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離癡亂行
가. 菩薩의 十種巧密語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巧密語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於一切佛經中에 巧密語와於一切受生處에 巧密語와於一切菩薩神通變現成等正覺에 巧密語와 於一切衆生業報에 巧密語와於一切衆生所起染淨에 巧密語와 於一切法究竟無障礙門에 巧密語와於一切虛空界一一方處에悉有世界호대 或成或壞하야 間無空處한 巧密語와 於一切法界一切十方과乃至微細處에悉有如來가示現初生으로 乃至成佛入般涅槃하야 充滿法界를悉分別見하는 巧密語와 見一切衆生의平等涅槃은無變易故며而不捨大願은以一切智願이未得圓滿하야 令滿足故인 巧密語와 雖知一切法이 不由他悟나 而不捨離諸善知識하야 於如來所에 轉加尊敬하며 與善知識으로 和合無二하야 於諸善根에 修集種植하고 廻向安住하야 同一所作이며 同一體性이며 同一出離며 同一成就인 巧密語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善巧微密語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불경(佛經) 가운데 교묘하고 비밀한 말과, 온갖 태어나는 곳에 교묘하고 비밀한 말과, 모든 보살의 신통변화와 정등각을 이루는 데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니라.
일체 중생의 업과 과보에 교묘하고 비밀한 말과, 일체 중생이 물들고 깨끗함을 일으키는 데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니라.
모든 법이 구경에 장애가 없는 문에 교묘하고 비밀한 말과, 온갖 허공계의 낱낱 처소에 모두 세계가 있어서 이루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여 빈 곳이 없는 데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니라.
일체 법계의 일체 시방과 내지 미세한 곳에 모두 여래가 있어 처음 탄생하며, 내지 부처님을 이루고 반열반에 들어감을 보이는 것이 법계에 가득함을 다 분별하여 보는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니라.
일체 중생이 평등하게 열반함을 보는 것은 변하여 바뀜이 없는 까닭이지만 큰 서원을 버리지 아니함은 일체 지혜와 서원이 아직 원만하지 못한 이를 만족케 하려는 것이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니라.
비록 일체 법을 다른 이를 말미암아 깨달은 것이 아닌 줄 알지마는 모든 선지식을 버리지 아니하며, 여래를 더욱 존경하며, 선지식과 더불어 화합하여 둘이 없으며, 모든 착한 뿌리를 닦아 모으고 심으며, 회향하며 편안히 머물러서 같이 짓고, 같은 성품이고 같이 벗어나고 같이 성취하는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교묘하고 비밀한 말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교밀어(十種巧密語)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교밀어(有十種巧密語)하니 : 열 가지의 교묘한, 선교, 교활한 것의 딱 반대가 교묘라고 보면 된다.
아주 교활한 사람도 말은 날름날름 잘한다.
교활한 사람을 뺀질뺀질하다 하잖은가, 뺀질이라고 한다.
오늘 뺀질이 안 왔다. 진짜 뺀질이다. 고쳐지겠는가? 절대 안 고쳐진다.
여러분들도 계속 정진하시는 힘이 안 고쳐지듯이 뺀질이도 고치기 힘이 든다.
열까지 교묘하고 비밀한 말이 있나니, 말을 잘하려면 안쪽에 정신이 산란하면 안 된다.
여기서 앞에 두 구절은 무치행이라고 해놨다.
여기하고 다음 단락 ‘라. 보살의 십종교분별지’ 이것은 어리석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다음에는 무란행이 있다. 어지럽지 않은 행이다.
삼매에 들어간다고 하는 행이 있고, 그다음에 두루 들어간다는 대목 있다. 무란, 어지럽지 않은 행이다.
지금 여기는 어리석지 않은 행이다. 어리석을 치(痴)자, 뒤에 치란(痴亂) 어리석고 산란스러운 것을 같이 섞어서 두 구절을 해석해 놨다.
올바른 생각이 있으면 세간의 모든 말을 제대로 다 알아듣는다. 자기 생각이 올곧은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잘해 주려고 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 빼딱한 사람은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절대 안 듣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그러니까 얘기해 보면 안다.
한참 서로 무슨 얘기를 했는데, 자기가 꿍심이 있어서 뭔가를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얘기 다 됐고, 나는 해주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나중에 “그거 저번에 안 했습니까?”하고 물으면 “아, 다시 한번 얘기해 봐요.”하고 모든 이야기를 새로 시작한다.
꿍심이 있는 사람은 듣기만 하지 절대 자기 생각을 안 바꾸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을 이익시키고자 하는 데 뜻이 있어야 되는데 여기는 그런 뜻이 아니다.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인가.
소위어일체불경중(所謂於一切佛經中)에 : 소위 일체불경 가운데
교밀어(巧密語)와 :교묘한 말을 다 안다.
어일체수생처(於一切受生處)에 : 온갖 태어나는 곳의
교밀어(巧密語)와 : 교묘하고 비밀한 말과
어일체보살신통변현성등정각(於一切菩薩神通變現成等正覺)에 : 모든 보살의 신통 변화와 정등각을 이루는 데
교밀어(巧密語)와 : 교묘하고 비밀스러운 말과
어일체중생업보(於一切衆生業報)에 :일체중생의 업에 일체중생 업보에 대해서
교밀어(巧密語)와 : 아주 교묘하고 비밀한 말과.
여기서 이런 이야기들이 자꾸 나오는 것은 중생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 되면 출세간의 모든 법이 다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중생의 말도 이해가 안 되는데 부처님 말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어일체중생소기염정(於一切衆生所起染淨)에 : 일체중생에게 소기염정이라. 일체중생이 오염되기도 하고 청정하기도 한 그 일으킨 바에 대해서 ‘이렇게 해서 오염됐다, 이렇게 해서 청정해졌다’ 훈습 되어서, 훈기 발생하는 걸 갖다가
교밀어(巧密語)와 : 잘 설명하는 말과
어일체법구경무장애문(於一切法究竟無障礙門)에 :일체법의 구경의 무장애법, 모든 법이 끝까지 장애가 없는 문, 방편에 대해서
교밀어(巧密語)와 : 아주 교묘하고 비밀스러운 말씀과
어일체허공계일일방처(於一切虛空界一一方處)에 :일체허공계 일일방처에 낱낱 처소에
실유세계(悉有世界)호대 : 실유세계호대. 모든 곳에 모든 세계, 사람 사는 곳곳이 있는데
혹성혹괴(或成或壞)하야 : 혹성혹괴라. 어떤 데는 이루어지고 혹은 어떤 데는 무너진다.
오늘도 새로 탄생하는 별이 있는가 하면 몇백 년 전에 져버린 별도 있다.
별이 이미 10년 전에 100년 전에 져버렸는데 빛이 오는 속도가 백광년 전 떨어져 있으니까 100년 전에 진 별이 오늘 폭발한 듯이 보인다.
간무공처(間無空處)한 : 사이가 빈 곳이 없는데
교밀어(巧密語)와 :교묘한 말이니라
어일체법계일체시방(於一切法界一切十方)과 :일체법계 일체 시방과
내지미세처(乃至微細處)에 :내지는 미세한 곳에
실유여래(悉有如來)가 : 모두 여래가에서
시현초생(示現初生)으로 : 처음 탄생하며, 팔상성도 말씀이다.
내지성불입반열반(乃至成佛入般涅槃)하야 :내지는 성불하시고 입반열반하사, 성불하시고 구경열반에 들어감을 보이시는 것이
충만법계(充滿法界)를 : 법계에 가득함 충만 법계가
실분별견(悉分別見)하는 : 다 분별하여 보는
교밀어(巧密語)와 : 교묘하고 비밀스러운 말씀과
견일체중생(見一切衆生)의 : 일체중생을
평등열반(平等涅槃)은 : 평등하게 열반을 보는 것은
무변역고(無變易故)며 : 변하여 바뀜이 없는 연고이지만
이부사대원(而不捨大願)은 :이(而) 그러나 불사대원은 큰 서원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이일체지원(以一切智願)이 :일체의 지혜와 서원이
미득원만(未得圓滿)하야 : 아직 원만함을 얻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는가?
영만족고(令滿足故)인 : 만족케 한다.
교밀어(巧密語)와 : ‘중생이 본래 부처지’ 이러면서 ‘본래 평등한데, 다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한데, 끝났는데 더 제도할 게 뭐 있노?’ 그렇지만 그래도 모지리 중생이 돌대가리 중생이 있기 때문에 어떤가?
발전 없는 중생이 있기 때문에 일체 지혜와 원력이 아직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 사람이 다 만족할 때까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수지일체법(雖知一切法)이 : 비록 일체법이
불유타오(不由他悟)나 : 불유타오라. 일체법이 다 각자 시세막금이 있는 줄 알지만
이불사리제선지식(而不捨離諸善知識)하야 :그러나 모든 선지식을 버리지 아니하고, 여기 가서도 배우고 저기 가서도 배운다.
선재동자가 저 혼자 있어도 충분한 줄 다 알지만 그래도 업장이 벗겨질 때까지는 여기 가서도 배우고 저기 가서도 배우고 한다는 것이다.
어여래소(於如來所)에 : 그러면서 부처님 처소에서는
전가존경(轉加尊敬)하며 : 더욱더 존경을 하고
여선지식(與善知識)으로 : 선지식과 더불어서
화합무이(和合無二)하야 : 화합해서 둘이 없어서, 화합하여 둘이 없으며
어제선근(於諸善根)에 : 모든 선근에
수집종식(修集種植)하고 : 닦고 모으고 심고 푹 뿌리 박고
회향안주(廻向安住)하야 : 그래서 회향안주하야 회향하고 또 편안히 머물러서
동일소작(同一所作)이며 : 같이 동일하게 짓고
동일체성(同一體性)이며 : 동일한 체성이다.
동일한 소작이며, 세주묘엄품에서 화장장엄세계가 그렇게 형성된 것은 비로자나 부처님과 전생부터 다생겁래에 같이 선근을 닦았다, 그렇게 나온다.
그래서 동일법성이라고 하는 것이 화엄경 이치의 주제다.
동일법성이 무엇인가?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다른 말로는 불유타오다.
지일체법불유타오 라는 대목이 어디 나오는가?
범행품 제일 말미에 나온다.
그것을 네 줄로 늘리면 어떻게 해놨는가.
지일체법(知一切法) 즉심자성(卽心自性) 곧 심자성으로 일체법이 된 것인데 성취혜신(成就慧身) 불유타오(不由他悟)라
지혜의 몸을 성취하는 데 불유타오라.
이 대목이 한 백 번쯤 나올까?
백 번만 나오겠는가? 백 번도 더 나온다.
지일체법이라고 하는 것,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인가?
요지일체법 자성무소유
화장장엄 세계의 또 비로자나품에도 그렇다.
향수해가 있고 연화장 세계, 대연화장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이름이 무엇이었는가? 승음(勝音)세계다. 수승할 승(勝)자 음성 음(音)자, 수승한 음성의 세계에서 향수해가 펼쳐지잖는가.
향수해가 있고 또 보배로운 땅이 있고 막 이렇게 형성이 된다. 승음세계.
승음보살의 유명한 그 게송을 잘 아실 것이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여래현상품에 나오는 게송, 그것이 승음보살 게송이다.
그러니까 요지일체법 자성무소유 이것은 누구의 게송인가?
승혜(勝慧)보살의 게송이다. 수승할 승(勝)자 지혜 혜(慧)자.
계속 반복하다 보면 누룽지라도 눌겠지, 계속 가자.
동일법성 동일체성 이런 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게송이 대표적으로 무엇인가?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니라.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다.
다 똑같은 말이다. 계속 똑같은 말이다.
글만 계속 읽는다고 해서 마음 수행에 도움이 되겠는가? 제가 볼 때는 전혀 안 된다.
꿈속에서 칼을 천 번 만 번 갈았는데 칼이 들까? 안 든다.
눈을 뜨고 작은 쌀알 한 개라도 남을 위해서 실제로 주고 그것이 허위고 조작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냥 꿈같은 이야기고, 현실에서 남하고 손잡아주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것이 화엄경을 보는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을 한다.
그래서 화엄경은 이치적으로는 동일법성이라고 하지만, 사실적으로는 보현행원이라고 한다.
보현행원이 여기 쭉 나왔다.
다 이치가 그런 줄 알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중생들하고 같이 살아가겠다’ 그렇지 않은가? 그게 지금 계속 있는 것이다.
동일출리(同一出離)며 : 같이 벗어나는 것이고, 동일출리는 현수보살 게송이다.
화엄경 보살문명품에 현수보살 게송으로 일도장이 있잖은가.
‘일체무애인(一切無礙人)이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라’
원효스님이 참 좋아하셨던 구절이다.
일도출생사, 한 길로 같이 벗어났다.
동일성취(同一成就)인 :동일성취인
교밀어(巧密語)가 : 교밀어가
시위십(是爲十)이니 : 열 가지가 되는 것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그 속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선교미밀어(則得如來無上善巧微密語)니라 : 그 자리에서 여래의 무상 선교 비밀한 말씀을 얻게 되나니라.
오늘 읽는 이 법문은 어떤가?
아까 했지만 ‘불자야 차법문은 나머지 중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대승을 위한 것이고 불가사의한 수레를 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흙덩이는 자석에 붙을 수가 없다. 쇳가루만 붙는다.
화엄경이 그렇다.
우리도 모르게 부처님하고 인연이 있으니까 지금 척 갖다 붙어 있는 것이다.
나. 菩薩의 十種巧分別智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巧分別智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入一切刹巧分別智와 入一切衆生處巧分別智와 入一切衆生心行巧分別智와 入一切衆生根巧分別智와 入一切衆生業報巧分別智와 入一切聲聞行巧分別智와 入一切獨覺行巧分別智와 入一切菩薩行巧分別智와 入一切世間法巧分別智와 入一切佛法巧分別智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一切諸佛의 無上善巧分別諸法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의 처소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의 마음과 행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이니라.
일체 중생의 근성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일체 중생의 업과 과보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모든 성문의 행(行)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모든 독각의 행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모든 보살의 행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이니라.
모든 세간법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모든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교묘하게 모든 법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교분별지(十種巧分別智)
*
보살의 십종교분별지, 이것 역시 무슨 행인가?
이치란행이다. 교묘하게 분별한다. 그런데 어지럽고 어리석으면, 치란하면 그렇게 교묘하게 분별할 수가 없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교분별지(有十種巧分別智)하니 : 열 가지의 아주 교묘하게 지혜롭게 잘 분별하는 지혜가 있다. 교묘한 분별지가 있는데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열 가지 교묘한 분별지가 앞에서는 뭐가 비밀스러웠는가?
바깥으로 나오는 말이 비밀스러웠다. 계속 이렇게 됐다. 안에 있던 것이 생각이 발라서 말이 잘 나왔다. 또 말이 올바르고 행동이 올바르다 보니까 안의 생각이 깊이 다듬어지고 지혜가 다듬어진다. 이렇게 치밀하게 밖으로 갔다가 안으로 갔다 해서 내외명철이다.
그 사람 말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살아온 업이 보이고 그 사람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업이 보인다.
안에서 업이 익어지면 행동도 곱다.
삼업이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삼업은 뭐라고 하는가? 삼밀(三密)이라고 한다.
신구의 삼업 중생은 삼업이라 하지만 부처님은 아주 교묘하고 비밀스럽다 하여 삼밀이라고 한다.
남한테 거추장스러운 게 하나도 없다.
밀(密)은 어떤 정도가 되어야 밀이 되는가?
여기 허공 중에 먼지가 있는데 먼지인지 허공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면 밀이 안 되겠는가.
여기에 이 공중에서 빛이 이렇게 비추는데 빛하고 허공이 섞이는 것이 아무 어려움이 없으면, 이 정도가 되어야 교묘하고 미밀(微密)스럽다.
장자에 보면, 소 잡는 백정이 솜씨가 좋아서 소가 자기가 죽는지 안 죽는지도 모를 정도라고 나온다. 그 정도가 소를 잡는 것이 아주 교묘하고 솜씨있게 비밀스러운 것이 된다.
바깥으로 나오는 말이 이미 비밀스럽고 교묘하기 때문에, 안으로 지혜가 엄청 다듬어졌다.
그러니까 다보탑 만든 사람을 만나보나 안 보나 그 사람의 바깥으로 나온 솜씨 보니까, 그 사람의 신심은 굉장한 지혜를 가진 분일 것이다.
석굴암 불상을 봤을 때 ‘야 내가 신라시대 때 그분을 보지는 못했지만 진짜 내가 상상도 못할 그런 분일 거야’ 이렇게 되잖는가. 비밀스러운 것이 된다.
바깥으로 나오는 외양을 보면 안의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소위입일체찰교분별지(所謂入一切刹巧分別智)와 : 이른바 일체찰에 잘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입일체중생처교분별지(入一切衆生處巧分別智)와 : 일체중생 처소에 들어가는 데 아무 데나 막 쑥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소에 들어가는 데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입일체중생심행교분별지(入一切衆生心行巧分別智)와 : 일체중생 심행에 들어가는 마음과 행, 육조스님께서 심행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송심행(口誦心行)하야사 정혜균등(定慧均等)하게 나타난다.
구송 입으로는 외우고 심행 마음으로는 반드시 금강경이 실천이 됐을 때 나온다 하잖은가.
육조스님이 금강경 서문을 쓰면서 그렇게 해 놓았다.
일체제불(一切諸佛) 차경출(此經出)이라.
모든 부처님은 이 경전 속에서 나왔다.
어리석은 사람은 금강경 글자만 잘 읽으면 부처님이 나오는 줄 알고 있다. 금강경에는 금강경 글자가 없다.
차경이라고 하는 것은 이 마음이다.
경은 마음에서 나왔고, 모든 부처님은 경에서 나온다.
차경출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금강경 잘 읽으면 부처님 나온다고?’ 글자를 읽어 서 엔간히 나오겠다.
구송심행(口誦心行)이라고 육조스님이 분명히 금강경 서문에 써놓은 바가 있다.
마음행, 마음으로 실천해야지, ‘마음에도 없는 짓 하지 마라’ 그러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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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일체중생근교분별지(入一切衆生根巧分別智)와 : 일체중생 의 근성에 근기에 들어가는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입일체중생업보교분별지(入一切衆生業報巧分別智)와 :일체중생의 업보에 들어가는 교분별지와
입일체성문행교분별지(入一切聲聞行巧分別智)와 : 일체성문의 행, 일체 성문의 행도 엔간히 거룩하지 않은가.
성문행에 들어가는 교분별지 아주 정교하게, 세밀하게 분석해낼 수 있는 지혜와. 조금도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는 것이다.
입일체독각행교분별지(入一切獨覺行巧分別智)와 : 일체 독각행 연기법을 잘 아는 데 교묘하게 분별하는 지혜와
입일체보살행교분별지(入一切菩薩行巧分別智)와 :일체 보살행에 들어가는 교분별지.
점차점차 올라간다. 범부 중생에서부터 성문 독각 보살 그러면 한 분 남았다.
입일체세간법교분별지(入一切世間法巧分別智)와 :일체 세간법 에 들어가는 교분별지와
입일체불법교분별지(入一切佛法巧分別智)가 :일체 불법에 들어가는 교분별지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십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일체제불(則得一切諸佛)의 : 즉득 일체제불의
무상선교분별제법지(無上善巧分別諸法智)니라 : 무상 선교 분별 제법지 하니라.
지금 이치란행을 하고 있는데, 이치란행 한 꼭지만 더 해 버리자. 조금 더하고 그래도 삼매에는 들어가야 한다.
앞에까지는 이제까지는 어리석은 데 대해서 얘기하고 여기서는 어지러운 것 산란스러운 것에 대해서 얘기한다.
다. 菩薩의 十種入三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入三昧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一切世界에 入三昧하며 於一切衆生身에 入三昧하며 於一切法에 入三昧하며 見一切佛하고 入三昧하며 住一切劫하야 入三昧하며 從三昧起하야 現不思議身하야 入三昧하며 於一切佛身에 入三昧하며 覺悟一切衆生平等하야 入三昧하며 一念中에 入一切菩薩三昧智하야 入三昧하며 一念中에 以無礙智로 成就一切諸菩薩行願호대 無有休息하야 入三昧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一切諸佛의 無上善巧三昧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삼매에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세계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일체 중생의 몸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모든 법에서 삼매에 들어가느니라.
모든 부처님을 보고 삼매에 들어가고, 온갖 겁에 머물러 삼매에 들어가고, 삼매에서 일어나 부사의한 몸을 나타내어 삼매에 들어가고, 모든 부처님 몸에서 삼매에 들어가고, 일체 중생이 평등함을 깨달아 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잠깐 동안에 모든 보살의 삼매에 들어가는 지혜로 삼매에 들어가고, 잠깐 동안에 걸림 없는 지혜로 모든 보살의 행과 원을 성취하되 쉬는 일이 없어 삼매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이 교묘한 삼매의 법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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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입삼매(十種入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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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입삼매(有十種入三昧)하니 : 열 가지 삼매에 들어감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이냐.
화엄경은 다 읽기 싫고, 실천만 하고 싶은 사람은 이세간품만 충분히 보자. 질문은 제껴놓고 이천 가지 답만 계속 마르고 닳도록 천 번 읽으면 된다.
소위어일체세계(所謂於一切世界)에 : 이른바 일체 세계에서
입삼매(入三昧)하며 : 삼매에 들어가고, 여기서는 삼매를 먼저 밝히는 쪽이다. 뒤에 보면 삼매에 들어가야 해결되는 것이 있다.
어일체중생신(於一切衆生身)에 : 일체 중생의 몸에서
입삼매(入三昧)하며 : 삼매에 들어가고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일체법에서
입삼매(入三昧)하며 : 삼매에 들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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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일체불(見一切佛)하고 :일체불에서 견일체불 일체 부처님을 친견하고
입삼매(入三昧)하며 :삼매에 들어가고
주일체겁(住一切劫)하야 : 일체겁에 머무르면서
입삼매(入三昧)하며 : 삼매에 들어가고
종삼매기(從三昧起)하야 : 삼매에서 일어나서
현부사의신(現不思議身)하야 :부사의한 몸을 나타내는 데서
입삼매(入三昧)하며 :삼매에 들어가고
어일체불신(於一切佛身)에 :일체 부처님의 몸에서
입삼매(入三昧)하며 :삼매에 들어가고
각오일체중생평등(覺悟一切衆生平等)하야 : 일체중생이 모두 평등한 것을 깨달아서, 이만큼 깨달으면 삼매다.
일체중생이 아무리 깨달아도 평등한 게 아니라, 일체중생은 차별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잖는가. 평등함을 깨달아서
입삼매(入三昧)하며: 삼매에 들어가고
일념중(一念中)에 :일념 중에서
입일체보살삼매지(入一切菩薩三昧智)하야 :일체보살 삼매의 지혜에 들어가는 지혜로
입삼매(入三昧)하며 : 삼매에 들어가고
일념중(一念中)에 : 일념 중에
이무애지(以無礙智)로 : 걸림없는 지혜로써
성취일체제보살행원(成就一切諸菩薩行願)호대 :일체 제보살 행원을 성취하되
무유휴식(無有休息)하야 : 휴식이 없으며
입삼매(入三昧)가 :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 휴식 없이, 무유휴식, 불피염심, 무피염심 이런 것이다. 휴식 없이 삼매에 들어가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그 속에 안주면
즉득일체제불(則得一切諸佛)의 :이것이 곧 일체의 부처님의
무상선교삼매법(無上善巧三昧法)이니라 :위없이 교묘한 삼매의 법을 얻느니라
라. 菩薩의 十種徧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徧入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衆生徧入과 國土徧入과 世間種種相徧入과 火災徧入과 水災徧入과 佛徧入과 莊嚴徧入과 如來無邊功德身徧入과 一切種種說法徧入과 一切如來種種供養徧入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徧入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두루 들어감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중생에 두루 들어가고, 국토에 두루 들어가고, 세간의 가지가지 모양에 두루 들어가고, 화재(火災)에 두루 들어가고, 수재(水災)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부처님에게 두루 들어가고, 장엄에 두루 들어가고, 여래의 그지없는 공덕의 몸에 두루 들어가고, 모든 갖가지 법을 말하는 데 두루 들어가고, 모든 여래를 갖가지로 공양하는 데 두루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에 두루 들어가는 법을 얻느니라.”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변입(有十種徧入)하니 : 십종 두루 들어감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인가.
소위중생변입(所謂衆生徧入)과 : 이른바 중생에게 모두 다 들어 가고
국토변입(國土徧入)과 :국토에 두루 들어가고, 두루 변자 변입이라는 이 자체가 자비다. 자비심.
얍삽심은 안 간다. 두루라는 말 속에 원만한 자비심이 있는 것이다. 차별 없이 모든 국토에 두루 가고
세간종종상변입(世間種種相徧入)과 : 세간의 종종상에 갖가지 모양에 다 두루 가고
화재변입(火災徧入)과 : 화재에 두루 다 들어가고 그다음에 또 당연히 뭐가 나오겠는가?
수재변입(水災徧入)과 :수재에도 두루 가고 화가, 골이 나고, 욕심이 나도, 못된 사람은 수재 풍재 화재 삼재가 많잖은가.
불변입(佛徧入)과 : 부처님께도 두루 들어가고
장엄변입(莊嚴徧入)과 : 장엄에도 두루 들어가고
여래무변공덕신변입(如來無邊功德身徧入)과 : 여래의 무변한 공덕신에도 두루 들어가고
일체종종설법변입(一切種種說法徧入)과 : 일체 종종의 설법에도 두루 다 들어간다.
들어간다는 말은 확실하게 깨달아서 안다는 말이다.
내 손에 딱 움켜잡는다는 말이다.
일체여래종종공양변입(一切如來種種供養徧入)이 : 일체 여래의 가지가지 공양에 다 두루 들어가나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대지변입법(則得如來無上大智徧入法)이니라:곧 여래의 무상한 최고의 큰 지혜에 두루 들어가는 법을 얻느니라. 여기서 삼매로 하여금 점차점차 넓어지고 증폭되는 것을 이야기해 놓았다.
오늘은 거기까지 하겠다.
5번 이치란행 제목을 앞에 붙여놓았는가?
여섯 꼭지가 있는데 오늘 네 꼭지까지 했다.
다음 시간에는 두 꼭지 더 하고 제반야바라밀 선현행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더운데 오신다고 많은 분들이 근념하셨다.
가까이 있는 분들도 그렇지만 먼 데서 오신 분들, 강진이나 세종이나 서울에서 오신 분들 애썼다.
(죽비소리)
하강례
2024년의 백일홍이 필 때
유튜브 <염화실TV> 화엄법회는 두 번째로 읽는 화엄경 47권이 끝나고 48권으로 들어갈 차례다.
“오늘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옛날 선원에서 해제할 때의 느낌이 새롭습니다.
그 또한 감사합니다.
화엄학인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글도 큰스님께서 <다음카페 염화실>에 올리셨다.
*
9월 8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회장스님의 은사이신 동주스님의 팔순기념으로 ‘경제어산수륙재 공연’이 예술의 전당이 있는 ‘국립 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익숙한 훌륭하신 스님들의 이름, 소식, 이야기들이, 기록이 없다면 아주 빨리 잊히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히 큰스님도 2021년에 열반하신 고우스님의 새로운 소식을 이번에사 들으셔서 아침 법문시간에 들려주셨다. 그 부분을 녹취했다.
교회 짓는 데 희사를 하신 고우스님
내가 법회할 때마다 학무거사라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강의나 법회에 많이 다니고 많이 듣고 그것을 많이 기록해서 수집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학무거사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학무거사하고 얼마 전에 했는데 며칠 전이죠 불과 열흘도 안 됐을 겁니다.
“스님 고우스님이 교회를 짓는데 돈을 내가지고 교회 사람들하고 같이 교회를 지어준 사실을 아십니까?”
“아 그래? 내가 고우스님 비문을 썼는데 그걸 일찍이 알았더라면 비문에다가 반드시 썼을텐데 왜 그걸 이제사 이야기해?”
내가 막 그 이야기를 했어요.
고우스님이 시골에 토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토굴 밑에 마을에 시골 아주 열악한 곳에 작은 교회가 있는데 교회가 낡아서 교인들이, 시골에 돈이 있나요? 그래서 교회를 새로 짓는다고 애를 먹고 있는데 고우스님이 그 사실을 알고는 상당한 돈을 들여가지고 그 교회를 짓는데 동참했답니다.
“그 얘기를 알았으면 내가 비문에 다 올렸을 텐데.”
그래요. 우리나라에도 교회를 지어준 스님이 있어요. 고우스님이 그런 분입니다.
고우스님이 열반에 드셨어도 과거에 남겨진 법문은 우리가 접할 수가 있지만 그래도 당신 법문에 들어보면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없어요.
또 당신이 그런 일을 말할 사람은 아닙니다.
교회 짓는데 예를 들어서 어느 정도 보탰다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내가 뭐 어쨌다’ 잘못하면 생색낸다 상낸다 하는 오해를 살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안 하시는 분이죠.
그런데 늦게사 알았지만 학무거사가 고우스님 법문 녹음을 많이 했거든요. 거의 안 빠뜨리고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까지 다 알게 된 거예요.
그래 그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는데 지금에사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대만의 증엄스님은 워낙 큰 단체니까 성당도 짓고 교회도 짓고 학교도 짓고 그들의 거처 주택도 지어주고 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알려진 사실입니다. 너무너무 크게 많이 불사를 했습니다,
고우스님은 그 밑에 시골 마을에 교회 하나 짓는데 마을 교인들이 어려워하기에 거기 보탬을 해서 상당한 힘을 기울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그걸 꼭 기억했다가 ‘아 우리 고우스님이 그런 일을 했구나.’
학무거사가 늘 무슨 일이 있으면 가서 녹음하고 그러니까 그런 사실을 너무너무 잘 아는 분이에요. 정확하게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학무거사가 감동을 받아서 나보고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래 나는 ‘왜 이제사 이야기하느냐 그 스님 비문을 내가 썼는데 비문에다가 그걸 반드시 실었을 텐데 내가 몰라서 못 실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이 불과한 열흘 남짓 됩니다.
‘일체 모든 부처님이 처음 마음을 낼 때부터 부처를 이룰 때까지 보리심이 퇴전하지 않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량없는 모든 착한 공덕을 쌓아서 일체 지혜의 성품에 회향하면서 모든 세계에 물들지 않느니라.’
*
오늘 이 시간에 동참하신 우리 화엄학인 여러분들 참 귀한 이야기 들었죠.
워낙 잘 알려졌던 큰스님이니까 고우스님 잘 알죠.
고우스님이 교회를 짓는 데 상당한 힘을 보탰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학무거사에게 하는 말이 ‘내가 많이 보태고도 싶은데 토굴에서 무슨 돈이 있어서 교회에다 그렇게 희사를 했는가’ 거기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까봐 염려되었다는 것을 몇 번을 이야기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런 오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아껴가면서 안 쓰고 줬는데도 불구하고 많아서 준 것처럼, 절에서 돈이 많아서 교회짓는 데 보탠 것처럼 그렇게 오해할까봐, 그게 또 염려가 되어서 스님이 걱정을 하더라고 그 얘기를 몇 번이나 하더라고요.
말끝이니까 이렇게 연결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오늘 증엄스님 이야기 끝에 우리 고우스님께서도 증엄스님 이야기도 잘 알고 계시죠.
스스로 그렇게 그 밑에 마을에 교회를 짓는 데 큰 힘을 보태서 교회를 완성하게 됐다고 하는 이 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저는 너무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희유한 일이고 고우스님을 찬탄 찬탄 찬탄해 마지 않습니다.
그 스님이 단순하게 참선만 주장하는 스님인 줄 알았더니 그렇게 보살심이 있어요.
나는 보살불교를 주창하는 사람인데 ‘아 고우스님이 언제 그렇게 보살행을 했구나. 대단하네, 알고 보니까 더 존경이 가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우스님이 그렇게 보살행을 하는 스님인 줄 몰랐어요. 지금이라도 찬탄해 마지않겠습니다.
-無比스님, 2024년 8월 12일, 유튜브 염화실TV 중에서-
꿈속의 어둠도
빛으로 비춰 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