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10)
“世尊 大富長者 卽是如來 我等皆似佛子 如來常說我等爲子
世尊 我等 以三苦故 於生死中 受諸熱惱迷惑 無知 樂着小法
今日世尊 令我等 思惟蠲除諸法戱論之糞
我等 於中 勤加精進 得至涅槃一日之價
旣得此已 心大歡喜 自以爲足 便自謂言
<於佛法中 勤精進故 所得弘多>
(信解品 第 四)
●이 경문에 대한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부유한 장자는 즉 여래이며, 저희들 모든 성문의 사람은 부처님의 아들과
같으니,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저희는 모두 불자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 가지의 괴로움 때문에 생사중에서 많은 고뇌를 받았으며, 미혹하고
무지하여 작은 법을 좋아하고 집착하였습니다. 오늘 세존께서는 저희에게 사유하여
모든 법의 희론의 똥을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 가운데서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하루 노임인 열반을 얻었습니다.
이미 이것을 얻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스스로 만족하면서 곧 스스로 말했습니다.
‘불법 가운데서 정진한 까닭으로 얻은 것이 매우 많다.’
* * * * * * * *
★문제의 경문: 大富長者 卽是如來 我等皆似佛子 如來常說我等爲子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번역서(한국어, 일본어, 영어 번역본)는
위 경문에 쓰인 글자, <似>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필자가 문제 삼고 있는 覺山 정원규님 또한 마찬가지다.
이 글자, <似>는 <가짜>라는 의미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한데 속을 보니 아니더라, 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껍데기를 보니 진짜로 보이는데 포장지를 뜯어보니 영 아니다, 라는
의미의 글자가 바로 <似>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단어 <似而非>의 바로 그 <似> 말이다.
위 경문에서 <似佛子>는 <포장지만 화려한 가짜 불자>라는 뜻이다.
겉을 보니 진짜 불자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니 영 아니다, 라는 거다.
<我等皆似佛子>는 <우리 모두 겉만 그를 듯한 불자였다.>라는 말이고,
이어지는 <如來常說我等爲子>는 <여래께서는 (진짜)불자가 되라고 늘 말씀하셨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爲>는 <된다>는 의미고, <子>는 앞에 나오는 <佛子>를 줄여서 쓴 글자다.
위 문제의 경문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장자는 (겉을 보나 속을 보나) 바로 여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는
불자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가짜였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진짜 불자가 되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불자입네라고 폼만 잡았지 실제로는 엉터리 불자였습니다, 라는
사리불의 참회다.
대가입네라고 폼만 잡았지 실제로는 엉터리 대가였습니다, 라는
대가님의 참회, 기대해도 될랑가?
한자를 차용하여 그들의 글자를 만든 일본 사람들이 <似>를 <同>이나 <如>와
같은 의미로 풀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 대책 없이 이런 엉터리를 영어로 번역하여 서방세계에 뿌렸다는 것은
필자 홀로 이해한다하여 끝날 문제가 아니다.
더욱 한문을 정식으로 공부하셨다는 분까지 나서서 이런 엉터리를 그대로 베꼈다는
사실을 두고 나성거사 땨위가 무슨 맣을 하겠는가?
●이 경문에 대한 나성거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세존이시여, 거부장자는 여래와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모두 불자가 되지 못하고 불자의 흉내나 내고
있었으니 여래께서는 항시 저희들을 두고 (진정한) 불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삼고(三苦)로 인해 죽으나 사나 온갖
번뇌와 미혹과 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하찮은 소법(小法)에
목을 매고 있었습니다. 오늘 세존께서는 저희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하셨으니, 제법(諸法)을 두고 즐겼던 온갖 말장난은
한갓 똥무더기에 불과함을 깨우쳐 주시고, 또 그것을 말끔히
쓸어 없애도록 하셨습니다.
지난 날 저희들은 그와 같은 말장난 가운데서 열심히 정진하여
하루치 품삯 정도에도 못 미치는 열반에 이르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열심히 정진하여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