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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노트 (164-2 이세간품 4.보현보살의 이천답)

작성자慧明華|작성시간24.09.30|조회수70 목록 댓글 7

(6) 善現行

. 菩薩十種明

 

佛子菩薩摩訶薩有十種明하니 何等爲十所謂知一切衆生業報善巧智明知一切衆生境界寂滅淸淨하야 無諸戱論하는 善巧智明知一切衆生種種所緣唯是一相이라 悉不可得이며 一切諸法皆如金剛하는 善巧智明能以無量微妙音聲으로 普聞十方一切世界하는 善巧智明普壞一切心所染着하는 善巧智明能以方便으로 示現受生하고 或不受生하는 善巧智明捨離一切想受境界하는 善巧知明知一切法非相非無相이며 一性無性이라 無所分別이나 而能了知種種諸法하야 於無量劫分別演說하며 住於法界하야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는 善巧智明菩薩摩訶薩知一切衆生生本無有生하야 了達受生不可得故而知因知緣하며 知事知境界하며 知行知生하며 知滅知言說하며 知迷惑知離迷惑하며 知顚倒知離顚倒하며 知雜染知淸淨하며 知生死知涅槃하며 知可得知不可得하며 知執着知無執着하며 知住知動하며 知去知還하며 知起知不起하며 知失壞하며 知出離하며 知成熟하며 知諸根하며 知調伏하야 隨其所應하야 種種敎化호대 未曾忘失菩薩所行하나니라 何以故菩薩但爲利益衆生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요 無餘所爲일새 是故菩薩常化衆生호대 身無疲倦하야 不違一切世間所作이니 是名緣起善巧智明이라하느니라 菩薩摩訶薩於佛無着하야 不起着心하며 於法無着하야 不起着心하며 於刹無着하야 不起着心하며 於衆生無着하야 不起着心하며 不見有衆生하고 而行敎化調伏說法이나 然亦不捨菩薩諸行大悲大願하고 見佛聞法하야隨順修行하며 依於如來하야 種諸善根하며 恭敬供養하야 無有休息하며 能以神力으로 震動十方無量世界하나니 其心廣大하야 等法界故知種種說法하며 知衆生數하며 知衆生差別하며 知苦生하며 知苦滅하며 知一切行皆如影像하야 行菩薩行하며 永斷一切受生根本하고 但爲救護一切衆生하야 行菩薩行호대 而無所行하며 隨順一切諸佛種性하야 發如大山王心하며 知一切虛妄顚倒하야 入一切種智門하며 智慧廣大하야 不可傾動하야 當成正覺하고 於生死海平等濟度一切衆生하는 善巧智明是爲十이니 若諸菩薩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善巧智明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밝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의 업과 과보를 아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일체 중생의 경계가 고요하고 청정하여 모든 부질없는 말이 없음을 아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니라.

일체 중생의 갖가지 반연하는 것이 오직 한 모양이어서 모두 찾을 수 없으며 모든 법이 다 금강과 같음을 아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한량없는 미묘한 음성으로 시방의 모든 세계에들리게 하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니라.

모든 마음의 물드는 바를 모두 깨뜨리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능히 방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혹 태어나지 않기도 함을 나타내 보이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모든 생각하고 느끼는 경계를 여의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니라.

모든 법이 모양 있음도 아니고 모양 없음도 아니며 한 성품이고 성품이 없어서 분별할 것 없음을 알지마는 능히 가지각색의 법을 알고 한량없는 겁에 분별하여 연설하며 법계에 머물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의 나는 것이 본래 남이 없음을 알아서 태어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을 통달하였느니라.

그러나 인()도 알고 연()도 알고 일[]도 알고 경계도 알고 행함도 알고 나는[] 것도 알고 없어짐도 알고 말함도 알며, 미혹함도 알고 미혹함을 여읨도 알며, 뒤바뀜도 알고 뒤바뀜을 여읨도 알며, 물든 것도 알고 청정한 것도 아느니라.

생사도 알고 열반도 알며, 얻을 것도 알고 얻지 못할 것도 알며, 집착함도 알고 집착 없음도 알며, 머무름도 알고 움직임도 알며, 가는 것도 알고 돌아옴도 알며, 일어남도 알고 일어나지 않음도 알며, 무너짐도 알고 벗어남도 알며, 성숙함도 알고 여러 근기도 알고 조복할 줄도 아나니, 그 마땅함을 따라서 가지가지로 교화하면서 일찍이 보살의 행할 바를 잊어버리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은 다만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다른 것을 위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이 항상 중생을 교화하여도 몸에 고달픔이 없어서 모든 세간에서 할 일을 어기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이름이 연기(緣起)의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에게 집착이 없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법에 집착함이 없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세계에 집착이 없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집착이 없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느니라.

중생이 있음을 보지 않으면서도 교화하고 조복하며 법을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또한 보살의 행과 큰 자비와 큰 서원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부처님을 보고 법을 듣고 따라 수행하며, 여래를 의지하여 모든 착한 뿌리를 심으며, 공경하고 공양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능히 신통한 힘으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진동하나니, 그 마음이 광대하여 법계와 같은 연고이니라.

갖가지로 법을 말함을 알고, 중생의 수효를 알고, 중생의 차별을 알고, 괴로움이 생김을 알고, 괴로움이 멸함을 알며, 모든 행이 그림자와 같음을 알고 보살의 행을 행하며, 온갖 태어나는 근본을 아주 끊었건마는 다만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하여 보살의 행을 행하나 행하는 바가 없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의 종자인 성품을 따라서 큰 산과 같은 마음을 내며 온갖 것이 허망하고 뒤바뀜을 알고 갖가지 지혜의 문에 들어가니 지혜가 크고 넓어 움직일 수 없는지라 마땅히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제도하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크게 교묘한 지혜의 밝음을 얻느니라.”

* 

선현행(善現行)

*

보살(菩薩)의 십종명(十種明)

* 

불자(佛子):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명(有十種明)하니 : 열 가지 지혜의 밝음이 있다. 달마스님께서는 뭐가 제일 밝음이라고 했는가?

이 세상의 밝음 중에서는 심명 마음이 제일 밝다. 이 세상의 광명 중에서는 지광이 제일 밝다. 이 세상의 보배 중에서는 최고의 보배가 법보배다.”

달마스님이 출가하시기 전에 반야다라 존자를 만나서 굉장히 큰 보배를 눈앞에 두고도 자기 형들 두 분을 능가하는 대답을 했다. 그러자 반야다라 존자는 달마스님이 출가하기 전부터 , 야는 머리 깎아 중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밝음이 있으니

하등(何等): 무엇이

위십(爲十): 열 가지인가.

반야가 정명이다. 아까 장애가 없는 것을 해탈이라고 했지 않은가. 반야심경에는 어떻게 나오는가?

장애가 없는 것이 해탈이다가 반야심경에는 어떻게 나오는가.

심무가애(心無罫碍) 무가애(無罫碍) 무유공포(無有恐怖)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

, 심무가애 무가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장애되는 것을 다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구경열반이구나.

반야심경과 똑같이 나온다. 마음, 심행의 바탕을 밝히고 또 소지장 해탈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가 행동을 하는데 이걸 뭐라고 하는가? 제가 이렇게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은 몸이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도 있지만 안에서 올리라 내리라 하는 이가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사가 있어서 이렇게 몸이 움직이는 건 사다.

행주좌와는 사(). 행주좌와에 항상 존재하는 놈은 이().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이라.

이수사변(理隨事變)이요 사득이융(事得理融)이라.

아까는 뭐라고 했는가?

이심사광(理深事廣)이라. 이가 깊어질수록 사가 넓어진다, 광대해진다 이렇게 해놓았다.

안의 이치에 대해 이해가 잘되는 사람일수록 솜씨가 좋고 모든 것에 대해, 수학문제든지 영어문제든지 다 풀 수가 있다.

그런데 돌대가리는 한 문제도 못 푼다.

소위지일체중생업보선교지명(所謂知一切衆生業報善巧智明): 소위 일체 중생의 업과 과보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아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선교 이게 선교라고 해놨다. 교묘 우리 불교에서는 교묘를 많이 쓰지만 바깥에서는 교묘라는 말을 별로 좋게는 안 쓴다.

그런데 교묘의 정반대 말은 교활이다. 아주 교활한 사람들은 특징이 아첨을 잘한다고 나온다. 유가사전을 보면 아첨을 잘하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 특이한 행동을 반드시 한다는 것이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음성을 굴리면서 얄궂은 물건 한 개 딱 들고 와서 요구할 게 있으면 얼굴이 달라지고 막 몸이 달라지고 납작 엎드려서 절하고 희한하게 한다. ‘이거 와 이라노싶으면 아 요것은 아첨존자구나금방 알 수 있는 게 그런 사람들은 물과 같아서 흐물흐물하다. 그렇잖고 아만이 되게 높은 사람들은 쇠덩어리 같다. 고집이 땅덩어리 같다. 땅과 같은 놈이 있다.

경전을 보면 희한하게 점보듯이 알아맞출 수가 있다.

교묘한 지혜, 교묘하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활한 것과는 다르다.

지일체중생경계(知一切衆生境界):일체 중생의 경계가

적멸청정(寂滅淸淨)하야 : 적멸하고 청정하여, 우리 어른스님이 좋아하시던 구절이 있다.

수입세간이라. 일체 중생의 경계에 비록 들어가지만 수입세간(雖入世間)이나 심항적정(心恒寂靜)이라, 마음은 항상 적정하다. 산왕예불을 할 때 그렇게 한다. 만덕고승(萬德高勝) 만 가지 공덕을 지은 것이 태산같이 탑도 짓고 절도 지었다 하더라도 공덕이 없다고 하듯이 성개한적(性皆閑寂) 성품은 항상 한적하다. 적멸청정하다. 한적하다. 고요하고 청정하여

무제희론(無諸戱論)하는 : 부질없는 말이 없음을

선교지명(善巧智明): 아는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거미란 놈은 욕심이 많아서 실을 뽑아서 제 집을 만들어 먹이를 가로채려고 한다. 거미도 뭔가를 하긴 한다. 분양을 안 받아도 거미는 맨날 집을 잘 짓는다.

누에라는 놈도 뽕을 먹고 뽕뽕거려서 비단실을 만든다.

거미같이 사는 사람도 있고, 누에같이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화엄경을 보고 거칠게 잘 안되더라도 글을 막 읽으면서 수행하는 것은 누에같이 비단길같이 사는 것이다.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일체 중생의

종종소연(種種所緣): 갖가지 반연하는 바가

유시일상(唯是一相)이라: 오직 한 모습, 같은 모양이다.

일체 중생이 갖가지 업이 다를지라도 오직 한마음에 일상무상이라. 불생불멸의 모습으로 부증불감 불구부정의 모습으로 같은 모양이다. 그런데

실불가득(悉不可得)이며 : 실불가득이라. 모두 찾을 수 없으며

일체제법(一切諸法): 일체제법이 유위법 무위법 부처님이고 중생이고 다 보면

개여금강(皆如金剛)하는 : 금강과 같음을 아는

선교지명(善巧智明): 선교지명이라. 선도 악도 전부 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마음밖에 법이 없는 것이다.

능이무량미묘음성(能以無量微妙音聲)으로 : 능히 미묘한 음성으로 묘음, 묘정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탁한 물에서도 도저히 물들지 않는 것이 미묘한 것이다.

도저히 악독한 중생이 제도가 안 될 것 같은데 부처님의 미묘음성에 솜사탕 녹듯이 녹아 버리니까 희한하다.

제가 청송교도소에 한 달에 한 번씩 갔던 적이 있다. 가면 도저히 교화 불가능한 난조 조복자 정말 강강난화한 중생이 더러 있다. 어느날 가니까

스님, 이게 호안주입니다.”

호랑이 눈 단주 있잖은가.

저는 거품 물고 빵 사다주고 김밥 사다주고 우유 사다주고 해도 내 말을 안 듣는데, 말 없는 부처님 말은 어떻게나 잘 듣는지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호안주가 하나 생겨졌다는 것이다.

그때도 참 놀라웠다. 부처님의 위신력이 착한 사람들한테 먹혀들어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내가 도가 있나 없나를 생각해 볼 때 어떤가? 악독한 사람한테 실험해 보면 된다. 점철성금이라고 금덩어리가 금 되는 건 누가 못하겠는가. 쇠덩어리를 가지고 금으로 바꿀 수 있다면, 흙덩어리를 금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 참 화엄경의 효험이 있네이런 생각이 든다.

보문시방일체세계(普聞十方一切世界)하는 : 보문시방일체세계하는

선교지명(善巧智明): 선교지명과

*

보괴일체심소염착(普壞一切心所染着)하는 : 널리 깨뜨린다. 어떤 것을? 일체 심에 염착하는 바 지저분하게 달라붙어서 강력본드 같은 것, 그 마음을 확 꿰뚫어 버리는

선교지명(善巧智明):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능이방편(能以方便)으로 :능히 방편으로써

시현수생(示現受生)하고 : 방편으로 태어나는 것을 변역생사(變易生死)라고 한다. 업을 따라 태어나는 것은 분단생사(分段生死)라고 한다.

혹불수생(或不受生)하는 : 혹 태어나기도 하고 안 태어나기도 하는 출몰자재다. 생몰자재라.

선교지명(善巧智明):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다음에 태어날 그쪽에 법력이라든지 공덕도 갖추지 못했는데 내가 다음 생에 무슨 남자로 태어나면이렇게 말하면 씩 웃고 만다. ‘내가 다음 생에는 인간 몸 받으면 다시 수행을 열심히 하고 금생은 조금 보류해 놓고 놀다 간다이런 것은 말이 안 된다.

다음 생은 놔두고 금생은 하는 데까지 하다 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어떤 스님이 빨리 해가지고 다음 생 몸 바꿔서어쩌고 하니까 우리 어른스님이 깜짝 놀라서 아휴 스님 꿈도 크고 욕심도 많네. 그게 함부로 된다고? 와 그거 내 좀 가르쳐 줘.”하셨다.

보통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중처편추라.

사리일체상수경계(捨離一切想受境界)하는 : 사리 벗어난다, 일체 상수를 벗어난다. 상수 멸진정이라고 하잖는가.

고수 낙수 같은 전체 돋아난 생각을 일체 벗어나 버리는 것, 모든 생각하고 느끼는 경계를 여의는

선교지명(善巧知明):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지일체법(知一切法): 여덟 번째 지일체법이, 화엄경은 무슨 얘기를 했다 하면 골자가 일체법 자성무소유. 일체법이 어떻다는 것인가?

비상비무상(非相非無相)이며 : 비상비무상이라.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성무성(一性無性)이라 : 일성이 무성이라.

우리가 앞에서 십회향품 배울 때 백 가지 진여 중에서 일상무상, 한 모양도 모양 없는 것으로서 모양을 삼고, 무상으로 위상하고, 무성으로 위상이라, 성품 없는 것으로 성품을 삼는다, 라고 하였다. 일성, 동일법성이, 그 일성마저도 무성이라.

모양이 있어야 이름도 붙이고 모양이 있어야 어디 걸릴 텐데 ‘1도 없는데 3 4 5 6 7이 어딨겠노이렇게 해놓았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은 부동본래적이라. 본래진공이라.

‘0도 없구만그래서 완전히 없으니까 진공, 그러나 묘유로 불수자성수연성 천차만별이다. 일성무성이라

무소분별(無所分別)이나 :무소분별이나 분별할 것 없음을 알지만, 마음에 들어가면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없다.

생각에 가면 착하고 나쁜 것이 극명하게 갈려진다.

우리가 생각에 떨어져 있는 사람인지, 마음을 쓰는 사람인지는자신이 제일 잘 안다.

이능요지종종제법(而能了知種種諸法)하야 : 이능요지 종종제법하야, 앞에는 지일체법이고 여기는 한번 더 강조한다.

그러나 능히 요지 종종 제법을 환하게 알고

어무량겁(於無量劫):어무량겁에

분별연설(分別演說)하며 : 분별연설하며 한량없는 겁에 분별하여 연설하며

주어법계(住於法界)하야 : 주어법계하며 왜 한량없는 겁에 연설하는가? 한번 하고 끝났으면 좋겠는데 중생이 하도 말을 안들으니까 오늘 얘기하고 내일하고 계속하는 것이다. 말 안 듣는 것이 중생의 주특기잖은가. 주어법계, 법계에 머물러서

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는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선교지명(善巧智明): 교묘한 지혜의 밝음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아홉 번째 보살마하살이

지일체중생(知一切衆生): 일체중생의

생본무유생(生本無有生)하야 : 생이 나는 것이 본무유생이라.

본래 나는 바가 없다.

요달수생불가득고(了達受生不可得故): 태어나는 것이 불가득이라 얻을 수 없음을 통달하는 연고이니. 요런 구절은 너무나 많이 나오는 구절이다.

이지인지연(而知因知緣)하며 : 그러나 지인 지연 인연을 환하게 알고 시작과 끝 중간 과정과 이런 걸 환하게 알고

지사지경계(知事知境界)하며: 일도 알고 경계도 알고 형편을 환하게 알고

지행지생(知行知生)하며 : 행하는 것도 알고 생하는 것도 알고

지멸지언설(知滅知言說)하며 : 지멸지언설이라.

좀 줄이면 생주이멸을 환하게 안다는 말씀이다.

생멸을 알면 어떻게 되는가? 불생불멸이다. 없어짐도 알고 말함도 알고

지미혹지이미혹(知迷惑知離迷惑)하며 : 미혹함도 알고 미혹함을 떠나는 것도 안다.

미혹도 알아봤자 꿈이고 미혹을 떠나는 것도 꿈이다.

그래서 불교 공부를 뭐라고 하는가?

대몽일교(大夢一覺), 큰 꿈을 한번 깨는 것일 뿐이다. 그 꿈속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비로장누각에 들어가면 별의별 것이 다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는 만법유식이요 삼계는 유심이다.

종경록(宗鏡錄)에는 영명지각연수선사(永明智覺延壽禪師)가 원효스님을 그렇게 비유하셨다.

심생즉(心生卽) 종종법생(種種法生)하고 심멸즉(心滅卽) 촉루(觸髏)도 불이(不二). 마음이 일어나니 만 가지 법이 일어나고 생각이 꺼져버리니까 해골바가지도 둘이 아닌데, 만법이, 모든 일체 제법이 오직 내 생각으로 지어낸 분별자심이라. 내 자심이 분별한 것이라.

만법(萬法)이 유식(唯識)이요 욕계 색계 무색계가 본래 욕계도 없고 색계도 무색계도 다 없는데 해탈한다고 벌버둥을 치니까 삼계가 오직 이 한마음에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 대목을 그렇게 정리해놓고.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해동의 원효스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이렇게 해놓았다.

우리가 익히 듣는 말씀인데 종경록 11권에 그렇게 나온다. 마지막 100권에 보면 의상스님에 대해서도 일미진중함시방을 가지고 해동의 상법사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고 해놓았다. 중국에서 불교 공부를 하면 종경록을 반드시 보라고 하는데 그 종경록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님인 원효스님 의상스님이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복이다.

우리가 문수선원 여기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원효, 의상의 그림자이고, 드리우고 남기신 유원이다. 남기신 유원, 유산 그림자 그 그늘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다.

이런 대목을 읽으니까 원효스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꿰뚫어 버렸는지 알 수가 있다.

지전도자라전도(知顚倒知離顚倒)하며 : 뒤바뀜도 알고 뒤바뀜이 여의는 것도 안다.

지잡염지청정(知雜染知淸淨)하며 : 잡염도 알고 청정도 안다.

지생사지열반(知生死知涅槃)하며 : 생사도 알고 열반도 안다. 생사하고 열반을 다 알고 나니까 이렇게 된다.

장수 자선선사의 게송에 보면 능엄경에 이렇게 나온다.

삼제구심(三際求尋)에 심불유(心不有), 삼제는 무엇인가? 과거 현재 미래, 아무리 구심 마음을 찾아봐도 심은 불유라 마음은 있지 않다. 본심이 없더라. 본래무일물이더라.

삼제구심(三際求尋)에 심불유(心不有), 심이, 마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진심이 있지 않기 때문에 망심도 없더라.

망심무처(妄心無處)에 즉보리(卽菩提).

망심이 하나도 없는 그 자리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그래서 생사와 열반이 본평등이라.

장수 자선선사는 생사열반(生死涅槃) 본평등(本平等)이라 했고 의상스님께서는 생사열반(生死涅槃)이 상공화(相共和)라 하셨다. 이런 대목이 전부 그런 대목들과 연결되어 있다.

생사도 알고 열반도 제대로 안다.

지가득지불가득(知可得知不可得)하며 : 얻을 것도 알고 얻지 못할 것도 알고

지집착지무집착(知執着知無執着)하며 : 집착도 알고 무집착도 알고

지주지동(知住知動)하며 : 머무름도 알고 지동이라 움직임도 알고

지거지환(知去知還)하며 : 갈 줄도 알고 올 줄도 알고

지기지불기(知起知不起)하며 : 일어날 줄도 알고 일어나지 않을 줄도 알고

지실괴(知失壞)하며 : 무너지는 것도 알고

지출리(知出離)하며 : 벗어나는 것도 알고

지성숙(知成熟)하며 : 성숙되는 것도 알고

지제근(知諸根)하며: 모든 근기도 알고

지조복(知調伏)하야 : 조복시킬 줄도 알고

수기소응(隨其所應)하야 : 그 응당함을 따라서

종종교화(種種敎化)호대 : 가지가지로 교화하되

미증망실보살소행(未曾忘失菩薩所行)하나니라 : 일찍이 망실하지 않는다. 무엇을 망실하지 않겠는가? 보살의 행할 바, 보살이 화엄행자로서 가야 될 길을 까먹지 않나니

하이고(何以故): 하이고오. 다음에 중요한 말이 나온다. 줄을 쫙 긋는 게 좋겠다. 그 말을 길게 해놓고 하이고 어찌 한 까닭이냐. 보살은 다만 뭐 때문에 사느냐?

보살(菩薩):보살은

단위이익중생고(但爲利益衆生故): 단위이익 중생이라.

위고는 뭐뭐 때문이다 라는 숙어다. 관용구로 이무소득고하고 똑같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은 뭔가? 오직 중생을 위한 까닭으로, 중생을 어떻게? 못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이익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보살은 발심을 한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요 :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 내가 깨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자미득도(自未得度)라도 선도타(先度他). 중생을 깨치기 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고

무여소위(無餘所爲)일새 : 다른 것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무여, 나머지 다른 이상한 계산 때문에 보살이 발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중생을 깨닫게 하려고

시고(是故): 이러한 까닭에

보살(菩薩):보살이, 어른스님이 늘 그런다. ‘화엄경의 화두는 중생이다중생에게 맞춤형 약재가 있다면 그것을 보현행원이라고 한다. 보현행원은 어떤 중생에게도 안 맞는 중생이 없다. 만병통치약이다.

상화중생(常化衆生)호대 : 항상 중생을 교화해도

신무피권(身無疲倦)하야 : 몸에 고달픔이 없어서

불위일체세간소작(不違一切世間所作)이니 : 일체 세간에 짓는 바를 어기지 아니하니

시명연기(是名緣起):시명 연기의

선교지명(善巧智明)이라하느니라 : 선교지명이라.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마하살이

어불(於佛): 부처님께

무착(無着)하야 : 무착하야, 보살마하살이 부처님한테도 집착이 없어서

불기착심(不起着心)하며 :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어법(於法):어법에

무착(無着)하야 :무착하야

불기착심(不起着心)하며 : 불기착심하고, 법에도 집착함이 없어 집착하는 마음을 불기착심이라

어찰(於刹): 세계에

무착(無着)하야: 집착함이 없어서 나는 이 절에 살겠다, 나는 누구하고 살겠다우리는 착심이 너무 많다.

불기착심(不起着心)하며: 불기착심하며

어중생(於衆生): 중생에게도

무착(無着)하야 : 집착이 없어서

불기착심(不起着心)하며 :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우리가 발우공양을 할 때마다 늘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뭐라고 하는가? ‘관삼륜청정하야라고 한다.

불견유중생(不見有衆生)하고 : 중생이 있음을 보지도 아니하고

이행교화조복설법(而行敎化調伏說法)이나 : 교화하고 조복시키며 법을 말하거니와, 중생상을 떠나서 중생을 제도한다, 이런 말씀이다.

연역불사보살제행(然亦不捨菩薩諸行): 그래도 보살의 행과

대비대원(大悲大願)하고 : 대비대원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중생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자비롭게 누가 오든지 안 오든지간에 나 혼자는 기다린다.

약속시간에 한 번도 안 까먹고 일찍 오는 사람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전부 다 2030분 늦게 오는데 그때 천천히 오지 뭐하려고 이렇게 일찍 왔어요?”

저라도 이 시간을 꼭히 지켜야, 약속 시간 그 시간의 의미가 있어집니다.”

뜨끔했다. 그때부터 제가 지각법사에서 정각법사로 바뀌었다. 저는 계속 지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왜 자꾸 지각하냐 그러면 ,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그런다라고 답했었다.

견불문법(見佛聞法)하야 :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

수순수행(隨順修行)하며 : 따라서 수행하면서

의어여래(依於如來)하야 : 여래를 의지하여

종제선근(種諸善根)하며 : 모든 착한 뿌리를 심고

공경공양(恭敬供養)하야 : 공경하고 공양하며

무유휴식(無有休息)하며 : 휴식하지 아니하고

능이신력(能以神力)으로 : 능히 신통한 힘으로써

진동십력무량세계(震動十方無量世界)하나니: 시방의 무량세계를 진동시키나니

기심광대(其心廣大)하야 : 그 마음이 광대하여

등법계고(等法界故): 법계와 같은 까닭으로

지종종설법(知種種說法)하며 : 종종설법을 갖가지로 법을 설함을 알고는

지중생수(知衆生數)하며 : 중생의 수효를 알고

지중생차별(知衆生差別)하며 : 중생의 차별을 알고

지고생(知苦生)하며 : 그 괴로움이 생기는 줄도 알고

지고멸(知苦滅)하며: 괴로움이 소멸하는 것도 알며

지일체행(知一切行): 이 모든 행이

개여영상(皆如影像)하야: 그림자와 같은 줄 알고,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아까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다.

행보살행(行菩薩行)하며 : 보살행을 행하며

영단일체수생근본(永斷一切受生根本)하고 : 영원히 끊어버린다. 일체 수생의 근본을 끊어버리고

단위구호일체중생(但爲救護一切衆生)하야 : 다만 위한다, 구호 일체 중생이라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행보살행(行菩薩行)호대 : 보살행을 행하되

이무소행(而無所行)하며: 무소행이라 행한 바가 없으며

수순일체제불종성(隨順一切諸佛種性)하야 : 모든 부처님의 종자, 부처님의 불종성, 여래의 종자의 성품을 따라서 법성, 불성을 따라서

발여대산왕심(發如大山王心)하며 : 발심한다. 발여대산왕심이라. 태산 같은 마음을 내고

지일체허망전도(知一切虛妄顚倒)하야 : 일체 것이 허망하고 눈이 뒤바뀐 줄을 알아서 어디에 들어가느냐

입일체종지문(入一切種智門)하며 : 일체 종지의 방편문에 들어가나니

지혜광대(智慧廣大)하야 : 지혜가 광대하여

불가경동(不可傾動)하야: 불가경동이라. 지혜가 너무 커서 바다를 엎을 수 없듯이, 세수대야나 엎지 바다는 안 엎어지잖는가. 누가 수미산을 뽑을 수 있는가? 못한다. 지혜가 너무 광대해서 움직일 수 없는지라.

당성정각(當成正覺)하고 : 마땅히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서

어생사해(於生死海): 생사의 바다에서

평등제도일체중생(平等濟度一切衆生)하는: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제도하는

선교지명(善巧智明): 교묘한 지혜의 밝음이

시위십(是爲十)이니 :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 만약에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그 가운데서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대선교지명(則得如來無上大善巧智明)이니라 : 여래의 위없는 크게 교묘한 지혜의 밝음을 얻을 것이니라.

 

. 菩薩十種解脫

 

佛子菩薩摩訶薩有十種解脫하니 何等爲十所謂煩惱解脫邪見解脫諸取解脫蘊處界解脫超二乘解脫無生法忍解脫於一切世間一切刹一切衆生一切法離着解脫無邊住解脫發起一切菩薩行하야 入如來無分別地解脫於一念中悉能了知一切三世解脫是爲十이니 若諸菩薩安住此法하면 則能施作無上佛事하야 敎化成熟一切衆生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해탈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번뇌의 해탈과 삿된 소견의 해탈과, 모든 집착의 해탈과,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의 해탈과, 이승(二乘)을 초월하는 해탈과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 해탈이니라. 모든 세간(世間), 모든 세계, 모든 중생, 모든 법에서 집착을 여의는 해탈과, 그지없이 머무는 해탈과 모든 보살의 행()을 일으켜서 여래의 분별없는 지위에 들어가는 해탈과, 잠깐 동안에 모든 세 세상을 능히 아는 해탈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위없는 부처님의 일을 베풀어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성숙하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해탈(十種解脫)

*

그다음에 선현행, 한번 짚어보자.

처음에 뭔가? 환희행, 아 환희심이 일어나는구나.

그다음에 요익행, 남에게 득이 되게 해주는구나. 계율을 잘 지키는구나. 그러니까 보시를 하고, 내가 계를 지키고 잘 참는 것은 사회생활하고 관계가 있다.

보시 지계 인욕 이 세 가지는 사회생활하고 밀접한 덕목이다.

사회라는 것은 모일 사() 모일 회()자 어떤 모임이든 모임에 대해서 관계되기 때문이다.

참는 것에 대해서는 통도사 일주문 옆에 보면 그런 글이 있다.

방포(方袍) 모난 옷 가사를 입고 원정(圓頂) 삭발을 했으면 둥근 머리를 삭발을 했으면 상요(常要) 항상 우리에게 요구된다 청규(淸規) 맑은 계율대로 살아라.

후 오백세 종지를 살리기 위해서 옛날부터 알았던가 보다.

해탈견고 선정견고 다문견고 탑사견고 요즘은 투쟁견고 임전무퇴 결사항쟁이다.

그래서 방포원정(方袍圓頂)에는 상요청규(常要淸規).

가사 입고 삭발했으면 싸우는 것은 잊어버려라.

대자(大者)는 위형(爲兄)하고 소자(小者)는 위제(爲弟)니 당유쟁자(撞有諍者)거든 양설화합(兩說和合)하여 단이자심(但以慈心)으로 상향(相向)이언정 부득악어(不得惡語) 상인(傷人)이어다악한 말로 남을 헤버 뜯지 말아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게 지금 여기 이세간품하고 바로 직결이 되는 대목들이다.

이런 것이 실천이 안 된다.

환희행(歡喜行) 요익행(饒益行) 무진한행(無瞋恨行) 화내지 마라, 인욕바라밀 끝없는 정진 무굴요행(無屈撓行) 굽히지 마라, 그다음에 이치란행(離癡亂行)을 지난 시간에 하고 오늘 했다.

그다음 환하게 이치를 밝혀서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해라 선현행(善現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다 보면 제발 거기에 생색이나 안쪽에서 꿍심을 가지고 있지 말아라.

다음에는 무착행(無著行), 무착행 다음에는 정말 일반 사람들,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존중과 존경과 거룩한 마음이 돋아날 것이다. 부동심이 돋아날 것이다 그때 무엇인가? 난득행(難得行)이다.

여기도 고대로 나온다.

부동심이 있고, 크게 보시하는 마음이 있고, 고대로 쭉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큰 맥락은 어디에서 잡는가? 10바라밀을 줄이면 6 바라밀, 더 줄이면 계정혜 삼무루학으로 딱 잡는다. 더 줄이면 어디까지 가는가? 중선봉행제악막작이다. 이것을 더 줄이면 어디까지 가는가?

본래무일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진공묘유로까지 가버리잖는가. 진공묘유다, 선악으로 벌어졌을 때는 어떻게 돼야 된다, 삼무루학으로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 팔정도로 벌어졌든지 6바라밀 됐든지 10바라밀 됐든지 10바라밀을 하다가 또 나중에 어디까지 가는가? 팔만사천모다라비 팔만 사천 손길로 섬섬옥수로 남을 어루만져 줘야한다. 천수천안까지,일상무상에서 천수천안까지 쭉 연결이 되어 있다.

지금 이세간품이 가장 우리의 그런 범행과 정행의 청정한 행 수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놓았다.

지혜 밝은 반야는 아까 끝났고 열 가지 해탈이 있다.

쭉 읽고 넘어가겠다.

*

불자(佛子):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마하살이

유십종해탈(有十種解脫)하니 : 열 가지 해탈이 있으니

하등(何等): 무엇이

위십(爲十):열 가지냐

소위번뇌해탈(所謂煩惱解脫): 이른바 번뇌의 해탈과

사견해탈(邪見解脫): 삿된 소견머리 해탈과

제취해탈(諸取解脫): 모든 집착으로부터의 해탈과

온처계해탈(蘊處界解脫): 오온 1218경계의 해탈과

초이승해탈(超二乘解脫): 이승 성문 연각을 초월하는 해탈과

무생법인해탈(無生法忍解脫): 생사 없는 법의 지혜 해탈과 무생법인이다. 무생인 줄 제대로 아는 지혜

어일체세간일체찰일체중생일체법(於一切世間一切刹一切衆生一切法): 모든 세간, 모든 세계, 모든 중생 모든 법에서

이착해탈(離着解脫): 집착을 여의는 해탈과

무변주해탈(無邊住解脫): 무변주해탈과 그지없이 머무는 해탈과

발기일체보살행(發起一切菩薩行)하야 : 모든 보살의 행을 발기하여

입여래무분별지해탈(入如來無分別地解脫): 여래의 분별없는 지혜에 들어가는 해탈과

어일념중(於一念中): 일념 중에 잠깐 동안에도

실능요지일체삼세해탈(悉能了知一切三世解脫): 모든 세상을 능히 아는 해탈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다.

약제보살(若諸菩薩):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능시작무상불사(則能施作無上佛事)하야 : 위 없는 부처님의 일을 베풀어서

교화성숙일체중생(敎化成熟一切衆生)이니라 :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시킨다.

우리가 축원할 때 시작불사, 시작불사하더니 그것도 역시 화엄경에 나오는 말씀이었다. 교화성숙일체중생이니라.

무착행 들어가기 전에 오늘 나눠드린 과판을 보면 선현행에서 두 꼭지가 끝나고 세 번째 단락이다.

 

십행단락이 세 단락이 있지 않은가.

종십종원림하십오문(從十種園林下十五門) : 세 번째 단락은 십종원림하. 원림 아래의 15.

앞에는 6문하고 9문 해서 열다섯 개 문이 끝났다.

앞으로 15개 방편, 수행하는 방법의 결과들이 제시가 된다.

명덕비성만행(明德備成滿行) : 이것은 명() 명이라고 하는 건 밝힌다. 무엇을? 덕비성만행을 밝힌다.

마음의 신심 공덕이 갖춰지면 유비무한이다.

덕비성만이라. 덕을 갖추어서 원만함을 이루는 행.

사람이 원만해지는 행이 무착행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원만해진다고 하는 것은 안쪽에 아주 빼딱하게 있는 여기서부터 분노조절장애 같은 것은 다 끝난 상태다.

그런 것은 없는데 뭐가 남아 있는가?

여석압초(如石壓草).

돌로 꽉 눌러서 바깥으로 현행하지는 않는데 안쪽에 늘 잠재되어 있는 암세포처럼, 끝까지 추적 조사해서 말살시키지 않으면 그건 또 살아난다.

일단은 집착하지 않는 행, 난득행 이렇게 들어가는데 무착행은

여기 두 꼭지로 나눠 놨다.

차하이문(此下二門) : 무착행은 차하이문 3페이지에 1번이다. 빨리 보시라고 빨간색으로 해놨다.

십종원림과 십종궁전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불교의 원림은 뭐가 있는가?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 임원 룸비니 동산 그다음에 금강경을 설했던 서다림 기타림 제타림 그리고 선재동자에게 문수보살이 법을 설했던 사라림 이렇게 여러 가지 임원이라고 하는 것, 원림이라고 하는 것은 도량, 수행할 수 있는 숲속 동산이다. 그런 데는 전부 다 맑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니까 악독한 것이 없다.

명무착위중행(明無著位中行) : 아래 두 가지는 명 밝힌다, 뭐를? 무착위중행, 집착이 많이 상그럽지 않은 행을 가르치는데 그 가운데에 차문은 이 1번 문은 뭘 밝히느냐?

차문명유처종정(此門明遊處從情) : 명유처종정이라. 유처 흔히 우리가 수처작주 그런다. 흘러가는 곳마다 거기에다 내 온통 모든 정성을 다 쏟아붓는다는 뜻이다. 수업을 할 때면 수업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배울 때는 배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직분을 다 한다.

수분성취하는 것이다.

어디에 가든지 전라도에 가면 전라도 말을 쓰고 그죠잉?’‘거시기경상도에 가면 경상도 말을 쓴다.

자기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유처종정이라. 쏟아붓는다,

뒤에 문은 궁전이라 뭘 나타내는 거냐?

궁전십중(宮殿十中) : 궁전은 깃들어 있는 것 자체가 복이 있다. 우리가 절에 거룩한 절에 우리가 살고 있잖은가.

후문명서지적열(後門明棲止適悅) : 서지에 적열(適悅)이라. 궁전 같은 절에 살면 제발 분탕치고 잡념 일으키지 말고 어떤가? 알맞게 법희선열로 살아라.

분수에 맞게 궁전에 살면 왕은 왕답게 살고 거지처럼 살지 말아라, 이런 느낌이다. 집착 없는 행위, 아무래도 제가 쓴 것 같다. 이렇게 잘 써 놓을 수가 없다.

개통이리(皆通二利) : 개통이리라. 여기에 스무 꼭지가 나오겠지만 그것이 자리이타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방편과 실제가 근실방편으로써 뭘 한다? 집착하는 바가 없다 그래 아무리 좋은데도 궁전에도집착 안 하는데 뭐 어디 개구멍에 집착하겠는가? 집착 안 한다.

황금 밥그릇에도 집착 안 하는데 거지깡통에 집착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왕위도 놔버렸는데 뭐 다른 걸 못 놓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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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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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日覺心 | 작성시간 24.10.01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 작성자묘덕 | 작성시간 24.10.01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 작성자대등행 | 작성시간 24.10.01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石佛寺 선근회향요익중생 | 작성시간 24.10.01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 작성자眞如華 | 작성시간 24.10.02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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