覺山 정원규님의『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 초판 1쇄』, 이건 아니다(12)
(Part 1)
佛勅我等 說最上道 <修習此者 當得成佛>
我承佛敎 爲大菩薩 以諸因緣 種種譬喩
若干言辭 說無上道
(Part 2)
諸佛子等 從我聞法 日夜思惟 精勤修習
是時諸佛 卽授其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Part 3)
一切諸佛 秘藏之法 但爲菩薩 演其實事
而不爲我 說斯眞要
(Part 4)
如彼窮子 得近其父 雖知諸物 心不希取
我等雖說 佛法寶藏 自無志願 亦復如是
(信解品 第 四)
(註: 설명의 편의상 위 경문을 4 Part로 나누었다.)
●이 경문에 대한 覺山 정원규님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Part 1)
부처님은 저희에게 명하시어
최상도를 설하라고, 이것을 수습하는 자는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라고 하셨나이다.
저희들 부처님의 가르침 받아 대보살을 위해
모든 인연과 갖가지의 비유와
약간의 언사로써 무상의 도를 연설하였네.
(Part 2)
모든 불자들은 저희에게서 불법을 듣고
주야로 사유하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수습하면
이때 시방 제불께서는 그에게 수기 주시기를
너는 미래세에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Part 3)
일체 제불의 비밀한 법보는
오직 보살 위해 그러한 진실을 연설하시고
저희들 위해서는 진실한 법 설하지 않으셨네.
(Part 4)
마치 저 아들과 같이 그의 부친을 친근하게 되어
모든 재물을 알지라도 가지려고 바라지 않듯이
저희들도 비록 불법의 보물 창고를
취하려는 뜻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네.
* * * * * * * *
★문제의 경문: 위 경문 전부
<譬喩品 第 四> 후반부에 등장하는 경문이다.
필자가 서점에 들러 불교 코너에 <법화경>이라는 타이틀이 보이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의 번역문이다.
누렇게 변색된 삼류 코미디 대본을 본 기분으로 서점을 걸어 나온다.
한국서점에서나 일본서점에서나 미국서점에서나 마찬가지다.
이 부분의 번역문은 한결같이 번역자의 무성의, 무개념, 무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저자 覺山 정원규님의 위 번역문 또한 다를 바 없다.
파트별로 하나하나 살펴본다.
Part 1
1.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대승의 가르침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다. 듣고 싶지도
않았다(無有志求, 無有志願).
2. 그런 사리불이 대보살들을 앉혀 놓고 모든 인연과 갖가지의 비유와 수많은 언사를
구사하여 최상도(最上道)를 설했다.
3. 스스로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명을 받고 그랬다.
이상이 覺山 정원규님을 포함한 시중의 모든 번역자, 해설자들이 번역해 놓은
Part 1의 내용이다.
말하자면, 사리불은 자기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은 대승의 가르침을
대보살들을 앉혀놓고 설했다는 것이다. 모든 인연과 비유와 언사를 사용해서 최상도를
대보살들에게 설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부처님의 명령이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코미디라 할 만하지 않는가?
첫째, 글자 <勅>에는 <엄하게 질책한다>라는 의미보다 더 중요한 <달래고 타이른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무시하거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둘째, 그들은 또 <說最上道>에서 <說>한 주체가 사리불이 아니라, 佛(부처님)이라는 것을
지금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나(즉 사리불)에게 엄명을 내려, (보살들을 위해) 최상도를 설하라고
하셨다>가 아니라,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다독이며(佛勅我等), (모름지기 보살이 되라고) 최상도를
설하셨다(說最上道)>라고 번역해야 법화경의 아귀가 맞아들어 간다는 것을 아직까지
모르고 헤매는 것 같다.
覺山 정원규님은 앞글에서 본 바와 같이 최상도를 설한 주체가 사리불이 아니라
부처님이라고 정확하게 번역했었다. 그런데 여기 게송 부분에서는 반대로 번역하여
삼류 코미디 대본을 쓰고 있는 대가님들의 대열에 끼어든 꼴이 되어버렸다.
셋째, <我承佛敎 爲大菩薩 以諸因緣 種種譬喩 若干言辭 說無上道>에서
<爲大菩薩>은 <대보살이 되다>라는 의미다. <대보살을 위하여>가 아니다.
또 <說無上道>에서 동사 <說>의 주어는 여기서도 당연히 부처님이다. 사리불이 아니다.
문법적으로 보면, <爲大菩薩> 이하의 문장은 <佛敎>를 수식하는 형용사구다.
이 문장을 분해하여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인연과 비유와 언사를 사용하여 무상도를 설하시며
(以諸因緣 種種譬喩 若干言辭 說無上道)
2) 대보살이 되라는(爲大菩薩)
3) 부처님의 가르침을(佛敎)
4) 우리는 받들었다(我承.)
이 부분을 정리하여 평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닦고 익혀라. 그러면 틀림없이 성불한다”고 하시며 우리를
다독이고 최상도를 설하셨다.
나(사리불)는 온갖 인연과 비유와 언사로 무상도를 설하시며 대보살이 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었다.
Part 2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포인트는 2 개다.
첫째, <諸佛子等>에서 <諸佛子>다.
여기서 <諸佛子>라 함은 사리불을 포함한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 전부를 가리킨다.
둘째, <從我聞法>에서 글자 <從>이다.
여기서 <從>은 <~을 따라> 또는 <~와 함께>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사리불이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니까 모든 불자들도 함께 사리불을 따라 열심히 들었다는 말이다.
기존의 번역서처럼 <나(즉 사리불)로부터 법을 들었다>라고 하면, 법화경의 취지와 내용은
시중의 번역서처럼 삼류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이 부분을 정리하며 평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불자들은 다 함께 나를 따라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주야로 사유하며 용맹정진했다.
그렇게 하니 모든 부처님들은 “그대는 미래세에 틀림없이 성불한다”고 수기를 주셨다.
Part 3
이 부분 역시 2 개의 포인트가 시선을 끈다.
첫째, <但爲菩薩>는 <오직 보살이 된다>라는 의미다. 시중의 코미디번역에서 볼 수 있듯
<오직 보살을 위해>라는 뜻이 아니다.
둘째, <而不爲我>에서 <我>는 <아집덩이>라는 의미다. 시중의 모든 번역서에서처럼
<나>라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펼치시는 이유는 오직 보살이 되라는 것이지, 가르침을
듣고 아집덩어리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문이 되고, 아라한이 되고, 벽지불이
되어 자기 혼자만의 깨달음만 생각하는 것은 <我>에 집착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고,
오로지 보살이 되어 내 자신은 물론 일체중생들까지 모두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한다, 는
말씀이다.
이 부분을 정리하여 평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부처님들이 비장하고 계신 법은 오로지 보살이 되라고 참된 뜻을 연설하시는 거다.
아집덩이가 되라고 참된 요체를 설하시는 게 아니다.
Part 4
이 부분 <雖知諸物>에서 <知>는 <관리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경의 취지가 풀린다.
또 <我等雖說>에서 <說>은 <이러쿵 저러쿵 말하다>라는 뜻이다.
이 부분을 평문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저 궁자가 아버지를 모시고 온갖 물건을 관리하면서도 제것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듯이, 우리 또한 불법이니 보장이니 입에 올리면서도 스스로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은
한 꼭지도 없었으니 저 궁자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이 경문에 대한 나성거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Part 1)
이 가 르 침 갈 고 닦 세 틀 림 없 이 성 불 한 다
부 처 께 서 우 리 들 을 다 독 이 고 타 이 르 며
무 상 심 심 미 묘 한 법 최 상 도 를 설 하 실 새
모 든 인 연 온 갖 비 유 많 은 언 사 펼 치 시 어
대 보 살 이 되 라 시 며 무 상 도 를 설 하 시 니
부 처 님 의 이 가 르 침 우 리 들 이 이 어 받 고
(Part 2)
모 든 불 자 우 리 따 라 이 가 르 침 듣 고 나 서
밤 낮 으 로 사 유 하 고 열 심 수 행 정 진 할 적
다 가 오 는 미 래 세 에 틀 림 없 이 성 불 한 다
때 맞 추 어 부 처 님 들 우 리 들 게 수 기 할 새
(Part 3)
모 든 부 처 비 장 하 신 가 르 치 심 하 나 하 나
애 오 라 지 보 살 되 라 그 실 상 을 펼 침 이 요
내 한 몸 만 잘 챙 겨 서 아 집 덩 이 만 들 고 자
그 가 르 침 참 된 요 체 설 법 한 게 아 니 었 소
(Part 4)
제 아 비 를 앞 두 고 도 몰 라 봤 던 궁 자 아 들
비 록 재 물 맡 고 서 도 취 할 마 음 없 었 듯 이
불 법 이 다 보 장 이 다 비 록 입 에 올 렸 지 만
우 리 또 한 그 와 같 아 취 할 마 음 없 었 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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