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잠시 천상에 다녀온 듯 했습니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리허설부터 보겠다는 꿈으로 열심히 갔는데 역시나 예술의 전당, 국립국악원이 있는 서초동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서두른 덕에 넉넉하게 가서 텅 빈 무대 구경도 하고
수륙재 괴임이며 준비된 악기, 그리고 주련에 무슨 글씨가 써져 있나도 구경했습니다.
보면대 위의 가사집 같은 경전도 살짝 구경하고요.
30분 전에는 예악당 규칙상 모두 밖으로 나가달라고 해서
잔디밭에 나가서 잠깐 아이패드로 원고교정을 하고 있는데
합석하자고 말씀하신 어떤 거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보살님, 70대가 넘으면 건강이 확 휩니다.”
아마도 나눠주신 소원지에 뭔가를 써야할 때 제가 살짝
넘겨 본 걸 아셨나 봐요.
그분은 희미한 글씨로 ‘건강성취’라고 휘날려 쓰셨어요.
난데없는 건강 이야기에 저도 속으로는
‘이거보다 더 아파지나요?’거의 울 것 같은 생각이었지만
말씀드리지는 않았어요.
지난 금요일(6일) <염화실TV> 개국 4주년이 너무 기뻤는데
법문 끝나고 전화가 왔길래
‘내가 꼬박 4년간 화엄경을 공부했다고’ 하고 마구 자랑을 하다가
‘근데 나 제주도 한 번 못 가봤다고’ 맥락없이
하소연을 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더랬습니다.
북이 쳐지고 소라 소리 울리고 태평소가 불리우고 그때부터 두 시간 동안
저는 정말 화엄경에서 말하는 수미산정이나 도솔천 천상이나
높고 높은 곳에 다녀온 듯했습니다.
소리뿐만이 아니라 사물소리, 춤 모두모두 최고였어요.
특히나 취주악기를 분 스님은 누구신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어장스님께서 도량을 깨끗이 하며 붓으로 감로수를 뿌려주실 때, ‘건강’이라고 썼던 거사님의 기도가 성취될 거라고 믿어졌어요.
저도 기도지에 고심을 하다가 ‘건강, 행복’이라고 썼기 때문에 그중에 건강이 성취될 거라고 알았고요. (아, 행복도 얻었네요.^^)
눈을 감고 어아우어우와우와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요 근래의 긴장이 다 풀리고 너무나 평온해졌어요.
무슨 생각에서 샀는지 젊은 시절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나온 송암스님의 범패 테이프
두 개를 사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그 테이프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어요. 종로 어디 레코드 가게에 있던 범패테이프는
그것 뿐이라 순서대로 사지 못해서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했던 기억이 어렴풋해요.
우와우와부터 숨이 잘 쉬어지며 집에 가면 분명히 제가 그 소리 따라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지요. 그리고 잠자기 전에 유튜브에서 그 소리를 찾아들을 거라는 것도요.
정말 친절한 공연이었어요.
깨끗한 화면으로 설명이 나오고, 한마당이 끝날 때마다 정오스님께서 나오셔서 다정한 설명을 해주셨어요.
또 다같이 대비주를 독송하는 시간도 있었고요.
그리고 그 ‘우와우와’ 하는 특별한 고음들이 나오는 소리가 짓소리이고 고난이도의 소리이며, 선정에 깊이 들어서야 나오는 소리라고도 정오스님이 설명해 주셨어요.
박자를 맞춰주는 악기 반주 없이 소리로만 소리를 기억해야 하니까 잘 못하면 쉽게 박이 빠지거나 음이 이탈되는 어려운 소리라고요.
이 소리는 제가 들어본 가사없이 구음으로 진행되는 소리 중에 가장 담담하며 가장 편안한 소리였어요.
할 수 있는 온갖 공양으로 도량을 깨끗이 하고, 꽃을 뿌리고 감로수를 뿌린 후에 비로소 등장하시는 비로자나부처님!
두 시간이 한 순간 처럼 짧게 느껴졌지만,
이렇게나 좋은 공연을, 아마도 평생 본 공연 중에 최고의 공연을 저 혼자만 보는 일이 안타까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라 하지만 어장스님의 팔순 기념인데 정오스님이 팔순이 될 때까지는 못 보는 공연인가?'
미안한 생각은 기우였고, 내년 6월 1일에 하루종일 공연이 홍원사에서 있을 거라고 정오스님께서 친절하게 마지막에 알려주셨어요.
경제어산수륙재는 서울시무형문화재라서 필수적으로 한 해 한 번의 공연은 해야 한다고요.
다행입니다.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신 입장표는 인터벌도 없는 공연에서 재입장을 할 때
필요한 종이가 아니라 (인터벌도 없고 꼬박 공연을 했는데 그것도 맛봬기라고요. 원래는 3일을
해야 하고 적어도 하루 종일은 해야 한다고요.)
그것은 바로 선물교환권이었어요.
무료공연인데 놀라운 선물까지.
국립국악원에서 기획한 구술총서로서 동주스님의 인터뷰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멋진 선물도 있었지만요.
거의 빨려들 듯이 책을 읽으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예술의 전당 공연은 아무리 좋은 공연을 봐도 돌아오는 길이 힘들어서 감흥을 다 까먹는다고 늘 불평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느라 더욱더 공연의 감흥이 깊어졌습니다.
아 이런 스님이 계셨구나, 하고 인생의 보물을 챙겼습니다.
“자 나는 너에게 선물을 다 줬다.”
부처님께서 살짝 등을 밀어주시는 듯한 하루.
1990 몇 년도에, 친구와 함께 김밥을 싸들고 봉원사에 가서 영산재 구경을 하고 단청보수하는 것도 넋놓고 보았던 그 공덕인연으로, 그때는 몰랐던 오늘의 천상휴가를 선물받은 것 같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마다 단체로 오셔서 정말 모두가 축제처럼 행복해하는 공연이었어요.
저는 혼자 갔지만, 포항에서 오신 무구스님도 뵈었고,
앞으로 당분간 범패소리에 푹 빠질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장르, 새로 공부할 거리를 얻었어요.
아침에 큰스님께서 불교에 예술이 있고...모든 것이 있다고 하신 법문과도 맞닿습니다.
새로 알게 된 범패를 더 깊게 알고 싶어서라도
화엄경 공부를 더 진지하게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동주스님, 어린 날, 아프셔서 구병시식을 하면서 죽으면 영혼 출가라도 시켜달라고 하셨었다고요.
다시 건강해지면 꼭 출가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셨고, 불교의례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배우셨고, 봉원사 송암스님이 후계자로 극진히 챙겨 주셨는데 선방에 가겠다고 하니 먼 산을 보셨었다고요. 하지만 스승은 공부하겠다는 제자를 차마 말리지 않고, ‘그러면 다시 여기 오지 마라. 사람들이 뭘 얻겠다고 다시 왔다고 욕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셨다고요.
10여년 간 전국의 선방을 돌으셨고, 조계종으로 개종을 하셨다고요.
그러면서도 오늘 공연을 두 분 스승의 영전에 바치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어산작법에 있어서 2인에 들지만 조계종에서는 1인자”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시는 동주스님, 그렇게나 짱짱하신 목소리, 내년에도 꼭 다시 현장에서 듣겠습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산수연을 축하드립니다.
범음, 범패를 산 속의 고기 모양을 소리로 형상화했다고 해서 어산이라고 한다네요.
동주스님의 인터뷰집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3분의 2를 읽었어요.
3분의 1은 천천히 아끼며 읽겠습니다.
유튜브에 올려진 동주스님의 강의도 삼영음반에서 시리즈로 올려져 있네요.
다음달에 학무거사님을 만나면 이야기거리가 많겠습니다.
부처님 공부 열심히 했던 덕분에 4년만의 멋진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으니까요.
아 송암스님의 <상주권공> 너무 좋습니다.^^
(스승이 컨디션이 좋은 날만 골라서 동주스님이 릴테이프로 직접
녹음하신 범음이라고요^^ 기록의 힘!)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自明華 작성시간 24.09.10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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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일심행 작성시간 24.09.10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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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심 작성시간 24.09.10 훌륭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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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묘심행 작성시간 24.09.12 혜명화님~~~ 공연 후기를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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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묘덕 작성시간 24.09.13 한평생을 하여도 다 못배운다는 어산 어장을 팔순 노스님께 공연을 하셨다니 놀라움과 고마움을
함께 예배드립니다 저 역시 범패 공부를 조금 해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보살님의 자세한 현장 공연후기 내용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