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1회 2 – 2

작성자釋대원성|작성시간24.12.15|조회수57 목록 댓글 14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1회 노자와 불교의 회통 2 – 2 

 

 

 

 

        [常無로 欲以觀其妙(상무욕이관기묘)하고

         常有로 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하니.] 그랬습니다.

항상 無를 가지고 그 오묘함, 妙한 것을 관하고, 그 다음에

常有, 항상 있는 것을 가지고 欲以觀其徼하니,

徼라고 하는 것은 “돌 다.” 하는 요자입니다. 운행한다는 요자로 보

고요.

 

여기서 탄허스님이 현토를 어떻게 했느냐?
       “항상된 無를 가지고서 그 오묘한 세계를 보고,”

妙라고 하는 것이, 노자에서 감을 玄자와 더불어서 玄妙(현묘)라고

하는 형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글자입니다.

 

탄허스님은 “妙라고 하는 것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다.” 라고 설명하시
고, 맹자가 말한 “良知(양지)의 자리다.”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이지만,

말로 하기 힘든 세계. “良知의 세계가 바로 妙의 세계다.” 이렇게 말씀

하셨고요.

 

   徼라고 하는 세계는요?

세상이 운행해서 현상으로 드러나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세계를

“徼의 세계” 라고 하는 것이지요.

왕필같은 경우는 어떻게 주석을 하느냐하면,

常無로 欲以觀其妙하고 常有로 欲以觀其徼하니 ←이것을 “常無欲으로써

그 묘함을 보고, 常有欲, 욕심있는 것으로 그 徼를 본다.” ←이렇게 해석하

고 있는데요.

 

   탄허스님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노자 1장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이 있음과 없음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는 대문이 아니다. 여기는 道의 본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無와 有의 문제라고 하는 것으로 대별을 해서 설명

       하는 것이 옳다. 이 세계는 이미 욕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無와 有의 세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이름이 있느냐 없느

       냐의 세계. 有名과 無名이라고 하면 여기 1장은 말이 맞지만,

         無欲과 有欲으로 설명하기에는 아직까지, 거기에까지 본체론적인

       설명이 나올 수가 없다.” ← 이렇게 보신 것입니다.

 

       [此兩者(차양자)는]

이 두 가지는, 두 가지는 뭡니까? 無라고 하는 것과 有라고 하는 것.

이것은 [同出而異名(동출이이명)이라.] ‘같이 나와서 이름이 달라진 것

이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此兩者는 同出而異名이라. ←이것을 此兩者同인데 出而異名이라고

현토를 할 경우에는 “이 兩者는 같은 것인데, 나와서 달라졌다.” ←이렇

게 현토를 하지 않고, 탄허스님은 此兩者는 同出而異名이라.

“이 兩者는 함께 나와서 이름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니까 유와 무라고 하는 것의 無라고 하는 것도,

이미 無라는 것이 존재할 때 우리가 사유가 있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이

있고, 有라고 하는 대칭이 되는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은요?

無라고 하는 것도 역시 말이라고 하는 것이 나왔을 때 無가 있는 것이잖

아요. 그래서 此兩者는 同出而異名이라. ←이렇게 보는 것이 맞다고

탄허스님은 그렇게 보신 것이지요.

 

       [同謂之玄(동위지현)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함께 玄이라고 설명한다.

此兩者를 함께 玄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玄”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까마득하다. 라고 하는,

천자문에서 “天地玄黃(천지현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했을 때

검다는 것이, 검다는 것이 아니라, 모양이 끊어지고 색깔이 끊어진

세계가 “玄”이거든요. 그래서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제사 지낼 때, 술이 없는 경우에는 그냥 맑은

생수를 떠 놓고, ‘하늘의 색이다.’ 그래서 “玄酒(현주)”라고 씁니다.

이것은 색이 없는 세계이고, 빛의 프리즘에 의해서 파랗게 보일 뿐이지,

모양과 색깔이 끊어진 세계를 玄이라고 한다.’ 그 세계는 뭐냐?

 

‘有와 無라고 하는 전체의 세계이고,

드러났을 때 有ㆍ無라고 하는 이름이 있을 뿐이지,

없을 때는 그것은 玄이라고 한다.’ 이렇게 지금 탄허스님은 본 것이지요.

 

       [玄之又玄(현지우현)이라.] 현하고 또 현하니

       [衆妙之門(중묘지문)이라.]

“모든 오묘함의, 현묘함의 문이 되느니라.” ←이렇게 얘기하는 형태가

나오는 겁니다.

 

   “노자 1장에 대한 탄허의 해석” ←21회 2-1에서 보이셨듯이 탄허스

님의 이렇게 모든 노자라든지 장자같은 것들을 스님은 본인의 살림살

이를 확실하게 제기를 하신 것입니다. 현토를 확실하게 하시고,

그 현토에 대해서 직역을 하신겁니다.

 

  일부러 번역하신 것을 보여드리는 것은,

탄허스님이 총 80권의 책을 쓰셨는데요. 그 중에 78권이 번역입니다.

18종 78권의 책을 번역하셨는데 전부 이와 같이 번역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직역을 하신 것이지요. 직역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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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일심행 | 작성시간 24.12.16 고맙습니다._()()()_
  • 작성자송적 | 작성시간 24.12.16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_()()()_
  • 작성자하얀說偄 | 작성시간 24.12.16 -()()()-
  • 작성자묘심행 | 작성시간 24.12.21 _()()()_고맙습니다
  • 작성자惺牛大華 이삼연 | 작성시간 24.12.21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21-2-2. 老子와 佛敎의 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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