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차니까 넘친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보살님이 디스펜서 수도꼭지가 달린 유리 항아리에 빨간 음료를 담아오셨다. 색깔이 너무 예뻐서 한 잔 청해서 마셨는데 새콤달콤 시원한 오미자차였다. 딱 맞는 여름맛이었다. 스님들께서도 한 잔씩 청해서 오미자차를 드시면서 담소를 나누셨다.
용학스님이 오셔서 그 방으로 부르셨다.
두 권으로 나눠서 A4용지 프린트물을 스프링으로 묶었는데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표해과판(表解科判) 정리(整理)/용학(龍學)>이라고 쓰신 표지를 열자 도표로 색깔까지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80권 화엄경이 펼쳐졌다.
품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변상도로 시작했다.
지난달에 컴퓨터에 정리된 이 파일을 보고 스님께 용기를 내서 청했었는데, 보내주신다고 하고 소식이 없어서 나중에 한 번 더 청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손에 잡히는 프린트물로 받아들자 설레였다.
특히 이 책을 다음날부터 큰스님의 아침 8시 <유튜브 염화실TV 화엄법회>를 들을 때 같이 책상에 펼쳐놓고 보자 ‘모든 화엄학인들이 한 권씩 가지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판이라든가, 이정표, 지도라는 것이 그 방대한 숲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꼈다.
이 책은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정리된다고 하니 마무리가 잘 되어서 앞으로 빨리 출간이 되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변상도가 특별히 도드라지는 구성이었는데, 자꾸 들여다보고 경전과 맞춰서 볼 수 있으니, 신심이 자랄 것 같고, 몰라서 키울 수 없었던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도 생겨날 것 같았다.
하나하나 모아왔으나 낱낱이 흩어져 있던 보물들이 한 줄로 꿰어지는 듯했다.
*
지난달에 큰스님께서 ‘좀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하셔서 ‘한번 마음껏 정리해 보라’하신 책 두 권을 들고서 화엄전에 갔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려온 길이었다.
책에 사용한 사진들을 보여드려고 문수선원에 오신 자원봉사자 보살님들께 보여드렸는데 대연화 보살님이 ‘나는 이 중도송이 너무 좋아서 도반들에게도 많이 권했다’ 하시면서 신심명으로 꾸미신 본인의 책도 가져와서 보여주셨다.
요즘 ‘다꾸’라고 부르는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이고 아트저널을 취미로 만드는 사람도 많은데, 책에 손수 오리고 붙여서 만든 신심명 책이라니 신선했다. 아트저널을 만들어 본 경험도 있고, 신심명도 열심히 녹취한 적이 있어서 시간이 있었다면 빌려서 천천히 넘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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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전에 갔을 때 큰스님께서 가을에 발간될 <여천 무비 전집>의 목록을 보여주셨다.
화엄경 이외의 저서들을 총 25권 전집으로 흩어지지 않게 모으게 되었다.
마침 학무거사님이 오셔서 비용에 대해서 두 분이 말씀하셨다. 큰스님은 갑자기 많이 들어갈 비용 때문에 한걱정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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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법문에서 큰스님께서는, 2002년 송광사에서 전강식을 하고 법제자가 되었던 현진스님 소식을 전해주셨다. 현진스님이 올해 9월에 동화사에서 31명의 제자에게 전강식을 하게 되어서, 큰스님은 한꺼번에 손제자가 서른 한 명이나 생겨서 너무 놀랍고 기쁘다고 하셨다. 법제자이신 현진스님에 대해서 칭찬하시면서 “모든 것이 꽉 차니까 넘친다.”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四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二
四 . 普賢菩薩의 二千答
반갑다. 2024년 8월 5일 오늘 공부할 부분은 대방광불화엄경 이세간품, 실제적으로 화엄경을 실천하는 덕목인 ‘환희행’을 답하는 중이다. 지난 시간까지 한 꼭지를 남겨 놓았었다.
그리고 여러분들 오늘 수업하기 전에 한번 읽어봐야 될 부분이 있어서 경문에서 유인물을 뽑아왔다.
익히 알고 계시는 여래출현품 말미에 나오는 글귀들이다.
장문의 이 글귀를 쓰고 난 뒤에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라는 유명한 게송이 나온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라는 게송을 이 장문에서 잘나타내고 있다.
<유인물 p.1>
四. 法門의 名稱과 受持人
(1) 法門의 名稱
佛子야 此法門이 名爲如來秘密之處며 名一切世間의 所不能知며 名入如來印이며 名開大智門이며 名示現如來種性이며 名成就一切菩薩이며 名一切世間의 所不能壞며 名一向隨順如來境界며 名能淨一切諸衆生界며 名演說如來根本實性不思議究竟法이니라
“불자여, 이 법문의 이름을 ‘여래의 비밀한 곳’이라 하며, 또 ‘모든 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이라 하며, 또 ‘여래의 법인(法印)에 들어감’이라 하며, ‘큰 지혜의 문을 엶’이라 하며, ‘여래의 종성(種性)을 나타내 보임’이라 하느니라.
‘모든 보살을 성취함’이라 하며, ‘모든 세간이 깨뜨리지 못함’이라 하며, ‘한결같이 여래의 경계를 따름’이라 하며, ‘일체 모든 중생의 세계를 깨끗이 함’이라 하며, ‘여래의 근본 진실한 성품 헤아릴 수 없는 구경의 법을 연설함’이라 하느니라.”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법문(此法門)이 : 이 법문의 이름, 이 화엄경의 이름을 뭐라고 하느냐?
명위여래비밀지처(名爲如來秘密之處)며 :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곳이다. 이것을 한 번 짚어 보고 오늘 우리가 공부할 대목으로 들어가면 수월할 것 같다. 여래출현품 말미에 있는 글이다.
명일체세간(名一切世間)의 : 또 이름이 일체세간의, 일체중생 애착심이 있는 사람들은
소불능지(所不能知)며 : 이 화엄경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마음에 대해서. 또 어떤 것이냐. 이 화엄경, 이 법문이라고 하는 것은
명입여래인(名入如來印)이며 : 이름이 입여래인이다. 부처님께서 인(印)치시는, 부처님의 도장, 옥쇄를 콱 찍는 자리에 증입해서 들어가는 자리다.
부처님께서 증명하신 글이 바로 이 여래출현품 대방광불화엄경이다, 이런 이야기다.
명개대지문(名開大智門)이며 : 명개대지문이라. 대지혜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시는 것이고
명시현여래종성(名示現如來種性)이며 : 그 이름이 또 부처님의 종성을 시현하는 것이고
명성취일체보살(名成就一切菩薩)이며 : 그 이름이 일체보살을 성취시키고, 성숙시키고, 과일이 잘 익어 가듯이, 된장이 잘 익어 가듯이, 일체보살, 수행자들로 하여금 성취시킨다.
명일체세간(名一切世間)의 : 또 이름이 일체세간에
소불능괴(所不能壞)며 : 불능괴라. 일체 세속적인 것으로는 감히 이 화엄경을 얼토당토않게 헐뜯을 수가 없다. 무너뜨릴 수가 없을 것이다. 파괴할 수가 없다.
명일향수순여래경계(名一向隨順如來境界)며: 또 이름이 일향에 한결같이 수순하면서 부처님의 경계를 남순동자처럼 항상 쫓아간다. 수순한다. 부처님의 경계를 항상 쫓아가는 것이며
명능정일체제중생계(名能淨一切諸衆生界)며 : 이 화엄경은 능히 일체의 모든 중생계를 깨끗이 청정하게 한다.
명연설여래근본실성부사의구경법(名演說如來根本實性不思議究竟法)이니라 : 이 화엄경이라는 것은 부처님, 여래의 근본진실한 성품의 불가사의한 구경법을 연설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법문에 대해서 수지할 수 있겠는가?
<유인물 p.1>
(2) 受持人
① 法器
佛子야 此法門은 如來가 不爲餘衆生說이요 唯爲趣向大乘菩薩說이시며 唯爲乘不思議乘菩薩說이시니 此法門은 不入一切餘衆生手요 唯除諸菩薩摩訶薩이니라
佛子야 譬如轉輪聖王의 所有七寶가 因此寶故로 顯示輪王하나니 此寶는 不入餘衆生手요 唯除第一夫人의 所生太子가 具足成就聖王相者니라 若轉輪王이 無此太子具衆德者면 王命終後에 此諸寶等이 於七日中에 悉皆散滅인달하니라 佛子야 此經珍寶도亦復如是하야 不入一切餘衆生手요唯除如來法王眞子가生如來家하야 種如來相諸善根者니 佛子야 若無此等佛之眞子면 如是法門이 不久散滅하리니 何以故오 一切二乘은 不聞此經이어든 何況受持讀誦書寫하야 分別解說가 唯諸菩薩이야 乃能如是니라
“불자여, 이 법문은 여래께서 다른 중생에게는 말하지 않고, 오직 대승(大乘)에 나아가는 보살에게 말하며 오직 부사의한 수레를 타는 보살에게 말하는 것이므로 이 법문이 일체 다른 중생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오직 모든 보살마하살만은 제외될 것이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전륜왕에게 일곱 가지 보배가 있거든, 이 보배로 말미암아 전륜왕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이 보배는 다른 중생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오직 첫째 부인이 낳은 태자로서 전륜왕의 모습을 갖춘 이는 보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니라. 만일 전륜왕의 이런 태자로서 여러 덕을 갖춘 이가 없으면 이 일곱 보배는 전륜왕이 죽은 뒤 이레 동안에 모두 없어지느니라.
불자여, 이 경의 진귀한 보배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다른 중생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오직 여래 법왕의 참아들로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서 여래의 모습과 모든 착한 뿌리를 심은 이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니라.
불자여, 만일 이와 같은 부처님의 참아들이 없으면 이와 같은 법문이 오래가지 않아 없어지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이승(二乘)은 이 경을 듣지도 못하거든 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쓰고 분별하여 해설하겠는가. 오직 모든 보살만이 이에 능히 이와 같을 수 있느니라.”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법문(此法門)은 : 이 법문은
여래(如來)가 : 여래께서
불위여중생설(不爲餘衆生說)이요 : 다른 잡다한 사람들을 위해서 설한 것이 아니다.
유위취향(唯爲趣向) : 오직, 오늘 제가 왜 이걸 꺼냈느냐 하면 더워서 일반 중생 근기는 못 올 것이다, 해서 우리끼리 한번 우쭐대면서 읽어보자, 이런 의미로 지금 읽는 것이다.
일반 잡찌그리한 사람들을 위해서 설한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줘도 못 받는다.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가지고 용광로 쇳물을 받으려면 바가지가 빵구가 나 버린다. 그건 그릇이 안 된다. 법기가 아니다. 비기기(非其器)다. 그릇이 아니다.
오직 누구를 위해서냐? 일체중생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법을 지녀서 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 오직 유위(唯爲) 취향(趣向)
대승보살설(大乘菩薩說)이시며 :대승을 향해서 나아가는 보살들을 위한 설이고
유위승부사의승보살설(唯爲乘不思議乘菩薩說)이시니 : 오직 위한 것이다. 어떤 승을 위한 것인가? 불가사의한 승, 말과 논리로써 하는 쪽제비 같은 사상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진리의 수레를 타고 가는 보살들을 위해서 설하는 것이고
차법문(此法門)은 : 이 법문은
불입일체여중생수(不入一切餘衆生手)요 : 일체 잡다한, 하류 중생들 손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부처님도 극락에 올 만한 사람을 알아보시고 딱 찾아가시듯이 보물도 주인을 알아보고 그 사람을 찾아간다.
일반 사람들 수중에는 화엄경이 들어갈 수가 없다.
유제제보살마하살(唯除諸菩薩摩訶薩)이니라 : 오직 제외된다, 누구는?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제외된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전륜성왕(譬如轉輪聖王)의 : 비유컨대 마치 전륜성왕이
소유칠보(所有七寶)가 : 가지고 있는 칠보가
인차보고(因此寶故)로 : 이 보배로 인한 까닭으로
현시륜왕(顯示輪王)하나니 : 현시륜왕하니 내가 전륜성왕인 것을 나타낼 수 있나니
차보(此寶)는 :이 보배는
불입여중생수(不入餘衆生手)요 : 다른 중생들의 손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옥쇄는 임금 손에나 쥐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화엄경을 읽고 보고 있는 것은 옥쇄를 쥐고 부처님의 적자로서 살아가는 일이다, 이런 자존심이다, 하는 말씀이다.
유제제일부인(唯除第一夫人)의 : 유제 오직 제외된다. 제일 부인의
소생태자(所生太子)가 :소생태자가 제일부인의 소생태자는 세자다.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구족성취성왕상자(具足成就聖王相者)니라 : 거룩한 왕상을 성취한 것과 같은 것이니
약전륜왕(若轉輪王)이 : 만약에 전륜왕이
무차태자구중덕자(無此太子具衆德者)면 : 어린 태자로서 여러 덕을 갖춘 사람이 없으면
왕명종후(王命終後)에 : 전륜왕이 죽은 뒤
차제보등(此諸寶等)이 : 차제보등이
어칠일중(於七日中)에 : 이레 동안
실개산멸(悉皆散滅)인달하니라 : 모두 없어져 버린다.
제가 대강백 스님한테 가니까 그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자주 말씀드려서 미안하다.
“이 말법 시대에 전부 공부를 안 하는데 다행히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구만요. ”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말법시대에 공부를 안 하면은 저기 화엄경이 다시 용궁으로 들어간다는데, 큰일 났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하셨다.
용궁으로 다시 화엄경이 들어가 버린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화엄경이 용궁으로 못 가도록 붙잡아놓고 있는 형국이다.
전륜성왕도 칠보가 차라리 없어지면 없어졌지 잡다하게 다른 사람들의 손에서 희롱되게 하지는 않는다, 이런 말씀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차경진보(此經珍寶)도 : 이 경의 보배도, 이 대경전의 보배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그와 같아서
불입일체여중생수(不入一切餘衆生手)요 : 다른 중생들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유제여래법왕진자(唯除如來法王眞子)가 : 오직 여래의 참아들로서 법왕진자 우리 법왕의 진자 부처님의 참된 아들로서
생여래가(生如來家)하야 :여래의 가문에 태어나서
종여래상제선근자(種如來相諸善根者)니 : 여래의 모습과 착한 뿌리 선근을 심은 사람들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니라.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약무차등불지진자(若無此等佛之眞子)면 : 만일 이와 같은 부처님의 진짜 아들이 없다고 하면
여시법문(如是法門)이 : 이런 법문이
불구산멸(不久散滅)하리니 : 오래가지 않아서 없어지나니
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일체이승(一切二乘)은 : 이승과 소승 중승은
불문차경(不聞此經)이어든 : 이 경을 듣지도 못하거든
하황수지독송서사(何況受持讀誦書寫)하야 : 하물며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분별해설(分別解說)가 : 분별하여 해석할 수 있겠는가
유제보살(唯諸菩薩)이야 : 오직 보살만이
내능여시(乃能如是)니라 : 이러할 수 있느니라.
<유인물 p.2>
(2) 利益
是故로 菩薩摩訶薩이 聞此法門에 應大歡喜하야 以尊重心으로 恭敬頂受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信樂此經하면 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법문을 듣고는 크게 기뻐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공경히 받들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이 경을 믿고 좋아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게 되는 까닭이니라.”
*
이익을 들어서 수행하기를 권하다
*
시고(是故)로 : 그러므로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문차법문(聞此法門)에 : 이 법문을 듣고는
응대환희(應大歡喜)하야 :크게 기뻐하며
이존중심(以尊重心)으로 : 존중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써
공경정수(恭敬頂受)니 :공경하게 받들어야 하나니
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신락차경(信樂此經)하면 : 이 경전을 읽고 모든 고통을 벗어나서 이고득락할 수만 있다면
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니라 : 질득, 속득, 즉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고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을 즉시에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니라.
이렇게 읽고 오늘 공부 들어가도록 하겠다
*
모처럼 만에 읽는 여래출현품인데 신심이 나지 않는가.
또 다른 의도가 있다. 지나고 나면 희한하게 다 까먹으시기 때문이다.
백일홍이 필 때가 되면 절에는 해제철이다.
매화가 필 때면 동안거 해제, 하안거 해제는 백일홍이 핀다.
백일홍이 만발했으니까 우리도 해제하고 공부를 안 해야 되는데 이제 또 공부를 한다.
여기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거니까, 한 달을 안 해 버리면 두 달이 되어 버리고, 두 달 안 해 버리면 석달 되어 버린다.
오늘은 가지고 계신 교재를 337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내용은 아실 것이다.
200가지 질문에 대해서 2천 가지로 답을 하는 와중에 있다.
2천 가지로 답하는 중에서 십신에서 답을 하고, 십주에서 답을 하고, 지금 십행에서 답을 하는 중이다.
십행 중에서 환희행에서 답이 한 서너 가지가 나온다.
두 꼭지는 지난 시간에 했었고 오늘은 세 번째 꼭지다.
3. 三十門의 十行答
(1) 歡喜行
들어가기 전에 <대방광불화엄경 표해과판>은 지난 시간에 제가 여러분들께 다운을 받으라고 했던 책이다.
펼치면 변상도 하나가 나오고 예를 들어서 19권 같으면 19권 제목이 이렇게 나온다.
빨간 박스에 보라색 글씨가 있는 셀은 ‘빨리 보라’는 뜻이다.
19권의 대표 게송은 뭐겠는가?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아 이쯤에 그 게송이 나오는구나’ 이렇게 찾아보면 편하다.
요쪽에도 빨간 것을 보니 ‘아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 19권 요쯤에 나오는구나’ 이런 식으로 과표가 다 되어 있다.
20권도 변상도를 하나 넣고 뒤에 과목 다 쳐놓았다.
오늘 책 20권에 나오는 ‘일심경례십력존(一心敬禮十力尊) 아 우리 상강례 하는 것이 20권에 나오는구나’ 이렇게 알 수 있다.
여기도 빨갛게 써 놓았다.
주룩주룩 제끼다 보면 상권은 십지품까지 되어 있고 하권은 십정품부터 입법계품까지 묶었다.
입법계품은 좀더 색다르게 해놓았다.
72권을 보면 변상도를 하나 넣고 과목치고, 거기 해당하는 선지식 지남도를 적어 놓고, 상당히 보기가 편하게 되어 있다.
중요한 법문이 있으면 다 실어 놓았다.
그러니까 공부 80권 하시기 싫으면 요거 두 권만 들고 심심하면 그림도 제껴보시고 이렇게 보시면 되겠다.
오늘 특별히 견본을 뽑아 놨으니까 스님들께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누가 한 권 가져가시기 바란다.
이것이 책으로 나오려면 한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른다.
*
왜 제가 이 과목을 다시 해놨는가 하면 이 책하고 지금 우리가 보는 교과서 하고 과목이 조금 다른 것이 있다.
과목을 분류하고 분류하다 보니까 내용을 앞에서 잘라야 되는데 뒤에 잘못 잘렸다든지 하는 내용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서 등각 계위가 47개다. 묘각은 오직 네 개뿐이다
이렇게 청량국사나 다른 사람들이 분리를 해놨다.
왜 이렇게 해놨을까? 그 뜻을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된다.
특히 오늘은 환희행이 나오고 요익행 무위역행이 나오고 무굴요행이 나온다. 그런데 무굴요행에서 두 꼭지가 떨어지고 무치란행에서 여섯 꼭지가 떨어져야 하는데 그게 막 뒤섞여 있다. 무치란행이 무굴요행으로 붙어있고, 앞뒤가 서로 헷갈리게 되어 있다.
그러면 본문을 딱 읽어 보고 ‘왜 여기가 무치란행으로 들어가야 되느냐’ ‘여기가 왜 무굴요행으로 들어가야 되느냐’ 옛날 사람 빌릴 것 없고, 거기 왜 이것이 정진 바라밀이 되어야 하고, 여기서는 선정 바라밀이 되어야 하느냐, 그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잖은가.
예를 들어서 제가 말을 또렷또렷하고 잘하고 말을 분별있게 하려면 선정이 있어야 되겠는가, 부지런해야 되겠는가?
제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선정 삼매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무치란행에 속한다는 말씀이다.
정신이 어지러우면 말도 어지러워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게 앞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왜 뒤에 붙어 있지?’ 그런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신념을 가지고 크게 불사를 일으킬 때 절대 물러나지 않고 의심 없이 밀고 나가야 되겠다, 어디로 붙어야 되겠는가? 무굴요행으로 붙어야 한다.
불퇴전의 신심이라고 하잖는가.
옛날에 이렇게 경전 내용이 되어 있을 때는 바라밀과 배대를 해놓았는데 우리가 아무 데나 막 자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 사람이 한번 도표를 잘못 틀리게 해놓으면 뒷사람이 계속 따라서 틀린다. 그러니까 뜻과 같이 맞춰서 잘 봐야 되는 것이다.
오늘 ‘열 가지 불법에 깊이 들어감이 있다’를 배우는데 어떻게 해서 깊이 들어갈 것인가.
깊이 들어감이 있다는 내용 앞에,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은 ‘크게 기뻐하고 위로됨이 있다’였다.
‘아 이거구나, 우리가 재주를 타고 나도, 천재를 타고 나도, 좀 밀리는구나. 아무리 노력한 데도 노력하는 것 보다 즐기는 사람 앞에서 밀린다. 흔쾌히 기뻐하고 위로를 받으면 그런 데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런 사람이 불법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먼저 뭘 해야 되는가?
불교를 즐겨야 된다.
앞에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제일 마지막을 보자.
어떻게 나오는가?
부작시념하되 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되 ‘나는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님을 이루고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써 모든 세계에서 일체중생을 위하여 따로따로 정등각 이룸을 나타내 보이고, 청정하고 두려움이 없어 크게 사자후할 것이며, 본래의 큰 원(願)으로 법계에 두루 하여 큰 법의 북을 치며, 우대우라. 큰 법의 비를 내리며, 큰 법을 보시하고, 한량없는 겁에 바른 법을 연설하지마는 큰 자비로 유지되어 몸과 말과 뜻의 업이 고달프지 아니하리라.’ 무유피염이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심대흔위라. 마음이 크게 기뻐 위안하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의 대흔위 크게 기뻐 위안받고 스스로 나는 피로함이 없다.” 이러니까 사람이 깊이 들어간다.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무상성정각지혜대흔위하리라. 깨달음의 지혜를 이루어 크게 기뻐 위안함을 얻느니라.”
크게 기쁘고 위로가 되고 내가 아무 불만이 없으니까 어디에 심입하는가? 열 가지에 깊이 불법에 들어간다.
다. 菩薩의 十種深入佛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深入佛法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過去世一切世界하며 入未來世一切世界하며 入現在世世界數와 世界行과 世界說과 世界淸淨하며 入一切世界種種性하며 入一切衆生種種業報하며 入一切菩薩種種行하며 知過去一切佛次第하며 知未來一切佛次第하며 知現在十方虛空法界等一切諸佛의 國土衆會說法調伏하며 知世間法과 聲聞法과 獨覺法과 菩薩法과 如來法하야 雖知諸法이 皆無分別이나 而說種種法하야 悉入法界호대 無所入故로 如其法說하야 無所取着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入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智慧甚深性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불법에 깊이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지난 세상의 모든 세계에 들어가며, 오는 세상의 모든 세계에 들어가며, 지금 세상의 세계 수효와 세계의 행과 세계의 말함과 세계의 청정한 데 들어가느니라.
일체 세계의 갖가지 성품에 들어가며, 일체 중생의 갖가지 업과 과보에 들어가며, 일체 보살의 갖가지 행에 들어가느니라.
과거 일체 부처님의 차례를 알며, 미래 일체 부처님의 차례를 알며, 현재 시방의 허공과 법계에 있는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에 모인 대중에게 법을 설하여 조복시킴을 아느니라.
세간법과 성문법과 독각법과 보살법과 여래법을 알며, 비록 모든 법을 알아 모두 분별이 없지만 갖가지 법을 말하며, 다 법계에 들어가나 들어갈 것이 없으므로 그 법과 같이 말하여 집착이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큰 지혜의 매우 깊은 성품에 들어가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심입불법(十種深入佛法)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심입불법(有十種深入佛法)하니 : 열 가지의 심입불법이라. 불법에 심입이라고 하는 것은 증입한다 증득한다 들어간다는 말이다.
즐기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깊이 들어갈 수가 없다. 깊이 푹 빠질 수가 없다. 조금 하다가 촐랑거리고 이상한 짓을 한다. 깊이 쑥 들어갈 사람은 계속 즐겨야 된다는 뜻이다.
앞에서는 법보시가 나왔었다. ‘있는 것은 내가 다 배울 것이다, 법시한다, 법의 북을 두드린다’ 했잖은가.
거기에 대해서 계속 즐기다 보니 여기서는 내가 드디어 일체지를 증득하고 일체법을 알게 된다. 지일체법 증일체지, 일체지와 일체법 알게 됐다.
*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입과세일체세계(所謂入過去世一切世界)하며 : 소위 지난 세상의 모든 일체 세계에 들어가고
입미래세일체세계(入未來世一切世界)하며 :입미래세 일체 세계에 들어가고
입현재세세계수(入現在世世界數)와 : 입현재세의 모든 세계 수효와
세계행(世界行)과 :세계의 행과
세계설(世界說)과 : 세계의 설과
세계청정(世界淸淨)하며 : 세계의 청정한 데 들어간다. 심입, 깊이 들어간다는 말은 ‘입실제자’처럼 완전히 안다는 것이다.
입일체세계종종성(入一切世界種種性)하며 :일체 세계의 종종성, 아주 갖가지 근본 성품에도 싹 들어가고
입일체중생종종업보(入一切衆生種種業報)하며 : 일체 중생의 갖가지 업보, 업(業)과 보(報)에도 다 들어가고, 제대로 안다.
들어간다는 말은 안다는 말이다.
주방장이 되어서 한 50년 주방장을 하다 보니 간 맞추는 것은 일도 아니다. 환하게 아는 것이다.
입일체보살종종행(入一切菩薩種種行)하며 :일체 보살의 갖가지 행에 들어가고
지과거일체불차제(知過去一切佛次第)하며 :지 안다, 과거 일체 부처님의 차제 순서를 알고
지미래일체불차제(知未來一切佛次第)하며 :미래 일체 부처님의 순서를 알고
지현재시방허공법계등일체제불(知現在十方虛空法界等一切諸佛)의 : 현재 시방 허공계 법계 등을 알고
국토중회설법조복(國土衆會說法調伏)하며 :허공계 등의 일체 제불의 국토중회에게, 국토에 모인 대중들에게 설법하고 조복하는 것을 알고
지세간법(知世間法)과 : 세간법과
성문법(聲聞法)과 :성문법과
독각법(獨覺法)과 :독각법과
보살법(菩薩法)과 :보살법과
여래법(如來法)하야 : 여래법을 알며
수지제법(雖知諸法)이 : 비록 일체 모든 법이
개무분별(皆無分別)이나 : 분별이 없는 줄 알지만
이설종종법(而說種種法)하야 : 이설종종법이라. 분별할 것도 없지만 일부러 분별해서 중생들의 수준에 맞춰서 지혜롭게 낱낱이 설법을 한다.
실입법계(悉入法界)호대 :다 법계에 들어가지만
무소입고(無所入故)로 :무소입이라.
이것은 십회향품에서 너무 자세하게 많이 나왔던 이야기다.
십행법문에도 많이 나왔다.
다 들어가지만 무소입고로, 들어갈 것이 없는 까닭으로.
우리가 아시다시피 금강경 얘기를 늘 예를 든다. 제7분 무득무설분에서 연등불전에서 ‘여래께서 얻은 바 법이 있느냐?’
‘얻은 바도 없고 설하신 바도 없다.’
‘여래께서 설하신 바 법이 있느냐?’
‘불야니이다.’
무득무설이라. 얻은 바도 없고 설하신 바도 없다. 들어갈 것이 없으므로
여기법설(如其法說)하야 : 그 법과 같이 말하여
무소취착(無所取着)이 : 집착이 없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입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대지혜심심성(則得入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智慧甚深性)이니라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큰 지혜의 매우 깊은 성품에 들어간다.
환희행이 이렇게 끝났다.
(2) 饒益行
*菩薩의 十種依止*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依止하야 菩薩이 依此行菩薩行하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依止供養一切諸佛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調伏一切衆生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親近一切善友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積集一切善根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嚴淨一切佛土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不捨一切衆生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深入一切波羅蜜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滿足一切菩薩願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無量菩提心하야 行菩薩行하며 依止一切佛菩提하야 行菩薩行이 是爲十이니 菩薩이 依此行菩薩行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의지가 있어서 보살들이 이를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모든 중생을 조복함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느니라.
모든 선지식을 친근함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모든 착한 뿌리를 쌓아 모음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장엄함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음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느니라.
모든 바라밀다에 깊이 들어감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모든 보살의 원을 만족함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한량없는 보리심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며, 모든 부처님의 보리를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보살이 이것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느니라.”
*
요익행(饒益行)
*
환희행이 끝나고 다음에는 요익행이다. 요익행이라고 하는 것은 지계바라밀이다. 요익이라는 말 속에 계율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이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선을 함으로써 남들에게 넉넉하게 이익을 준다.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남에게 악구하고 욕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남에게 넉넉하게 이익이 되게 한다. 그 말은 비단 이 계율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중선봉행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요익행에 해당하는 것이다.
화엄경이 전부 다 그렇겠지만, 요익행을 잘 나타내는 딱 한 품을 뽑으라면 어느 품이겠는가? 정행품이다.
어떤 구절인가?
‘선용기심(善用其心)하면 즉획일체승묘공덕(則獲一切勝妙功德)이라. 보살이 만약에 보살이 선용기심이라 그 마음을 착하게 쓰면 즉시에 수승하고 묘한 경계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온다.
계율을 꼭히 따지자는 데서 요익행을 보자면 범행품을 따질 수 있을 것이다.
범행품 제일 말미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가?
‘초발심시변정각’이 나온다. 그거는 우리가 너무 자주 하는 이야기니까 좀 생략하도록 하고 넘어가겠다.
*
보살(菩薩)의 십종의지(十種依止)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의지(有十種依止)하야 :십종의지가 있다. 십종의 의지하는 처가 있다.
의지처라고 하는 것은 내가 기댈 곳이니까 어디에 기대느냐? 바른 곳을 찾으면 바른 사람을 만난다.
지저분한 곳을 찾으면 지저분한 사람을 만난다.
맹모삼천지교와 같다.
그러니까 이미 앞에서 즐겼고 크게 기뻐하고 위안을 받고 내가 불교로 가는 인생에 대해서 행복하다 생각을 했고, 그다음에 증입해서 깨달았고 깊이 들어갔잖은가.
깊이 들어갔으면 반드시 어디에 의탁하는가?
좋은 선지식에 의탁한다. 좋은 주변 환경을 자기가 형성한다. 요달한 사람, 완전히 들어간 사람은 걸음걸이가 똑바르게 돼서 똑바른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보살(菩薩)이 : 불자야
의지행보살행(依此行菩薩行)하나니 : 보살마살은 열 가지 의지처가 있다.
열 가지 의지할 곳이 있는데 보살들이 이를 의지해서 보살행을 행하나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범어사는 무조건 ‘선근공덕을 지어라’해서 의상교를 딱 지나면 왼쪽에 ‘김선근’ 이름이 붙어있다.
저는 김선근이라고 안 읽고 금선근이라고 읽는다. 황금처럼 좋고, 착한 일만 하라.
김선근을 보고 한 3m 뒤로 딱 가면 김사철(金思轍) 생각 사자에다 전철을 밟아가는 것, 잘 생각해서 부처님이 가신 길을 잘 밟아가라고 김사철, 금사철이 나온다.
거기에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김영덕(金永悳)이 있다. 영원할 영자 영원토록, 참진 자 밑에 마음 심자 큰 덕자다.
약자로 쓰기도 하지만 절에서는 그 글자를 신심 덕(悳)자라고 한다.
신심이 뭐냐? 진짜 마음을, 공덕을 짓는 것이다.
참 진자 밑에다 마음 심자 있잖은가. 그 글자가 신심 덕자다.공덕 지을 덕자 영원히 공덕을 짓는다.
범어사 바위가 많잖은가.
옛날 어른들은 그 바위 많은 데다가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노는 바위에다가 사람 이름을 적어놨다.
그래 한참 올라가서 범어사 금정, 금샘 물 나오는 지장전 옆에 용바위 밑에 그 산신각 앞에 가면 박내정(朴乃正)도 써놨다. 박씨 무학대사 박씨처럼 박씨, 순박할 박자. 순박하고 이에 내자 써서 오직 곧을 정자, 순박하고 곱게 살아라.
곳곳에서 사람들이 범어사에 누가 그렇게 써놨든지 말든지 저는 그렇게 읽어버리면 된다.
우리도 법명이 있다. 전부 다 불명이나 법명을 많이 받았지만 그 법명대로 살라고 얼마나 힘들겠는가.
소위의지공양일체불(所謂依止供養一切諸佛)하야 : 각자 분명히 여기에 지금 해당되는 것이다.
소위 의지한다 무엇을?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을 의지해서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조복일체중생(依止調伏一切衆生)하야 : 일체중생을 조복하는 데 의지해서, 거기에 기대서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내가 보살행을 한다.
내가 보살행을 할 수 있도록 부처님한테 달라붙고 이런 것을 경전(敬田)이라고 한다. 공경 경자 밭 전자. 부처님은 경전이라고 한다.
중생은 복전(福田)이라 한다.
우리가 중생에게 복을 지어서 복이 생기잖는가.
스승이나 부모님이나 이런 데는 우리가 존중해서 받들어야 될 자리다. 그래서 부모님 같은 경우 은전(恩田)이라고 한다.
은혜의 밭,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체중생을 조복시켜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친근일체선우(依止親近一切善友)하야 : 일체 선지식을 친근함을 의지해서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한다. 선지식 친근하는 것도 보살행이요
의지적집일체선근(依止積集一切善根)하야 :일체 선근을 적집하여, 김선근이 나왔잖은가.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엄정일체불토(依止嚴淨一切佛土)하야 : 일체 불토를, 부처님의 불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써,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불사일체중생(依止不捨一切衆生)하야 : 일체중생을 불사(不捨)한다, 절대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못난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써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심입일체바라밀(依止深入一切波羅蜜)하야 : 일체 바라밀에 깊이 들어가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행심반야바라밀이라, 깊은 일체 바라밀다행에 들어가서, 깊은 반야 바라밀에 심입 깊이 들어간다는 것이 무주이주(無住而住)다. 머무름 없이 머무른다.
집착 없는 법성이 공한 줄 알 때 모든 일체 바라밀에 깊이 들어간다고 이야기한다.
의지만족일체보살원(依止滿足一切菩薩願)하야 : 일체 보살 원력을, 원을 만족함을 의지해서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무량보리심(依止無量菩提心)하야 : 무량한 보리심을 의지해서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보살행을 행하고
의지일체불보리(依止一切佛菩提)하야 :일체 부처님의 깨달음, 보리를 의지해서
행보살행(行菩薩行)이 : 보살행을 행하고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
보살(菩薩)이 : 보살이
의차행보살행(依此行菩薩行)이니라 : 이것을 의지해서 보살행을 행하느니라.
점점 순서가 즐기고 깊이 들어가서 실천하는 데까지 왔다. 실천하는 것은 좋은 인연을 만든다. 거기에 의지하면 자꾸 좋은 인연이 만들어진다.
(3) 無違逆行
*菩薩의 十種發無畏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發無畏心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滅一切障礙業하야 發無畏心하며 於佛滅後에 護持正法하야 發無畏心하며 降伏一切魔하야 發無畏心하며 不惜身命하야 發無畏心하며 摧破一切外道邪論하야 發無畏心하며 令一切衆生歡喜하야 發無畏心하며 令一切衆會로 皆悉歡喜하야 發無畏心하며 調伏一切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하야 發無畏心하며 離二乘地하고 入甚深法하야 發無畏心하며 於不可說不可說劫에 行菩薩行호대 心無疲厭하야 發無畏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無所畏心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장애되는 업을 멸하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지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모든 마(魔)를 항복받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느니라.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모든 외도의 잘못된 논리를 깨뜨리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모든 모인 대중을 모두 기쁘게 하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모든 모인 대중을 모두 기쁘게 하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느니라.
모든 천신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가루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를 조복하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이승(二乘)의 지위를 떠나서 깊은 법에 들어가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劫) 동안에 보살의 행을 행하면서 고달픈 생각이 없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두려울 것 없는 마음을 얻느니라.”
*
무위역행(無違逆行)
*
보살(菩薩)의 십종발무외심(十種發無畏心)
*
환희행 끝나고 요익행 끝나고 지금은 무위역행이라.
무위역행이라고 하는 것은 딱 잘라서 인욕 바라밀이다.
난인(難忍)을 능인(能忍)하면 신경여성(信敬如聖)이라.
참을 수 없는 것을 능히 참는 것, 흔히 참을 인(忍)자를 칼날 인(刃)자가 심장에 꽂혔다고 표현한다.
손톱 밑에 가시 하나가 꽂혀도 아파 죽겠는데 내 심장에다 마음 아프게 비수를 꽂으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걸 견디니까 칼날 인자 밑에다가 마음 심(心)자, 마음에 칼이 꽂힌 것처럼 아프다. 그래도 그걸 견딘다는 것이다.
난인을 능인한다.
우리가 착하지 아니하면 즉시에 못된 악업을 짓는다.
여름철에 음식도 관리 잘못하면 금방 부패되고 썩어버리듯이, 중생도 관리를 잠깐만 안 하고 놔둬 버리면 온 데 가서 막 들이받아서 난리굿이 돼 버린다.
보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낸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발무외심(有十種發無畏心)하니 : 열 가지의 발무외심이라.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모든 장애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아플 것도 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무시당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십지품에는 그 오종 포외(怖畏)를 떠나야 일단은 초견성이라 한다.
분별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다섯 가지 공포는 대중한테 욕 들어 먹을 것, 내 죽을 것, 죽을둥살둥 죽음에 대한 공포, 오염에 대한 공포 등 다섯 가지가 십지품 34권에 나온다. 십지품 34권이라고 몇 품 콕 집어 드리니까 약장사하는 것 같다. 34권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 대목이 아주 잘 나온다.
화엄경뿐만 아니라 어떤 경이든지 수행해서 분별심이 잘려서 오온개공(五蘊皆空)으로 갈 때 그 다섯 가지로 내가 오온개공이 됐다 안 됐다 판단의 기준이 거기에 있다.
어떤 논서를 배우든지 경전을 배우든지 그런 것을 안 하고 그냥 경만 읽으면 어떻게 되는가?
순자(荀子)는 그런 것을 네 치 지식이라고 하였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 귀하고 입하고는 네 치 밖에 안 된다.
화엄경을 이렇게 눈으로 봤다고 입으로 나불나불하고, 귀로 들었다고 나불나불하는 것은 지식이지 공부가 아니다.
군자지학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것, 견문위종(見聞爲種)이 됐던 것이 정신에 의지하고 마음에 심어서, 심장에 심어서 내 양심에 보고 들었던 경전의 글귀가 여기서 자라서 사지로 뻗어나간다고 순자는 말했다.
내가 글로 보고 듣고 한 것이 사지(四肢) 손으로 가서 자비로운 행을 한다. 박사 학위로 푸는 것이 아니고 발로 움직여서 보현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순자도 엔간히 많이 알았다.
순경자라 한다.
맹자도 똑같이 얘기해 놨다.
맹자는 자벌레가 노란 것을 먹으면 몸이 노랗게 되고, 창식을 하면 푸른 것을 먹으면 자벌레가 푸른색이 된다고 하였다.
대지도론의 용수보살은 사음수(蛇飮水)하면 성독(成毒)하고 우음수(牛飮水) 하면 성유(成乳)라. 똑같은 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 구절을 초발심자경문에서 많이 배웠다.
맹자 순자 이런 분들이 유교지만 아뢰야식이라든지 일체 유식을 다룬 것을 보면 ‘야 이분들 정말 깊은 학문을 하신 분이구나’ 싶다.
두려움이 없는 마음이라. 두려움이 없는 마음이 이른바 뭐냐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멸일체장애업(所謂滅一切障礙業)하야 : 일체 장애업을 멸하는데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 두려움이 없다.
내 모든 장애업을 멸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장애업이 바다만하다는데 저 바닷물을 말리려면 얼마나 식겁하겠는가? 그러니까 3년 기도도 하고 10년 기도도 하고 종신선원에도 들어가고 무문관에도 들어가고 우리가 업장소멸한다고 야단하잖는가.
장애가 되는 걸 멸하기 어렵다. 장애가 난멸한다.
어불멸후(於佛滅後)에 :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호지정법(護持正法)하야 : 호지정법이라. 부처님이 안 계실 때 정법을 호지해서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낸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끼리라도 열심히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부처님이 안 계시더라도 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지는 데, 호지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다. 남기신 법 그 유법 대해서 지키기가 어렵다. 엔간하면 다 말아먹어 버린다.
항복일체마(降伏一切魔)하야 :일체 마를 항복받는 데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두려움이 없다.
까짓거 ‘마구니라는 마구니는 있는 데로 다 온나, 내가 한번 상대해 준다’이 말이다. 악마에 대해서 항복받기 어렵지만
불석신명(不惜身命)하야 : 불석신명하야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 발무외심하며, 법화경에 엔간하면 나오는 것이 불석신명이다.
우리도 예불할 때마다 불석신명이라 하잖는가. 지심귀명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데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낸다. 그런데 그 구절이 저는 좀 곤란할 것 같다. 좀 아프면 죽을까 싶어 겁이 난다. 요즘 한 사흘 동안 이 도표를 만든다고 밤샘을 하면서 공부하니까 심장이 바늘을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요즘 살을 한 10kg쯤 빼버렸으니까 코피도 잘 안 터지고 혈압도 조절되고 잘 되겠다 싶어서 용기를 가지고 어릴 때 공부하듯이 했더니 그랬다.
이 화엄경 보면 얼마나 재미있나.
아무도 안 보는 거 혼자서 이거 해놓으면 누가 보겠는가? 아무도 안 본다. 그러니까 이 아무도 안 보는 책을 만들어 놔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러면서 그래도 혼자서 만족하며 만든다.
원효스님이 원효소 별기에 마지막에 써 놓았다.
‘이것을 내가 세상에 선양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나혼자 이렇게 보려고 써놓은 노트에 불과하다’ 원효스님이 별기 서문에 ‘별로 글 같지도 않은 책 여러분들 보지 마세요’ 그랬는데 그것이 우습지 않게 천년 내려왔잖은가.
원효스님 별기의 가장 훌륭한 말씀이 금강삼매경론에도 나온다. 금강삼매경론에도 서문에서 ‘무리지(無理之)가 지리(至理)요 불연지(不然之)가 대연(大然)이다’라고 해놓았다.
이치 없는 이치가, 이치 없는 이판이, 이법계가, 진짜 이판이고, 일 없는 일 사법계, 불연지가 대연이라. 인연 없는 인연이 전부 그러하지 아니한 것이 정말 그러하다. 이것이 금강삼매경론의 주제다, 이렇게 해놓았다. 대지가 이렇게 된다.
그래놓고, 기신론에 보면, 원효스님의 절작이 기신론소이지 않은가. 그 글이 얼마나 좋으면 거기에도 무리지가 지리요 불연지가 대연이다,라고 해놓았다.
모든 대장경을 꿰뚫고 있는 것은 ‘중전지간심(衆典之肝心)을 일이관지자(一而貫之者)는 기유차론(其唯此論)이라, 오직 이 기신론 한 권 뿐이다’ 그렇게 해석을 했다.
종경록(宗鏡錄) 같은 데서, 성철스님이 백일법문 많이 하셨잖은가, 종경록 100권을 짓는 데 제일 앞부분이 한 삼 사십 권 갈 때까지 영명지각연수선사(永明智覺延壽禪師)가 진망에 대해서 기신론을 가지고 쫙 설명하시잖는가.
화엄경 서문을 청량국사가 지어놓고 화엄경 서문에 ‘명진체어만화지역(冥眞體於萬化之域)하고’ 그 진공묘유를 설명할 때도 ‘원효스님께서는 기신론에서 이와 같이 대승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소언공적(蕭焉空寂)하고’ 그 대목을 원효스님께서 기신론에서 써 놓은 이 마음자리, 우리가 지금 보자고 하는 일심자리, 이 종경의 자리, 일심의 자리를 화엄경에서도 똑같이 공히 이야기해 놓았다.
제가 이 화엄경 표해과판을 만지면서 각 권마다 주제는 통현장자 것을 다 써 놨다. 짧게 한 스무 자 정도씩의 각 권의 주제는 통현장자 것을 써놨다.
그리고 그 밑에 들어가서 구체적인 부분들을 해석하는 데는 명나라 시대 최고의 선승, 최고의 도인이라고 하는 감산덕청(憨山德淸)스님의 글을 가져왔다.
감산 덕청스님은, 청량국사의 소초를 쫙 압축해서, 팥 앙금을 압축해서 양갱의 느낌이 나도록 압축을 했다.
그렇게 해서 감산 덕청스님이 써 놓은 것을 갖다 올려 놓았다. 청량국사 것을 다 쓰려면 책을 들고 다닐 수 없이 방대하니까, 감산 덕청스님은 성질이, 줄이는 것을 좋아하신다.
규봉 종밀스님은 자꾸 달아내는 것을 좋아하신다.
‘나는 번거롭게 가지 치고 덩굴 치고 옆에서 자꾸 달아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본문에 직해하겠다. 기신론도 직해하고 능엄경도 통일하겠다’ 감산 덕청스님은 묶어서 해설을 해버린다.
원효스님도 그렇게 잘 묶어서 해설하신다. 하나하나 이잡듯이
안 하신다.
청량국사는 하나하나 이잡듯이 갈래를 쳐놓는다.
그래서 여기는 감산스님 것을 써놓았다.
감산스님께서 기신론 같은 것을 해석하시면서 뭐라 해놨는가?
기신론 서문에다가 ‘이것은 화엄경으로 가는 관약(管鑰)이다.기신론은 화엄경 자물쇠를 여는 열쇠다’ 그래놓고 화엄경의 십현문을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부터 열 가지를 쫙 쓰지 않는가.
기신론 서문에 화엄경 십현문을 쓴다. ‘세주묘엄을 잘 봐라’ 해놓고 그러면서 육상원융(六相圓融)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갖다가 쫙 보여서 ‘화엄의 육상원융과 십현연기가 바로 이 기신론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책이 아니다, 마음일 뿐이다’ 이렇게 연결해 놓았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이세간품도 마찬가지다.
종이가 십주, 십행, 십회향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는 데, 단계가 있다.
볍씨가 있을 때가 있고, 볍씨가 줄기를 올릴 때가 있고, 이파리가 번질 때도 있고, 꽃이 필 때가 있고, 열매가 맺을 때도 있고, 과일이 익어갈 때가 있다.
그 익어간 실과, 열매를 따서 음식을 만들었을 때는 어디까지 가는가? 묘각이다.
청량국사는 그것은 네 가지다 이렇게 해 놨다.
이천 가지 답할 때 마지막에 네 가지다.
그런데 이 책에는 우리가 몇 개를 해놨냐 하면 열아홉 가지다, 라고 해놨다.
그것도 나중에 우리 한 번 다시 짚어봐야 된다.
등각에 가서도 여기 책에서는 32가지로 해놨는데 청량국사는 47가지다,라고 했다.
이 51가지가 수행의 결과로 도출되는 2천 가지 보살행 하는 것 있잖은가.
질문은 201가지다.
제가 그러니까 여기 표해과판에는 시리얼 넘버를 1번부터 201번까지 질문 하나하나에 다 붙여놓았다.
세주묘엄품도 1번부터 40번 부류를 0번부터 해서 다 붙여 놓았다.
그래야 몇 번에 해당하는가, 몇 번 게송을 어느 누가 했는 가, 수행할 때 견주어 맞출 수가 있다.
그래서 제가 ‘갈 때까지 가보자’해서 1번부터 2천 번까지 답을 쫙 붙여서 다 써놨다. 며칠 안 걸린다.
가나다라 해놓으면 힘들어서 안 되고 1,2,3,4로 해놓으면 앞의 게송하고 뒤의 게송하고 얼마나 잘 맞춰 놨는지 금세 볼 수 있다. ‘와 이거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싶다.
깨달으신 분들이 아니면 우리에게 전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최파일체외도사론(摧破一切外道邪論)하야 :그 무위역행 모든 외도의 잘못된 논리를 깨뜨리는 데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내고, 어떤 외도가 와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책을 봐서 알든지, 삶 속에서 경험을 해서 알든지, 이론을 알든지, 사실로 알든지 간에, 알아져 버리고 나면 하루종일 앉아서 설명해도 몇 시간 강의해도 강의할 수가 있다.
아무 교재가 없어도 괜찮다.
하루 종일 해도 괜찮다.
실험해 봐도 된다.
그러니까 이 교재라고 해서 종이 쪼가리 같이 있으니까 같이 본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 화엄경 하나도 없는데 화엄경을 다 설해 놓으셨지 않은가.
여기 보살들도 그렇다. 게송이고 장문이고 어떤 기록이나, 글자들도 하나도 안 보고 그분들이 다 이렇게 표출하셨을 것이 다. 안 그렇겠는가?
남의 글자를 보고 베껴서 하는 것은 화엄경이 아니다. 그냥 글일 뿐이다.
그런데 제가 엊그제 새벽에 가만히 생각하니, 감산스님한테 너무 고마운 것이다.
스님도 한문으로 써놨고 한문으로 써놓으니까 저도 한문을 볼 수밖에 없고, 감산스님 뜻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는데, ‘야 감산스님하고 이순신 장군하고 비슷한 연배인데, 임진왜란 시대인데, 지금 오 육백 년 전의 이 어른하고 나하고 이 글자로 서로 이렇게 핸드폰 통화 주고받듯이 주고받고 있다고? 이 새벽에? 야 신기하네’ 뜻이 맞는가 안 맞는가는 모르지만, 원효스님의 기신론을 뒤지면서 천년 전의 분들하고 제가 이 가느다란 실낱같은 이 글자, 한문 글자가 뭐라고, 먹으로 그려 놓은 글자 있잖은가. ‘이걸로 내가 교통하고 있다고? 설마 이걸까?’ 길은 거기겠지만 뜻은 전혀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좀 빨리 보셨으면 한글로 좀 해놓으셨으면.
그런데 우리 한글책을 소설 이렇게 보면서도 ‘야 여기서 작가의 뜻을 안다고?’ 신기하잖은가?
미얀마어, 빨리어 같은 것을 보니까 동글동글해서 라면 부스러기 같다. 경전 글자 중에서 한문 글자가 그래도 제일 좋다.
*
영일체중생환희(令一切衆生歡喜)하야 : 일체중생을 환희하게 해서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발무외심한다. 중생은 칭찬만 해 주면, 딱 취합해서 칭찬해 주면, 그 마음만 맞춰주면 기뻐한다.
영일체중회(令一切衆會)로 : 일체 모든 모임들로 하여금
개실환희(皆悉歡喜)하야: 개실환희하야
무발외심(發無畏心)하며 : 무발외심한다.
모든 모임을 다 기쁘게 하는데, 스님들은 웃는 것에 인색하니까 제가 강의하는 데 상당히 힘이 든다.
강의가 어쭙지않아도 같이 웃어도 주고 이러면 되는데 다 심각하게 꾹 다문 얼굴이다.
경전에 나온 것이 염화미소가 아니다.
정확하게 전달해야 된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거염화(擧拈花)하니까 법문에 어떻게 나오는가? 유일가섭이 미소 아니고 파안대소했다. 요절복통했다고 나온다. 전등록에 그렇게 나온다.
누가 미소라고 해서 그때부터 스님들이 안 웃는 것이다.
까르르 파안대소라. 얼굴이 찌그러질 정도로 크게 웃었다. 파안대소라고 나오잖는가.
유일가섭이 파안대소하니까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을 가섭에게 전하노라’ 부처님 그렇게 말씀하셨잖은가. 파안대소라고 나온다.
설마 그래도 빙그레 웃으시네. 파안대소하시지. 박수치면서 막 웃으셔야 된다.
‘아이고 맞다’ 이러면서 막 웃고 파안대소했지 싱긋이 건방스럽게 비웃는 것도 아니고 미소가 아니다.
조복일체천룡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調伏一切天龍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하야 : 조복 일체 천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가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이들은 얼마나 억센 중생들인데 안 웃으려고 하겠는가.
스님들하고 닮았다고 봐도 된다.
긴나라 짧은 나라 웃기려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 발무외심하며
이이승지(離二乘地)하고 :이승지를 떠나서
입심심법(入甚深法)하야 : 깊은 심심법에 들어간다.
대승 일승법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말씀을 자꾸 올려서 죄송하지만, 성철스님께서 백일법문을 할 때 “교가 말이야 그래도 교 중에는 화엄경이 최고지, 화엄경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거라도 남겨 놓으셔서 천만다행이다.
교 중에서는 화엄경이 최고다, 다행스럽다 싶다.
우리가 그러면 ‘아이고 아전인수격으로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어른스님도 그렇게 해놓으시면 종지가 서지 않는가.
그래서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종경록 중심으로 많이 하셨는데 거기 보면 화엄경을 특히 종경록에서는 일승별교다, 이래 버렸잖은가. 법화경은 일승돈교다.
‘화엄은 완전히 돈오돈수다’ 이렇게 주장하는 쪽이 많다.
그런 것이 맞고 안 맞고는 자기 문제고, 여기도 돈오돈수 확 깨치면 다 끝난다고 하는 게 처음부터 많이 나온다.
발무외심(發無畏心)하며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며
어불가설불가설겁(於不可說不可說劫)에 : 불가설 불가설 겁에 말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행보살행(行菩薩行)호대: 보살행을 하면서
심무염피(心無疲厭)하야 : 마음에 무염피
발무외심(發無畏心)이 : 두려움 없는 마음을 내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대지무소외심(則得如來無上大智無所畏心)이니라:
즉득 여래의 무상 대지의, 지혜의 두려울 것 없는 마음을 얻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