사했다.

안 그래도 제가 인물도 훤한데 오늘 더 환하다.

전에 등불들이 동그란 것이 있었는데 맞춰서 환하게 해놓았다. 불사는 다 어른스님이 하시니까 어른스님한테 감사하다.

*

일체법계광대(一切法界廣大): 일체법계의 광대한 것을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서, 법계도 깨닫고 하나가 다중이 되고, 다중이 하나가 되고, 또 일체의 허공계가 법계라고 하는 것은 유식으로 일어난 세계의 법계라고 한다.

그리고 중간으로, 세계에서 공간으로 이렇게 꺼져버린 세계를 허공계라고 한다.

진법계 허공계라, 진공묘유를 이렇게 얘기해놨구나, 이렇게 보시면 되겠다.

펼치자면 무한함이 끝도 없고, 없다고 하자면 미진의 한 방울도 있을 수 없다.

일체허공계구경(一切虛空界究竟): 모든 허공계의 끝닿은 데를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 깨닫는다. 우주선도 만들고 장도 담그고 팔방미인이 되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큰 배움이 올 때도 있고, 작은 배움이 올 때도 있다.

이런 대목도 원효스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해 놓은 바가 있다.

이 마음의 본체라고 하는 것은 작다고 하지만 일체의 모든 것이 이것을 타고 일어난다.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흔적을 찾아봐도, 오안(五眼)으로 찾아봐도, 눈을 씻고 닦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다 이것을 응용해서 쓰고 있다.

없나?’‘여기 있네요이렇게 말하고 보고 듣고 이렇게 다한다.

대승의 체는 이것이다대승의 종지를 밝히면서 원효스님이 그걸 써놓으셨다.

그 대목을 청량국사가 왕복서에서 명진체어만화지역(冥真體於萬化之域)하고, 이 대목에서 해동의 효봉께서는 원효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해석하셨다해서 화엄경 왕복서를 쓰시면서, ‘기신론 별기에, 원효스님 별기서문에서 그렇게 하셨다라고 써 놓았다.

해동서 별기, 원효스님의 별기서문에서 마지막 극치가 무엇인가?

무리지(無理之)가 지리(至理)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다. 그러하지 아니한 것이 정말 그러하다. ‘불연지(不然之)가 대연(大然)이다라는 것이다.

이치 없는 것이 지극한 이치라고 하는 것은 이판이고, 본체를 이야기한다. 그러하지 않는데 그러하다고 하는 것은 생멸의 사판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생사와 열반이 상공화다.

생사와 열반이 본평등이다.

기신론에도 공히 그리 이야기해놓았고, 왕복서에서도 공히 그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것이 글인 줄 알고 있다가 한발짝 물러나서, 인생을 걸고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 안 남았는데 좀 알고 가야지이러다 보면 그런 대목들이 눈에 반짝반짝 타도록 들어오지 않는가? 저는 가만히 있는데 글이 다가온다.

사람이 글을 찾아다니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일체세계(一切世界): 일체의 세계가

입과거세(入過去世): 과거 세상에 들어감을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 깨달으며

일체세계(一切世界): 일체 세계가

입미래세(入未來世): 미래 세계에 들어감을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 깨달으며

*

일체세계(一切世界):일체의 세계가

입현재세(入現在世):현재 세계에 들어감을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 깨달으며.

이것을 뭐라고 하는가?

십회향품 제6회향에 나오는 유명한 게송이 있잖은가.

심불망취과거법(心不妄取過去法) 마음에 허망하게 과거법을 따라가지 마라.

역불탐착미래사(亦不貪著未來事) 미래의 일에도 쫓아가지 마라.

불어현재유소주(不於現在有所住) 현재 있는 바에도 쪼그라들거나 우쭐대지도 말아라, 그러면서

요달삼세실공적(了達三世悉空寂)이라, 이 대목은 금강경에도 늘 나오고 반복하는 이야기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나 그러나 지혜로써 불가득한 것을 확실히 알아차린다, 이 말이다.

일체여래(一切如來): 일체여래의

무량행원(無量行願): 무량행원을

개어일지(皆於一智): 하나의 지혜에서

이득원만(而得圓滿): 이득원만을

지수각(智隨覺): 지수각하라.

일체여래의 한량없는 행원을 행과 원을 한 지혜의 원만함을 지혜가 따라 깨달음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개동일행(皆同一行)으로 : 모두 똑같은 일행이라고 하는 것은 무애행이고 진행이다. 진짜 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효스님은 이런 대목을 상당히 좋아하셨다.

일체무애인이 심무가애(心無罫碍) 무가애(無罫碍) 무유공포(無有恐怖) 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잖은가.

일체무애인이 무애 장애가 없는 사람 부처님은 일도 출생사라.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다 어디에 나오는가?

화엄경 보살문명품에 나온다.

누구 게송인가?

일체무애인(一切無礙人)이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현수보살의 게송, 그것을 일도장이라고 한다.

아주 유명한 게송이다.

소초 같은 것을 보다가 일도장에 이르기를하면 일도장이 무슨 게송인데요?’ 이러면 안되고 일도장이 바로 보살문명품의 현수스님의 게송 일체무애인(一切無礙人)이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연기(緣起)가 심심(甚深)하고 일도가 심심하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삼세제불이 모두 같은 행으로

이득출리(而得出離): 벗어남을 얻은 지혜가, 이득출리 아닌가.

이것과 같이 견주어 보려면 보살문명품의 일도장을 같이 보면 되겠다이렇게 되는 것이다. 벗어남을 얻으며

지수각(智隨覺): 지혜가 따라 깨달으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이니라.

*

약제보살(若諸菩薩):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일체법자재광명(則得一切法自在光明)하야 :즉득 일체법 자재광명을 즉득하고 얻고

소원개만(所願皆滿)하야 : 소원이, 원력이 다 만족해서

어일념경(於一念頃):일념경에 잠깐 동안에

실능해료일체불법(悉能解了一切佛法)하야 : 모든 불법을 다 이해하고

성등정각(成等正覺)이니라 : 정정각을 이루느니라. 성등정각이니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세주묘엄품에 시성정각이 한 번 나오고 그다음에 성최정각이 한 번 더 나온다.

최정각을 이루었다 이 대목하고 그대로 오버랩이 된다.

신기한 것은 우리는 배웠다 하면 홀딱 까먹어버린다.

들으면 알고 참 신기하다.

유행가 가사는 어릴 때부터 배웠는데 도저히 까먹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경전은 아무리 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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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대등행 | 작성시간 24.06.26 고맙습니다_()()()_
  • 작성자극락영 | 작성시간 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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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묘덕 | 작성시간 24.06.28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작성자眞 覺 心 | 작성시간 24.06.28 _()()()_
  • 작성자日覺心 | 작성시간 24.07.07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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