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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08)

작성자나성거사|작성시간24.09.27|조회수33 목록 댓글 0

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08)

 

“世尊 我常獨處山林樹下 若坐若行 每作是念

<我等 同入法性 云何如來 以小乘法 而見濟度>

是我等咎 非世尊也 所以者何 若我等 待說所因

成就阿褥多羅三藐三菩提者 必以大乘 而得度脫

然 我等 不解方便 隨宜所說 初聞佛法 遇便信受 思惟取證

 

“世尊 我從昔來 終日竟夜 每自剋責

而今從佛 聞所未聞 未曾有法 斷諸疑悔 身意泰然 快得安穩

今日 乃知眞是佛子 從佛口生 從法化生 得佛法分

(譬喩品 第 三)

 

●이 경문에 대한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홀로 숲속의 나무 아래 머물면서 좌선하거나 경행하면서 매번

이러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다 같이 법성에 들어 갔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소승법으로 우리를 제도하시는가?’이것은 저희의 잘못이지 세존의 잘못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저희가 부처님께서 숙세의 인연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한다면, 반드시 대승법으로 수행하여 제도되고 해탈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근기에 따라 설하시는 방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최초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법(四聖諦法)과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들여 사유하고 수행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종일 스스로를 다스리고 자책하였으나,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이전에 듣지 못한 미증유의 법을 듣고 모든 의심과 후회를 끊었으며, 몸과

마음이 즐거워 안온한 경계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비로소 저는 진정한 불자라는 것을

알았으며, 저는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불법으로부터 나왔으며, 부처님 법신 일부분의

기를 얻었습니다.

 

* * * * * * * *

 

★문제의 경문: 若我等 待說所因 成就阿褥多羅三藐三菩提者 必以大乘 而得度脫

 

1. <우리도 다른 불자들과 꼭 같이 법성을 익혔다. 그래서 불법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다.

대승법이 그처럼 궁극의 법이라면 왜 부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소승법으로

제도하셨는가?>

 

사리불들이 지금까지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성문이 되고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생노병사를 뛰어넘고 최후신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2. <이것은 우리들의 잘못이었다. 세존께서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是我等咎 非世尊也).>

 

이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3. <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所以者何)>

 

바로 이 부분,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을 사리불이

부처님께 고백하며 참회하는 이 장면에서 覺山 정원규님은 방향을 잃고 헤맨다.

 

4. 若我等 待說所因成就阿褥多羅三藐三菩提者 必以大乘 而得度脫

(사리불의 참회)

 

<만약 저희가 부처님께서 숙세의 인연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한다면, 반드시 대승법으로 수행하여 제도되고 해탈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

 

법화경을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공부해 본 독자라면 위와 같은 저자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금세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정원규님은 이 경문의 번역에 두 가지 치명적인 오류를 저질렀다.

첫째, 이 경문의 Key Word 가 되는 글자, <待>의 의미를 억지로 꿰맞추었다.

둘째, 글자, <因>의 의미는 잘못 짚었다.

하나하나 짚어본다.

 

a) 글자, <待>는 <~를 기다린다>는 의미도 있고, <~을 마주한다> 혹은 <대접한다>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는 <~을 대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정원규님은 이 글자를 <듣는다>라는 의미로 풀고 있다. 이 글자에 그런 의미는 없다.

또 시중의 대부분 번역서는 이 글자를 <~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풀고 있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b) 글자, <說>은 부처님의 설법을 말한다. 맞다.

c) 글자, <因>은 <~에 말미암을>, <~에 의지할> 등의 의미다.

정원규님은 이 글자를 <因緣>이라 풀었는데, 억지 춘향이다.

 

정리하면, <만약 우리들이 무상정등정각의 성취에 바탕을 두고 부처님의 설법을

대했더라면> 이라는 가정문에, <틀림없이 대승의 가르침으로 해탈에 이르렀을 것이다>라는

본문이 된다.

 

다시 말해, 사리불들은 지금까지 오로지 성문이나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자기 한 몸만 잘

챙기는 것을 목표로 수행하고 있었다, 는 것이고,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든가, 불국토를 만들어야겠다, 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는 말이다. 말하자면 소승법만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고, 대승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잠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리불들의 참회의 말이다.

 

<是我等咎 非世尊也>라는 사리불의 말은 이런 연유로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소승의 가르침만 염두에 두고 성문이나 아라한을 성취한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던 우리의 잘못이었다. 모름지기 보살이 되어야 한다고 설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는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나성거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저가 깊은 산속 나무 아래서 늘 홀로 지내는 동안,

좌선을 하면서도 또 경행을 하면서도, <우리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꼭 같은 법성(法性)을 익혔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소승의 이치로 우리들을 제도하시는가>라는 생각을

잠시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희들의 잘못된 생각이었을 뿐, 결코 부처님의

가르침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가.

만약 저희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취에 바탕을 두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했더라면, 저희들은 틀림없이 대승의 이치로

해탈에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저마다 지닌 근기에 따라 펼치시는 가르침이

부처님의 방편설법이라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방편으로 펼치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저희들은 그것을 저희들 편한대로 믿고 받아들였으니, 바로

깨달음을 성취한 것이라 굳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래 전부터 해가 지고 밤이 새도록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미증유한 가르침을 듣는 순간, 모든 의문과 한탄이 잘려나가

몸도 마음도 홀가분할 뿐더러 더없이 안온합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삶을 얻어 태어나고

여래의 참된 이치를 따라 다시 태어나서,

마땅히 누려야 할 깨달음의 몫을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참된 불자(佛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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