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9회 유교와 불교의 회통 2 – 7
格(격)이라는 것은 어떠한 외물에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어떤 내용들에 대해서 어떤 틀을 가지고 알아내는
것에 해당하는 겁니다.
우리가 바르게 알기 위한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뭔가 제대로 알아야 마음도 바르게 하고 몸도 닦을 수 있지,
앞에 뭔가 바르게 알지 못하면 이것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되기 때문에
格物致知(격물치지)가 중요하다.” 는 겁니다.
그래서 주자라는 분은 格物致知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앎이 중요한 것이지요.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우리도 信ㆍ解ㆍ行ㆍ證(신해행증)아닙니까?
信 = 일단 믿음을 갖고, 解 = 이해를 정확하게 해야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行 = 수행을 해서 證 = 증득을 하는데 까지 가는 것
이지요. 그러니까 믿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수행을 해서 증득을
할 것 아닙니까? 잘못된 信解가 있으면 힘을 다른데 쏟고, 엉뚱한 공부
를 하고 있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致知가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왕양명은 致知라고 하는 것이 특별하게 다른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致知를 왕양명은 致良知라고 얘기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良知는 良知良能(양지양능)이라고 하는 맹자의
내용을 가지고 온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본래 다 알고 있는 지혜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본래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을 타고
났다. 그러기 때문에 性善(성선)이다.” 맹자 말씀이거든요.
格物致知를 “앎에 이른다.” 라고 했을 때,
바깥에 있는 내용을ㆍ지식을 많이 쌓아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의 致知는, 왕양명얘기는
“본래 가지고 있는 잘 알 수 있는 인간의 본지ㆍ본각! 본래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다.” 라고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지
요. 왕양명의 이러한 해석을 탄허스님은 굉장히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致良知 얘기를 탄허스님이 많이하십니다.
대학에 있어서, 주자의 입장에서는 格物致知론은 굉장히 지식론적입
니다. “교양인들ㆍ지성인들처럼 다양한 좋은 지식이라든지, 공부내용을
습득해야 된다. 외물세계를 뭔가 잘 알려고 한다면, 뭔가 좋은 지식을 갖
추고, 공부를 많이 배우고, 학문도 열심히 하고 해야된다.” 고 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기적인 면이 주자에게 강력했다면,
“왕양명은 致良知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본래 가지고 있는 知가 있다. 이것을 회복해야 된다.” ←이렇게
지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탄허스님은 양명의 시(19회 2 - 5)를 인용을 한다든지 해서,
“선악을 가지고 한 생각 일어나지 않은 것이 心之體요,
한 생각 일어나면 心之用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선은 취하고, 악은 취하지 않는 것이 良知다.
그 앎을 가지고 있으면 정성과 바름이라고 하는 마음을 통해서
修身濟家治國平天下 할 수 있다.
이것이 특별한 다른 지식이나 다른 어떤 특별한 학문의 세계에
도달해야만 修身濟家治國平天下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탄허스님이 왕양명의 良知를 굉장히 중시 하셨다는 겁니다.
다음에는 中庸(중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