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生貴住
*菩薩의 十種證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證知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一切法一相하며 知一切法無量相하며 知一切法在一念하며 知一切衆生의 心行無礙하며 知一切衆生의 諸根平等하며 知一切衆生의 煩惱習氣行하며 知一切衆生의 心使行하며 知一切衆生의 善不善行하며 知一切菩薩의 願行自在하야 住持變化하며 知一切如來의 具足十力하야 成等正覺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法善巧方便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증득하여 앎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이 한 모양임을 알며, 모든 법이 한량없는 모양임을 알며, 모든 법이 한 생각에 있음을 아느니라.
일체 중생의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알며, 일체 중생의 모든 근기가 평등함을 알며, 일체 중생의 번뇌와 습기의 행을 알며, 일체 중생의 마음이 하는 바의 행을 알며, 일체 중생의 착하고 착하지 못한 행을 아느니라.
모든 보살의 원과 행이 자재하게 머물러 가지며 변화함을 알며, 모든 여래가 열 가지의 힘을 구족하고 정각을 이룸을 아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의 교묘한 방편을 얻느니라.”
*
생귀주(生貴住)
*
그다음에 드디어 유명한 생귀주다.
생귀라고 하는 것은 귀한 데 태어난다는 말인데, 치문 배울 때 여러분들 이렇게 배웠다.
장양성태 성인의 태, 부처님의 태를 장양하는 곳이 이 생귀주, 네 번째라고 한다.
인욕바라밀이 다 성취되어서 부지런하게 정진하는 사람은 부처님 가문에 태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굉장히 많다고 하였다.
어른스님께서 80권 화엄경 강설 원고를 다 퇴고하시고는 법문하실 때 이 생귀주에 대해서 법문하셨다.
‘장양성태(長養聖胎)하면 어떠냐? 지여미오심원(至如未悟心源)이라도 마음의 심원을 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역재이근(歷在耳根)하면 귀에 한 번만 스치면 영위도종(永爲道種)하야 도의 종자가 되어서 세세(世世)에 불락악취(不落惡趣)하고, 생생(生生)에 불실인실(不失人身)이라. 사람 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생귀주까지 이르기가 상당히 힘들다.
*
보살(菩薩)의 십종증지(十種證知)
*
보살은 열 가지를 증득하여 앎이 있다. 증지라고 해놓았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증지(有十種證知)하니 : 열 가지 확실하게 ‘증지(證智)라야 소지(所知)요 비여경(非餘境)’이라고 하는 대목 있잖은가. 그때 증지소지(證智所知)의 지자는 이 지(知)자가 아니라 지혜 지(智)자다.
증지(證智)를 다른 말로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한다. 열 가지 앎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이냐.
소위지일체법일상(所謂知一切法一相)하며 : 소위 일체법이 일상인 줄 안다.
금강경에는 뭐라고 나왔는가?
아홉 번째 일상무상분이라.
금강경 순서가 어떻게 되는가? 처음에 법회가 일어나게 된 인유 1. 법회인유분 2. 선현기청분 수보리가 일어나서 법을 청하고 3. 대승정종분 거기서 나오는 대승정종은 무엇인가?
바라밀행을 행하는 것이 대승정종이다.
4. 묘행무주분 집착 없는 행으로 연꽃처럼 살면서 살아가는 무주행, 바라밀행이 바로 대승바라밀행 수행이다.
그다음에 5. 여리실견분 여실지가 앞에 나왔잖은가.
금강경이나 화엄경이나 똑같이 가고 있다.
여리실견, 이치와 같이 진실되게 본다.
그다음 여섯 번째는 무엇인가? 6. 정신희유분이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바른 믿음을 일으키기는 굉장히 힘이 든다. 자비심이 없으니까 발심이 안 되고 발심이 없으니까 선지식을 안 찾아가고 선지식을 안 찾아가니까 청정한 마음이 없고 원력이 없다.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각심을 깨달을 수 없다.
7. 무득무설분,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법이 있느냐? 여래께서 유소설법구아? 법을 설하신 바가 있느냐? 얻은 바가 있느냐? 설하신 바도 없고 얻은 바도 없느니라.
그다음에 나오는 게 무엇인가? 8. 의법출생분, 법에 의거해서 부처님이 탄생하신다. 그 법이라고 하는 건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에 9. 일상무상분, 일상무상 장엄정토 이렇게 쭉 나가잖는가. 장엄정토쯤 되면 원행지쯤 될 것이다.
없는 줄 알지만 다 깨닫고 난 뒤에 뭘 해야 되느냐?
보현행원을 해야 된다.
깨닫기 전에도 보현행원을 해야 되고, 깨달아가면서도 보현행원을 해야 되고, 깨달은 후에도 보현행원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깨닫기 전에 지금 우리가 십주하고 있고 십행 십회향 이 법문은 무엇인가? 전보현이라고 한다.
삼현보살의 전위보현이다. 조금 모자라는 사람들이 보현행원을 하는 것도 전위보현이라고 한다.
청양국사가 말하기를 ‘십지보살이 보현행원을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되기 때문에 당위보현이라’ 거기에 해당되는 보현보살이 오온개공을 깨닫고 십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당위보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 깨닫고 등각 넘어가서, 금강 유정 넘어가서, 묘각에 넘어갔다 하더라도 보현행원이 이루어지는 부처님의 보현행원을 후위보현이라고 한다.
제가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고 화엄경 소초에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여기서 일체법이 일상인 줄 알고 또
지일체법무량상(知一切法無量相)하며 :일체법이 무량상인 줄도 알고 또
지일체법재일념(知一切法在一念)하며 :일체법이 한 생각에 있는 것도 안다. 이런 것은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 무념무상절일체(無念無想絶一切)’ 이런 대목에 다 해당이 된다.
*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의 : 일체중생의
심행무애(心行無礙)하며 : 마음의 행이 걸림이 없음을 알고, 왜 그런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선이든 악이든 꿈속의 일이다. 그러니까 본심인 일심에서는 선악이 없다.
생멸에서는 선악이 확연하다.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의 :일체 중생의
제근평등(諸根平等)하며 : 제근이 평등하다. 일체 중생의 여러 근기가 평등함을 알고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의 : 일체 중생의
번뇌습기행(煩惱習氣行)하며 : 번뇌습기행을 안다.
육조스님이 아예 그래버렸다.
보리(菩提) 본무수(本無樹)요 명경(明鏡)이 역비대(亦非臺)라 본래(本來) 무일물(無一物)인데 없는데 법신이 어디 있고 육신이 어디 있느냐 몸뚱이가 어디 있고 마음이 어디 있느냐. 하처(何處) 야진애(惹塵埃)냐 어디에 번뇌가 일어난 적이 있더냐.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의 : 일체 중생의
심사행(心使行)하며 : 심사행이라 이 사자도 부릴 사자다.
번뇌를 가지고 다양하게 이야기한다.
한 번 하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번뇌라고 하는 것은 분별사식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번뇌라고 그런다. 그리고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아주 습관이 되어서 꾹 눌러붙어 있는 누룽지 같은 번뇌를 습기(習氣)라고 한다.
습관이 반복되면 뭐가 되는가? 업식이 되어 눌러붙어서 빠지지 않는다.
그럼 견성성불을 해야 없앨 수 있다. 참선이 아니면, 결국 확연하게 알지 못하면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은 조절이 되지만 안에 있는 무의식은 조절이 안 된다.
제가 오죽했으면 서울말 한번 써보려고 서울에서 임플란트를 했는데 지금 안 되지 않는가? 스켈링을 하면 되는가?
스켈링을 하면 말을 좀 매끄럽게 할 수 있겠다.
여기는 심사라고 부릴 사자다.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고 남의 고용인이 되어서 사용되는 것, 그래서 심사, 맺을 결자나 이 사자는 번뇌를 뜻한다. 일체중생의 심사에, 마음이 노예처럼 사는 옹졸한 행을 사(使)라고 한다.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의 : 일체 중생의
선불선행(善不善行)하며 : 선불선행 일체 중생의 선악행, 잘났다 못났다고 하는 행을 다 알고
*
지일체보살(知一切菩薩)의 : 일체 보살의
원행자재(願行自在)하야 : 원행 자재라.
대지도론에 보면 용수보살은 보살의 원과 행에 대해서 ‘보살의 행원, 원행은 새의 여조양익(如鳥兩翼)이다’ 라고 하였다.
초발심자경문에도 자비와 보시는 여조양익이라고 그대로 나오잖는가. 원효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 원문은 대지도론에서 용수보살이 말씀하셨다.
원이라고 하는 것은 저 넓은 깊은 강을 건너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면서 배를 준비하지 않으면 깊은 강을 건너갈 수 있겠느냐? 반드시 행으로 옮겨야 된다.
그것은 여조양익이라.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안에 마음을 품고 바깥으로 신업과 구업과 의업이 동일시 돼야 한다.
그래서 일체 보살의 행원이 자재하여
주지변화(住持變化)하며 : 주지변화하며, 행과 원이 자재한다.
주지라고 하는 것은 견일체처주지도 있고 욕계중생은 욕애주지, 색계중생은 색애주지, 무색계중생은 유애주지 그리고 일체중생들은 어디에 주지하고 사는가? 무명주지다. 무명이 모든 번뇌의 근본 할아버지다, 이 말이다.
오주지를 이야기할 때 무명주지라고 이야기한다.
지일체여래(知一切如來)의 : 일체 여래의
구족십력(具足十力)하야 : 열 가지 힘을 구족하고, 부처님께서 십력 완벽한 완전한 구경열반을 구족하고
성등정각(成等正覺)이 : 정등각을 성등정각 정등정각을 이루는 것이
시위십(是爲十)이니 :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안주한다면
즉득일체법선교방편(則得一切法善巧方便)이니라 : 즉득 그 자리에서 일체법의 선교방편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법의 교묘한 방편을 얻을 수 있다.
부지런히 궁리하고 움직이면 방편이 나오게 된다. 선교방편이다.
교묘하다고 번역할 때, 불교 밖에서는 일반화 오류 때문에 교묘라는 말을 좀 잘못된 뜻으로 쓰지만 불교에서 교묘하다는 건 뭔가? 아주 솜씨가 좋다는 뜻이다. 잔머리, 잔꾀를 부리는 것은 교묘하다라고 안 하고 교활하다고 한다. 뺀질구리한 것, 매끄리 하고 잘 빠져나가는 것, 숫돌뱀장어 같은 것은 교활하다고 한다.
(5) 具足方便住
*菩薩의 十種力*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一切法自性力과 入一切法如化力과 入一切法如幻力과 入一切法皆是佛法力과 於一切法에 無染着力과於一切法에 甚明解力과於一切善知識에恒不捨離尊重心力과 令一切善根으로 順至無上智王力과 於一切佛法에 深信不謗力과 令一切智心으로 不退善巧力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具如來無上諸力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제 성품에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변화와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모든 법이 불법인 데 들어가는 힘이니라.
모든 법에 물들지 않는 힘과, 모든 법을 매우 밝게 아는 힘과, 모든 선지식을 항상 떠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의 힘과, 모든 착한 뿌리로 하여금 가장 높은 지혜의 왕에 수순하여 이르게 하는 힘이니라.
모든 불법을 깊이 믿어 비방하지 않는 힘과, 온갖 지혜의 마음이 물러나지 않게 하는 공교한 힘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여러 가지 힘을 갖추느니라.”
*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
발심을 했다. 그다음에 치지주로 갔다. 치지주에 가서 어디로 넘어가는가? 수행주로 넘어왔다.
수행하다 보니까 귀한 데 태어나는 생귀주로 왔다.
생귀주가 왔으니까 귀한 데 태어나고 이런 사람들은 어떤가?
신통력이 온다. 신통력은 삼매의 힘으로부터 와진다. 방편력이 생겨진다. 경전은 그것을 그냥 순서대로 다 써놓은 것이다.
*
보살(菩薩)의 십종력(十種力)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력(有十種力)하니 : 열 가지 힘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어떤 것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입일체법자성력(所謂入一切法自性力)과 : 소위 일체법의 자성력에, 일체법의 제 성품에 들어가는 힘이다.
요지일체법 자성무소유 어디에 나오는가?
수미정상게찬품의 승혜보살의 게송이다.
자장스님이 중국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면서 꿈속에서 봤던 게송이 그것이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이와 같이 자성이 본래 없는 줄을 알면, 무소유인 줄 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불성은 무성이라는 것이다.
원효스님은 뭐라고 했는가?
무리지가 지리다.
입일체법여화력(入一切法如化力)과 : 일체법 모든 법의 변화와 같은 데 들어가는 것과
입일체법여환력(入一切法如幻力)과 : 입일체법여환, 여몽환포영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것은 유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체법이 여환과 같음에.
이것을 참고하려면 화엄경 십인품을 참고하시면 이런 대목이 잘 이해가 될 것 같다. 요술과 같은 데 들어가는 힘과
입일체법개시불법력(入一切法皆是佛法力)과 : 일체법이 모두 불법인 데 들어가는 힘과. 이 들어간다는 것은 확실히 증입해서 깨닫는다는 말씀이다.
*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일체법에
무염착력(無染着力)과 : 물들지 않는 힘과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일체법에
심명해력(甚明解力)과 : 매우 밝게 명해 환하게 아는 힘과
어일체선지식(於一切善知識)에 : 일체 선지식에게
항불사리존중심력(恒不捨離尊重心力)과 : 항상 불사리 버리지 않는 존중하는 마음의 힘
영일체선근(令一切善根)으로 : 일체 선근으로 하여금
순지무상지왕력(順至無上智王力)과 : 순수하게 무상에 이르게 하는 힘과
*
어일체불법(於一切佛法)에 : 일체 불법을
심신불방력(深信不謗力)과 : 깊이 믿고 비방하지 않는 힘과. 끓지도 않고 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영일체지심(令一切智心)으로 : 일체의 지심이나 일체의 지혜의 마음으로
불퇴선교력(不退善巧力)이 : 선교에 물러나지 않는 힘이
시위십(是爲十)이니 :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안주하면
즉구여래무상제력(則具如來無上諸力)이니라 : 그 자리에서 여래의 여러 가지 모든 힘을 갖추게 된다.
(6) 正心住
가.菩薩의 十種平等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平等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一切衆生에 平等하며 一切法에 平等하며 一切刹에 平等하며 一切深心에 平等하며 一切善根에 平等하며 一切菩薩에 平等하며 一切願에 平等하며 一切波羅蜜에 平等하며 一切行에 平等하며 一切佛에 平等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無上平等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평등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중생에 평등함과 일체 법에 평등함과 일체 세계에 평등함과 일체 깊은 마음에 평등함과 일체 착한 뿌리에 평등함이니라.
일체 보살에 평등함과 모든 원(願)에 평등함과 모든 바라밀다에 평등함과 모든 행에 평등함과 모든 부처님에 평등함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평등한 법을 얻느니라.”
*
정심주(正心住)
*
정심주 바를 정(正)자 마음 심(心)자, 흔히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공한 줄 알면 생사와 열반이 본래 평등한 줄 알 것이다.
*
보살(菩薩)의 십종평등(十種平等)
*
보살이 열 가지 평등함이 있다.
유심게에 나오는 게송 각림보살, 여래림 보살께서 뭐라고 했는가?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그것이 바로 평등이다. 무차별이 평등함이 아닌가.
제일 평등은 부처님과 중생과 마음이 평등하다.
생사열반본평등이다.
세주묘엄품에도 나오고 야마천궁게찬품에도 나오는데, 세주묘엄품에는 장문으로 나온다.
일체 부처님도 여기서 나오시고, 보살도 여기서 나오고, 일체 중생의 갖가지의 천차만별 중생도 여기서 나온다.
야마천궁게찬품 아홉 번째 각림보살장에 나온다.
‘60화엄경에는 시삼무차별은 안나오는데?’ 60 화엄경에는 여래림보살장에 나온다.
여러분들께서는 까먹는 게 주특기이기 때문에 저는 계속 반복하겠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평등(有十種平等)하니 : 열 가지 평등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소위어일체중생(所謂於一切衆生)에 : 소위 이른바 일체 중생에게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일체법(一切法)에 : 일체법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일체찰(一切刹)에 : 일체 세계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일체심심(一切深心)에 : 일체 심심 깊은 마음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일체선근(一切善根)에 :일체 선근에
평등(平等)하며: 평등함과
일체보살(一切菩薩)에 : 일체 보살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일체원(一切願)에 : 일체원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
일체바라밀(一切波羅蜜)에 :일체 바라밀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함과
일체행(一切行)에 :일체행에
평등(平等)하며 : 평등하고
일체불(一切佛)에 :일체 부처님께
평등(平等)이 : 평등함이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궁극적으로 ‘본래 없다’ 이 한마디에 통과되겠다.
허공이 옛날 허공이나 지금 허공이나 무게가 똑같고 넓이도 크기도 똑같다. 평등하다. 그 허공이 왜 똑같은가? 본래 없기 때문에 똑같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안주차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일체제불무상평등법(則得一切諸佛無上平等法)이니라 :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평등한 법을 얻느니라.
나. 菩薩의 十種佛法實義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佛法實義句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 一切法이 但有名이며 一切法이 猶如幻이며 一切法이 猶如影이며 一切法이 但緣起며 一切法이 業淸淨이며 一切法이 但文字所作이며 一切法이 實際며 一切法이 無相이며 一切法이 第一義며 一切法이 法界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善入一切智智無上眞實義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불법의 참된 이치의 글귀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법이 이름만 있음과, 일체 법이 마치 환술과 같음과, 일체 법이 그림자와 같음과, 일체 법이 다만 인연으로 생김과, 일체 법이 업이 청정함이니라.
일체 법이 다만 글자로만 지어짐과, 일체 법의 진실한 경계와, 일체 법이 모양이 없음과, 일체 법의 제일가는 뜻과, 일체 법의 법계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지혜의 지혜인 위없이 진실한 이치에 들어가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불법실의구(十種佛法實義句)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불법실의구(有十種佛法實義句)하니 : 열 가지의 불법의 실의구, 참된 일치의 글귀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이냐?
구니 명이니 자니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하면 좋겠지만 그냥 넘어가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하겠다.
*
소위일체법(所謂一切法)이 : 소위 일체법이
단유명(但有名)이며 : 다만 오직 이름만 있음과
일체법(一切法)이 : 일체법이
유여환(猶如幻)이며 : 요술의 환과 같음과
일체법(一切法)이 : 일체법이
유여영(猶如影)이며 : 그림자와 같음과
일체법(一切法)이 :일체법이
단연기(但緣起)며 : 다만 인연으로 연기로 생겨진 것과
일체법(一切法)이 :일체법이
업청정(業淸淨)이며 :업이 청정함과, 업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시작도 없다. 무시무종이다. 업이 청정함과
*
일체법(一切法)이 : 일체법이
단문자소작(但文字所作)이며 : 다만 문자로 이렇게 글자로만 지어짐과
일체법(一切法)이 : 일체법이
실제(實際)며 : 실제며,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
일체법(一切法)이 :일체법이
무상(無相)이며 : 무상이니 모양이 없으며
일체법(一切法)이 :일체법이
제일의(第一義)며 : 제일가는 부처님의 뜻이며
일체법(一切法)이 :일체법이
법계(法界)라 : 법계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열반경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비유가 나온다. 코끼리의 코를 만지는 사람, 귀를 만지는 사람, 다리를 만지는 사람들이 ‘코끼리는 절구공이 같다, 키질하는 키 같다’ 이렇게 나름대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장님이 만진 코끼리는 전부 다 제대로 만진 것인가? 그렇다. 맞다. 어디를 만지더라도 코끼리다.
그것을 잘못 해석해서 장님이 코끼리 만졌다고 하니까 ‘불법의 한 조각만 이야기했다’고 말할 수도 있잖은가?
그러나 열반경에서는 어디를 만지든지 다 코끼리다. 눈으로 봐도 코끼리이고 귀로 들어도 코끼리이고 눈으로 보는 것이 됐든, 귀로 듣는 것이 됐든, 입으로 맛을 보는 것이 됐든, 전부 다 마음이면 코끼리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디를 만지더라도, 코끼리 발톱을 만지더라도 코끼리다.
우리가 여기서 속눈썹을 하나 뽑아내더라도 내 DNA고 피를 뽑아내도 내 DNA고 안의 걸 뽑아내든 바깥의 걸 뽑아내든 내 옷을 뽑아내든 전부 다 무엇인가? 내 것이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이다.
흔히 우리들은 비유하기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제대로 분별을 못한다는 뜻으로 쓰는데, 열반경에서 이렇게 비유할 때는 ‘어디를 만지더라도 다 코끼리다.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이야기다.
우리가 앞으로 자든지 엎어져 자든지 뒤집어 자든지 누워 자든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전부 마음 밖을 벗어날 수가 없다. 10만 8천리 가더라도 전부 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이 말씀이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선입일체지지무상진실의(則善入一切智智無上眞實義)니라 : 온갖 지혜의, 일체지지의 무상한 진실한 뜻에 들어가느니라.
(7) 不退住
가. 菩薩의 十種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說十種法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說甚深法하며 說廣大法하며 說種種法하며 說一切智法하며 說隨順波羅蜜法하며 說出生如來力法하며 說三世相應法하며 說令菩薩不退法하며 說讚歎佛功德法하며 說一切菩薩이 學一切佛平等하야 一切如來境界相應法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巧說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말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매우 깊은 법을 말하고, 넓고 큰 법을 말하고, 갖가지 법을 말하고, 일체 지혜의 법을 말하고,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말하고, 여래의 힘을 내는 법을 말하고, 세 세상과 서로 응하는 법을 말하느니라.
보살을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을 말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을 말하고, 모든 보살이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워서 모든 여래의 경계와 서로 응하는 법을 말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공교하게 말하는 법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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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퇴주(不退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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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법(十種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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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살이
설십종법(說十種法)하나니 : 열 가지 법으로 설함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여기 불퇴주라고 하는 것은 제7지 원행지라고 십지보살에서 이야기하잖는가.
흔히 비유할 때 가마솥에서 바글바글 끓다가 가마솥 뚜껑위까지 물이 올라가면 떨어질 개연성이 있지만, 끓다가 수증기가 바깥으로 휙 나가버리면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가마솥에 뚜껑까지 날라가 붙은 것이 원행지라고 한다면, 바깥으로 휙 나가 버리면 여덟 번째 부동지가 되는 것이다.
불퇴주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하다. 이 일곱 번째 원행지는 아만이 다 빠진 것이다. 아집이 다 빠진 상태를 여기 써놓는 것이다.
소위설심심법(所謂說甚深法)하며 : 이른바 매우 깊은 법을 말하고
설광대법(說廣大法)하며 : 매우 넓은 법을 말하고
설종종법(說種種法)하며 : 갖가지 법을 말한다.
이런 것은 본래 없는 줄 알지만 ‘깊다, 넓다’고 하였다.
앞에 전제 조건은 뭐라 하는가? 설정직법이다. 설정직법하고 그게 빠진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다.
정직이 오기 전까지는 뭐가 있어야 되는가? 신심이 무루 녹아야 정직이 오게 되어 있다.
공덕을 짓는 자비심이 무르녹아야, 자비로운 사람이 정직하도록 되어 있다. 그다음 정직한 사람이 깊어진다. 깊은 사람이 넓어진다. 매우 깊은 법을 말하고 매우 넓고 큰 법을 말하고 넓고 크니까 잎사귀도 많고 열매도 많다.
모종 하나 딱 심어놓으면 나락이 몇 개나 달리겠는가? 안 달린다. 가지가 많이 번져야 된다.
설일체지법(說一切智法)하며 : 설일체지법하며, 점층법, 강조법이다.
설수순바라밀법(說隨順波羅蜜法)하며 : 바라밀을 따르는 법을 말하고
설출생여래력법(說出生如來力法)하며 : 여래역을 출생하는 법을 말하고
설삼세상응법(說三世相應法)하며 : 설삼세상응이라. 삼세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말한다. 구세십세호상즉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그걸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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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영보살불퇴법(說令菩薩不退法)하며 : 보살들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 불퇴법을 말하게 하고
설찬탄불공덕법(說讚歎佛功德法)하며 : 설찬탄불공덕법이라. 이제 제대로 알았으니까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 공덕법을 찬탄하는데 왜인가? 자기가 가보니까 확실히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확실히 믿을 때 찬탄하게 된다.
설일체보살(說一切菩薩)이 : 모든 보살이
학일체불평등(學一切佛平等)하야 :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워서
일체여래경계상응법(一切如來境界相應法)이 : 일체 여래의 경계와 서로 응하는 법을 말하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교설법(則得如來無上巧說法)이니라 : 즉득여래의 무상한 교설, 아주 말씀 잘하는 것을 얻는다.
무연선교착여의(無綠善巧捉如意)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여래의 위없는 공교하게 말하는 법을 얻느니라.
나. 菩薩의 十種持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持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持所集一切福德善根하며 持一切如來所說法하며 持一切譬喩하며 持一切法理趣門하며 持一切出生陀羅尼門하며 持一切除疑惑法하며 持成就一切菩薩法하며 持一切如來所說平等三昧門하며 持一切法照明門하며 持一切諸佛神通遊戱力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住持力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지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아 놓은 일체 복덕과 착한 뿌리를 지니고, 일체 여래의 말씀한 법을 지니고, 일체 비유를 지니고, 일체 법의 나아갈 문을 지니고, 일체 것을 내는 다라니문을 지니고, 일체 의혹을 없애는 법을 지니느니라.
일체 보살을 성취하는 법을 지니고, 일체 여래가 말씀한 평등한 삼매문을 지니고, 일체 법을 밝게 비추는 문을 지니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으로 유희하는 힘을 지니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에 머물러 지니는 힘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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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지(十種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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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10가지를 딱 갖춤이 있다. 지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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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은
유십종지(有十種持)하니 : 열 가지의 지님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소위지소집일체복덕선근(所謂持所集一切福德善根)하며 : 이른바 지소집일체복덕선근이다. 소집 모은 바 여러 복덕과 일체의 복덕과 선근을 지니고
지일체여래소설법(持一切如來所說法)하며 : 일체 여래의 말씀하신 바 법을 지니고
지일체비유(持一切譬喩)하며 : 부처님의 온갖 비유를 지닌다.
비유라고 하는 것은 솜씨가 완전히 익은 사람, 테크닉이 익어진 사람한테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알아야 비유를 할 수가 있다.
지일체법이취문(持一切法理趣門)하며 : 일체법의 이취, 이취의 문을 방편을, 문이라고 하는 것은 방편이다. 방편 방법.
일체법의 이치의 방편을 지니고
지일체출생다라니문(持一切出生陀羅尼門)하며 : 일체의 다라니문을 출생한다.
이취문을 출생하고 다라니문을 출생한다.
일체법의 이취문을 지니고 일체 다라니를 출생시키는 문, 다라니문을 출생시킨다 해도 될 것 같다.
지일체제의혹법(持一切除疑惑法)하며 : 일체의 모든 의심과 의혹법, 의심, 미혹한 법을 다 제거하는 법을 지니고
지성취일체보살법(持成就一切菩薩法)하며 :일체의 보살법을 성취함을 지니고
지일체여래소설평등삼매문(持一切如來所說平等三昧門)하며 :
일체 여래의 설하신 바 평등한 삼매의 문을 지니고
지일체법조명문(持一切法照明門)하며 :일체법의 조명문 환하게 비추는 문을 지니고
지일체제불신통유희력(持一切諸佛神通遊戱力)이 :일체의 모든 부처의 신통, 유희력, 신통으로 유희하는 힘을 지니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대지주지력(則得如來無上大智住持力)이니라 : 바로 여래의 무상 대지혜에 주지하는 힘을 얻느니라.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수행은 꿈을 깨는 방편이다
6월 23일 유튜브 <염화실 TV>는 큰스님께서 두 번째로 읽어주시는 화엄경이 제38권으로 들어갔다.
지장재일 아침에 큰스님께서는 ‘꿈만 깨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법문을 읽어 주시면서 ‘수행 역시 꿈을 깨는 방편’이라고 하셨다.
6월 1일 법문에서는 ‘급한 사람들을 위해서’ 법성게를 권하셨다. 제 34권 십지품 중의 환희지에 대한 법문을 하시다가 급하게 권하셨는데 이 날 법문중에서 ‘법성게를 권하신 부분’만 발췌해서 녹취한다.
법성게를 권하다
-無比스님, 2024년 6월 1일 유튜브 염화실TV 중에서-
‘환희지에 들어가서 환희하는 모양을 밝히다.’
우리가 불법을 처음 만나서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아주 기쁘기도 하고 신심도 나고 어쩔 바를 모르죠.
제가 절에 처음에 왔을 때 처음에 오게 된 인연도 좋았지만 처음 절에 오니까 아주 기쁜 마음으로 와 놓으니까 뭐든지 다 신기하고 그렇게 좋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들 얼굴이 비슷비슷해서 절을 했던 스님에게 또 절하고 또 절하고 분별이 잘 안 되니까 실수 안 하려면 무턱대고 그냥 인사하고 절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더라고요.
‘저 스님 내가 봤는가 안 봤는가’ 분별할 필요 없어요. 봤던 스님에게 절하고 또 절하고 한 시간 만에 봐도 또 절하고 그게 좋은 해결 방법이 됐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깜냥으로 불법을 이해하고 그 나름대로 절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만으로도 환희하는데 정말 보살의 심정으로 보리심을 발해서 불법에 귀의를 했다면 얼마나 환희하겠습니까? 얼마나 기쁜 마음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 화엄학인들이 상당히 숫자가 많은데 그분들이 이 정도 불교를 공부해서 아주 좋은 스승을 만나서 출가를 해서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오로지 화엄경 공부만 해야 되겠다, 밤낮없이 한번 해보겠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그 분위기에 딱 들어왔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얼마나 환희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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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근거리고 환희하고 저의 경우 절에 처음에 왔을 때 내가 좋아서 정말 좋아서 왔으니까 ‘아 내가 갈 길은 이 길뿐이다’라고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생각을 딱 하고 왔으니까 뭐라고 할까요? 그 기쁨과 경이로움 놀라움 이런 것들로 꽉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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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은 뒤에 결정코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을 떠나지 아니할 줄 아나니, 그러므로 나쁜 갈래에 떨어질 공포가 없느니라.’
예를 들어서 죽음이 가까이 왔다면, 만약에 그걸 느낄 수 있고, 조금 짐작이라도 간다면 뭘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불자들은 그저 염불하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을 부르든지, 화엄성중을 부르든지, 법성게를 계속 줄기차게 외우든지, 아니면 약찬게를 줄기차게 외우든지 그렇게 자기에게 익숙한 염불을 해야 됩니다.
관세음보살도 물론 좋고요. 지장보살도 좋고, 그렇게 해서 자신 앞에 죽음이 다가온 것을 잊어버려야 돼요.
그저 염불하는 데 정신을 빼앗겨야 ‘아이고 곧 죽을 것 같은데, 이것 참 미련도 많고 죽음의 경계가 어떤가 두려움도 많고, 이런저런 그동안 못다한 인연들 그 인연들은 어쩌는고’ 하는 등의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겠죠. 염불을 안 하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염불을 해야 돼요.
우리 불자들은 나부터, 이게 제일 우리들의 취약점인데 저부터라도 염불을 열심히 하고, 화엄성중을 부르든지 아니면 아미타불을 부르든지, 법성게 참 좋잖아요.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불교에서 가장 의미 깊고, 의미가 깊기 때문에 그 도리를 우리가 깨닫고, 그 도리에, 그 이치에 눈을 뜨고, 마음이 열리기만 하면, 그 이상 가는 것은 없다, 라고 여겨지는 경이 바로 법성게입니다.
의상조사 법성게, 우리 범어사를 창건하신 의상스님이 중국에 가서 8년 동안 화엄경을 공부하시고, 많은 저서가 있었지만 그 저서들 다 버리고 최후로 한 가지 논문을 딱 이렇게 썼는데 그것을 ‘졸업 논문이다’ 이렇게 표현도 하는데 그것이 법성게입니다.
워낙 그 글이 부처님의, 화엄경의 뜻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고 공덕도 대단하고 위력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49재를 지낸다든지, 여타 재를 지낼 때 여러 가지 좋은 염불 많이 하고 좋은 법문 많이 하고 좋은 경전 많이 하지만 그래도 행여 ‘부처님 법력을 좀 더 보태드리면, 가피를 좀 더 드리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해 내고, 또 그렇게 된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 이 법성게예요.
소대에 나아갈 때 49재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옷도 태우고 신발도 태우고 그런 태우는 형식을 하지요. 재를 다 지내고 마지막 끝에 소대에 나갈 때 법성게를 외우면서 소대에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때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줄기차게 일곱 번도 외우고 삼칠 스물한 번을 외우기도 하고, 숫자 없이 시간이 허락하고, 정성이 닿는 데까지 줄기차게 법성게를 읽어서 들려드립니다.
그 도리를 깨닫고, 마음이 열려서, 생사에 자유자재하시라는 뜻에서 읽어주는 것이 법성게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재를 지낼 때 그런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최고 수준 높은 부처님 법문이 들어 있기 때문이고, 그게 짧아요. 짧은데도 불구하고 부처님 법문으로서 최고의 법문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읽어주고 그 이상 더 효과 높은 법문은 없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염불도 좋은 거 들려드리고 법문도 해드리고
경도 읽어 드렸지만, 그래도 제도가 안 되었다면 마지막으로 ‘법성게 몇 번 들으시고 마음이 열려서 생사에 자유자재하시고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서로 공하다, 하나라고 하는 도리를 깨우쳐서 생사에 자유자재하시고 속환사바(速還娑婆) 빨리 사바세계에 오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바랍니다’ 하는 마음으로 의식이 그렇게 짜여져 있어요. 그것이 의상조사 법성게예요.
그래서 법성게를 열심히 읽든지 아미타불 뭐 기타 당신이 평소에 하던 염불 다 좋습니다. 그래도 효과가 높고 강력한 주사라고나 할까요, 그것이 법성게입니다.
조사 스님들, 과거 큰스님들이 의식집을 마련한 것을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게 돼 있어요
뜻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법성게를 그냥 줄기차게 외워 주는 거예요.
그걸 우리 범어사를 창건하신 의상스님이 지은 글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화엄경을 8년간 공부하시고 마지막으로 졸업 논문 삼아 지어서 스승에게 바쳐서 유명해진 글입니다.
그런 사연들은 너무나도 잘 아시죠.
생사열반상공화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그것만 해도 그 두 구절만 해도 어딥니까.
법성원융무이상 그 속에 우리 인생이 다 들어 있고, 우리의 삶이 다 들어 있고 우리의 생과 사가 다 들어 있고 불법이 다 들어 있고 그렇습니다.
오늘 여기(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4권, p.121)에 보면 ‘자신이 죽은 뒤에 결정코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을 떠나지 아니할 줄을 아나니’ 거기에 염불을 하라는 메모를 내가 해놨어요.
‘그러므로 나쁜 갈래에 떨어질 공포가 없느니라’ 염불 열심히 하면 다른 데로 갈 겨를이 없습니다.
두서없이 제 감정만 가지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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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줄기차게 화엄경 81권을 한 번 유튜브 방송에서 같이 공부했고, 또 두 번째 시작해서 34권째 쉬지 않고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화엄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불자들 중에 ‘아 급하다, 나는 굉장히 여러 가지 상황이 급하다’ 오랫동안 그렇게 공부할 상황은 안 되고 간단명료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부처님 법으로서 또는 화엄경으로서 간단명료하게 해결하는 법이 없을까요?” 만약에 이렇게 묻는다면, 오늘 말씀드렸듯이 의상조사 법성게를 권합니다.
의상조사 법성게는 화엄경 전체의 뜻을 백퍼센트는 아니라 하더라도 거의 구십퍼센트 이상을 담고 있는 짧은 게송이기 때문에 그것을 줄기차게 읽고 그것을 깊이 생각해서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마음의 문이 열린다면 그것으로써 다 됩니다.
평소에 하시는 다른 염불이 있다손치더라도 만약에 급해서 ‘ 나는 화엄경 일일이 다 공부할 겨를이 없습니다. 뭔가 더 확실하고 힘이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법성게를 권하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불교 의식을 만들면서 뭐니뭐니 해도 죽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크지 않습니까?
그런 죽고 사는 문제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 법성게를 여러 번 들려 드려서 거기에 눈을 뜨고 마음이 열리도록 해서 저승 가는 길을 환하게 열어주는 식으로 불교 의식이 짜여져 있습니다.
생사문제가 제일 크지 않습니까?
그때 말하자면 필요한 것이 법성게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부디 법성게를 평소에도 우리가 많이 읽고, 또 염불로도, 유튜브 같은 데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나는 법성게를 틀어놓고 누워서 쉴 때 잠들 때 그걸 시끄럽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높여 놓고, 열심히 들으면서 잠에 들기도 합니다.
워낙 의미심장하고 음미할 게 많고 생각할 게 많고 깨달아 알 것이 많기 때문에, 듣고 듣고 또 듣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또 남아 있고 또 남아 있고 그래서 재미도 물론 있습니다만 거기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도 많고 내용도 많습니다.
그걸 확연히 깨닫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죠.
이것은 제 소신입니다.
제가 평생 화엄경 공부한 사람으로서의 소신인데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법성게를 열심히 읽고 또 그 뜻을 또 이해하려고 하도록 노력하는 화엄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
오늘은 법성게를 특히 권하는 시간이 되겠고 또 불법을 만나서 환희해진다, 지금 환희지를 공부하니까요.
‘환희한다, 아 기쁜 마음’ 불법이 당장에 실천은 어렵다손치더라도 그래도 기쁘잖아요.
내가 이러한 법문을 접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흔감합니까.
내 수준에 부처님의 높고 높은 십지, 그중에서 환희지를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즐겁고 환희하고 신심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늦지 않은 날의 가피
화엄경에 흔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