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9회 유교와 불교의 회통 2 - 5
대학에서 중요한 것이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고 하는 것 이전에, “格物致知(격물치지)” 라는 것이 있습니다.
格物致知라고 하는 것의 致知를 왕양명. 명나라에는 주자 이후로
왕양명이라고 하는 대학자가 있었습니다.
주자학에 대별해서 양명학이라고 했잖아요.
致知를 왕양명이 “致良知(치양지)”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왕양명의 내용이 아주 굉장히 선적이고, 불교적입니다.
주자보다 양명이 훨씬 더 선에 가깝거든요. 불교적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선조에는 양명학이 斯文亂賊(사문난적)이라고 해서
공부할 수 없게 어느정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선에도 양명학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용이 불교와 굉장히 가깝
습니다.
중국에서는 주자학이나 양명학이나 전체가 다 유학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조선에 있어서는 불교국가인 고려를 역성혁명을 해서 조선
이라고 하는 유교국가를 만들었기 때문에, 불교와 가까운 양명학은 똑같
은 유교 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유학이라 하더라도 불교에 가깝기 때문에,
좀 치지도외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탄허스님은 유교와 불교를 회통하면서 양명이라고 하는 분을
굉장히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와 굉장히 가깝고, 유교와 불교의 회통에 있어서는, 양명이
훨씬 더 유리하고 서로 친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왕양명 시를 늘 거론했던 분이 탄허스님이었습니다.
여기 왕양명의 시가 있는데요. 탄허스님이 법문에서 했던 내용입니다.
잘 보십시오.
마치 우리 불교의 게송같은 느낌이 듭니다.
“無善無惡은 是心之體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바로 마음의 본체요.”
본체자리! ‘선악이 끊어진 자리가 체자리다.’ 이 말이거든요.
그 다음에
“有善有惡은 是心之用이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이것이 마음을 쓰는 것이다.”
‘체와 용’ 이라는 겁니다. 지난 번에 중용에... 오늘도 중용이 나올것이지
만요.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 소식!
6조단경에 나온 “불사선 불사악”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
는다는 그 체의 자리에서 한 생각 일으키면 선도 행하게 되고, 악도 행하
게 되는 것이 바로 ‘마음의 用이다.’ 이 말이지요.
그럼 ‘인간은 어떻게 해야되느냐?’ 그 다음에
“知善知惡은 是良知요.” 그랬습니다.
“선을 알고 악도 아는 것은, 이것이 바로 양지다.” 이랬거든요.
이것이 맹자에 나오는 양지입니다. 良知!
“良知良能(양지양능)이라.” 그럽니다.
인간은 良知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안다.” 아까 말했던 “본각이다ㆍ근본지다ㆍ보광명지다.”
‘인간은 누구나 근본지혜를 갖추고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선악이 일어나기 이전 소식인 體와,
선악을 쓰고 있는 마음의 用. ←이것이 있는데요.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안 가르쳐줘도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것을 良知라고 한다.”
왕양명은 맹자를 굉장히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양명학은 맹자의 학문을 굉장히 확장시킨 것이 양명학이거든요.
그러면서 불교적인 내용과 와닿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良知를 중요시 했지요. 그래서
“爲善去惡이 是格物이라.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치는 것이, 이것이 바로 격물이다.”
格物致知에 대해서 주자처럼 해석하지 않고, 똑같은 대학이지만,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치는 것이 격물이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