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9회 2 – 8

작성자釋대원성|작성시간24.12.02|조회수61 목록 댓글 12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9회 유교와 불교의 회통 2 – 8

 

 


   제가 탄허사상을 얘기할 때 탄허스님이 중용에 대해서,

中과, 和!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은 미발의 中과,

한 생각 일어났다가 다시 근본자리로 돌이키는 조화로울 和! ←이 두

가지에 대한 아주 특별한 해석을 하시는 것을 보고, 제가 탄허스님한테

감명을 받고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얘기했는데요.

 

탄허스님이 “중용”이라는 책을 굉장히 중시하셨거든요.

    ↓여기 한 번 보시겠습니다. 뭐라고 설명했느냐?

 

       [제일 道를 잘 밝힌 것이 유교학으로서는 “중용”이올시다.]

중용이 근본 도를 밝히는 것으로는 가장 잘 되어있답니다.

그래서 논어ㆍ맹자ㆍ대학ㆍ중용가운데 대학을 제일 먼저보고, 논어ㆍ

맹자보고, 마지막에 중용을 보는 것이지요.

도에 대한 담론이 잘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학은 체계적인 학통. 16년 동안 공부하는 과목을 얘기한

        것이고, 중용은 실제로 도 닦는 법을 얘기한 것입니다.]

未發(미발)과 已發(이발)이라고 하는 것. 마음을 선정삼매와 위빠사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 유교적인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중화”였다고 말씀드

렸지요?

 

       [왜? 진리를 中으로 대명사를 썼느냐? 그것이 묘한 것이올시다.]

우리도, 불교도 중도가 가장 중요하듯이 유교에서도 가운데 中자가 가장

중요한 말이거든요.

 

       [진리의 대명사를 中이라고 표현한 것은, 和를 겸하지 않으면,

        조화를 겸하지 않으면 眞中. 참다운 中이 못되어 희로애락이 발하
        기 전의 상태를 중. 희로애락이 발해서 도 로 합하는 것을 和라고

        하겠는데,]

中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마음을 어떻게 안 일어나게만 하고 살 수 없지 않습니까?

마음이 일어났을 때, 한 생각 일어났을 때의 그 생각. 화도 나고ㆍ슬프

기도 하고ㆍ기쁘기도 하고ㆍ우리의 감정은 늘 일어납니다.

 

일어난 감정을 어떻게 일어나기 이 전 자리로 잘 돌려놓느냐?

마인드 콘트롤을 어떻게 잘 할거냐? ←이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和가 중

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和라고 하는 것은 體을 겸한 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것이 탄허스님의 아주 장점이고, 아주 독창적인 멋있는 부분입니

다. 和라고 하는 것이 그냥 和가 아니라,

中이라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갖추고 있는 和라는 겁니다.
즉 근본의 體를 갖춘 用이라는 것이지요.

 

한 생각 일어났을 때 그 일어나는 생각을 체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쓰

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일어나지 않았던 그 상태를 가지고서 용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體가 아닌 用은 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體用이라는 말과 中和라는 말은 서로 좀 다릅니다.

           體用이라 할 때는 法格化(법격화)시킨 말이고,]

말하자면 진리로 추상화시킨 것이지요.

구체적인 내용의 담론들을 좀 더 보편화 시켜서 추상화시킨 말이

體用 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탄허스님은 “法格化”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中和라고 할 때는 인격화시킨 말입니다.]

“중화”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감정.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누구나 가지

고 있는 정감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인간적인 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법격화시킨 말이라고 그럽니다.

體用이라는 말은 인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다 이

體用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겠지요. 그래서

 

       [공부를 해서 마음의 본체를 아는 것이 中和라는 말인데,

        유교의 中和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용어지요.

        이 中和의 경지를 불교에서는 大機(대기:마음의 본체)ㆍ

         大用(대용:본체를 닦아서 씀)이라고 합니다.]

 

“중화를 대기와 대용이라고 한다. 체와 용이라고 한다.” ←이렇게 설명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탄허스님은 어떤 사상을 접하더

라도 항상 불교에 근본을 딱 놓고, 불교의 근본에 맞추어서 정확하게 해

석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 느껴지실 겁니다.

 

   그래서 탄허스님의 마음을 우리가 조금 추적을 해본다면,
‘유교라든지ㆍ노장이라든지ㆍ앞으로 나올 기독교라든지 이런 부분들까

지 왜 말씀을 하셨느냐?’

결국은 이 좋은 불교를, ‘불교에 위대한 진리가 있으니까 그것을 이해하

게 해주는 방편으로써 아주 다양하게 제시를 해주셨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이 詩經(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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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一眞華 | 작성시간 24.12.03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마니주 | 작성시간 24.12.03 유교 : 中和. 未發과 已發. [불교에서는 大機와 大用. 즉 體와 用이다.]
    불교 : 中用. 사마타와 위빠사나.
    고맙습니다.
    _()()()_
  • 작성자惺牛大華 이삼연 | 작성시간 24.12.03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19-2-8. 儒敎와 佛敎의 會通.
  • 작성자妙法樹 | 작성시간 24.12.05 고맙습니다_()()()_
  • 작성자묘심행 | 작성시간 24.12.10 광범위하게 살펴 주시는 가르침!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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