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2회 탄허 華嚴思想의 특징, 一乘性起. - 3
일본에서는요? 한 분이 번역하시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유교전공ㆍ불교전공ㆍ노장전공. ←이 세 분야에 전공하는 분들이
모여서 함께 통현론을 번역하다가 실패했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 스님께서 혼자서 이것을 번역을 다하셨다.”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그래서 “초빙을 해라.” 해서,
일본 동경대학교의 초빙을 받아서 가셨습니다.
가셔서 처음에는 의아해 했겠지요.
그때 일본에 中村元(중촌원 = 나카무라 하지메)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불교학자입니다.
나카무라 하지메 같은 분이 교수로 있었고, 그때 당시에 일본의 불교학ㆍ
사상계의 대가들이 전부 다 보러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탄허스님하고 문답을 했답니다.
너무 명쾌하니까 일정을 바꿔서 일주일로 연장했대요.
일주일 연장해서 “그냥 탄허스님 법문 듣는 것으로 하자.”
그래서 일주일 동안 탄허스님이 번역하셨던 것뿐만 아니라,
화엄경 사상에 대해서, 유ㆍ불ㆍ선 전체를 쫙~~ 해서 강의를 하시고,
옆에서 통역을 해주시고 그랬답니다. 그랬더니 일주일이 끝나고 나서,
기라성과 같은 일본의 학자들이 3배했답니다.
일본의 홍법원에 계시던 숭산스님이 탄허스님하고 굉장히 아주
친하셨던 후배스님이 숭산스님이셨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숭산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일본학자들은 얼마나 자존심이 세고 콧대가 높은데,
총을 들이대도 절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스님강의를 듣고 절하는
것을 보니까 너무나 기쁘고 통쾌하다.” 고 그러셨답니다.
이때, 김지견 선생이 너무나 안타까와 했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초반인데요.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놓든지, 영상으로라도 남겨놨으면 얼마나 좋겠
나? 전 세계의 불교학의 최고의 대가라고 하는 일본학자들이 다 같이 일
주일 강의를 듣고 스님께 3배를 하는 그 모습을 남겨놓지 못해서 너무
안타깝다.” 이래서
그때에 일본에서 비디오 촬영하는 기계를 시자분에게 주면서,
“이제 어디가도 스님 가시는 곳에 뭔 일이든 녹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둬라.” 이렇게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