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회 탄허스님의 기본사상 – 4
그런데 탄허스님이 강의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나하면,
유교 중용 1장을 딱 강의를 하시하면서,
“中은 佛性之異名(불성지이명)이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희로애락 감정이 일어나지 아니한 中을 佛性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佛性이라고 하는 것!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근본자리! 근본 자성자리!
근본 법성ㆍ본성ㆍ자성이라고 하는 佛性의 다른 이름을
유교에서는 “中”이라고 했다.” ←이렇게 딱 강의하는 것을 들었
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에
“和”라고 하는 것은 뭐냐?
“六度萬行之總目(6도만행지총목)이다.” 그랬습니다.
六度萬行!
六度는 6바라밀이고요. 萬行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실천 보살행인
것이지요. ←“이것의 總目이다. 전체적인 總目이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6도 만행의 총목을 和라고 한다.”
“감정이 일어났을 때,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는 佛性 상태인데요.
그것이 일어나서 자비행을 하고ㆍ실천행을 하고ㆍ보살행을 하고,
이렇게 하는 모든 6바라밀과 보살행의 總目을 和라고 한다.” ←이렇게
법문하시는 것을 제가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디 이런 말이 있느냐?’ 말이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탄허스님은 무엇이라고 하셨나 하면,
“蘇子由(소자유)가 이런 말을 했다.” 이럽니다.
소자유라고 하는 인물은 “소식”이라고 하는 소동파의 동생인데요.
“蘇轍(소철)”이라고 하는 蘇子由가 있습니다.
소철이라고 하는 인물은 중국의 유명한 唐宋八大家(당송8대가)의
한 분이지요.
소철은 蘇軾(소식)이라고 하는 형이 있었습니다.
蘇洵(소순)이라는 아버지와 더불어서 대단한 대 학자였습니다.
한문 문헌을 볼 때 우리가 반드시 봐야 될 중국의 최고의 문장들을
모아놓은 古文眞寶(고문진보)라는 책이 있는데요.
중국에서는 그것을 고문관지라고 합니다.
↑여기에 소식과 소철이 항상 자주 등장합니다.
소식을 蘇東坡(소동파)라고 하고, 소철을 蘇子由라고 그럽니다.
소식과 소철이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우리나라에 3국사기를 쓴 김부식 있지 않습니까?
김부식이라는 분의 아버지께서 소동파처럼 되라고 해서,
소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동생은 김부철이라고 지어줬습니다.
그래 소식과 소철 형제의 이름을 지어준 그런 예가 있을 정도로
대단했던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유교의 中은 佛性之異名이요, 和는 六度萬行之總目이다.” ←이 말씀
을 탄허스님이 “소자유가 그런 말을 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
다. 저는 본 적이 없는데요.
전문적으로 동양학을 연구 했던 제가 ‘이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중용의 어떤 주석서에도 이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님은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바로 소철 집을 샀습니다.
“소철의 문집” 전체를 샀어요. 사서 뒤져도 그 내용이 나오지 않아요.
소철 집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 예전에 혹시 어른들이 전고에 약하고 주석에 조금 약하실
수 있으니까 소동파가 말씀한 것을 탄허스님이 혹시 잘못 아신 것 아
닌가?’ 해서 소동파 전집을 또 다 뒤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찾지 못하다가, 몇 년 후 어느 날 갑자기 소철집에 없는
문헌을 발견했는데요.
그것이 소철이 지은 “노자 신해”라고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소철이 “노자도덕경”에 대해서 새롭게 주석을 달았던 책인데
요. 여기에서 소자유의 실력이 발휘되는데, 유교ㆍ도교ㆍ불교를 회통
해서 주석을 달아놨습니다. 거기에
“中은 佛性之異名이요, 和는 六度萬行之總目이라.”는 말씀이 맨 뒤에
발문에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구절을 발견하고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소철이 “노자 신해”를 써서 자기 형에게 보내 줬더니,
소동파가 극찬을 합니다. ‘어? 소철집엔 이것이 없었는데.’하고,
“노자 신해”라는 책을 열심히 찾게 됐지요.
결국은 소동파 문집을 꼼꼼하게 보다가 소자유에게 노자 신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노자신해에서 제가 찾아낸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유교선비 집안에서 한학을 전공해서 중용문장을
달달 외우다시피 공부를 했는데요.
저는, ‘왜? 이러한 소자유의 주석은 보지 못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봤더니 이유를 알았습니다.
朱熹(주희)라고 하고 하는 朱子學(주자학)!
朱子가 소동파 조금 뒷 세대 분입니다.
12세기에 소식ㆍ소철이 살던 바로 뒤에, 불과 몇 10년 뒤의
朱子가 소철이 지은 “노자신해”에 대해서 굉장한 비판을 해놨습
니다. “소학문 노자해” 라고 해서,
“노자의 소자유의 주석은 굉장히 문제가 많다. 유교를 왜 불교하고
섞어서 주석을 하느냐?” 비난을 아주 해놨습니다.
그러면 조선 조 우리 선비들이 이것을 보실 수 있었겠습니까?
거의 금기서에 해당했다고 봐야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