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0회 1 – 7

작성자釋대원성|작성시간24.12.11|조회수76 목록 댓글 12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0회 노자와 불교의 회통 1 – 7

 

 

   노자는,

無. ←이런 것이 아주 그냥 핵심이잖아요.

무위ㆍ자연ㆍ현. ←이런 아주 중요한 단어들이 굉장히 두들어지지요.

두들어지다 보니까 “잘못하면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法縛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法執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불교의 무아에 입각해서 봤을때는,

진리라고 하는 것마저도 다시 무아로ㆍ공으로 돌려보내야지요.

우리는 그것을 “법무아”라고 그러고, “법공”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무아가 있으면, 법무아가 있거든요.

 

 

   인무아를 아공이라고 그러고, 법무아를 법공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진리가 전부 空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틀림이 없으나,

그 진리마저도 벗어나야 됩니다. 法執에서부터 해탈해야 된다는 겁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되고요. 그 다음에

절대적인 진리라고 하는 것을 다시금 내려놔야 되는 것이지요.

진리 자체도 空하다고 하는 것.

우리가 깨달았다고 하는 覺에 대해서 깨달을 바가 없는 것을 깨달았고,

“깨달은 것이 없다. 미륵이 선재동자에게 모든 깨달음을 인가해주고 나

서, 彈指(탄지)를 하고 났더니, 선재가 그동안 깨달은 것이 다 날라갔다.”

하나도 없이 다 날라간 겁니다.

 

그러면 까먹은 것이냐? 없어진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됩니까?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이통현장자의 화엄론을 봤는데요.

역시 종지가 드러나는데는 화엄론이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통현장자는 뭐라고 그랬느냐?

 

       “미륵이 彈指를 해서 선재동자가 그동안 공부했던 모든 증득한,

         53선지식에게 증득한 모든 깨달음의 해탈문들이 전부 다 날라가

         버렸다. 다 잊어버렸다.” ←이렇게 됐을 때 이것은 미륵의 뭡니까?

신통입니까? 미륵이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겁니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통현장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했느냐?

 

法自本然(법자본연)이라는 딱 네 글자를 통현론 주석에 달아놨습니다.

         “법이 스스로 본래 그렇다.

          법이라는 것은 깨달았지만,

          깨달은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법”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미륵의 탄지로 인해서, 미륵이 신통을 써서 법을 없애준,

깨달은 것을 없애준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고 하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겁니다. 法自本然이라. 본래 그런 겁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에 집착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날 때,

그것이 진정한 법이지요. 그것이 진정한 空이거든요.

공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면 어떡합니까? 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無라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가지면 어떡합니까?

無라고 하는 것을 진정 놓아야 그것이 진짜 無지요.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無爲의 세계가 되지 않습니까?

 

무에 집착하고 있다. 貴無.

무를 중시하고 있다면, 無爲가 아니라 다시 有爲로 떨어지지 않겠느냐?

그래서 노자를 잘못 읽게 되면 어떤 병폐가 생기느냐?

        “法縛에 걸리고 法執에 걸린다.” ←이런 말씀을 탄허스님이 하셨다

는 겁니다. 이런 것 아주 냉철한 겁니다. 이것 냉철한 겁니다.

 

그래서 탄허스님은 이 담현이라고 했던 그 장자.

無를 얘기했다가 갑자기 有를 얘기했다가,

無를 얘기했다가 그것을 다시 또 無我시켰다가,

이렇게 자유자재로 웅변을 펼치고 있는, 멋진 스토리텔링을 펼치고 있는

장자를 더 많이 강의에 사용하셨다는 이런 부분이 노ㆍ장 공부하는 분들

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이고요.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공ㆍ법공이라고 하는 우리 불교의 진리를

가지고 노ㆍ장을 딱~~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3교를 회통하고, 기독교까지 4교를 회통하고,

서양 철학의 칸트나 맑시즘까지 전부 다 봤을 때,

불교의 기본바탕 하에서 이것들을 회통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일심행 | 작성시간 24.12.12 _()()()_
  • 작성자여연행 | 작성시간 24.12.12 法自本然...고맙습니다 _()()()_
  • 작성자무량화* | 작성시간 24.12.12 고맙습니다._()()()_
  • 작성자惺牛大華 이삼연 | 작성시간 24.12.14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20-1-7. 老子와 佛敎의 會通.
  • 작성자묘심행 | 작성시간 24.12.16 참 대단한 분!
    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