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회 탄허스님의 기본사상 – 3
그런데 중용 안에 1장에 들어오면,
中에 대한 또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로애락지미발위지중)이라.
發而皆中節謂之和(발이개중절위지화)다.
기쁘거나ㆍ노하거나ㆍ슬프거나ㆍ즐겁거나 하는 것이 未發.
일어나지 아니한 것을 謂之中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감정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인간이 未發로서만 살 수가 없지 않습니까?
“喜怒哀樂” 감정이 한번 일어납니다.
일어났는데,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이라.
절도에 딱 들어맞았을 때 謂之和 : 그것을 이름하여 和라고 한다”
감정이 일어난 것을 절대절명의 순간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딱 들어맞게 딱 멈출 줄 아는 그 도리를 “和”라고 그럽니다.
이것이 아주, 中과 和라고 하는 것을,
中 → 未發謂之中(미발위지중)이요.
和 → 已未發謂之和(이미발위지화)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已未發謂之和 : 이미 마음이 발했을 때 謂之和다.
마음이 일어났을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의 적당한 조화
하모니입니다.
未發謂之中 : 평상시에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조에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왕의 마음이, 감정이 함부로 자주 일어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정이 흔들려서 마구 움직이지 않게 면류관 같은 것을
쓰는 겁니다.
왕비도 항상 갓채 라든지 아주 힘들게, 움직이기 힘들게 하는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그런 대례복들을 입는 이유가 엄격하게
감정을 관리하기 위한 겁니다.
종묘제례악이 판 소리에 비해서 재미가 없습니다.
뚜~~~~~~ 끝까지 그냥 갑니다. 재미가 없는 음악입니다.
그것을 아악이라고 해요. 그것을 정악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왕이나 리더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분들의 마음이 희로애락에 함부로 옮겨 다니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未發謂之中을 잘 유지할 수 있느냐?
마음이 일어났을 때 조화롭게, 절도있게 해서 그런 다음에 다시
未發謂之中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
發而皆中節 ←여기에서 中은 중국어 말하면 四聖입니다.
절도에 적중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뭐냐 그러면 대나무로 보면 중간ㆍ중간에 마디가
있지 않습니까? 節 ←이것이 마디입니다.
절도에 딱 들어맞게, 감정에 치우쳐서 계속 나가버리지 않고 어느
적정선에서 딱 멈출줄 아는 브레이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 바로 和의 원리입니다.
中ㆍ和 ←이 두 가지를 우리가 불교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유교만 공부하고 출가한 저에게는 이러한 지식들이 처음엔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