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한 여행
10월, 부산에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고, 지난달의 더위는 흔적도 없었다. 문수선원 다실에 잘 익은 싱싱한 대추가 올라 있었다. 묵담스님이 가지고 계시던 차를 내주셨다고 했고, 보림향 보살님이 오셔서 팽주를 하고 계셨다. 항상 큰스님의 책과 관련된 다회라든가 화엄전 마당에서 펼쳐지는 생신 다회 때 만난 보살님이라서 다실 가득 그때의 설레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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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들고 선원에 들어오시던 용학스님이 막 들어오신 회장스님을 보고는 반가와 하셨다. 얼른 와서 사진을 찍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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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은사 지원스님이 기신론으로 신도들께 강의를 하시겠다고 용학스님의 교재를 복사해서 써도 되느냐고 여쭤서, 용학스님이 흔쾌히 책을 주시고, 다실로 함께 가셔서 감산스님 이야기며 원효스님 이야기를 특강처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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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께서 <무비스님 이야기> 3백 권을 가져오라고 재무스님께 말씀하셨다고 해서 법회 전, 노포 터미널에서 만나 화엄전에 인사를 갈 때, 책을 옮겨드렸다.
성화스님이 오셔서 화엄전 마루 문틀에 초를 칠하고 계셨다. 덕분에 뻑뻑했던 문이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저렇게 성화스님처럼 하는 거야. 내 절처럼 행동해야 해. 늘 거기 살던 사람처럼.”
생신 때까지 재무스님의 절에서 머물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큰스님께서 자상하게 일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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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가 끝나고 회장스님인 정오스님이 저녁을 사주신다고 해서 경주에서 만났다. 재무스님이 포항 광명사 개원법회 때 <무비스님 이야기>를 보시해 드리느냐고 여쭤보셨다.
그러면 고맙다고 200권을 부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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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경주 마니불교를 방문했다. 마니불교를 운영하는 금난 이운정 선생님이 그 시간에 마침 관세음보살님을 새로 채색 마쳤다고 함께 친견하면서, 채색하는 동안의 가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비스님 이야기> 책 한 권도 전해 드리고, 단청을 강의하시는 마니불교 2층으로 올라가서 그림들을 구경하다가 불국사 단청에 대한 짧은 강의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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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생신날에 화엄전에 일찍 갔다. 큰스님께서 이리오라고 하시면서 “스님들은 거의 90퍼센트가 거짓말이야.” 이렇게 말문을 여셔서 놀랐는데 “내가 어제 이 책을 다 읽었거든? 그런데 경전보다 재미있대?”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이왕에 이렇게 다 드러냈으니 많이많이 찍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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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는 회장스님의 포항 광명사에 가서 <무비스님 이야기>책 200권을 전해드렸다. 점심 공양을 하고 새로 꾸민 2층 다실에서 전에 대만스님들이 오셨을 때 뵈었던 전승원 스님들과 차를 마셨다. 부처님 복장에 여러 예물들을 넣는 의식을 잠깐 참관했다.
전통색에 맞춰 오색 깃발이 펄럭이는 광명사에는 쏟아지는 햇빛이 바람과 함께 어디서나 충만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四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二
四 . 普賢菩薩의 二千答
3. 三十門의 十行答
오랜만에 반갑다. 아까 입승스님께서 <무비스님 이야기> 책소개를 잊으셨다.
어른 스님의 행력을 대선스님이 발원을 하시고, 또 문수강당에서 밖에 있지만 결사 대중으로 늘 녹취하고 다듬고 자료를 후대를 위해서 남겨 주는 우리 혜명화 보살님의 첫작품이라고 한다. 잘 만들었는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어른스님의 행력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고 되짚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서 새로운 우리 갈 길을 모색해 가는 것도 좋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오늘 이 책이 나와서 상당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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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할 대목은 348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여덟 번째 난득행(難得行)을 할 차례다. 난득행은 존중행이라고도 한다.
여러분들께 지난 시간에 유인물 과판을 두 장 나눠드렸지만, 오늘은 넉 장으로 나눠드렸다.
화엄소초 과판을 이렇게 나눠드린 이유는 경전을 공부할 때 스텝을 제대로 한 발자국씩 밟아 가시는 게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신심이라든지 원력에는 다소 도움이 안 되겠지만 낱낱이 이렇게 파헤쳐 보는 데, 천착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는 또 그런 과정도 좀 거쳐야 되지 않겠나’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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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판 1페이지를 보면 환희행 요익행 무위역행 무굴요행 이 나온다. 이와 같이 이세간품이 보현행원 수행의 모든 것을 총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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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은 크게 네 단락으로 갈라지는데 세주묘엄품에서 시성정각이 한번 나온다. 신해행증(信解行證) 중에 믿음을 강조하는 신(信)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해(解)에 해당하는 부분은 2회차부터 7회차까지다.
2회차 여래명호품을 보면 부처님께서 시성정각하는 것이 나온다. ‘묘오(妙悟)가 원만하다’ 묘한 깨달음이 원만해서 시성정각하는 부분이 여래명호품에 한번 나와서 신해행증할 때의 해에 해당한다.
행(行)으로 가서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세간품이다. 부처님께서 묘오가 원만한, 깨달음이 원만하게 이루는 시성정각을 한번 더 잡아준다.
마지막에 증(證)은 우리가 잘 아는 입법계품이다. 근본법회에서 부처님께서 사자빈신삼매에 드시고 보조삼세법계문 방광을 하시면서 다시 한번 깨달음을 천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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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화엄경이 진행되는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세간품은 신해행증 중에서 행(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 십신 십주 십행 이렇게 밟아가고 있고, 지금은 30가지의 십행에서 답을 하는 내용이다.
보현보살의 답을 보고 있는 중이다.
환희행 요익행 무위역행 무굴요행 이치란행 선현행 무착행까지는 지난 시간에 했었다.
오늘은 여덟 번째 난득행에 들어갈 차례다.
이 30가지 질문은 하나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치 실밥이 꼬깃꼬깃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 앞 땀에 뒷땀이 한 땀 한 땀 이어지듯 연결되어 있다.
이세간품 뿐만 아니고 경전 전체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는 반드시 눈코입의 순서대로 되어 있다. 눈은 보는 가용 범위가 굉장히 넓다. 똑같은 마음이라 할지라도 눈을 통해서는 멀리까지 볼 수가 있다.
이(耳)는 저 산에 있는 소리까지는 들을 수가 없다. 다만 바깥의 소리까지는 들을 수가 있다. 그다음 코는 어떤가? 방 안에서 방귀를 낀 냄새는 맡을 수가 있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방귀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혀는 어떤가? 혓바닥을 갖다 대야 맛을 볼 수가 있다.
똑같은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 작용 범위에 따라서 안이비설신의 순서로 되어 있다.
동서남북도 화엄경이나 우리 불교에서는 동남서북이라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남쪽으로 서쪽으로 기울어서 북쪽으로 그다음에 동북 동남 서남 서북 하방 상방 이렇게 시방이 돌아간다.
경전의 순서는 전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약찬게에도 보면 주지신이 나오고 그다음엔 주수신, 주수신이 나오고 나면 주화신이 나와야 된다.
주화신이 나오면 주풍신이 나오고, 풍이 나오면 더 흔적없는 주공신이 나와야 된다.
지수화풍공견식(地水火風空見識) 이런 순서로 되어 있다.
경전은 이렇게 단단한 것부터 말캉한 것까지, 모양이 있는 것에서 모양이 없는 것까지 나열된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도 마찬가지다.
구사론 쪽으로 보느냐? 유식으로 보느냐? 이런 차이에 따라서 순서 흐름이 있다.
보시,지계,인욕,정진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보시하지 않는 사람은 계율을 지키기가 상당히 힘이 드는 사람이다.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계율을 잘 지키지 못하고 범법행위를 잘 저지르는 사람은 인욕행으로 넘어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타산적인 사람이고 부지런하지 못하다.
정진바라밀이 안되면 계속 욕망이라든지, 탐진치로부터 드글거리는 것을 끊임없이 쓸어내고 끊어내면서 고요를 찾아가는 선정으로 이르지 못할 것이다.
선정의 결정적인 마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결코 지혜를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예불할 때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이라고 한다. 이것도 능엄경 순서대로 보면 섭심위계(攝心爲戒)라. 마음을 거두어 잡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이다. 봉행불교(奉行佛敎)는 상섭심(常攝心)이라, 계율로써 항상 마음을 간추려서 잡아야 된다. 계향(戒香)으로 계율이 오랫동안 있어서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하여지면 자비로움 속에서 선정삼매가 찾아올 것이다.
그 사람이 깨달았느냐 안 깨달았느냐는 간단하게 ‘얼만큼 자비로우냐?’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부처님처럼 대자대비가 되면 큰 깨달음일 것이고, 소자소비가 되면 조금 깨달음일 것이고, 인색해서 남에게 안 나눠주면 하나도 못 깨닫고 교만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깨닫고 못 깨닫고는 ‘얼만큼 마음을 넉넉히 쓰느냐, 안 쓰느냐’ 여기에서 간단하게 해결된다.
지금 우리가 하는 부분들은 그와 같은 순서대로 되어 있다. 그것을 좀 소개시켜 드렸다.
오늘 여러분께 나눠드린 표가 있다.
제가 신식과판을 짜놨다.
무착행을 보자. 무착행은 두 가지 조건으로 나눈다.
이래서 마지막에 보면 뭐라고 해놨는가?
56. 열 가지 원림이 있고, 수행하는 도량이 있고 57. 열 가지 종류의 궁전이 있다고 했다.
즉사표법(卽事表法)이라, 사(事)적으로 궁전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 그 궁전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궁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온갖 보배가 있고, 보배그릇이 있고, 황금이 있고, 장엄한 것이 많다.
사람 마음속에 바라밀행이 있고, 자비희사가 있으면 그 사람은 궁전을 가지고 있는 왕처럼 사는 것이다.
이런 것을 흔히 원림(園林)이라고 한다.
자기한테 도량이 있고 도반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입처개진(立處皆眞)이요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되면 지난번에 공부한 무착행(無着行)에 해당된다.
어떤 것이 무착행이냐? 집착하지 않는 행이냐?
수처(隨處)에 그 장소에 따라서 작주(作主)라. 그것이 무착행(無着行)이다. 똥고집을 안 피우는 것이 수처작주다.
수처작주가 되고 입처개진 진실한 사람이 됐으면, 내 마음에 이미 궁전이 들어와 있다.
청량국사가 궁전이 들어와 있는 사람이 그다음에 난득행(難得行), 존중행으로 넘어간다고 하였다. 여덟 번째 단계다.
내가 지금 풍성하게 보배그릇을 잔뜩 창고로 한 열 창고정도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이 어떨 것 같은가? 남이 욕을 해도 그냥 희주부리하게 웃는다. 이미 내가 넉넉하게 되어버린 입장에서는 쪼달리지 않고 즐기는 쪽으로 간다.
여행이고 뭐고 즐기려 해도 돈푼이나 있어야 한다.
찢어지게 마음이 가난한데 즐길 여가가 없는 사람은 난득(難得)이다. 그래서 난득행이라고 하는 것이 앞에 ‘궁전을 갖춘 사람들한테 주어지는 조건이다’ 이런 뜻이다.
난득행 다음에는 뭐가 있는가?
즐기다 보면 사람의 솜씨가 늘어난다. 매듭도 갖가지 매듭을 다 할 수가 있고, 수도 갖가지 수를 놓을 수가 있다. 그런데 금상첨화라고 하지만 비단천이 없는데 어떻게 수를 놓겠는가?
우선 수는 놔두고, 비단부터 가져야 된다.
어른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엄경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놔두고 읽기나 해라. 일단 한번 읽어나 봐라. 읽어나 봐. 읽지도 않고, 아는 체 하지 말고.”
좋아하다 보면 장엄하게 된다.
주방장이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고 한참을 하다 보면 주방장 솜씨가 늘어나서 데코레이션 하는 것처럼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낸다.
장엄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안쪽으로 내 마음으로 원력이 가득한 사람은 바깥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표현이 된다. 눈길로 표현되든지 손길로 표현되든지 넌지시 던져 주든지 표현이 되게 되어있다.
안에 자기 것이 차고 넘치는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남을 도와주고자 한다. 이런 것이 다 장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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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법행(善法行)으로 넘어가면 두 가지가 어떤가?
내가 이미 즐길 줄 알고 장엄이 되어 있으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
그냥 러닝셔츠 하나 떡 입고 있어도, 은행에 한 2천 억이 딱 저축되어 있으면 어떤가? 씨익 웃고 마는 것이다. 부동심(不動心)이다.
삼매가 넉넉하면 어떤 생멸법에도 요동치지 않는다.
제가 과판에 뭐라고 해놨는가?
“외풍에 흔들림이 없으면 깊이 들어간다.”
바깥의 외연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내심불사(內心不捨)다. 과판에서 빨리 찾아보라고 빨갛게 글씨를 써놨다.
안쪽에 자기가 가지고 가는 인생의 목적지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상스님의 제자 중에 표훈대사라고 하는 왕자가 있다.
표훈스님은 금강산 표훈사를 창건하시고 범어사 주지도 하시고, 불국사 주지도 하시던 천 년 전의 인물이다.
갑사에서 표훈대사의 발원문이 나왔다.
그 발원문을 보고 제가 빙긋이 웃었다.
왕자의 발원문 ‘나는 결코 불입어열반(不入於涅槃)이라’
열반(涅槃)에 들어가지 않겠다. ‘나는 결코 극락가지 않겠다’ 어디에 가느냐? ‘서입탁악세(誓入濁惡世)라. 맹세컨대 나는 오탁악세의 중생들의 곁으로 가겠다’
이세간품을 읽으면 부루나존자라든지 표훈대사라든지 하는 분들의 화엄정신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부동심(不動心)이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떤가?
불사심대심(不捨深大心)이라. 깊고도 큰마음을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꿈과 이상이 일반 사람들하고는 좀 다르다’ 이렇게 우쭐대도 될 것 같다.
깊고 큰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옆에 능궁이사(能窮理事)라고 해놨다. ‘능히 이치와 현실에 대해서 꿰뚫어 버린다, 통달해 버린다’ 현실과 이상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깊고 아량이 넓어지면 촐싹거리지 않고 촐랑거리지 않고 바로 이상을 현실화시켜서 남들의 손을 잡고 간다. 이것이 선법행(善法行)이다.
그러면 오늘 난득행(難得行)부터 들어가도록 하겠다.
이미 무착행(無着行)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궁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왕부자다.
(8) 難得行
가. 菩薩의 十種所樂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所樂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樂正念이니 心不散亂故며 樂智慧니分別諸法故며樂往詣一切佛所니聽法無厭故며 樂諸佛이니 充滿十方하야 無邊際故며樂菩薩이니 自在爲諸衆生하야以無量門으로 而現身故며 樂諸三昧門이니 於一三昧門에入一切三昧門故며樂陀羅尼니持法不忘하야 轉授衆生故며樂無礙辯才니於一文一句에經不可說劫토록 分別演說하야 無窮盡故며 樂成正覺이니 爲一切衆生하야 以無量門으로 示現於身에 成正覺故며 樂轉法輪이니 摧滅一切異道法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如來無上法樂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좋아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바른 생각을 좋아하니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연고이니라. 지혜를 좋아하니 모든 법을 분별하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 계신 데 가기를 좋아하니 법문 듣기에 싫어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니 시방에 가득하여 가없는 연고며, 보살을 좋아하니 자재하게 모든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문으로 몸을 나타내는 연고이니라. 모든 삼매문을 좋아하니 한 삼매문에서 모든 삼매문에 들어가는 연고며, 다라니를 좋아하니 법을 지니고 잊지 아니하여 중생에게 주는 연고며, 걸림 없는 변재를 좋아하니 한 글자와 한 글귀를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나도록 분별하여 연설하되 다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바른 깨달음 이룸을 좋아하니 일체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문으로 자신에게 바른 깨달음 이룸을 나타내 보이는 연고며, 법륜 굴리기를 좋아하니 온갖 외도의 법을 꺾어 버리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 여래의 위없는 법의 즐거움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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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소락(十種所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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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소락(有十種所樂)하니 : 열 가지의 즐기는 바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열 가지의 좋아하는 바, 앞에 궁궐을 황금 보배를 가지면 마음이 즐거워지기 때문에 즐기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소위낙정념(所謂樂正念)이니 : 소위낙정념이니. 현실적으로 마음이 넉넉해지면 올바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불만이 있는 사람, 원만하지 못하고 구족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있는 사람은 어떤가?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 굉장히 해코지를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을 가다가 두드려 패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한다. 제정신이 아니다. 바른 생각을 좋아하니
심불산란고(心不散亂故)며 : 마음이 산란하지 않은 연고며, 마음이 산란이 아니고 광란이다. 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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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혜(樂智慧)니 : 지혜를 좋아하니
분별제법고(分別諸法故)며 :모든 법을 잘 분별한다. 이때 분별은 좋은 뜻이다. 나쁜 뜻의 분별이 아니다.
여기 ‘분별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아는 지혜다.
지혜 분별은 좋은 것이다. 제법을 지혜로 딱 분별하니까 콩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확실히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제법의 공상(空相), 오온개공(五蘊皆空)한 줄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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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왕예일체불소(樂往詣一切佛所)니 : 부처님이 계시는 법문 듣는 데 가서, 경전 공부하는 데 가기를 좋아하니
청법무염고(聽法無厭故)며 : 법을 듣는데 만족함이 없는 연고이니라. 늘 듣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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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제불(樂諸佛)이니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시니
충만시방(充滿十方)하야 :시방에 가득하여
무변제고(無邊際故)며 :가이 없는 연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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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보살(樂菩薩)이니 : 보살이 자재함을 좋아하니
자재위제중생(自在爲諸衆生)하야 :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무량문(以無量門)으로 : 한량없는 문으로써
이현신고(而現身故)며 : 몸을 나타내는 까닭이러라.
모든 중생을 위해서 맞춰준다. 중생의 성질머리가 전부 모양새가 다양하니까 엎어진 놈 자빠진 놈 모난 놈 둥근 놈 다 있으니까 거기에 다 맞춰준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중생에 다 맞춰주다 보니까 무량한 방편으로, 문(門)이라고 하는 것은 방편이다. 방편으로 그 몸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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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제삼매문(樂諸三昧門)이니 : 모든 삼매문에 들어가니
어일삼매문(於一三昧門)에 :한 삼매문에서
입일체삼매문고(入一切三昧門故)며 :모든 삼매문에 들어가는 까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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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다라니(樂陀羅尼)니 :다라니를 좋아하니
지법불망(持法不忘)하야 :법을 가지고, 총지라고 한다.
잊어버리지 않는다. 진리를 지녀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전수중생고(轉授衆生故)며 : 오로지 전(轉)자, 오로지 더욱 더 중생을 위해서 그것을 전해주고자 한다.
좋아하는 수준이 다라니나 삼매문 정도다.
일반 사람들은 생멸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이상한 것들이 많잖은가. 여기는 좋아하는 수준이 다르다. 지저분한 것은 아예 없다. 삼매, 다라니, 부처님, 이런 것들만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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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무애변재(樂無礙辯才)니 :무애변재까지 오려고 해도 굉장히 안쪽에 스며들어 가야 된다.
어일문일구(於一文一句)에 : 한 글자와 한 문장, 한 구절에, 그 구절에 대해서
경불가설겁(經不可說劫)토록 :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겁이 지나도록
분별연설(分別演說)하야 : 분별하여 자세하게 꼭지꼭지 연설해서
무궁진고(無窮盡故)며 : 무궁진고다. 한 글자 가지고, 어떤 스님들은 초발심의 초(初)자 한 글자 가지고도 세 칠판을 판서하시는 분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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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정각(樂成正覺)이니 : 바른 깨달음 이룸을 좋아하니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하야 : 일체중생을 위하여
이무량문(以無量門)으로 : 한량없는 방편문으로써
시현어신(示現於身)에 : 그 몸을 나툼에
성정각고(成正覺故)며 : 바른 깨달음 이룸을 보이는 연고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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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전법륜(樂轉法輪)이니 :부처님의 정각을 이루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이 있다. 그것이 뭐냐? 전법륜이라. 불법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최멸일체이도법고(摧滅一切異道法故)라 : 모든 외도들의 법을 꺾어서 없애 버리는 연고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안주하여 머무른다고 하면
즉득일체제불여래무상법락(則得一切諸佛如來無上法樂)이니라 : 그 자리에서 바로 일체 모든 부처님 여래의 무상법낙을 얻을 것이니라.
그다음 대목은 난득행의 두 번째 꼭지가 되겠다.
나. 薩摩의 十種莊嚴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莊嚴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力莊嚴이니 不可壞故며無畏莊嚴이니 無能伏故며 義莊嚴이니 說不可說義하야 無窮盡故며法莊嚴이니 八萬四千法聚를觀察演說하야 無忘失故며 願莊嚴이니 一切菩薩所發弘誓에無退轉故며行莊嚴이니 修普賢行이니 而出離故며 刹莊嚴이니 以一切刹로作一刹故며普音莊嚴이니 周徧一切諸佛世界하야 雨法雨故며力持莊嚴이니 於一切劫에行無數行하야 不斷絶故며 變化莊嚴이니 於一衆生身에 示現一切衆生數等身하야 令一切衆生으로 悉得知見하고 求一切智하야 無退轉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一切無上法莊嚴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장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힘의 장엄이니 깨뜨릴 수 없는 연고며, 두려움 없는 장엄이니 능히 굴복할 수 없는 연고이니라.
뜻의 장엄이니 말할 수 없는 뜻을 말하여 다함이 없는 연고며, 법의 장엄이니 팔만 사천 법의 무더기를 관찰하고 연설하여 잊지 않는 연고이니라.
서원의 장엄이니 모든 보살이 발한 바의 큰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는 연고며, 행의 장엄이니 보현의 행을 닦아 벗어나는 연고이니라.
세계의 장엄이니 모든 세계로 한 세계를 만드는 연고며, 두루한 음성의 장엄이니 일체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두루 하여 법의 비를 내리는 연고며, 힘으로 유지하는 장엄이니 일체 겁에 수없는 행을 행하여 끊어지지 않는 연고이니라.
변화하는 장엄이니 한 중생의 몸에서 일체 중생의 수효와 같은 몸을 나타내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아는 소견[知見]을 얻게 하고 일체 지혜를 구하여 물러남이 없게 하는 연고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모든 위없는 법의 장엄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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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장엄(十種莊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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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장엄(有十種莊嚴)하니 :열 가지 장엄이 있는데
하등(何等)이 :어떠한 것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 장엄이냐?
사람의 덕상이 바깥으로 훅 드러나서 장엄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공부한 것들이 안쪽으로 있기 때문에 안쪽에 그런 원력이 있기 때문에 바깥으로 자연적으로 장엄이 나타난다.
장엄은 자연스럽게 인격이 묻어나온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만 보더라도 대단한 학자들이나 진짜 정직한 사람들이 나오면 호감이 간다.
그런데 촉새같고 사기꾼 같고 보이스피싱 하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정치꾼처럼 아무리 말을 잘해도 채널을 확 돌려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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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역장엄(所謂力莊嚴)이니 : 바깥으로 싹 힘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자가 딱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족제비가 서 있는 것과 영 다르다. 여우가 버텨봤자 얼마나 버티겠는가.
불가괴고(不可壞故)며 : 깨뜨릴 수 없는 연고니라.
사자가 뒷발 차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자후를 하는 것 하며, 그런 것은 열반경 사자후보살품에 자세하게 잘 나온다. 사자가 사자후를 하면 사자새끼들은 좋아서 졸졸졸 나오지만, 다른 짐승들은 사자후를 부르짖으면 뇌가 찢어져 버린다고 하잖는가. 뇌가 찢어져 버린다.
거기서 나온 구절 중에 제일 볼 만한 구절이, 다 훌륭하지만 ‘야간이, 여우가 백 년을 사자 뒤를 따라 다닌다 해도 사자후를 할 수가 없다’라고 해 놓았다.
종자가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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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외장엄(無畏莊嚴)이니 :두려움 없는 장엄이니
무능복고(無能伏故)며 : 굴복할 이가 없는 연고고
의장엄(義莊嚴)이니 : 뜻에 장엄한 것이니
설불가설의(說不可說義)하야 : 말할 수 없는 뜻을 말하여
무궁진고(無窮盡故)며 : 다함이 없는 연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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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엄(法莊嚴)이니 : 법의 장엄이니
팔만사천법취(八萬四千法聚)를: 팔만 사천 법 덩어리를
관찰연설(觀察演說)하야 :관찰하고 연설하여
무망실고(無忘失故)며 :잊지 않는 연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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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엄(願莊嚴)이니 :원력으로 장엄이 돼 있다.
원력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는 것이다.
법당도 우리가 단청해서 장엄을 안 해놓으면 매일 갈 때마다 안 좋다.
요사채 같은 데 스님들 사는 데는 박복하다고 긋기 단청, 줄만 쭉쭉 그어놓고 단청은 안 한다.
그리고 엔간한 좀 작은 법당 단청은 모로단청, 한쪽에만 하고 한쪽은 그냥 발라버린다.
장엄을 조금 더하려면 얼금단청을 하고, 반드시 대웅전에는 꽉꽉 짜서 금단청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사를 입을 때도 부처님 가사 우리들 가사 조수(條數)가 다르듯이. 서원의 장엄이니
일체보살소발홍서(一切菩薩所發弘誓)에 :일체 보살의 처소에서 큰 서원을 내어서
무퇴전고(無退轉故)며 : 물러가지 않는 연고다.
일반 사람들은 큰 서원을 한번 내는 것이 힘이 든다.
그런데 스님들은 낸다고 하는데 입만 떼면 거짓말을 한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遍誓願度) 니나 잘하지.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가 그렇게 많은데 끊을 생각이?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그래 하시는 분도 더러 계시지만 ‘니나 잘 하세요’ 이렇게.
사홍서원을 입으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굉장하다.
우리도 마칠 때는 40화엄경의 제일 마지막 게송
아차보현수승행(我此普賢殊勝行)
무변승복개회향(無邊勝福皆廻向)
보원침익제중생(普願沈溺諸衆生)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刹)
이것이 화엄경 제일 마지막 게송이잖은가.
화엄경 제일 마지막 게송을 우리가 공부 마치고 나서 매일 ‘이 화엄경 통째로 우리가 보현행원을 행해서, 이 무량하고 수승한 복을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해서 저 지옥 중생들을 다 건져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겠습니다 속왕무량광불찰(速往無量光佛刹)’ 이렇게 한 번씩 하는 것도
우리가 참 원력이 다듬어질 것이다.
행장엄(行莊嚴)이니 :행장엄이니
수보현행(修普賢行)이니 :보현행을 닦아서, 보살 이름을 다 합치면 보현보살이요, 바라밀행을 다 닦으면 만행무궁 보현행이다. 보현행을 닦아서
이출리고(而出離故)며: 생멸법에서 출리하는 연고다.
찰장엄(刹莊嚴)이니: 세계의 장엄이니
이일체찰(以一切刹)로 : 모든 세계로써
작일찰고(作一刹故)며 : 한 세계를 만드는 연고이고
보음장엄(普音莊嚴)이니 : 두루한 음성으로 장엄하니
주변일체제불세계(周徧一切諸佛世界)하야 :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하여
우법우고(雨法雨故)며 :법비를 내리는 연고이고
역지장엄(力持莊嚴)이니 : 힘으로 유지하는 장엄이다.
어일체겁(於一切劫)에 : 어일체겁에, 돈이 많은 사람은 재력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학력으로, 어떤 사람은 폭력으로 권력을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법력이다. 일체겁에 대해서,
행무수행(行無數行)하야 : 수없는 행을 행하여
부단절고(不斷絶故)며 : 끊어지지 않는 까닭이니라.
변화장엄(變化莊嚴)이니 : 변화장엄이다. 남들 수준에 맞춰주려고 다양한 모습으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온갖 희로애락이 본래 없지만, 무희무노지만 희로애락을 따라간다. 변화하는 장엄이니
어일중생신(於一衆生身)에 :일체중생 한 중생의 몸에서
시현일체중생수등신(示現一切衆生數等身)하야 : 일체중생의 수와 같은 몸을 나타내어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눈 먼 맹인들로 하여금 심봉사가 눈을 뜰 때 다 같이 눈을 뜰 수 있게 했다는 말이다.
심청이 아버지만 눈을 뜬다면 ‘심청가’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인당수 깊은 물에 빠졌는데 연꽃이 솟아날 리가 없다.
그때부터 온 사람이 전부 다 눈 뜬다는 게 짐작이 간다.
실득지견(悉得知見)하고 : 모두 다 소견을 얻고
모두 다 지견을 얻었다 해탈지견을 얻었다.
불지견 여실지 여실견 진실하게 확실하게 보는 눈을 안목을 얻고
구일체지(求一切智)하야 : 일체지는 살바야라고 한다. 모두 부처님의 지혜를 구해서
무퇴전고(無退轉故)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해서 불퇴전의 신심이다. 물러나지 않는 까닭이다.
제가 한 번씩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2000년도에 저 경주 박물관에서 밀레니엄 기념으로 에밀레종을 쳤다. 저는 직접 가서 현장에서 들었는데 에밀레 종에는 향로를 올리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종을 땅 치니까 천년 전 에밀레 종에 새겨 놨던 비천상이 에밀레 에밀레 노래를 했다.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비천상이 노래를 하는데 그 노래가 경주 들판의 곡식들 나락에 알알이 박혔다. 그때도 지금 이때처럼 황금으로 벼가 익는 들판이었다. 종소리가 퍼지면서 나락들 알알이에 에밀레 종소리가 박히는 것을 봤다. 알알이 박혔다.
화엄경을 한번 이렇게 팡 쳐 놓으니까 천년만년 지나면서 중생들의 가슴에 땅 박히는 것이다.
제가 통도사에 있을 때가 20대 때인데 글을 한 개 썼다.
단성낙조(丹城落照)는 자하사(紫霞斜)라.
선찰모종(禪刹暮鐘)은 도만가(到萬家)라.
영축산을 단성이라고 한다. 단성낙조는 영축8경 중의 하나다. 영축산의 그 붉은 해가 탁 단성낙조 자사 보라빛 구름이 비껴 서 있는데 저무는 통도사 저녁 종소리는 사람들 가슴가슴 마다 파고 드는구나. 아따 좋다.
이제는 화엄경이 이렇게 파고 든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월명사 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련다’ 하는 제망매가.
첨성대에서 우리가 월명스님의 재를 모시는데 그날이 9월 보름이었다.
향가를 남긴 스님이 몇 분 안 되잖는가. 신라스님에게 재를 모셨다. 달은 얼마나 휘엉청 밝게 쏟아지든지 그 에밀레 종소리를 듣고 익어가던 벼이삭이 또 그 달빛에 젖어들었다. 신라의 달밤, 경주 분들은 좋겠다.
넘어가겠다.
지금 여기 변화장엄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 느낌으로 이렇게 보면 곳곳에서 법문이 울린다.
두부 하나를 먹어도 울리고 된장 하나 먹어도 울리고 숟가락도 노래하고 젓가락도 노래한다.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일체무상법장엄(則得如來一切無上法莊嚴)이니라 : 여래의 위없는 법의 장엄을 얻느니라.
오늘 이제 왜 빨리 넘어가는가 싶으실 것이다.
각자 공부하시는 것은 이런 유인물로 대신하고, 진도를 막 나가버리는 것이 너무 지루하다 싶으면 에밀레종 얘기 한번 말씀드리고 그렇게 진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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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연행 작성시간 24.10.28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비천상이 노래를 하는데 그 노래가 경주 들판의 곡식들 나락에 알알이 박혔다. 그때도 지금 이때처럼 황금으로 벼가 익는 들판이었다. 종소리가 퍼지면서 나락들 알알이에 에밀리 종소리가 박히는 것을 봤다. 알알이 박혔다... 그 울림이 제게도 오는 듯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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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法雨性 작성시간 24.10.28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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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眞 覺 心 작성시간 24.10.28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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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묘덕 작성시간 24.10.28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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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대등행 작성시간 24.10.29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